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제국 - 거대 기술기업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훔쳤는가
루시 그린 지음, 이영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루시 그린의 <실리콘 제국>은 기존에 테크기업이라 불리는 구글, 애플, 아마존 그리고 페이스북 이나 테슬라와 같은 기업들이 사회의 다방면으로 끼치는 부정적이고 위협적인 부분을 담아낸 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우선 제목만 보더라도 앞서 언급한 기업들이 모여있는 곳을 '실리콘 밸리'라고 부르며 스타트업, 벤츠, 창의성, 기술자들을 대변했던 이미지에서 '제국'이라 칭하는 것만 보더라도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어떤 분위기인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애플사를 비롯 그들이 지속적으로 건설하는 사옥 및 캠퍼스와 같은 건물들은 그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자신들의 위상을 전면으로 부각시키는 상징적인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미 세워졌가나 건축중인 건물들의 크기와 형태에 대한 묘사를 읽다보면 베르사유궁전과 같다는 표현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2001년 닷컴 버블이 붕괴하고 2000년대에 들어서자 실리콘밸리는 빠르게 반등세를 탔다. -중략- 기술 브랜드들이 떠올랐고 불안했던 국가 경제에 안도감이 생기자 기업들의 주도하에 기술 숭배가 시작되었다. 스마트폰이 대량 소비제품이 되고 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이런 추세는 더 거세졌다. 47쪽


특히 정치적인 부분과 관련지어 보자면 이들의 영향력이 단순히 소셜네트워크, 온라인 쇼핑몰, IT업체 수준으로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 금융업에 뛰어든 회사가 있는가 하면 테슬라의 경우는 이미 우주의 다른 행성까지 그 영향력이 확대되었으며 구글이 한창 연구중인 의료분야와 전 세계의 데이터를 한 곳에 모으려는 야심찬 계획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의 눈과 귀가 되고 있는 SNS가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특정 유권자가 이를 악용할 경우를 상상해보면 두렵기까지하다. 그런가하면 최근 여러방면에서 가짜뉴스가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서 주의하고 있는데 실리콘 제국에서 생성되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가짜뉴스가 지속적으로 활성화 되었을 때의 상황도 상상하자면 끔찍하다. 


실리콘밸리 제국은 이렇게 언론을 치맿하면서, 역사적으로 언론이 수행해온 가장 크고 중대한 기능인 권력 견제 기능을 저지시키고 있다. 언론이 지닌 기능은 정부를 견제할 수 있고, 실리콘밸리도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중략-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뉴스의 중재자이자 큐레이터이면서 뉴스의 주요 채널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뉴스의 생산자가 될 것이다. 111쪽



정치에 관심이 없던 너드로 보여졌던 실리콘 밸리의 기술자들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정치활동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이들의 대표가 드러내놓고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얼마전에 읽었던 삼성인에서 아마존으로 이직한 한 회사원의 책을 읽더라도 아마존이라는 회사가 상당히 효율적이고 검소하며 무엇보다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상하계층이 그다지 무의미해 보이는 수평적인 회사인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점도 놀라웠다. 


구글과 야후의 임원을 모두 지낸 마리사 메이어 같은 고위직 여성 리더들도 있었다. 그런데 메이어에 관한 신문 기사들은, 그녀가 출산 휴가를 단시간에 끝내고 복귀한 일이나 그녀가 회사의 책임자이면서 엄마의 역할을 병행한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는 식으로 대체적으로 여성의 성 역할을 다루는 내용이 많았다. 305쪽



성차별적인 문제도 언급되었지만 그보다는 엄청난 물류의 허브이자 플랫폼인 아마존에서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이 야근이나 과중된 업무가 절대적으로 기피해야 될 상황처럼 보이지만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이와 정반대로 늘 과중한 업무에 시름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 위에서 우아하게 오고가는 백조의 두 다리가 물 속에서는 어지러울만큼 바삐 움직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불균형 문제를 떠나 미래지향적이고 생활의 편의를 넘어 영생을 꿈꾸게 만드는 테크기업들의 행로가 과연 오롯이 인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어느 한 개인의 야심한 미래를 현실화하려는 과정에서 부차적으로 얻어지는 것들 중 하나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도 Anyway - 민들레 홀씨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간 역설의 진리
켄트 키스 지음, 강성실 옮김 / 애플씨드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켄트 키스의 그래도(Anyway)의 표지와 내지에는 민들레 꽃씨가 여기저기 흩뿌려져있다. '민들레 홀씨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간 역설의 진리'라는 문구가 적힌 책답다. 역설의 진리란 무엇일까. 첫 번째 계명 사랑하라, 두 번째 계명 친절하라, 세 번째 계명 성공하라, 네 번째 계명 선행을 베풀라, 다섯 번째 계명 정직하라, 여섯 번째 계명, 큰 뜻을 품으라, 일곱 번째 계명 약자를 위해 싸우라, 여덟 번째 계명 탑을 쌓아올려라, 아홉 번째 계명 사람들을 도우라, 열 번째 계명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어라. 간단하게 말하자면 누군가 나를 비난해도, 나의 배려가 오히려 독으로 되돌아오더라도 우리는 계속 성공하기를 바라야 하며, 타인을 도와야한다는 의미다. 살다보면 내가 생각했던대로 세상이, 혹은 상대가 나를 따라줄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의 진심과 다르게 되돌아오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럴때마다 좌절하고 타인을 적대시하며 멀리한다면 고립되고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만나기 전의 대부분의 책들은 선행을 베풀고 희망을 가졌을 때 그에 상응하는 미래와 결과에 대해서만 자신의 경험 혹은 성공한 유명인사들의 이야기만 담아냈다. 그렇기에 아주 작은 시작이 쉽게 꺾일 수도 있고 한 번이 아닌 수차례 시련이 다가오면 성공한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더 큰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파도가 한 번만 다가오고 저 먼곳에서 내가 지나가길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듯 시련이 계속적으로 때로는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13쪽)'고 말한다. 켄트 키스 뿐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자타공인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의미'의 무게를 둔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도 그리고 또 이렇게 리뷰를 적으면서도 역설적 10계명을 자신있게 누군가에게 강요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님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희망'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종교적으로 보자면 저자의 이야기를 이렇게 바꾸어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각자의 신에게 기도할 때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이 기도한 자가 원하는 때에 혹은 기도한 자의 삶 안에서 보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죽고 난 후에라도 이뤄진다면 그 기도는 응답받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10가지 역설적 계명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실천하고 행해야 하는 까닭도 결국 이 세상이 나 혼자만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나와 내 이웃, 나 이후에 세대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당장은 배신당하고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그런 선한 행동과 실천덕분에 이 세상이 미쳐가고 있음을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는 까닭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마존 뱅크가 온다 - 2025 미래 금융 시나리오
다나카 미치아키 지음, 류두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아마존 뱅크가 온다

아마존 뱅크라는 말자체가 낯설었던 내게 이 책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테크기업에서 각자 금융서비스를 도입, 캐시리스화에 동참하고 있고, 신기술에 그다지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나조차도 기존의 은행결제 시스템과 비교해 엄청나게 간편하다는 이유로 네이버페이 혹은 카카오페이를 이용해 공과금부터 다양한 송금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SNS기반에 이르기까지 캐시리스화 된 현실이 더이상 놀랍지는 않지만 아마존이 서점에서 출발해 인터넷쇼핑업체가 아닌 일반 금융사와 견주어도 뒤쳐지지 않는 현실에는 놀라운 것이다.  캐시리스의 3.0에 해당되는 모바일결제 시스템에서 4.0에 해당되는 얼굴인식, 음성결제,IoT결제까지 이미 아마존고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다는 사실도 실제 경험해본 적 없는 내게는 꽤 멀게만 느껴졌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전과는 달리 금융산업이 테크기업을 포함한 누구에게나 열린 지금 금융의 바람직한 존재상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존의 우리가 찾는 은행업무는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반드시 창구를 찾아야 하는 각종 변경업무는 그렇다하더라도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을 넘게 대기해야 하는 것도 일반적이다. 반면 아마존, 알리바바 등과 같은 기업(금융디스럽터)의 동참으로 변화될 앞으로의 금융서비스는 어떤 차이를 보일까. AI를 통해 자동화되는 부분이 많아져 심사업무까지 담당하게 된 현재만 보더라도 길게 대기하거나 기다림에 지치는 일이 사라진다. 또한 라인과 텐센트와 같은 SNS가 가진 고객접점을 통해 자연스럽고 즐거운 소비가 가능해 진다. 이를 두고 저자는 기존의 당연한 것들의 ‘파괴’라고 말하며 더이상 창구에서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나. 이 책의 저자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주요 비교대상이 일본의 메가금융사이긴 하지만 비단 일본 뿐 아니라 한국 그리고 해외의 어느 나라의 금융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리먼쇼크 사태를 통해 씨티은행처럼 사업범위를 축소하여 수익을 올리는 ‘선택과집중’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더불어 금융업이 본업인 저자는 리먼쇼크를 통해 금융의 바람직한 존재의 의의를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분명히 부동산 거품이었지만, 상장 신흥 부동산회사는 대부분 그런 게임판의 분위기에 잔뜩 취해 있었다. 게임 속에서 이익을 내며 파이 쟁탈전에 여념이 없었다. 솔직히 기업의 사회적 사명이라든가 존재 의의 같은 것은 일러줬던들 대다수 경영자는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에서 미션적인 개념 같은 것은 거의 검토하지 않았다. 66쪽


이런 반성을 통해 저자와 금융사가 깨달은 것은 거품현상은 반복된다 하더라도 금융 자체가 이전처럼 그 존재자체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수단으로서만 작용한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마존과 같은 기업들이 고객경험을 중시하며 이를 통해 가치를 향살 시키면서 자신들의 경제권을 확대하는 방식이 미래는 물론 이미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아마존 뱅크는 물론 중국의 알리페이와 페이페이는 물론 라인페이에 이르기까지 더이상 금융사와 별개의 업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금융 디스럽터나 은행과의 결정적인 차이로, 상류. 물류. 금류를 삼위일체로 장악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둔다. 아마조 렌딩인 공급자와 판매자 대상의 대출 업무이며, 공급망에 대한 금융이라는 측면이 매우 큰 서비스다. 103쪽


금융업계의 종사자가 아닌 소비자, 고객의 입장에서 본 느낌을 정리하자면 아직은 보험, 투자, 쇼핑 그리고 소셜네트워크가 각각 보험사, 금융사 그리고 포털로 나뉘어져 있지만 조만간 이 모든 것을 한 곳에서 행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좋게말하면 편리하고 신속하지만 달리 말하면 빅데이터의 일부로 완벽하게 종속될 수 밖에 없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보였다. ‘사람, 사람과의 관계 및 가치관 및 고객과의 평등하고 친밀한 관계성이 금융4.0에서 중요’(391쪽)해질 수 밖에 없다는 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까닭도 이와 같은 이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달 2022-05-03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새로운 대중의 탄생 -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
군터 게바우어.스벤 뤼커 지음, 염정용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로운 대중의 탄생 / 군터 게바우어, 스벤 뤼커 지음 / 21세기북스


새로운 대중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선 대중의 개념은 무엇인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대중이라는 어원을 찾아보면 '덩어리'라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이때 덩어리는 빵을 만들 때의 밀가루 반죽 덩어리의 덩어리로 더이상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응축된 상태의 덩어리로 개인주의가 만연해지기 전까지의 대중은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집단으로 행동하는 무리라고 볼 수 있다. 무리지어 다가오면 그 목표 혹은 그들의 상황이 '난민'이라 할지라도 동정심이나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위험이나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실제로 민중들이 한데모여 그들의 의견을 피력하는 만화나 영화속 장면을 보면 그들이 대항하고자 했던 '무력'과 별반다르지 않은 공포심과 폭력성마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대중에게는 그러한 힘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새로운 대중은 과거 대중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출현하는 장소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개념외에 취미나 여가와 같은 장소에서도 모여든다는 것이며 그 영향력이 반드시 행동으로 드러나거나 실제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새로운 대중은 과거의 이론들이 주장하듯이 집단적 주체인 대중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의식 없이 행동하는 대중이 있다는 생각은 오늘날에는 과감히 수정되어야 한다. 9쪽


대중을 동원하고 조직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 형성을 이용해 자신의 주장을 정치적 노력을 통한 것보다 더 열렬하고 효과적으로 경청하게 만드는 사람은 오히려 대부분 소수들이다. '다수'는 대중과는 다른 개념이다. 161쪽


<새로운 대중의 탄생>을 읽다보면 단순히 대중의 개념이나 그 개념의 변화되는 과정을 뿐 아니라 사회운동 뿐 아니라 대중문화를 통해 전체적인 문화 흐름마저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거의 대중은 폭력성 혹은 정치적 상황에서의 외침에 가까웠다. 재미난 사실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대중'의 움직임이 책에서 설명하는 바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축제와 같았던 지난 촛불시위는 민주주의를 언급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실례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전까지의 한국사회는 무력으로 진압되며 독재 혹은 경제적으로만 성장한 불완전한 상태의 민주사회였다. 하지만 각 개인이 '대중'으로서만이 아닌 개인의 목표로 대변되면서 그들의 승리는 대중, 집단으로서의 승리만이 아니라 하나의 개인들의 승리가 되면서 그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고 잠재적으로 유사한 시기, 상황이 닥쳐올 때면 마치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듯 다시금 집단으로서 행동하는 것이 이전과는 달리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전의 대중이라는 개념과 또 달라진 '새로운'점은 하나의 대중으로만 대표되는 것이 지금은 각 개인이 각각의 대중으로서 활동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단체의 일원이 되면 그 단체의 목표가 곧 그 개인의 목표여야만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한다. 바꿔말하면 자신을 숨기고 대중의 무리속에 휩쓸려가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대중이 개인의 모든 것을 대변하거나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1950,60년대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의 대중의 움직임과는 달랐다. 이전의 대중이 폭력적이고 집단적인 성향으로 대표된다면 50년대 비트세대에서 60년대 히피세대(책에서는 제임스딘과 그가 출연한 영화의 영향력을 언급)는 자신들의 젊음과 자유를 예술을 통해 전쟁에서 보여주는 폭력적인 행태와는 비교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가하면 대중문화를 예술, 즉 고급문화로 끌어올렸다고 평하는 앤디워홀의 예술세계는 엄밀히 말하자면 대중문화가 이전과 달리 승격되었다기 보다는 예술가로서의 앤디워홀이 독창성을 보여주었다고 봐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이 갔다. 


대중은 일반적으로 파괴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대중의 출현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 참사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금세 대참사를 불러오는 것은 대중 그자체가 아니라 그들을 물리치려는 시도가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206쪽


책에서는 난민들을 수용했던 독일의 모습과 영국과 프랑스의 보수언론이 비추는 대중들의 활동과 그로인해 얻어낸 결과가 사례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인인 내게는 위의 문장을 보는 순간 축제와 같았다고 말하는 지난 촛불시위 때 있었던 안타까운 누군가의 죽음이 떠올려졌다. 새로운 대중의 탄생이라고 말하는 변화된 움직임이 과연 새로운 것인지 아니면 이전에는 침묵하거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모습이 이제와 조금씩 드러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 책은 저자의 의도대로 개인의 사회참여에 관해, 개인이라 부르는 작은 출발이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되었을 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 늑대, 그리고 하느님
폴코 테르차니 지음, 니콜라 마그린 그림, 이현경 옮김 / 나무옆의자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여기서, 이불도 하나 없이.....?" 개는 혼자 중얼거렸다.

"넌 언제나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만 하는구나, 형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무니가 말했다. "네가 이미 얼마나 많은 걸 가졌는지 모르는 모양이야. 너에겐 멋진 털이 있잖니?" 78쪽


'개'는 어느 날 갑자기 주인에게서 버림받았다. 개가 보살핌을 받는 도시개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인식표마저 빼앗긴 개는 몇 시간이 지나도록 버려진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리지만 주인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만 분명해진다. 그렇게 버려진 개 앞에 나타난 늑대. 늑대는 개에게 위협적인 존재지만 어찌된 까닭인지 그 늑대는 먹이를 가져다 준 후 '달의산'으로 가라고만 일러준 뒤 그를 해치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그 이후 개는 도시개였던 삶과 버려진 현실을 부정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이어진다. 다소 극단적인 모습으로 비춰질테지만 현실속에 서 우리의 모습도 이 '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살다보면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것과 다름없는 상황들을 마주할 수 밖에 없는데 가령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이 그러할 수도 있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거나 회사에서 갑자기 권고사직을 당할 수도 있고 혹은 수년 간 공들여 준비한 무언가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될 때 우리는 '개'처럼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원망하게 된다. 책 속에 개는 순례하는 늑대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안정적으로 살아왔던 삶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당장의 끼니를 직접 사냥하고 매일 밤 정해지지 않은 잠자리에서 잠드는 삶 또한 나름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한가지. 사냥을 하든 누군가로 부터 얻었든 살아있는 동안 누군가로 부터 끊임없이 무언가를 받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우리가 빈몸으로 이 세상에 왔지만 사는 동안 우리가 노력한 것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소설 속 '개'처럼 깨달음을 순례와 방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목숨을 읽게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뿐만아니라 주인에게 길들여진 '도시개'의 삶이 자급자족하는 야생의 삶보다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것, 시련이 다가오면 그 시련에 주저앉아 울 것이 아니라 용기내어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곳에서도 사나흘 밤 이상 머물지 않아. 너무 편하면 그게 결국 발목을 잡거든. 우린 달의 산으로 가는 순례자야. 오래된 길을 가다가 필요한 게 있으면 길에서 구하게 될 거야. 계속 달려가야 해." 115쪽


순례자의 삶이 다소 무모할 수도 있고 역경을 자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반대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거저 받고 살아왔는지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모험을 떠나는 삶을 부러워하기 보다 내게 닥친 시련을 마치 직접 선택한 모험처럼 받아들인다면 그 순간 순례자의 삶도, 그로인한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음을 '달의 산'을 향해 떠나는 개를 통해 배울 수 있었던 책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효선이입니다 2020-06-09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럼 얼마 받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