영혼의 왈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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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네르 베르베르 / 영혼의 왈츠 1 / 열린책들

1. 몽매주의 세력의 공격을 저지하라.
2. 내면 여행 체험을 배워라.
3. 영혼의 형제를 찾아라.

위의 내용은 게임도 아니고 꿈도 아니다. 생명이 위독한 멜리사가 딸 외제니에게 가까스로 전한 메세지로 내면 여행 체험이라 부르고 실제는 전생 체험을 뜻한다. 단순한 과거가 아닌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한 전생체험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몰입도 최강 필력을 맘껏 느낄 수 있는데 체면이긴 하지만 마치 가상의 세계를 접속하는 과정 때문인지 유명 여자 아이돌이 주연했던 가상연애프로그램을 주제로한 드라마도 떠올랐고 그 이전에는 외계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소설기반 드라마가 떠오르기도 했다. <영혼의 왈츠>는 여기서 한 발 더나아가 외제니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라고 공부했던 선사시대 이야기를 비롯해서 공부는 아니지만 묘하게 읽으면서 재미도 있는데 뿌듯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먼저 2권 중 첫 번째 1권의 내용은 외제니의 ‘내면 여행’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가상 세계도 잠못자고 접속할 정돈데 내가 살아온 세계이자 내게 종말을 막을 힘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잠이 올 수 있을까. 첫날 부터 하루 2회 이상은 조심해야 한다는 아빠의 경고에도 외제니는 다시금 자신의 첫 번째 전생이자 기원전 시대로 내려가는데 여기서 또 외제니의 그림실력이 큰 역할을 한다. 생성형 AI 덕분에 명령어만 잘 넣으면 기대한 것이상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시대지만 <영혼의 왈츠>에서는 AI를 활용할 수 없는 기원전에서는 AI는 무의미하다. 이런 부분만 보더라도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이 가지는 무한한 능력보다 더 귀한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하면 외제니를 통해 인간에게 언어가 필요한 이유라기 보다는 생성되는 배경, 장례문화에 이어 이름을 가지게 되고 또 다른 부족과 협력하기 위해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결속을 위해 혼인이라는 제도를 활용하는 모습은 기원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기록’이라는 것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읽으면서 손가락의 피를 내는 아픔마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왼손 검지도 궁금증을 참지 못한다. (…)
우리가 정말로 환생하게 되면 서로를 알아볼 방법이 있을까요? 육신의 가족으로 환생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 보이는데…
진심으로 바라면 그렇게 될 거야. 170-171쪽

예전에는 노래가사에서 들렸던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라는 내용이 단순히 사랑하는 연인과의 만남이 아니라 ‘동맹’과의 만남에도 간절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멜리사가 처음 외제니에게 ‘영혼의 형제’를 운운했을 때만 하더라도 시큰둥했던 그녀가 어느새 진지하게 자신의 소명을 깨닫는 과정은 어린시절 부모님 몰래 이불속에서 읽었던 모험소설의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전생을 오가고 인류를 구하는 다섯 명의 전사가 등장해서 적을 쓰러뜨리는 단순한 스토리만 가진 것은 아니었다.

니콜라는 외제니와 사귀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녀에게 마르크스-레닉주의의 가치를 주입했다. 구녀는 인류의 진화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라는 역사 해석의 도구를 갖게 된게 좋았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벌어지는 계급 투쟁은 왕에 맞섰던 노예의 투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게 됐다. 248쪽

외제니는 20대의 대학생이자 부모가 모두 역사학자인 조금 특별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똑똑하고 아름다운데다 그림실력까지 출중했지만 학교에서 그녀는 안타깝게도 우상이 아닌 공공의 적이 되어 괴롭힘을 받았다. 혼자인 시간에 책을 읽었던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새로이 배울 것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소, 아니 꽤나 거친 니콜라와의 만남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외제니가 학교를 통해 얻을 수 없었던 연대와 호기심 충족까지 채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젊고 매력적인 교수 또한 외제니의 시선을 자꾸만 끌어당기는데 과연 외제니의 진정한 영혼의 형제는 누구이며 몽매주의 세력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2권 서평에서 이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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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까? - 인공지능과 관계 맺는 인간에 관한 탐구
이모란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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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질문하고, 생각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의 형태가 갖춰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답을 찾아 나서는지에 따라 기술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더욱 잘 이해하고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42~43쪽

이모란 교수의 <우리는 왜 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까?>를 읽기 전엔 책 제목만 보고 신앙 혹은 무속인을 찾아가는 심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책은 기계(aI)에게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 계기 혹은 그 시작점부터 출발한다. 앨런 튜링의 모방게임 부터 인공지능이란 단어를 탄생시킨 매카시에 이어 SF문학에서 다루는 로봇을 향한 기대 혹은 이상향이 무엇인지도 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동시에 내가 이전에 생각해왔던 생각들, 차페크가 부여했던 ‘노예 혹은 노동자’에 가까운지 아니면 다음 발췌문에 등장하는 ‘그녀’와 가까운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테오도르에게 사만다는 새로 산 소프트웨어, 운영 체제, 프로그램, ‘그것it’이었다. 그런데 음성으로 짧은 대화를 나누자 테오도르에게 이제 사만다는 ‘그것’이 아닌 ‘그녀her’가 되었다. 89쪽

내게 AI는 과거에는 애매하지만 현재에는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함께 생각하는 존재가 분명하다. 내가 번거롭게 해야 할 단순통계를 정리해주고,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어줄 뿐 아니라 간단한 대화부터 제법 긴 문서의 영작 혹은 번역을 처리해준다. 문제는 프롬프트가 아니었다. 저자의 말처럼 과거의 상상 혹은 구현과는 달리 지금의 AI는 몸이 없다. 몸이 없는 생성형AI는 마치 몸=형체=실질적인 책임과 같은 방식으로 꺼내놓은 결과물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다면 사실상 활용도가 크지 않았다.

알고리즘을 이용하며 알고리즘의 예측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더욱 알고리즘에 의존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알고리즘이 내게 좋아할 만한 것을 권하고 결과적으로 내가 그것을 즐겼다면, 자연스레 “나를 잘 알아주네” 하는 만족감을 느낀다. 112쪽

인공지능이 마치 자신과 대화하고 있다는 착각을 느끼게 하는 이유를 책에서는 프로그래밍 방식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가 꺼낸 문장의 주어와 특정 단어를 다시 재조합해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출발하기도 하고, 위의 발췌문처럼 내가 ‘즐기는’ 콘텐츠로 내게 익숙함을 던져주면서 친근함을 느끼게도 만든다. ‘맞춤’의 다른 말이 ‘필터링’이며 편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저자는 ‘알고리즘과 함께 살아가기’위해서 파리저의 ‘익숙한 것들로만 구성된 세계는 배울 것이 없는 세계(117쪽)’라는 말을 인용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선택하고 함께 ‘생각’해야 하는가.

정리하면, 사람들은 이간의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추론 방식,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고자 하는 욕구, 사회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기에 사람이 아닌 대상을 사람처럼 전제하고 대하는 의인화 경향을 보인다. 185~186쪽

AI를 의인화 하는 동시에 제목을 통해 유추할 수 있었던 ‘자기 노출의 최소화’를 통해 AI에게 익숙함과 동시에 안정감을 느끼게 될 뿐 아니라 가능한 때에 연결가능한 기기만 있다면 언제라도 연결가능한 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AI에게 너무나 많은 정보를 자발적으로 던져주고 이전에 없었던 범죄와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켜 버렸다. 이런 범죄에 악용된 사례외에도 기술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뇌가 할 수 있는 영향력은 오히려 떨어뜨리게 되었다. 검색을 통해 빠르고 정확한 답을 알고자 하는 욕망을 비우고 스스로 찾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과 적당한 모호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AI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 적당한 활용범위 무엇보다 함께 ‘생각하는 존재’의 경계를 상기시키게 하는 유익한 책이었다. #우리는왜ai에게속마음을털어놓을까 #이모란 #아날로그 #ai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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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역사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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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역사 / 리 랑그바드

한국 가족들은 덴마크 가족들에 비해 서로 숨기는 게 더 많은 것 같아.
어떤 가족이든 비밀은 있어. 서로에게 비밀이 없다면, 그건 진짜 가족이 아니야. 167쪽

위의 문장은 책 <나의 통역사> 뒷표지에도 실려 있는 내용으로 이 책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를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자 통역사의 역할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저자는 언어가 서로 다르고, 같은 부모에서 태어났더라도 설사 입양이란 프리즘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형제자매가 결이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자인 ‘나’는 어릴 때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여자라는 이유로 덴마크로 입양되었다. 책의 내용 전반에 페미니즘과 <82년생 김지영> 그리고 <채식주의자> 등이 등장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아야했던 차별과 아픔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내게는 여성의 차별, 여전히 한국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동성애 문제보다는 앞서 언급한 ‘한 형제라도 결코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더 마음이 갔다. 동시에 같은 언어를 배우고 설사 통역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어떤 배경에서 나고 자라고 성별에 따라 전달되는 내용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나는 분명 아버지가 북한에서 오셨다고 들었어.
(…)
아마 그 사람이 착각했을 거야.
어떻게 그런 착각을 할 수 있지?
아버지 고향이 북쪽에 있다고 말했는데 그걸 북한이라고 받아들였을 수도 있지. 286쪽

이 부분이 그저 단순한 오역의 문제라고만 생각되지 않았다. 우리에게 북쪽이라는 단어는 방위를 표시하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함의가 담겨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이전 통역자가 이를 단순히 북쪽이야라고 말하지 않고 아버지가 전쟁, 두고온 형제 등을 언급했던 것을 종합했을 때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나’의 연인이었던 이전 통역사가 가족들과 나의 말을 그대로 전하기보다는 의역해서 전하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 가족으로부터’ ‘나’를 눈치(눈치는 자기 자신을 한 걸음 뒤로 물리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 148쪽)’ 빠른 사람으로 생각케하는 것 역시 두 사람의 연대 혹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맨 처음 발췌문으로 돌아가보면 ‘서로에게 비밀이 없다면, 그건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말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의 역할일 수도 있지만 상대가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게 될 것을 염려해서 하는 ‘배려’라고 느껴졌다.

입양인은 사실 입양을 취소할 수도 있어.(…)
응, 입양인과 양부모가 서로 동의하면 가능해. (…)
나는 입양인이든 아이든, 누구에가나 부모와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169쪽

나는 가끔 친가족에게 애인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입양인들이 부럽기도 해.(…)
친가족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일 수도 있어. 친부모가 누구인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면서, 그걸 알고 싶어하는 입양인도 많잖아. 202쪽

입양인이며 레즈비언이자 작가인 ‘나’를 통해 이야기는 흘러가지만 책의 내용은 결코 편협하지 않았다. 위의 발췌문을 보더라도 자신의 아픔과 과거에 갇힌 ‘나’를 반복적으로 손을 내밀어 밖으로 꺼내주는 역할을 통역사가 하고 있다. 통역사의 역할은 거듭 반복하지만 언어가 가진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외에도 ‘나’와 ‘독자’가 빠질 수 있는 오해와 오역으로부터 구해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를 누구보다 잘 전달해주던 통역사이자 전 여자친구는 먼저 이별을 고하고 떠나버린다. 그렇다면 ‘나’의 세계는 가족과 완벽하게 단절되는가 싶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한때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큰언니와의 오해를 풀게 되는 건 결국 통역사의 도움이 아닌 ‘나’와 ‘가족’과의 애정이었다. 결국 이 책은 언어 너머에 있는 침묵과 서로의 교감의 역할도 이토록 솔직하게 그리고 어느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풀어내고 있었다. 이런 책을 만난다는 것은 언어와 관계 그리고 거의 언급하진 않았지만 ‘차별’과 ‘존중’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주었다. @prunsoop #나의통역사 #리랑그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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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토마스 마이어 지음, 홍원표 옮김 / 현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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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의 강렬한 사적 삶,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과의 교류, 유럽 여행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녀는 항상 그래왔듯이 여전히 사람을 끌어당기는 존재였다. 668쪽

토마스 마이어의 <한나 아렌트>를 읽기 전에는 한 유대인 여성 철학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그리하여 그녀의 저작을 그리고 철학을 좀 더 수월하게 소화시킬 수 있는 예행독서로 생각했었다. 지난 중간리뷰에도 적었지만 해당 목적은 당연히 충족되었을 뿐 아니라, 구직활동은 물론 망명중에도 스스로를 ‘작가이자 철학자’라고 소개할 수 있는 것이 대범함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래 역자의 후기 발췌했다.

내가 이 귀중한 책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 번역을 상당 부분 진행한 후에야 망명 이전 아렌트의 삶과 저작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부분을 제대로 확인하여 번역에 참여한 것이 큰 결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758쪽

중간리뷰를 책의 중간이 아닌 망명전과 후로 나눈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보니 이 책의 최종서평이자 어쩌면 이 책의 두께를 보고, 혹은 그녀의 명성때문에 부담을 가진이들에게 내가 읽고 느낀 바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을 읽을수록 어떤 자기개발서도, 심리치유서도 하지 못했던 ‘행동력’을 내게 선사했다. 그녀가 독일을 떠나 파리에서 유대인 청소년을 위해 일할 때 책상에 앉아 감정에만 호소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상황을 전하고 실질적인 구제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철학자로서의 명맥을 중단하지 않았다. 특히 두 번째 남편이었던 블뤼허와의 삶은 불행한 여성으로 그녀를 충분히 전락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남편의 부정에 절망하기 보다는 그로부터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온전한 안식과 언제라도 그녀가 원할 때면 ‘대화할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않았다.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을 수 있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두 사람 사이의 일은 제3자가 판단할 수도 알 수도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와 상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삶을 통해 보여준 사람이며 동시에 유대인으로서 누군가는 그 사실을 숨기거나 혹은 굳이 밝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혔고, 그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해야할 일이 아닌 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물론 이런 사적인 부분외에 정치철학자로서의 저작이나 강연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인상깊었던 부분은 하이데거와 발터 벤야민을 두고 ‘폭풍우’라는 상징으로 설명한 부분이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잘못과 오류를 바로잡는다는 것, 인정한다는 것 자체도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또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미래를 암울하게 단정짓기란 동시에 얼마나 쉬운 일인가. 아렌트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사유가 개인의 존재에만 국한되어 있어서도 안되지만 무엇보다 절망으로 모든 것을 멈춰서도 안되었다. 저자는 하이데거가 침묵으로 일관할 때 ‘그렇다면 아렌트는 무엇을 했는가?(482쪽)’라는 질문을 던지고 두 사람의 극명한 차이를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만들었다.

몇 주에 걸쳐 일하고 배우며, 놀고 노래하며, 독서하고, 관심 있는 모든 주제를 자유롭게 토론하는 준비 캠프는 어린이들에게 자유와 기쁨을 되찾아준다. 그렇다. 그것은 그들에게 잃어버린 젊음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202쪽

위의 홍보글을 최종 서평 마지막 발췌글로 선택한 이유는 토마스 마이어의 정리처럼 ‘자기 결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게’ 하는데에 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혼자만 잘사는 삶도, 혼자서라도 숭고해지길 바란 철학자가 아니었다. 무너진 곳에서 함께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삶으로 실천해낸 사람, 여성으로서, 유대인으로서의 삶을 부정하고 원망하는데 그치지 않았던 그 지점이 나를 일으켰다고 말할 수 있다.

#현암사 #한나아렌트 #토마스마이어 #우주서평단 #철학
@woojoos_story 진행, 현암사 도서지원으로 우주클럽+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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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거울 - 파국의 14세기, 흑사병, 백년전쟁, 그리고 움트는 혁명
바바라 터크먼 지음, 박중서 옮김 / 원더박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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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거울 서평
바바라 터크먼의 <먼 거울>은 14세기 유럽의 역사가 중심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역사적 사실보다도 마치 어제 뉴스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었다. 처음에는 흑사병과 백년전쟁, 교황권의 분열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쉽게 정리할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신기하게도 600여 년 전 사람들이 살아가던 방식과 고민이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먼 거울‘은 단순히 먼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저자 바바라 터크먼은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14세기 유럽을 복원하지만, 연대기식 역사 서술에 머무르지 않는다. 실존 인물인 앙게랑 드 쿠시 7세를 중심축으로 전쟁과 정치, 종교, 귀족 사회와 민중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풀어낸다. 덕분에 푸아티에 전투나 흑사병, 아비뇽 유수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하는 연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들의 선택과 갈등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흑사병 이후 노동력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가 인상적이었다. 전염병으로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법으로 막고, 기존 임금을 유지하도록 강제하며, 심지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직장을 옮기는 일까지 처벌했다는 기록은 놀라웠다. 노동자의 권리보다 사회 질서와 경제 안정을 우선하려는 국가의 모습은 시대가 달라져도 반복되는 현실처럼 느껴졌다. 또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보다 구걸을 선택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기록 역시 오늘날 복지와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대는 달라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1349년 잉글랜드에서 모든 사람에게 1347년과 똑같은 봉급을 받고 일하도록 의무화하는 법령을 공표했다. 일하기를 거부하는 경우를 대비해 처벌도 마련되었고, 고용자가 더 높은 봉급을 찾아 현재 고용 장소를 떠나는 것이나 고용주가 더 높은 봉급을 제안하는 것 역시 처벌 대상이었다. (…) 여기서는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보다는 차라리 게으르게 구걸하는 편을” 선택한 사람들을 특히 비판했다. 273쪽

흑사병 이후 죄의식을 씻기 위해 수많은 순례자가 로마로 몰려들었다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데 실제 희년마다 전대사를 받으려고 신자들이 성지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바로 떠올라서 ‘예나 지금이나’라는 표현이 바로 떠올랐다. 다만 당시에는 신앙과 희망을 찾아 수천 명이 이동했지만, 정작 도시에는 식량과 자원이 부족했고 폐허가 된 성당들이 남아 있었다는 부분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현실과 다른 기록된 내용만으로는 농민들의 삶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까닭도 등장한다. 기록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역사란 결국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역사가 완전한 진실이라기보다 남겨진 흔적을 통해 재구성되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특히 다시 찾아온 제2차 페스트는 사람들에게 더 큰 공포를 느끼게 하여 그야말로 ‘흉흉한 사회 분위기’가 야기할 수 있는 여러가지 의심과 허황된 일련의 문제들은 최근 우리가 경험했던 감염병의 기억과도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전염병은 끝났지만 사회가 곧바로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았고, 사람들은 불안과 갈등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교회 통합 시도나 정치적 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가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이해관계와 권력 다툼 때문에 번번이 좌절되는 모습은 오늘날 국제정치나 사회 개혁을 떠올리게 한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협력보다 경쟁이 앞서고, 공동의 이익보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우선되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익숙했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인간 사회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그래서 과거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현재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가정하에 중세의 주요 사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서인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거울처럼 다가왔다. #먼거울 #바바라터크먼 @wonderbox_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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