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 - 우리 시대의 가장 독보적인 아트 컬렉터와의 대화
찰스 사치 지음, 주연화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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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

 

우선 인터뷰집이라서 다소 지루하거나 식상할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먼저 말해두자면, 기대보다 재밌고 생각보다 사치가 답변하는 대답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지나치게 예민해서 인터뷰를 자주 하지 않았던 덕분이다. 만약 여기저기 잡지마다 그의 갤러리에 대한 평론이나 비평이 아닌 사생활이 공개되었다면 이 책이 그정도로 재미있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이 2009년도 첫 출간되었고, 벌써 만 5년이 지나 아마 이 이후에 인터뷰 내용을 찾아보면 이 책에서 답변한 것과 다른 내용도 많이 있을거라 추측된다. 묘비명을 무엇으로 하고 싶냐는 동일한 질문에 누군가에게는 스타워즈의 명대사를 인용, 재치있게 넘어가기도 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쾌하다는듯 누가 사는 동안 자신의 묘비명을 생각해두냐고 퉁명스럽게 답변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미술에 대한 자기 애정에 확신이 있었고, 적어도 아트계에서 잘보이기 위해 아양을 떨거나 겸손한 척 하지 않는 것이 사치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영국 언론이 당신을 부당하게 대우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비난을 참을 수 없다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행운이 있는지를 자랑하면 안 되지요. 39쪽

사치는 좋아하는 예술작품을 수집하고 또 전시하는 것이 개인적인 만족과 타인에게 자랑하고 싶은 이유라고 숨기지 않고 고백한다. 그런 맥락에서 더 이상 좋아하긴 하지만 소장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면 다시 작품을 일괄 되팔기도 하는 데 이를 두고 예술계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오해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을 번역한 역자분도 옮긴이의 말을 읽다보면 그런 편에 서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난 오히려 사치의 입장이 쉽게 이해되었다. 팔지 않고 계속 모으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아무리 부자라도 집안이 전부 예술품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마치 독식하듯 작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미술관이나 유사기관에서 전시를 목적으로 소장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본다. 설사 그가 아무리 아트 시장의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광고계에서 세계 최초로 가장 많은 수익을 얻어 평생 실컷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부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그는 부정하지 않고 축복받았다고 인정하며 모든 성공이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그는 광고회사에서 20시간 넘게 일하기도 했으며 자신이 처음 부터 부자였던 게 아니었고 배달원 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오로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미술품을 사들이고 되팔기 했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웨일스의 작은 오두막집에 살며 시를 쓰거나 동화책 삽화를 그리면서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유한 삶이 돈,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지요. 73쪽

흔히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말한다. 부유한 삶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기 때문에 더 많은 물질을 원하게 되고 그럴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비교를 멈추는 순간 오로지 자기가 기쁨을 느끼는 것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다. 답변을 다 읽다보면 광고일을 즐겁게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실제 그가 다른 질문의 답변으로 쓴 내용 중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우리는 돈이 우선시 되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형편상 반드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 많은 재물과 좋은 집, 멋진 차를 갖기 위해 내가 즐거워 하는 일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예술에는 관심이 많지만 예술'계'에는 관심도 없다고 말하는 사치를 예술계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순수한 호감이나 젊은 예술가들의 발굴이 목적이 아니라 투자를 목적으로 작품을 사들이는 사람들 보다는 솔직해서 호감이 갔다. 호감은 아니지만 여전히 언론과 예술계에 관심을 받는 까닭은 아마도 많은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부와 광고일을 하면서 습득한 대중의 취향을 제대로 알고 있는 그의 능력만은 아닌 것 같다. 천국과 지옥 중에 어디를 가고 싶냐는 질문에 너무 식상한 질문이라고 답하면서도 한가지 꼭 사고 싶은 게 있다면 천국행 티켓이라고 말하는 그의 천진함, 미술작품을 제외하고는 프라푸치노에 빠져 스타벅스에 줄서서 기다리는 자신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허세없는 모습이 조금은 부럽기 때문일 것이다. 끝으로 사치의 성격을 가장 빨리 짐작해볼 수 있는 문답이다.

 

당신의 갤러리에 불이 났는데, 한 가지만 구할 수 있다면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218쪽)

 

나요.

 

 

 

 

 

여담 :어쩌다보니 책을 읽은 곳이 스타벅스,
주문한 음료가 프라푸치노 였다. 그래서 더 재밌게 책을 읽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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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술 사전 - 삶을 예술로 만드는 일상의 철학
안드레아스 브레너 & 외르크 치르파스 지음, 김희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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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술 사전]은 무엇보다도 삶의 속도를 늦춰보자는 뜻에서 기획되었다. -머리말-

 

산다는 것에 대해 기술이 있다면 누구라도 배우고 싶을 것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인증서가 있다면 취득하길 바랄테고, 수료증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이 들만한데 안타깝게도 그 '모두'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이 인정하는 존경받는 성인의 말이라면 기술까지는 어려워도 참고사항, 지침서 정도로 우리에게 많이 퍼져있다. 기본적인 행동양식, 욕심내지 말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에 쓰여진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들은 물론 옳지만 기술이라기 보다는 '도덕'에 가까웠다. 천천히 인생을 즐기면서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얘기가 달라진다.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면서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 이것이 삶의 기술이라면 부담없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막상 본문을 읽다보니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그리고 책에서 자주 만났던 철학자, 이론은 물론 처음 들어보는 철학자들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등장한다. 역자의 주석 덕분에 한 사람 한사람 사전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간략하게 철학자의 핵심논리까지 기재해준 덕분에 원문자체로는 이해되지 않는 문장도 이해하기 쉬웠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 책을 통해 꼭 개인적으로 크게 각인된 삶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얼마전 서평 책까지 출간한 배우 '이보영'씨가  TV프로에 나와 오랜 연애끝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 까닭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깊이 공감하는 내용이고 아직 미혼 남녀라면 그 어떤 조언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삶의 기술 사전에서도 '고독'에 대해, 바로 홀로된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홀로 방안에 조용히 머무를 수 없다는 데서 인간의 모든 불행이 비롯되었다고 본 몽테뉴와 파스칼의 생각은 옳다.' 44쪽 고독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점차 많아지는 까닭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책에서는 하느님만 보더라도 세상에 신보다 더 고독한 존재는 없으며 신은 인간이 가장 존경하고 찬미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혼자있을 때 고독을 즐기지 못하고 어떻게해서든 타인과 함께 있으려고 노력하다보면 상대방의 잘못을 눈감아주거나 악의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할 수 밖에 없는 곤란한 상황에 이르기 쉽다. 반면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이들은 타인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스스로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된다.

'권리'에 대한 부분도 기억에 남는데 도저히 입에 담기도 흉칙한 범죄가 자주 곳곳에서 일어나는 요즘 신문기사 댓글에는 하나같이 '사형'제도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인권위에서 반대하는 것은 피의자의 권리만 있고 피해자의 권리는 무시한 처사라는 말도 함께 나온다. 도대체 권리란 것이 무엇인가. 권리란 법률로 지정된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도덕적 권리에 있어 법조문으로 존중해야 된다고 하지만 과연 피의자의 권리도 이에 해당되느냐가 핵심이 될 것 같다. 윤리에 어긋난 그들에게도 지켜지는 권리가 어째써 정작 피해자에게는 없는지 이부분은 섣불리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권리침해현장을 고발해야 할 의무도 함께 가져야 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이부분은 맨 첫 질문 '감각은 악마의 간계일까'에서도 언급되는 부분으로 사회부적응자나 폭력적인 사람을 공공장소에서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든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다시말하자면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건드리지 않으면 된다는 의식이 강하게 박혀있는 셈이다. 달리 말하면 누군가가 나 대신에 권리를 침해받더라도 모른척 지나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처럼 책에서 나오는 질문과 서술들은 결코 개별적으로 마무리 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은 어려운 단어가 거의 없고, 앞서 말한것처럼 낯선 인물과 이론들은 역자의 도움으로 읽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뿐만아니라 그동안 한 사람의 철학자와 단 하나의 이론을 연결할 수 있었다면 이제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것도 깨닫게되었다. 돈을 주고서라도 시간을 사는 요즘, 저자는 이 책을 읽는 것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도 여유있게 사는 방법이라며 정작 저자는 에필로그를 적지 않았지만 친절한 역자의 말을 통해 이 책을 다음의 문장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보기 드물게 잘 차려진 철학의 성찬이다. 고금을 아울러 철학자들의 다양한 가르침을 담으면서, 의미 찾기라는 철학의 본질에 일관되게 충실한 역작이다. 5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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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아시아 제37호 2015.여름 - 하얼빈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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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아시아 2015 여름호는 도시특집 개편 첫 호로 '하얼빈'이 주제였다. 하얼빈하면 함께 연상되는 단어는 '독립운동'정도 였는데 이번호에서 만난 하얼빈은 아픔도 물론 있지만 세계 그 어떤 도시보다 낭만과 서정이 흐르는 도시였다.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는 까닭을 적어도 책을 통해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얼빈 이야기를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아시아에서 소개한 다른 작품과 문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번 호 아시아의 작가에서 만나게 된 문인은 작가 구효서다. [랩소디 인 베를린]을 읽고 한참을 몽환속에 살았던터라 좀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작가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이후에 출간된 작품은 그런 감동과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해 아쉬웠었다. 마치 그런 독자가 나뿐이 아니었던 것 처럼 저자가 먼저 말해준다. 2013년 이후에는 자신의 글을 찾는이가 줄어들었다고. 서문에 사르트르를 언급하며 '나는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변하는 작가는 그동안 이렇게도 써보고, 그 다음에는 저렇게도 써 봐야지 하는 변덕부리는 재미로 써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본인이 재미있다고 쓰는 글이어야지 독자의 재미에 맞춰줄 요량은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리 말해주어 다행이었다. 앙드레 지드가 말한 것처럼 한 편의 소설에는 작가의 몫, 독자의 몫 그리고 신의 몫이 있듯 독자의 재미만 살리려고 작가의 몫을 포기해버린다면 소설의 완성도는 한없이 뒤쳐지기 마련이다. 우선 작가의 몫을 제대로 한 후에 독자의 몫도 신의 몫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계속해 보겠다는 말을 글의 말미에 적어둔 작가 구효서의 다음 작품을 차분히 기다려 보자고 마음먹었다. 

이번 호에 실린 시 중 국내시인의 작품 중에서는 복효근 시인의 [당나귀를 들어 올리는 법]이 잔잔하면서도 맘에 들었다. 


토끼를 잡고 들어 올리는 법을 안대서

토끼를 들어 올리라는 법은 없다

토끼를 잡아 요리하는 법을 안다고

귀가 긴 짐승을 다 잡아먹으라는 법이 아니듯 


시인도 비평가도 아니라 맞는 해설을 할 줄은 모르지만 마음을 흔든시라는 것은 분명했다. 들어올릴 필요도 없는데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들어올려 보이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누가 묻지도, 부탁도 하지 않은 일들에 우리는 없는 토끼라도 찾아서 들어올리려고 애쓴다. 한편으로는 신이 우리를 내려다 보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토끼의 귀라는 모양새가 주는 말랑말랑한 느낌이 전해질 수록 엉뚱하게 귀를 잡아 들어올리려고 아득바득 사는 현실이 크게 다가왔다. 그런가 하면 이번 호에서 모처럼 만나게 된 네팔의 시는 평안한 가운데 깨달음이 있었다. 네팔 예술원 현존하는 최고의 원로 시인이라는 마더 기미레의 시는 길지 않은데도 참 좋아 필사를 불러 일으키기 좋았다. 두 작품이 실려있는데 한편은 이웃하지 않고 홀로된 삶의 공허함을 다른 한편은 칸티푸르의 대한 애송시였다. 마더 기미레이외에 다른 시인들의 작품들도 두어편씩 실려있는데 유사한 분위기의 시를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네팔의 대표작품들의 분위기가 서로 닮아있었다. 개인적인 아픔을 닮은 시도, 자연과 삶 그자체가 지니는 원대함을 노래한 시 모두 한몸처럼 아파하고 그 끝은 희망으로 가득찬 듯 보였다. 

에디터가 다른 글들도 그렇지만 특히 볼거리가 풍성하다며 서평 섹션을 에디터프리뷰에서 권하였기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총 세편의 서평 중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다 이해할 수는 없는 작품, 이상의 [날개]를 리뷰한 찰스 몽고메리의 서평을 꺼내본다. 아시아에서 출간한 바이링궐 에디션으로 읽은 이상의 날개를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작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바이링궐 에디션의 장점으로 작가의 짧은 소개와 작품에 대한 분석과 비평이 실려있어 탁월하다는 평을 했다. 작품 자체로 돌아가면 날개는 다른 많은 서평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상과 단절된 '남성'의 이야기다. 그 남성은 한국 남성을 대표하는 가부장적인 모습 대신 아내의 벌이로 생을 이어가는 나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나약함에서 그치지 않고 소설의 끝을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마무리 함으로써 당시 일본소비문화가 한국에 미친 영향까지 교묘하게 비판한 작품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박영희 시인의 [하얼빈 할빈 하르빈]으로 돌아왔다. 그가 하얼빈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얼후 연주였다. 슬픈데 슬프지 않고, 아픈데 아프지 않았다는 얼후의 음색이 궁금해져 동영상 사이트에 접속해 들어보았다. 영화속에서 많이 들었던 두 줄 현악기의 음색은 악기이름은 낯설지만 소리 자체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저자의 말이 어떤 의민지 하얼빈에 가서 들어봐야 할테지만 소리만 들어도 전혀 모르겠다 싶지는 않았다. 할빈 하르빈 이라고도 불린다는 하얼빈의 지명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내용을 간추리면 [흑룡강여지도]에 해서여진 어촌의 본래 이름인 아라진이 하라빈으로 번역, 이후 1899년에 할빈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이후 하얼빈을 중심으로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러시아, 한반도 최초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라 불렸던 고구려 유민들의 이야기까지 하얼빈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일뤄준다. 이어지는 내용은 키티이스카야 거리를 사랑했다는 이효석의 [하얼빈]등 다른이의 글이 일부 발췌되어 있다. 만약 하얼빈 키티이스카야 거리를 걷게 된다면 중앙서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느 후작의 고풍스러운 서재를 연상케 한다는 서점 2층에 들러 한권의 책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유를 누려보고 싶다고 강하게 느꼈다. 이외에도 시인이 들려주는 하얼빈의 풍경, 역사와 건물이야기가 60페이지 가깝게 이어진다. 문인의 시선에서 보이는 하얼빈 그 이상을 만날 수 있는 '기획특집'다운 분량과 내용이었다.


이번 호가 계간 아시아를 만난 첫 호는 아니었다. 리뷰를 적을 때 마다 어떤 섹션을 넣고 어떤 섹션을 포기해야 할 지 늘 고민이었다. 이번에는 개편된데다 기획특집이기 까지한 하얼빈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효서 작가편 그리고 쉽게 만날 수 없는 네팔 시인들의 작품과 서평 그리고 국내 시인의 작품 한편을 소개하는데 그쳤다. 아마 절반도 안되는 분량이지 싶다. 홀로 즐기고 미처 꺼내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글을 통해 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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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삶을 디자인하라 - 원하는 모든 삶은 웃음 뒤에 있다!
대릴 데이비스 지음, 이선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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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삶을 디자인하라

이 책의 부제는 '원하는 모든 삶은 웃음 뒤에 있다!'이며 타이틀에도 '웃음'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 있어 본문을 읽지 않으면 마치 웃음철학, 긍정의 힘을 설파하는 평이한 자기개발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좀 더 관심을 갖고 나처럼 책소개를 읽고 본문 안에 들어있는 내용 일부를 접한 사람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있음직한 실례와 설명으로 읽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본문을 읽기 시작한 순간, 왜 타이틀에 삶을 '디자인'하라고 하는 거창한 문구를 집어넣었는지 깨닫게 된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책갈피나 밑줄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혹시모르니 나중을 위해 펜보다는 연필, 아니면 지워지는 볼펜을 준비하고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많은 책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웃는 얼굴에 감히 침뱉을 수 없다는 실례를 깨닫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현실을 둘러보면 여전히 주변에는 속상하고 답답한 일들 뿐이다. 그럴때마다 역시 책과 현실은 일치하지 않는다고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이 책이 강조하는 한가지는 바로 내가 웃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며, 과연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로 웃을 수 있는지를 직접 찾아보자고 나선다. 그러기전에 좀 전에 말한것처럼 우리를 웃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요소를 찾아서 제거해야 된다고 말한다. 방해요소를 그냥 놔두고는 아무리 웃을 만한 일을 찾아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직장인들이 흔히 하는 생각,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원하는 일을 하고 싶고 잘나가는 누구처럼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하고 싶다고 부러워만 할 뿐 정작 직접적인 노력은 하지않는다. 왜냐면 우리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에 사로잡혀 실행에 옮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방해 요인들의 공통점을 찾았는가? 그렇다. '당신의 생각'이다. 당신의 생각이 실행에 옮기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65쪽

그동안 우리가 책을 아무리 읽고 실천하겠다고 다짐을 해도 여전히 비슷한 류의 자기개발서를 찾아 읽고 이 책까지 읽고 있는 거라면 우리의 방해요소는 결국 우리의 생각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것을 두고 자동적 사고라고 하는 데 이부분은 얼마전 읽었던 책 [림비]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쉽게 얘기하자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 이것저것 따져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갖고 있던 기억들을 바탕으로 사고해버린다는 것이다. 림비에서도 그런 사고를 고쳐나가지 위한 방법을 제시했듯이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사고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실천' 단계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넥스트 레벨을 디자인 하는 것인데 이 장에서 특히 연필이 필요하다. 과거의 유년시절 갖고 있던 꿈부터 현재 내가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즐거움을 느끼는 일들은 무엇인지 책에 직접 쓸 수 있는 공간이 할애 되어있어 나도 몰랐던 나를 하나 하나 알아볼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웃을 가치가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깨닫는 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나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포기해야 하는 부분을 인정하는 일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라고 적혀있다.

 

기억하라. 당신이 감사해야 할 만큼 직업이 완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직업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각은 당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가진 것에 감사하는 자세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315쪽

 

이렇게 결말을 맞이하면 결국 이 책도 다른 자기개발서와 다르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자에게 억지로 손을 잡아끌고 그곳이 학교든 학원이든 혹은 또 다른 단체에 끌고 갈 수 있는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거듭 확인 시켜줄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이 책에서 강조하는 다른 한가지는 우리가 너무 쉽게 외면하는 '웃음'의 힘이다. 우리도 노력하면 미셸 제네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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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 중국 문화대혁명을 헤처온 한 남자의 일생
옌거링 지음, 김남희 옮김 / 51BOOKS(오일북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나의 할아버지 루옌스는 문화대혁명 때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수감된 죄수다. 루옌스란 이름으로 불리지도 못하고 죄수번호 혹은 꼽사리로 불리거나 이따금 라오 루 라고 불렸다. 사막 한 가운데 감시자들도 치통에 시달리고 추위에 버티기 힘들었던 그곳에서 루옌스는 4년을 버텨낸다. 이야기의 시작은 루옌스의 막내 딸이 나오는 홍보영화를 보기 위해 휴가를 얻어내려고 애쓰는 루옌스의 수감시절 이었다. 이야기의 전체 내용은 모두 한번 본 단어는 뇌에 넣고 잃어버리지 않는 천재적인 암기력을 가진 루옌스가 기록한 내용이었다. 4개국어를 할 줄 알고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지만 그곳에서 배우고 직접 느낀 자유는 중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삶을 사회에서 동떨어지게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루옌스가 미국유학을 가길 원했던 것이 한시적인 자유였다면 그가 수감되었던 시절은 끝을 알 수 없는 자유의 박탈기 였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을 읽기 전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제작했다는 영화 '5월의 마중'을 보았었다. 영화에서는 루옌스가 수감직전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며 성장했고, 수감시절 얼마나 큰 고통과 인간 이하의 생활을 했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이 '탈옥'이라고 붙여진 것이 조금 낯설었고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었다. 중국에서 반혁명분자의 위치가 어느정도 인지 짐작은 되었지만 강간이나 살해를 한 범죄자보다 못한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또한 루옌스와 펑위완의 관계도 좀 의외였던 게 영화에서는 둘의 만남과 사랑이 처음부터 애절하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서의 루옌스와 펑위안의 관계는 피동적이다 못해 수감되기 전까지 펑위안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다. 눈물이 주무기였던 새어머니가 자신을 붙들어두기 위해 자신의 조카였던 펑위안을 소개했던 순간부터 루옌스는 얼굴은 미소지었지만 온몸으로 그녀를 멀리했었다. 유학길에 올랐을 때는 물론 귀국 후에도 루옌스는 펑위안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루옌스가 직접적인 의미의 자유를 상실하게 되서야 비로소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탈옥까지 감행하는 용기가 생겼던 것이다. 출감 이후 가족에게 돌아왔을 때 루옌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냉대와 소외감이었다. 루옌스가 인간이하의 취급을 창살안에서 당했다면 그의 가족들은 그를 정말 잊길 바라는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젊은 날의 자신을 힘들게 만든 루옌스만을 기억하고 비로소 자신의 사랑을 깨달은 루옌스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였다.

영화의 중심이 펑위안과 외동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책은 루옌스와 그가 쓴 원고를 유일하게 물려받은 손녀딸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원작소설이라고는 해도 전혀 다른 개별적인 작품으로 봐야할지도 모른다. 루옌스가 수감시절 겪었던 옥중기로 봐도 좋았고, 남녀의 사랑이 세월의 풍파속에 어떻게 변화되고 성장해 가는가를 지켜보는 깊은 감동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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