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새치산맥 발치에 길게 늘어선 우리네 도시들처럼 이토록 눈부신 장관을 마주하고 사는데도, 왜 우리 중 대다수는 그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우리는 마치 이 거대한 우주적 신비 앞에서 느끼는 압도적인 경외감을 지워버리기 위해 무척이나 서둘러 살아온 것 같습니다. 47쪽캐롤라인 트레이시의 <소금호수, 우리가 사랑한 이상한 세계>를 읽기 전 예전에 적었던 호프 자런과 헬렌 맥도널드의 서평을 찾아보았다. 분명 동물을 비롯한 자연을 마주하는 일, 그런 소중한 것들을 상실하는 현실에 대한 보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저자들의 유년 혹은 삶 속에서 치유되지 못했던 부분들이 회복을 돕는 게 바로 ‘자연’이었다. 안타깝게도 두 저자의 에세이를 읽었던 나도 자주 자연의 힘을 망각하고 만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비슷한 책을 읽는 지루함이 아니라 소중한 자연을 다시금 내 안으로 끌어들이는 치유과정이었다. 저자가 처음 맞이한 소금호수는 목차 상으로는 두 번째에 등장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소금호수가 자연의 흐름에 의한 것이라 보기 쉬운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원주민을 몰아내기 위한 정착민들의 폭력일 수도 있고, 각각의 종교와 관련된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인의적으로, 인간의 욕심으로 생겨난 소금호수의 경우 동물을 살리는 ‘물’이 아니라 동물은 물론 인류에게 큰 위해를 가하는 ‘독’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소금호수의 생성 배경과 분쟁 상황을 알리는 것 뿐 아니라 저자가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의 정체성 문제, 매일 지속되는 신성한 노동의 가치가 어우러져 이 모든 것이 영상처럼 머릿속에 자연스레 재생되었다.”사람들이 오언스호의 미래를 물으면, 바로 이런 모습일 거라고 대답해요. 인위적인 경계선은 점점 사라지고 공학 설계의 흔적도 흐릿해지겠죠. 우리는 자연 속에서 보이는 것들이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을 배웠으니까요.“ 239쪽최근에 읽었던 침묵과 자연과 관련된 인문서에서는 그저 조용히 숲 한 가운데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을 가득 채운 근심과 염려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될 수 있다는 마법같은 내용을 말한다. 그 마법같은 경험이 저자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꼭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희망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바라야 하는지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저자의 여정에 소금호수가 함께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