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불일암 사계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최순희 사진 / 책읽는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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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의 글을 쓰신 스님도, 사진을 찍은 최순희님도 모두 고인이 되셨다. 이 책이 다른 법정스님의 책과 달리 글 한 편 한 편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어느덧 마흔을 앞둔 내 나이도 한몫했을테지만 그보다는 사진을 찍은 이가 다름아닌 최순희님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그분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서는 이 책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며 실제 책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그 분의 이야기가 실린다.

 

 

살아남고 싶어서 자수를 했단들, 살아남기 위해 동지들의 자수를 권유했단들, 그것이 죄라고, 인간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 본문 161, 원글 정지아, <땅에서의 슬픔은 땅의 것으로, 땅에서의 그리움은 땅의 것으로>

 

사실 이 책을 완독한지는 꽤 되었다. 네 번째 읽은 지금에서야 리뷰를 쓰게된 것은 스님께서 쓰신 길지 않은 글, 허나 어느글자 하나 중요치 않은 것이 없었고 와닿지 않은 문구가 없어서 리뷰에 무엇을 담아야 할 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사진은 또 어떻고. 위의 글은 최순희님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남부군, 빨치산 대원이셨던 그 분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절에 가는 건, 굳이 절이아니라 할 지라도 종교를 찾게 될 때는 '절박했기'때문일 것이다. 법정스님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삶의 안정을 찾게 되었던 최순희님의  절절한 마음이 사진에 녹아든 셈이다.

 

스님께서 자주 해주시는 말씀은 역설적이게도 '침묵'의 중요성, 비움과 나눔 그리고 자연스러움이다. 한 단어로 하자면 '자연스러움'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굳이 무슨 말을 하지 않고 무언가를 더 채우려하거나 혼자 독차지 할 걱정이나 고민없이 자연스럽게 이웃과 나누고 과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정리하면 될 것 같다.

 

선행이란 다름 아닌 나누는 행위를 이른다.

내가 많이 가진 것을 거저 퍼주는 게 아니라

내가 잠시 맡아 있던 것들을

그에게 되돌려주는 행위일 뿐이다. 132쪽

 

살 때는 삶에 전력을 기울여 뻐근하게 살아야 하고,

일다 삶이 다하면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

열매가 익으면 저절로 가지에서 떨어지듯,

그래야 그 자리에서 새로 움이 돋는다. 171쪽

 

스님말씀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리뷰를 되도록이면 발췌문 위주로, 내 감상은 최대한 줄이는 편이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리뷰로서의 역할마저 축소되는 것과 다름없지만 때로는 나의 장황한 감상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꼭 그렇다. 그러니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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