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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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까진 제목이 너무 낯설다기보다는 아,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국어공부를 다시해야 하나, 어째야하나. 암튼 사놓고는 몇 달을 그냥 언젠가는 이라고 하면서 놔두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낯설다 만큼 적확한게 없는 듯 싶다.) 하루키의 소설 제목은 물론 내용이 늘 맘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여자없는 남자들>의 경우는 읽자마자 바로 헌책방에 가져가 팔았다. 암튼 1Q84 이후로는 줄곧 하루키의 에세이만 읽었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라든가, 잡문집이라든가 등등. 그러다 이래저래 이별이 많았던 1월의 마지막 주, 작정하고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었다. 내 처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마치 일기장을 보는 듯 했겠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아, 물론 내 배우자가 외도를 했다던가, 내가 그림으로 밥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도 그랬다.


"제 말 들으시죠. 이대로 안락사시키는 게 좋습니다."라는 것이다. 한 달 반 동안 길 위의 생활을 함께하고 12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주행거리를 새긴 푸조와 헤어지려니 아쉬웠지만 두고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나 대신 자동차가 숨을 거둔 거라고 생각했다. -'현현하는 이데아' 57쪽-


푸조는 '나'를 대신하여 죽었지만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의 OO은 다행히 죽음은 면할 수 있었다. 확신 할 수 없다는 것은 위의 문장처럼 '안락사 시키는게 좋았을 수'도 있겠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면 그렇게 방황하던 '나'가 친구 아버지인 일본화의 대가인 '아마다 도모히코'가 머물던 집에 머물게 된다. 물론 글의 흐름은 '나'가 그곳에 머물던 시절을 추억하는 내용이다. 스포가 될 수 있겠지만 1Q84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미완처럼 느껴지는 완결인 것 같다. 암튼 일본화 화가인 도모히코가 숨겨둔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을 주인공인 '나'가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기묘한 이야기도 함께 시작된다.



어쨌든 그랬던 이 책이 그렇게나 맘에 들었던 까닭은 '나'와 상황이 비슷해서 였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그의 전작 <태엽감는 새>와 유사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난 사실 지금도 밤새워 태엽감는 새를 몇 번이고 읽을 수 있다.) 1Q84도 좋았고, 색채를 읽어버린 ~ 그 작품도 좋았고, 무엇보다 하루키 월드로 입장시켜준 <상실의 시대>도 좋았지만 역시나 태엽감는 새 만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암튼 스무 살에 태엽감는 새를 읽고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처럼 마흔을 앞두고 읽은 <기사단장 죽이기>는 '나'를 내 입장에서 보던것을 '상대'의 입장에서 보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책속의 '나'처럼 무작정 차를 몰고 여행을 하듯 방향을 잃고 집안에서 정처없이 방황하던 나를 멈춰준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줄곧 그렇게 느꼈다. 사람에게 마흔이라는 나이는 하나의 분수령이다. 그 고개를 넘어가면 더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 -'현현하는 이데아' 84쪽-



예순에도 새 인생은 시작되고 120세 시대를 향한 요즘은 '인생은 80부터!'라고들도 하지만 역시나 마흔의 벽은 높기만 하다. 물론 마흔을 넘기고서도 청년들보다 훨씬 더 청춘처럼 사시는 분들도 계시긴 하지만 어쨌든 내게도 '마흔'은 웃으며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후덜덜하게 하는 나이인 것이다. 그 마흔을 '나'는 4년이 남았다면서도 조바심치는 데 나는 만으로 계산해도 그보다 절반에 못미치게 남았으니 책을 읽는 내 맘이 이 부분에서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읽을 수 밖에 없었냐면,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요괴세상, 도무지 현실성이 없는 듯한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차원 세계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속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나의 고민과 상황이 오버랩되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놀라운 것 같다. 게다가 <태엽감는 새>때도 그랬지만 전쟁이란 상황을 만들어내는 악마도 '사람'이고 그 악마들 틈에서 다시 삶을 되찾는 존재도 '사람'이며 끝끝내 돌아오지 못할 만큼 여린 존재도 '사람'이라는 사실이 역시나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이단을 바라보는 하루키의 시선도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어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부분에서 밑줄을 긋게 만들었다.


"위장한 축복. 모습을 바꾼 축복. 언뜻 불행처럼 보이지만 실은 기뻐할 만한 일이라는 뜻이야. Blessing in disguise, 그리고 이 세상에는 당연히 그 반대도 있을 테지. 이론적으로는." -'현현하는 이데아' 157쪽-


이제와 지난 삶을 돌아보면 위장한 축복이었던 것도 있고, 당연히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지금껏 그렇게 생각했던 일들이 또 내 나이 예순쯤에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반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알고보니 축복이었다고 느껴지면 다행인데 그러면 정말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지금 이 방황이 축복을 위장한 불행인 줄 알고 버텨가고 있었는데, 이 시점에 이 작품을 읽은 것이 위로가 되었다고 느꼈는데 아니라면? 하고 불안해하며 책을 읽고 있는 데 마치 이런 어리석은 내게 작가가 혹은 누군가가 들려주고 싶었던 한 마디.


"설령 어떤 결과가 나오든 모든 일에는 반드시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어. 유즈와 헤어진 건 네게 몹시 힘든 경험이었을 거야. 나도 정말 안된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 결과, 너는 드디어 너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현현하는 이데아' 376쪽-


그래. 왜 이미 다 아는 얘기인데 이렇게 책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마치 아예 몰랐던 사람처럼 사는 걸까 싶기도 하다. 좋은 면. 나쁜 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고 할 것 없이 양쪽 모두 존재한다는 사실을 계속 염두하며 1권을 다 읽었다. 1권이 당장에 처해있던 내 상황과 화자의 상황이 닮아 몰입할 수 있었다면 2권은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담긴만큼 앞으로의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힌트를 주고 있었다.


문득 동생의 손을 떠올렸다. 같이 후지산 풍혈에 들어갔을 때 그애는 싸늘한 어둠 속에서 내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작고 따뜻한, 그러면서 놀랍도록 굳센 손가락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확연한 생명의 교류가 있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내어주는 동시에 무언가를 얻었다. -'전이하는 메타포' 122쪽-


내 손을 잡아주었던, 내가 먼저 내밀어 잡았던 그 '손'들을, 그 상황들과 관계를 생각했다. 나이들면서, 좀 더 내 감정에 신중해지고 책임을 져야겠다고 느낀 순간부터 '손을 잡는'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 큰 의미를 가진다. 어릴 때 엄마손을 잡고, 아빠손을 잡고, 성장하면서 부모이자 친구이자 '언니'였던 언니의 손을 잡고, 그 이후 그 모든 것이었던 누군가의 '손'들을 잡았던 때, 그들과의 헤어짐속에서 나는 그것이 위장된 축복이었는지 그 반대였는지를 보려고 했다. 혹은 '좋은 면'은 무엇이고 '나쁜 면'은 무엇인지 분석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손잡음'은 '내어주고 얻음'의 행위였을 뿐이다. 심플한 척 하려는 것도 아니고 쿨한 척 하려는 얘기가 아니라 지나고나서 어떻다고 평가할 만한 사항이 아니라고 느낀 것이다. 결국 내게 있었던 일들이고 내가 무언가 얻었던 것이고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완전하게 '놓은'상태라는 것을 인정해야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은 열심히 살 겁니다. 스스로 어떤 일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따분할 틈은 없어요. 제가 공포나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보다 따분할 틈 없이 사는 겁니다. -'전이하는 메타포' 158쪽-


'나'와 이웃으로 사는, 돈도 많고 사연도 많고 무엇보다 '속을 알 수 없는' 멘시키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마치 전쟁중에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고 어찌 사셨냐고 물었을 때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처럼 들렸다. 너무 바쁘면 슬퍼할 겨를도 없다는 그 말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안다. 열심히 사는 것. 내가 지금 이렇게 책을 읽으며 내 감정의 바닥까지 들여다보는 것은 열심히 사는 것일까 아닐까 싶기도 했다.


1편에서 2편으로 그리고 서둘러 마지막 이야기를 쓰려는 지금,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부분은 다음의 내용이다.


유즈가 말했다. "나는 물론 내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은 나와 상관없는 데서 멋대로 결정되고 진행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싶어. 다시 말해 나는 언뜻 자유의지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정말로 중요한 일은 무엇 하나 직접 선택하지 못하는지도 몰라. -'전이하는 메타포' 581쪽-


남편이 아닌 남자를 만나다 결국 먼저 이혼을 고했던, 어찌보면 지극히 자유의지대로 사는 듯한 유즈가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된 후 전남편이 될 뻔한 '나'에게 말한다. '정말로 중요한 일은 무엇 하나 직접 선택하지 못하는지도'모른다고. 1,2권을 읽는 내내, 주인공 '나'가 과거에 풀지못한 숙제를 마흔을 4년 앞두고, 아내에게 버림받고서야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을 먹고 나아가는 과정속에서 나 또한 그랬다. 과거에 내가 풀지못한 것은 무엇인지, 이제사 나는 나를 위해 혹은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는 과정 모두가 결국 '내 의지'가 아니라 누군가가 정해놓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을 자유의지는 충분했고, 애초에 이 책을 사지 않을 이유도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었고 이런 결말에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도 유즈가 그렇듯 나역시 앞으로도 변함없이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을 할 것이고 그 결과가 기대와 다르더라도 '그럴수도 있지.'라면서 받아들이고 비우는 과정을 이 생에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런  '쳇바퀴'를 나 혼자 도는 것은 아님을 시시때때로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가. 다만 이전의 그 어떤 작품보다 주인공이 덜 상하고 어느정도 회복도 하지만 역시나 이 미완결스러운 결말이 참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마치 라라랜드 같다. 신나게 잘 봐놓고 결말 맘에 안든다고 투정부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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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로 만나는 매일 성경 (스프링) - 나를 위한 캘리그라피 말씀 300
한승미 지음 / 카리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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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캘리그라피 말씀 300


손글씨로 만나는 매일 성경


영화, 소설의 첫 장에 종종 등장하는 성경말씀은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허나 그런 곳(?)에 등장하는 말씀은 하나같이 인간의 죄악을 나무라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종교를 가지지 않거나 이미 조금의 반감을 가진 이들에게는 더더욱 멀리하게만든다.




 



<손글씨로 만나는 매일 성경>은 그런 좋지 않은 성경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캘리그라피는 말씀에 담겨져 있는 분위기를 글자에 녹여내어 글자만 덩그러니 쓰여지기 보다는 약간의 소품도 더해져 분위기가 한결 따뜻해진다. 성경말씀도 따뜻한 구절이 훨씬 많다. 죄를 묻기보다는 언제고 용서해주시는 너그러운 하느님의 말씀이며, 요즘처럼 '혼술', '혼밥' 처럼 홀로 세상을 견뎌내야 하는 이들에게 결코 '혼자두지 않겠다'라고 위로해주신다.


 




<손글씨로 만나는 매일 성경>의 좋은 또 한가지는 성경말씀(영문도 함께 표기)만 적혀있지 않고, 관련된 명언들도 함께 담겨져 있어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간혹 데일리 성경을 책상에 두고 싶어도 회사처럼 타인의 시선이 신경쓰이는 장소에서는 꺼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무래도 회사에는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서두에도 적은 것처럼 종교를 가지지 않은 이들이 보기에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으니 어쩌면 필요한 매너일 것이다. 하지만 <손글씨로 만나는 매일 성경>은 예쁜 캘리그래피에 어우러진 명언들도 담겨 있으니 그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좋다. 그야말로 선물로도 손색이 없다.



​날짜에 집착하지 않게 300가지의 말씀이 담겨 있다는 점도 맘에 들었지만 역시나 오래도록 메모해 두고 보고 싶었던 성경구절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QR코드를 활용할 수도 있어 휴대폰에도 담아두고 언제든 원할 때 묵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부분도 칭찬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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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불일암 사계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최순희 사진 / 책읽는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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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의 글을 쓰신 스님도, 사진을 찍은 최순희님도 모두 고인이 되셨다. 이 책이 다른 법정스님의 책과 달리 글 한 편 한 편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어느덧 마흔을 앞둔 내 나이도 한몫했을테지만 그보다는 사진을 찍은 이가 다름아닌 최순희님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그분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서는 이 책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며 실제 책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그 분의 이야기가 실린다.

 

 

살아남고 싶어서 자수를 했단들, 살아남기 위해 동지들의 자수를 권유했단들, 그것이 죄라고, 인간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 본문 161, 원글 정지아, <땅에서의 슬픔은 땅의 것으로, 땅에서의 그리움은 땅의 것으로>

 

사실 이 책을 완독한지는 꽤 되었다. 네 번째 읽은 지금에서야 리뷰를 쓰게된 것은 스님께서 쓰신 길지 않은 글, 허나 어느글자 하나 중요치 않은 것이 없었고 와닿지 않은 문구가 없어서 리뷰에 무엇을 담아야 할 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사진은 또 어떻고. 위의 글은 최순희님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남부군, 빨치산 대원이셨던 그 분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절에 가는 건, 굳이 절이아니라 할 지라도 종교를 찾게 될 때는 '절박했기'때문일 것이다. 법정스님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삶의 안정을 찾게 되었던 최순희님의  절절한 마음이 사진에 녹아든 셈이다.

 

스님께서 자주 해주시는 말씀은 역설적이게도 '침묵'의 중요성, 비움과 나눔 그리고 자연스러움이다. 한 단어로 하자면 '자연스러움'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굳이 무슨 말을 하지 않고 무언가를 더 채우려하거나 혼자 독차지 할 걱정이나 고민없이 자연스럽게 이웃과 나누고 과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정리하면 될 것 같다.

 

선행이란 다름 아닌 나누는 행위를 이른다.

내가 많이 가진 것을 거저 퍼주는 게 아니라

내가 잠시 맡아 있던 것들을

그에게 되돌려주는 행위일 뿐이다. 132쪽

 

살 때는 삶에 전력을 기울여 뻐근하게 살아야 하고,

일다 삶이 다하면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

열매가 익으면 저절로 가지에서 떨어지듯,

그래야 그 자리에서 새로 움이 돋는다. 171쪽

 

스님말씀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리뷰를 되도록이면 발췌문 위주로, 내 감상은 최대한 줄이는 편이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리뷰로서의 역할마저 축소되는 것과 다름없지만 때로는 나의 장황한 감상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꼭 그렇다. 그러니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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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잘리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지음, 류시화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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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에 바치는 노래라는 의미의 '기탄잘리'. 열 일곱. 20년도 더 전에 처음으로 기탄잘리를 읽었다. 고등학교 신입생 예비과제로 감상이 아닌 '미션수행'에 가까운 독서였다. 그렇다보니 한 편 한 편이 모두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님'을 뜻하는 게 본문에서 설명한 것처럼 연인이기도 하고, 절대자이기도 하며 '나' 그 자체일수도 있다. 지난 해 세례를 받아서인지 내게는 신께 용서를 구하고 변함없을 사랑을 고백하는 고백록으로 다가왔다. 그런가하면 동시에 연인과 신 그 사이를 오가며 울음을 삼키게 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바랑 속에 있는 것들을 바닥에 비웠을 때, 초라한 물건들 속에서 아주 작은 황금 구슬을 발견하고 내 놀라움은 얼마나 컸던가요! 나는 슬프게 울며 후회했습니다. 당신에게 내 전부를 바칠 마음을 갖지 못했던 것을. 73쪽

 

연인 혹은 가족 그리고 친구사이에서도 해당되는 말, '있을 때 잘해'.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전부라는 것이 물질적인 부분을 떠나 나중에라는 핑계로 참 여러번 지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그 관계가 끝났을 때야 비로소 할 수 있었던 것, 줄 수 있었던 것 조차 주지못했구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을 향해서는 교만과 이기심, 타인과 비교하며 죄를 덜 짓고 살아간다고 착각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또한 이 시들은 대학생들이 학창 시절에 들고 다니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옆으로 밀쳐놓을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뎨가 거듭될수록 여행자는 길 위에서, 배를 젓는 사람은 강 위에서 이 시들을 노래처럼 읊게 될 것이다. 149쪽

 

벅찬 감동을 받은 수많은 사람중에는 시인 예이츠도 있었다. 그의 말처럼 어느 누군가의 작품이 심금을 울린다면 분명 작가의 생애, 사상에 관해 모국어로 된 자료를 찾아볼 수 밖에 없다. 또한 작가의 작품을 기차안에서, 이층 버스처럼 지니고 다니며 읽게 된다. 개인적으로 기차에 탈 기회가 있을 때면 그 어느때보다 더 신중하게 책을 챙기곤 한다. 그때만큼 내가 완벽하게 몰입하고 있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장소는 없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 행선지가 있음에도 마음을 빼앗겼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기탄잘리가 바로 그런 시집이다. 다시 타고르의 시안으로 들어와 노래처럼 읊게 만든 작품이야기로 돌아오면,

 

내 마음은 그곳에 이르는 길을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 가장 가난한 자, 가장 낮은 자, 길 잃은 자들 속에서 당신이 친구 없는 이들의 친구가 되는 그곳에. 20쪽

 

친구가 많은 이들의 사귐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친구 없는 자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더 위대한 일인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 반대로 향해 간다. 그럴 때 우리가 의지할 것이 어쩌면 사람이 아닌 '시'가 아닐까 싶다. 영화 <시인의 사랑>속에서 '시인은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란 대사가 등장한다. 신분과 연령, 성별과 상관없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타고르의 시가 노래로 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이지 싶다. 유행가 가사처럼 구절 구절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기탄잘리. 망설임없이 이 시집을 권하고 싶다. 아, 기탄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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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 - 전 세계 최고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배우는 그들의 기법과 아이디어, 성공 노하우
소머 플라어티 테즈와니 지음, 공민희 옮김 / DnA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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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

세계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이야기


그림책의 내용보다 삽화가 더 유명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패션지의 등장하는 수많은 화보보다 일러스트가 더 눈에 띄는 경우가 간혹있다. 단순히 예쁜 일러스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패턴마저 완벽한 일러스트를 만날 때 면 이 작품을 그린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그저 세심한 부분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일러스트레이터일까 하고 궁금해진다.


책 <나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의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미 현역에서 활동중인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대부분이다. 관련 분야를 전공한 사람도 있고 뜻하지 않은 기회로 작업에 참여한 것이 일의 시작인 사람도 있다. 시작은 다양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늘 새로운 소재와 자기표현을 대중 혹은 클라이언트와 조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패션지 처럼 대중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분야다보니 의견을 조율하는 부분이 중요한 까닭이다.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업계로 진입하는 것이 힘들어도 계속 전진하세요. 같이 작업하고 싶은 고객이 있다면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이 돋보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보세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작업하고 조언을 받아들이면서 계속 나아가는 겁니다." 29쪽


그들의 작업과정을 좀 더 들여다보면 어떤 이는 일상에서 쉽게 소재를 찾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실제 모델과 추상적인 자신의 사고를 더해 작품을 완성하기도 한다. 작업방식도 연필로 드로잉 하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부터 컴퓨터로 작업하면서 콜라주 작업을 수월하게 진행시키는 경우도 있다. 니키 필킹턴의 경우는 여러 작품의 하나로 통홥하기 때문에 수정횟수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결과물을 예측할 수 없어 맘에 드는 작품이 나오는 것이 행운이라고도 말한다. 그런가 하면 에린 펫슨은 가능하면 모델을 세워두고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전에 읽었던 패션 일러스트 관련 책들은 인체의 비율과 해부학의 이해등 드로잉에 입각한 해설이 주였다면 이 책은 여러명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업방식 및 스타일등을 접할 수 있어 좋다. 학습서라기 보다는 성공사례 혹은 수기로 받아들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그렇다보니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물 외에 작업대 사진은 물론 방사진도 나오는 데 엔틱 스타일로 꾸미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10대 소녀가 머무를 것 같은 분위기속에서 작업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별도의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일러스트레이터도 있어 책을 읽다보면 패션 일러스트에 관심이 적더라도 지루하지 않게 사진에 집중하며 넘겨볼 수 있다.




패션일러스트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주요 독자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평소에 드로잉작품이 담긴 그들의 수첩과 포트폴리오 등 작업물이 실질적으로 담겨있는 매체 사진일 것이다. 더불어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영감을 얻었던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볼 수 있는 url과 실제 실루엣 위에 마카, 붓, 페인트 등 자신이 좋아하는 도구로 연습할 수 있는 패션 실루엣이 여러장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어 책을 다 읽은 다음 자신만의 패션 일러스트를 완성해 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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