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과 정원 - 나만의 신화를 세우는 추상의 힘
최진석 지음 / 퍼블리온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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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과 정원, 삶을 설계한다는 것

“주체적으로 삶을 운전하려면 자신만의 가치를 어디선가 발견하거나 주워 오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빛나는 통찰과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 정해야 한다.”(73쪽)

최진석의 『텃밭과 정원』은 삶을 텃밭과 정원에 비유하며, 우리가 삶을 어떤 태도로 가꾸어야 하는지를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저자가 말하는 텃밭과 정원의 차이는 단순한 삶의 태도에 관한 비유를 넘어,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사고방식과 수준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주어진 환경과 경험을 기록하고 축적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다움을 정의하고 삶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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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란 낯선 것을 마주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나아가는 지적 모험이다.(111쪽)

저자는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가치를 외부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행복이나 자유를 삶의 목적으로 제시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구체적인 목적지가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호기심을 바탕으로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인간의 본성적인 앎에 대한 욕구를 이야기한 것처럼, 삶은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나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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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오직 머릿속으로만 사유할 수 있는 완벽한 기하학적 원과 삼각형을 먼저 상정했다. 그리고 현실의 불완전한 사물들은 그 완벽한 수학적 법칙을 모방한 하위의 세계일 뿐이라고 보았다. 눈앞의 구체적인 흙과 돌을 관찰하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학적 원리를 깨닫는 것을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는 궁극의 틀로 여긴것이다. (150쪽)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 설명하는 생각의 의미도 인상적이었다. 생각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되풀이하거나 정해진 틀 안에서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낯선 것을 마주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따라서 실천과 변화를 회피한 채 기존의 관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사고는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기 어렵다.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경험 너머의 가능성을 추상하고 설계하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다.
저자는 전문성 역시 생계를 위한 기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본다. 구체적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의 원리를 이해하고, 나아가 자신만의 관점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삶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지식과 경험의 양만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다. 시선이 높은 사람은 고독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비극 속에서도 질서를 읽어 낸다.
이러한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축의 시대와 그리스 철학을 언급하며 추상적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그리스 철학이 현실의 구체적인 사물에 머무르지 않고 수와 기하학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원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경험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과 그 경험을 넘어서는 원리를 사유하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사고다. 저자는 이러한 추상 능력이 개인의 삶에서는 자신만의 신화를 설계하는 힘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영화 『수상한 그녀』를 사례로 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준 황당함은 단순한 허무맹랑함이나 유치한 망상이 아니다. ‘황당함’이란 눈앞의 찌그러진 현실과 인과관계라는 대지의 중력을 단숨에 끊어내고 가상의 세계를 머릿속에 창조해 내는 가장 극단적인 초월 추상 능력이다.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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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늘 있었던 명제는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 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특히 삶의 의미는 어딘가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과, 기록과 경험의 축적만으로는 삶의 수준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주어진 현실을 성실하게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너머를 추상하며 자신만의 정원을 설계하는 일이다.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나는 어떤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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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 바깥에서 - 노예와 여성, 노동자와 소수자가 바꾼 쓰기의 역사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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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바깥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표준어 바깥에서>를 읽고 나면 글쓰기란 절실한 곳에서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글을 쓸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문자권력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을 기록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저자가 거듭 강조하는 ‘문자권력’이라는 말은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열쇠다. 과거에는 글을 읽고 쓰는 능력 자체가 권력이었다. 누구나 글을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여성과 노동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애초에 허락되지 않거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학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그런 경계 바깥에서 글을 썼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문학이란 처음부터 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자신의 삶을 외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절실함에서 비롯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전쟁에서 손을 다치고, 전쟁 노예로 붙잡히고, 가난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는 감옥에서 집필한 대작 돈키호테로 인정받긴 했지만 가난과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위대한 작품과 그 작품을 쓴 사람의 비참한 현실 사이의 간극이 놀라웠다. 작품의 명성은 작가의 삶까지 보상해 주지 않는다. 우리가 위대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의 이면에는 정작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한 인간의 삶이 놓여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톰 소여의 모험>으로 익숙한 마크 트웨인이 차별받고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도 새롭게 다가왔다. 문학은 개인의 상상력과 재능을 증명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가 당연하게 여기는 부당함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기도 하다. 어빈 웰시의 『트레인스포팅』에 대한 설명 역시 인상적이었다. 약물과 파격적인 소재 때문에 그저 자극적인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작품이, 사실은 대처 시대 이후 산업이 무너지고 노동의 미래가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청년들의 삶을 보여주는 사회풍자라는 점이 놀라웠다. 한 개인의 파괴적인 모습 뒤에는 그를 그렇게 만든 사회의 조건이 있다. 문학은 바로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저자의 말에 가장 깊이 공감하게 된 인물은 마이아 에켈뢰브였다. 가난 속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바닥을 청소하며 살아가면서도 글쓰기를 놓지 않았던 사람.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들을 떠올렸다. 시간이 없어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좀 더 잘 쓸 수 있을 때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럴듯한 이유를 늘어놓았지만, 어쩌면 나는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 결과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얼지 않도록 뜨개질과 코바느질을 했다.(...)
쓰레기통에서 건져 올린 종이에 몰래 글을 쓰고,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사무실을 청소했다. 233쪽

에켈뢰브의 삶은 그런 생각을 돌아보게 했다. 글쓰기는 무언가 대단한 영광을 얻기 위해 시작하는 일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내 안에 쌓인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든 밖으로 꺼내놓아야 해서 쓰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남의 문장을 흉내 내고 이미 인정받은 글의 형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글은 자기 안에서 길어 올린 것이어야 한다. 서툴더라도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써야 한다. 그것이 글쓰기의 출발점일 것이다.

<표준어 바깥에서>는 문학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책인 동시에,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건네는 하나의 권유다. 언젠가 충분히 준비된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지금의 나를 통과한 생각들을 지금의 언어로 기록하는 것. 글쓰기의 자격을 바깥에서 구하지 않는 것. 문자권력의 바깥에서 시작된 수많은 글이 문학의 역사를 바꾸었듯, 나 역시 누군가의 인정을 기다리기 전에 내 안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한다. 이 책이 내게 남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다. 글은 특별한 사람에게 허락된 권리가 아니라,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 시작하는 일이다. #박홍규 #틈새의시간 @timeofgap_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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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를 기울이는 법
롭 워커 지음, 이혜진 옮김 / 마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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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데 쓴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우리가 보고, 감각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까? (…)

그리고 얼마나 재미있어질까? 13쪽


롭 워커의 <주의를 기울이는 법>과 함께 ‘주의를 기울이며’ 보낸 지난 몇 주, 내게는 어떤 변화가, 얼마나 즐거운 일들이 있었을까. 같은 것을 다르게 보거나, 같은 장소를 다른 때에 관찰하는 등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여러가지 다양한 방식을 안내하는 이 책에는 난이도에 따른 표기로 바로 해볼 수 있는 것, 어느정도의 준비가 필요한 방식등을 점의 갯수로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 역시 이 책을 순차적이 아니라 골라서 읽는 등 맘에 드는 방식대로 읽어도 좋다고 권한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식은 바로 해볼 수 있는 쉬운 방법부터 적용해보았다. 내게만 쉬운 방법들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평소에도 주변을 살피는 편인데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아티스테 웨이>에서 제안한 ‘아티스트 데이트’를 20여년 전부터 비정기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캐머런의 프로그램은 창의성을 ‘회복한다’는 개념을 중심으로 짜여 있는데, 그는 매주 ‘아티스트 데이트’를 일정에 넣으라고 말한다. 아티스트 데이트란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무언가를 탐험하러 혼자 떠나는 축제 같은 외출” 이다. 79쪽


날을 정해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점에서 분명 아티스트 데이트는 훌륭하지만 롭 워커의 <주의를 기울이는 법>의 핵심은 우리의 시도가 반드시 생산적인 것과 이어질 필요는 없다고 처음부터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을 오랜 시간 찬찬히 살피는 방식이라든가, 미술관 여기저기를 살펴가며 먼지를 찾아내는 일들이 마냥 즐거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비엔날레 전시 관람 때 이 책을 가져간 이유도 그동안 전시해설과 전공자이거나 문화예술교육사로서의 시선을 내려놓고 아이와 함께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미술관은 우리가 사물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 만드는 특수한 공간이다. 미술관은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한 훈련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112쪽


무언가 메모하고 설명하려던 기존의 나를 내려놓고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눈에 들어와 마음을 붙잡는 작품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아이는 탁구와 관련된 작품앞에서 쉴새없이 움직였고, 레고만보기 작품 앞에선 오랜시간을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그야말로 ‘주의를 기울이며’ 바라보았다. 


보들레르는 이렇게 썼다. “아이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본다. 언제나 취해 있다.” (…)

이것이 바로 “유년기의 천재성, 삶의 어떤 측면도 진부하게 여기지 않는 천재성”이다. 138쪽


최근 피아노 독주부터 교향곡 그리고 포크송에 이르기까지 거장들의 음반을 들으며 평전을 읽고 있는데 ‘이선 하인’이 제안한 ‘선택적 듣기’(난이도 해볼만함)를 시도해보았다. 이 책을 읽었기에 해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고, 그 경험은 정말이지 이 책을 관통해 가장 권하고 싶은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 중 하나였다. 한 곡의 노래가 시작되면 그 안에서 특정 소리(보컬도 무방)를 정해 집중해서 듣는 것이다. 비틀즈의 팬이 이선의 방식을 통해 비틀즈 앨범을 듣고선 “평생 흑백으로 보던 것을 컬러로 보는 것 같다”(172쪽)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시도는 했으나 완벽하게 마무리 하지 못한 것은 ‘디지털 묵언’이다. 난이도가 ‘해볼만함’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것보다 어렵게 느껴져 개인적으로 조금 당황했다. 오히려 실생활에서 묵언을 하는 것보다 ‘디지털 묵언’이 더 어려운 시대라고 느껴졌다. 이처럼 저자가 정한 난이도가 독자마다 다 다를테니 이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직접 해보길 권한다. 생각하는 방식이 분명 달라질 것이다.


#주의를기울이는법 #롭워커 #마주 @maju_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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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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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 헤르멘 헤세 /문예춘추사

지난 8월, 여름이 이제 끝났구나 싶었는데 9월 한 달 내내 여름못지 않은 더위로 가을이 찾아왔다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헤르만 헤세의 <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를 읽는 동안 참 여러 번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 보았던 것 같다. 크고 작은 공원에서, 혹은 얕은 뒷동산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누구보다 계절의 변화를 빠르게 보여주는 시든 꽃잎에서 헤세가 이야기한 글자들이 오고 갔다.

만약 내가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처럼 나라 사이에 경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이 세상에는 아마 전쟁도 없고 국경 폐쇄도 사라질 것이다.
경계보다도 더 혐오스럽고 어리석은 것도 없다.

이전 문단에서는 ‘경계선들을 넘어선다는 것의 멋짐’을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을 읽을 때 떠오른 사람이 다른 아닌 아티스트 백남준이었다. 그의 작품 중 TV정원은 살아있는 화초들 사이로 강렬하게 빛을 내뿜는 TV가 곳곳에 놓여져있다. 주사선 색의 변화가 마치 계절의 변화처럼 느껴졌다던 백남준은 TV속 영상을 다름아닌 <글로벌 그루브> 푸티지 영상으로 채웠다. 노래와 춤으로만 구성된 영상에서 경계,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한 불편함이 저절로 잊혀진다. 헤세가 백남준의 TV정원을 걷는 상상을 잠시 해보며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던 헤세의 말의 비디오로 응수했을 두 사람의 관계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런 위트 또한 헤세의 글에 잘 드러난다.

길고 딱딱하게 말라 버린 나무뿌리, 오래되어 조금씩 깨지고 색이 변한 돌, 물 위에 떠다니는 기름 얼룩, 유리잔 속에서 튀어오르는 물방울까지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위대한 마력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197쪽

이전에는 관심이 없어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최근 인기있는 책들을 펼쳐보면 흙, 돌, 가벼운 산책 그리고 명상이 참 많은 것 같다. 헌데 한 권 한 권 읽어보면 또 그 맛이 다 달랐다. 똑같은 초록이지만 저마다 다른 모양과 향내를 가진 식물처럼 책들도 그런 모습이었다. 헤세의 말처럼 그런 책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서두에 밝힌 것처럼 저절로 읽던 페이지에 손을 넣어두고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람을 그리고 발아래 놓인 흙과 작은 돌들을 굴려보게 된다. 그런 감각을 가장 잘 나눌 수 있는 대상은 어린 내 자녀였다.

새로 글자를 배우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어린아이는 어떤 시구나 격언을 읽더라도 곧 습득해 버린다. (…)
그리고 이미 상당한 독서 능력에 도달하더라도, 그러한 시구나 책들에 등을 돌리지 않는다. 297쪽

중간에 많은 내용을 중략하였기에 조금 말을 보태면, 어린 시절 마음에 들었던 시구나 글들을 발견하더라도 이어지는 문장처럼 그것을 여전히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기억하는 문장은 잘 아는데 아이에게는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연과 더불어 있는 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을 아이는 어떤 문장을 마음에 넣어두었을지 궁금하다. 책 뒷편에 모아놓은 필사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아이의 소중함을 책을 읽으며 새삼 느꼈던 것 같다.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나 혹은 적당히 차분해진 순간에도 곁에 두고 읽고 필사하기에 참 좋은 책을 만났다.

#헤르만헤세 #필사 #그리움이나를밀고간다 #문예춘추사 @moonch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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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절은 영원하지 ㅣ 꿈꾸는돌 47
하유지 지음 / 돌베개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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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계절은 영원하지 / 하유지 / 돌베개

“그런데 어쩐지 좀 불안하지 않아?”
이렇게 말해 놓고 깨달았다. 추동하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것을.
“뭐가 내가 계속 아빠 대타로 일하게 될까 봐?”
“아니 그냥,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게.” 30쪽

부모님을 도와 배달일을 하는 추동하와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오한봄. 실수로 아래층에 자꾸 배달실수를 저지르는 추동하를 학원에서 우연하게 만나 대화를 이어가게 된다. 초반에는 엄마가 있지만 없는 상태의 한봄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서 엄마의 연락처를 일부러 외우지 않으려는 모습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다. 무엇보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은 나이와 상관없이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한봄의 할머니는 심장이 좋지 않아 곧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에 놓이고 그로인해 그동안 만날 수 없었던 한봄의 엄마가 원래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들어온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 괴로워진다. 마치 배송완료 문자를 받고 문을 열었지만 택배가 문 밖에 있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수학 과외를 제안했을 때부터 엄마에 관해 털어놓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산이란 묘한 공간이었다. 크고 작고 높고 낮은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주변에 다른 등산객이 있는데도 동하와 나, 단둘만 존재하는 우주가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73쪽

봄과 동하의 사이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만큼 반대로 힘겹게 만드는 대상도 당연히 존재한다. 인생의 세 사람의 자리를 헤아려보며 규림과 할머니로 두 사람의 자리는 채워졌지만 남은 한자리를 누가 대신해줄 수 있을지 가늠하는 봄이의 마음의 독자인 나 또한 읽을수록 그 마음이 느껴져 안쓰러웠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과 지인이라도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지만 “우리 사이에는 이정도 간격이 있지 않을까(104쪽).”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봄이의 마음이 안타까웠고, 동시에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 자리를 자신이 채울 수 있는 것 혹은 채워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이 세상에 얼마간 지쳐 버렸을 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일까? 우리 곁에 우리가 있을까? 모를 일이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단 하나, 지금 내 옆에 동하가 있다는 사실, 동하 옆에 내가 있다는 진실. 132쪽

예전에는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면 어른보다 더 현명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마음을 다잡는 아이들의 모습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었다. 어째서 이 아이들은 이토록 어른도 하기 어려운 마음정리와 상대에 대한 배려가 가능할까, 남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지 못한 결핍을 채우기 위함일까, 이또한 글을 지은 어른이 아이에게 기대하는 바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계절은 영원하지>의 인물들은 어른의 기대치에 맞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아이들도 충분히 자신의 미래를 염려하고 또 준비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두려워하지 마!” 라고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봄이처럼 막연한 미래때문에 불안한 이들이 힘을 낼 수 있기를. ‘작가의 말’에서 한봄과 동하의 말처럼 언제, 어디선가 꼭 다시 두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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