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쟁 - 제2차 세계대전은 어떻게 중국의 민족주의를 형성하는가
래너 미터 지음, 유강은 옮김 / 언더스탠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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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너 미터의 <좋은 전쟁>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제목에 대한 의문이었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고 희생을 남기는데, 중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단순한 패배와 고난의 역사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승리의 역사’이자 오늘날 중국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 중요한 기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은 일본인들과 충돌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충돌하고 있으며, 경제 불평등과 종족간 긴장 등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다. 37쪽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은 중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특히 마오쩌둥 시대에는 상대적으로 가려졌던 국민당의 항전과 전쟁 당시 중국 사회의 모습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충칭의 전시 수도 경험이나 수많은 피란민의 삶을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흥미로웠다.

2차대전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중국의 공론장에서 한창 두드러지게 되었다. 새천년에 접어들어 당대의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변화인 중국 미디어의 성격 변화로 인해 2차대전의 가시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185쪽

전쟁은 끝났지만 그 기억은 박물관, 영화, 연구, 인터넷 등을 통해 계속 현재형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전쟁의 기억은 인류의 자원이 된다(217쪽 참조)’는 말이 오래 남았다. 전쟁 자체는 비극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현재의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중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일본에 대한 역사적 기억뿐 아니라 자신이 전후 국제질서를 만드는 데 참여한 강대국이라는 인식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였다. 결국 역사는 과거의 사실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필요에 따라 다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의문도 생겼다. 중국이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과거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오늘날 국가의 정당성과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서일까? 국민당의 역할을 다시 조명하는 것 역시 역사적 균형을 되찾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현재 중국이 자신들의 역사를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전쟁하면 제2차 세계대전을 가장 먼저 떠올리던 내게 강대국과 주변국이 아닌 다른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전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지만, 기억에는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현재의 국가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는 과연 누구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라는 질문과 동시에 내가 만약 전쟁에 관한 책을 구상한다면 어떤 시선과 주제로 접근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클럽_역사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좋은전쟁 #래너미터 #언더스탠드
@woojoos_story
@understand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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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와 대화하는 낮 / 데일 카네기 / 청아출판사

“성공의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뿐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사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36쪽

<카네기와 대화하는 낮>에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과 자기관리론 중 우리의 마음과 관계를 돌아보기에 좋은 ‘낮 시간대’에 어울리는 문장을 선별하여 담아냈다. 그렇다보니 책을 가급적 분주함이 조금 지난 오후에 읽었는데 서두에 올린 발췌문은 첫 번째 챕터이자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태도에 대한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어지는 대화기술 편은 앞서 언급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뿐 아니라 내 안의 가식이나 욕심을 덜어내고 무엇보다 무작정 비난하거나 부정적으로 건네는 말이 아니라 들어주고 공감하는 대화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육아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아이를 자꾸 잔소리하고 마치 내 말만 옳고 전부라는 듯 하는 말투였다. 누구나 완벽하게 옳을 수 만은 없고, 지나친 확신은 상대방에게 수용보다는 반박하고자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새로운 것은 물론 이미 아는 것을 수정하거나 조정하려 할 때 꼭 필요한 조언들로 가득했다. 이보다 더 와닿왔던 부분은 세 번째 챕터로 적절한 휴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와 함께 잘 쉴 수 있어야 오히려 생산성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부분이었다. 나는, 우리는 얼마나 잘, 제대로 쉬고 있는가.

“결국 사람을 가장 쉽게 지치게 만드는 것은 일이 아니라, 걱정과 긴장으로 굳어 버린 마음과 몸이다. 149쪽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최고의 방법은 오늘에 모든 열정과 지혜를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며 완벽한 준비이다. 196쪽

성공적인 삶을 위해 알아야 또 다른 한 가지는 무엇일까. 우리는 일을 해서 자아실현은 물론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때 내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자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었다. 수십 번 혹은 수 백번의 시행착오에 좌절이 아닌 도전으로 이어지는 이유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인간관계 및 자기관리를 위함이기도 하다. #인간관계론 #자기관리론 #데일카네기 #클래식루틴 @chunga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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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호수, 우리가 사랑한 이상한 세계
캐롤라인 트레이시 지음, 김민정 옮김 / 일레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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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새치산맥 발치에 길게 늘어선 우리네 도시들처럼 이토록 눈부신 장관을 마주하고 사는데도, 왜 우리 중 대다수는 그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우리는 마치 이 거대한 우주적 신비 앞에서 느끼는 압도적인 경외감을 지워버리기 위해 무척이나 서둘러 살아온 것 같습니다. 47쪽

캐롤라인 트레이시의 <소금호수, 우리가 사랑한 이상한 세계>를 읽기 전 예전에 적었던 호프 자런과 헬렌 맥도널드의 서평을 찾아보았다. 분명 동물을 비롯한 자연을 마주하는 일, 그런 소중한 것들을 상실하는 현실에 대한 보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저자들의 유년 혹은 삶 속에서 치유되지 못했던 부분들이 회복을 돕는 게 바로 ‘자연’이었다. 안타깝게도 두 저자의 에세이를 읽었던 나도 자주 자연의 힘을 망각하고 만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비슷한 책을 읽는 지루함이 아니라 소중한 자연을 다시금 내 안으로 끌어들이는 치유과정이었다.

저자가 처음 맞이한 소금호수는 목차 상으로는 두 번째에 등장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소금호수가 자연의 흐름에 의한 것이라 보기 쉬운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원주민을 몰아내기 위한 정착민들의 폭력일 수도 있고, 각각의 종교와 관련된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인의적으로, 인간의 욕심으로 생겨난 소금호수의 경우 동물을 살리는 ‘물’이 아니라 동물은 물론 인류에게 큰 위해를 가하는 ‘독’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소금호수의 생성 배경과 분쟁 상황을 알리는 것 뿐 아니라 저자가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의 정체성 문제, 매일 지속되는 신성한 노동의 가치가 어우러져 이 모든 것이 영상처럼 머릿속에 자연스레 재생되었다.

”사람들이 오언스호의 미래를 물으면, 바로 이런 모습일 거라고 대답해요. 인위적인 경계선은 점점 사라지고 공학 설계의 흔적도 흐릿해지겠죠. 우리는 자연 속에서 보이는 것들이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을 배웠으니까요.“ 239쪽

최근에 읽었던 침묵과 자연과 관련된 인문서에서는 그저 조용히 숲 한 가운데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을 가득 채운 근심과 염려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될 수 있다는 마법같은 내용을 말한다. 그 마법같은 경험이 저자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꼭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희망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바라야 하는지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저자의 여정에 소금호수가 함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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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미우라 시온 지음, 김은경 옮김 / 시공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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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게 되었습니다 / 미우라 시온

보통은 작품을 먼저 읽고 작가에 대한 사심이 커져 에세이를 찾는 경우가 많은데 미우라 시온의 경우는 에세이를 먼저 만났어도 분명 그 매력에 빠졌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좋아하게 되었습니다>는 여러 매체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엮었기 때문에 주제는 조금 다를지라도 저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부터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지점과 일치하는 내용이 등장할 때마다 열광하며 읽었지만 많은 이야기 중 ‘책과 독서’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 감상을 나누고 싶다.

‘상도를 벗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덕후’란 대개 이런 것이다. 나도 만화에 관해서는 친구와 도긴개긴 수준이라 “이사하는 참에 조금은 처분하는 게 어떨…..”하는 말은 입이 찢어져도 내뱉을 수 없다. 94쪽

유명 관광지 한복판에는 책방이 없을 때가 많아서 관광하며 책이나 잡지를 사고 싶은 나로서는 언제나 금단증상으로 괴로웠던 까닭이다. 161쪽

취미가 없다. 아니 책고 만화를 읽는 건 무엇보다 좋아하지만, 너무 좋아해서 사회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이기 때문에 이력서의 취미란에 경솔하게 ‘독서’라고 써도 좋을지 자신이 없다. 밤새워 책을 읽고 늦잠을 잔 날을 셀 수가 없다. 207쪽

위의 발췌한 부분 외에도 저자의 책 사랑은 자주 만날 수 있는데 특히 저 세 부분은 “저요, 저요!” 하면서 읽었던 부분이다. 먼저 다소 거칠게 표현한 것 같지만 이사를 하거나 집안 정리를 할 때면, ‘책을 좀 버려!”라는 잔소리를 들어본 사람들은 책을 처분한다는 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는 걸 알 것이다. 만난 횟수나 기간과 상관없이 사랑에 빠진 연인이나 영혼의 단짝 같은 사람을 집이 좁다고 하루아침에 내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또 함께였어도 좋았지만 혼자 떠난 런던과 도쿄 여행이 편한 이유 중 하나가 블록마다 있는 서점을 매번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 무거운 책을 잔뜩 사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외서를 손쉽게 구할 수 없었던 20여 년 전에는 가져간 짐을 버리더라도 새 책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세 번째의 경우는 밤새 책을 읽으면서 돈도 버는 직업에 종사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저 작가가 부럽고 부러울 뿐이다. 유사한 점도 있지만 또 나와는 다른데 싶은 부분도 당연히 존재했다. 겨울과 여름 중에 고르라고 했을 때 저자는 추운 것을 견딜 수 없어 여름을 택했지만 정확히 반대의 이유로 난 겨울이 좋다. 하지만 역시나 여름에는 ‘소면’을 찾는 취향은 또 같았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한여름에 물을 타고 내려오는 면을 건져먹는 장면은 봐도 봐도 침샘이 고이고 덩달아 더위가 가신다. 저자가 국수를 삶을 때 ‘추가 물’과 하는 눈치게임, 삶아본 자들은 알지 않을까.

출판사까지 운영하는 한 배우의 말처럼 진짜 재미있는 책은 OTT 마저 별거 아니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책을 덜 읽는 것만은 아니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렇게 공감도 되고, 때로는 다른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자연스레 책에 빠져든다. 그리고 세상에는 저자가 추천해 준 작품들처럼 흥미로운 책들이 많다. 이름 모를 화분을 꾸준히 키우고, 빈틈이 보이지만 그 또한 곁을 내주는 것이기에 저자의 글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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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과 예술가
알렉상드르 라크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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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과 예술가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술을 즐기는 예술가들의 일화를 흥미롭게 소개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오래전 과제를 위해 밤새 술을 마시며 그림을 그렸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문학과 철학, 정신분석학을 넘나들며 작가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19세기 전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알코올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술을 오랜 시간 마셔야 하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금욕에 가까운 상태로 글을 써야했던 작가들도 있었다. 그런 대목들을 밑줄 치며 읽다 보니 다음 내용이 기대되면서도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덕분에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분량임에도 완독하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무엇보다 지나친 음주가 인간을 파괴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문학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술을 이야기해 왔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내게는 유익한 충격이었달까.

현대 작가는 매몰된 기억과 문장들이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게 해야 한다. 그는 연료 부족으로 기관이 정지된 상태라면 신을 향해 돌아서서 기도를 올리기보다는 새 술병을 딸 것이다. 61쪽

저자는 여러 시대의 작품을 통해 술이 단순히 인간을 망가뜨리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절망과 욕망, 반항과 자기파괴를 드러내는 매개였음을 보여준다. 어떤 작품은 술이 초래하는 비극을 경고하기 위해 쓰였고, 또 어떤 작품에서는 사회와 현실에 저항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 선택하는 마지막 반항의 방식으로 술이 등장한다. 저자가 설명하듯 19세기 문학에서 술은 인간의 혈기와 열정을 폭발시키는 불처럼 묘사된다. 반면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술은 오히려 인간을 차갑게 만들고, 삶의 의지마저 잠식하는 냉기의 이미지로 변한다. 술꾼은 점차 ‘알코올 중독자‘라는 존재로 바뀌고, 사회 역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킨다. 지금 우리가 알코올 중독을 질병과 치료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 역시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흐름을 보들레르, 케루악, 랭보, 베이컨, 뒤라스 등과 같은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그리고 들뢰즈와 야스퍼스, 프로이트와 뒤르켐의 철학과 사상을 연결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의 작품과 생애를 읽으며 찾아본 책들이 절판 상태일 때 찾아오는 허무와 아쉬움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다. 알코올이 간절해졌다. 작품을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학과 철학이 서로를 비추며 인간의 취기와 욕망을 분석하는 과정 자체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작가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만나게 되고, 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추상적인 개념들이 문학 작품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뒤르켐이 쓴 충격적인 한 문장은 알코올 중독자를 주제로 쓴 건 아니지만 알코올 중독자의 성향을 완벽하게 요약하는 문장이다.
“해소되지 않는 갈증은 영원이 되풀이되는 자살이다.” 145쪽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긴 세월 ‘취한 자’들의 세상이었던 문학과 예술은 현대에 이르러 환각제의 등장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 속에서 그 신비와 반항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이제 술은 예술적 영감의 상징이라기보다 중독과 질병, 그리고 금주와 금단 사이에서 오간다. ‘문체가 무엇보다 하나의 육체 속에 담긴 무엇임을 인정(37쪽)’ 해야 한다면 아마도 나는 술에 대해서는 그저 모든 일을 마치고 마시는 한 잔의 맥주의 시원함을 표현하는 데에 그칠 것이다. 저자가 말한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책은 빈 껍데기처럼 공허(178쪽)’ 할 것이란 말은 그런 점에서 지나친 겸손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이 책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이해하게 했고, 밑줄을 긋게 만들었던 수많은 문장들처럼 이전에는 단지 혐오하거나 외면했던 인물들을 다른 시선으로 읽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은 어떤 문장에 밑줄을 그었을지 궁금해진다.

#알코올과예술가 #알렉상드르라크루아 #을유문화사
#작가 #문학사 @eul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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