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의 인문학 -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시드페이퍼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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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인문학 -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머리가 아프거나 생각 정리가 잘 되지 않을 때 무작정 걷는다. 낯선 길을 걸을 때도 좋지만 늘 다니던 동네를 산책하는 것도 즐겁다. 가장 재미있는 산책길은 책에서 잠깐 나온 것처럼 이사가기 위해 새로운 동네를 살펴볼 때라고 생각한다. 살던 동네와 어느 점이 다른지 차는 많이 다니는지 쓰레기 수거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 등 전에 살펴본 적 없던 것들까지 꼼꼼하게 관찰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단순히 보지 못했던 것을 더 자세히 살펴보라는 내용으로 이어졌다면, 그래서 작가 혼자 이곳 저곳 산책하는 내용만 담았어도 재미있을 것이다. 산책을 즐겼던 옛 사람들의 책만 봐도, 근래에 인기 있던 베스트셀러만 봐도 그저 새로운 동네를 길고양이처럼 누비고 다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찰의 인문학! 그보다 한 발 더 나간 산책이 책 속에 담겨져 있다. 총 12번의 산책 여행이다.


첫 번째 산책은 저자가 작심하고 관찰하며, 이전에 관심두지 않았던 것을 관심가지고 산책했다. 산책하고 나서 스스로 자신하며 이정도면 완벽하다고 뿌듯해 한다. 하지만 두 번째 산책, 전문가들과 함께 걷기 전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과 산책부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아이의 산책은 어른과는 다르다. 개를 연구하면서 관찰만큼은 자신있다고 했던 저자조차 아이, 동물, 시각장애인 등 개별적인 특성에서 오는 차이만큼은 쉽게 따라갈 수 없었다. 걷는 것 자체가 산책이지만 걷고 멈추는 그 반복 또한 산책의 일부다. 알파벳 'O'에 집착하고 길가에 돌맹이에도 탄성을 지르는 아이만 봐도 더 순수한 시각으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세번째 산책 부터는 특정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한다. 목차를 통해 총 12명이 누구인지 확인하며 호기심이 생긴 산책들은 음향 엔지니어 스콧 레러와 반려견 피니건과 함께 한 산책이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지질학자 시드니 호렌슈타인과 함께 한 산책도 재밌었다. 어린시절 땅만 쳐다보던 버릇 때문에 곧잘 넘어지곤 했는데 길을 가다가 돌멩이를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시드니 박사일 확률이 높다고 하는 말에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도시학을 공부했던 학부시절이 떠올라 프렌드 켄트와 함께 걷는 것도 재미있었다.


프레드 켄트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다. 도시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고 방치되는지, 무엇이 그 공간을 유용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지 같은 문제가 그의 관심사다.  -187쪽-


이 부분을 읽다보면 도시학자가 서울 곳곳을 산책하며 공간개발과 과거와 개발된 현재를 비교한 책이 떠올랐다. 그 책을 보면서 늘 상점을 찾기위해 오가던 거리가 많이 달라보이고 공부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느꼈던 그때가 새삼 떠올랐다. 그런가하면 시각이 아니라 냄새를 쫓아 산책로를 정하는 피니건과 함께 하는 산책도 기대했던 것 만큼 재미있었다. 열두 번의 산책 모두 즐겁고 신선하며 이전에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게되어 길위에서의 독서와 책상에서의 독서 양쪽 모두를 경검할 수 있었다. 다만 책 원서 자체가 어려워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몇개의 문장이 도저히 이해가 안될정도로 해석이 잘된건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긴 했다. 지나치게 전문적인 서적이 아닌 데도 불편함이 느껴서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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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Soppy - 둘이라서 좋아
필리파 라이스 글.그림, 전행선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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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검정으로 가득 찬 소피.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어느 만화 축제에서 처음 만난 만화가이자 삽화가인 연인의 알콩달콩 일상을 담았다. 처음 만화를 봤을 때 빨강과 검정 두 컬러로 임팩트 있게 다가오지만 막상 한편 한편 보고나면 오히려 말도 거의 없고 연인들이 보통 함께 있을 때 보여주는 소소한 풍경이다. 풀밭에 누워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기도 하고 서점에 들려 각자 원하는 책을 보기 위해 떨어져서 찾는가 하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맛이 더 맛나다고 우기기도 한다. 애초에 출판을 염두하고 그렸던게 아니라 소셜에 올려 화제가 되어 출판까지 이어졌다.


글자가 많지 않아 오히려 더 여운이 남는 에피소드 한 개.


"자긴, 내가 좀비가 되면 총으로 쏠꺼야?"

"아니, 날 그냥 물게 할 거야."   52쪽


아마 연인끼리 좀비가 출몰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함께 봤다면 상대에게 저런 질문을 해 봤을 것이다. 만약 좀비가 되면 어쩔꺼냐고. 예전에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범죄가 좀비보다 더 잔인하고 무섭다보니 마냥 일어나지 않을 상상같지만은 않다. 난 저 질문에 무조건 쏴달라고 했다. 좀비가 되면 지금의 나는 결코 아니라고 본다. 모 좀비영화에서 점차 인간의 순수함을 되찾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긴 했지만 좀비는 좀비다. 채피에서 겉 모양은 중요하지 않고 내면의 '마음'혹은 '영혼'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좀비랑은 차원이 좀 다르지 않을까. 물게 놔두다니... 생각할 수록 끔찍하다. 그저 예쁘고 단순한 듯 한 만화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함께 읽다보면 별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대를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를 준다.


에피소드 하나 더.

포옹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데 가장 공감했던 에피소드는 바로 이거였다.

한 겨울이 아니더라도 날씨가 추워 손이 시릴 때, 혹은 외출해서 돌아와도 몸이 따듯해지지 않아 덜덜 거릴 때 따뜻하게 안아주면 세상에 어떤 열기구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훨씬 따뜻해진다. 어릴 때는 엄마나 아빠가 그렇게 안아준 것 처럼 꼭 안아주면 그렇게 행복하고 따뜻할 수 없다. 이럴 때 아, 연애하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분명하다.


그림을 보면 직업이 일러스트를 그리는 사람이라 한편 한편 완성도가 높아 그냥 소셜에서 보기만 하기에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신기한건 토라져있을 때라던가 슬쩍 말을 걸고 싶을 때 표정까지 가느나란 입술과 그저 씨앗같은 두 눈의 위치에 따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어 솔직히 이보다 더 글자가 보이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동거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연인이 아닌 부부들이 봐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마조앤새디처럼 두드러지는 컬러덕분에 그림 자체 하나의 작품처럼 감상하거나 활용하고 싶어지는데 책 맨 뒷페이지에 본문에 수록된 그림 몇 점을 엽서로 첨부 해 원한다면 오려서 메모하거나 사랑하는 연인에게 메세지를 담아 책을 선물 할 수 있다. 무슨 무슨 데이나 생일에 사용할 수 있는 커플 쿠폰은 마사지쿠폰, 무엇이든 용서해주기 쿠폰 등이 실려있어 쿠폰은 살짝 오려내서 선물하면 나중에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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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쓴 음모론과 위험한 생각들
캐스 선스타인 지음, 이시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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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거나 보상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드러나면 듣고서 흘렸던 '음모론'의 사실여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음모론 배후로 등장하는 인물은 나라마다 숙적이나 공통된 적일 경우가 많지만 정말 뜻밖에 존재일 때도 있다. 저자가 살고 있는 미국은 어떨까? 배후로 지목되는 사람 혹은 집단이 누구냐에 따라 그 음모론이 확대될 가능성이 정해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저자는 음모론에 휘둘리는 까닭 중 개인 스스로가 제대로된 정보력이 없거나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으려는 경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단 음모론 뿐 아니라 약자인 개인은 일상 생활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 혹은 주장하고 싶은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지만 음모론까지 그렇게 믿어버리면 상상 이상으로 부정적인 결말을 초래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의 심리가 이렇다면 음모론을 퍼뜨리는 주체가 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목적이 무엇인지도 저자는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에 지지도가 약해질 수록 음모론 공급자는 강해지고 반대의 경우 음모론도 힘을 상실한다. 때때로 정권이 바뀌거나 책략을 펼치기 위해 음모론을 이용하는 세력도 있기는 하다. 음모론이 존재하는 경우는 다양하다. 저자는 나라별 급박하고 조심스러운 주제뿐 아니라 동물과 개인과 단체간의 보상문제에서 드러나는 음모론까지 언급했다. 개인적으로는 동물의 권리와 보상문제가 관심이 쏠렸다. 근래 신문이나 소셜을 통해 접하는 동물학대 기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수법의 잔인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가해자가 아닌데도 가해자와 같은 인간이라는 점 때문에 피해당한 동물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런 동물권리를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 여러가지 문제점이 제기되어 시행되지 못한 관련 제도 중 동물 신체에 칩을 심자고 했던 적이 있다. 보호자가 누구인지 등의 기록을 담으면 유기견을 보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반대로 동물을 학대로 부터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은 할 수 있어 보였다. 책에는 동물에게 직접적인 권리를 주는 방법, 물론 이 방법도 시행하기 어려운 점은 과연 동물에게 권리를 준다는 것이 사실상 가능한지, 준다면 그 권리를 동물을 소유한 보호자에게도 해당되는지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논란이 생겨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두번째 관심사였던 보상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답답할 뿐이다. 신체적 훼손과 정신적 피해로 인해 쾌락을 상실하고 안녕감(well-bing)을 누리지 못한 이들에게 물질적으로 보상한다는 것 자체가 기준이 애매하다. 저자는 사람에게는 적응하려는 능력이 뛰어나고 개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보편적인 보상기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러가지 사례를 목숨걸고 발표한 저자의 노력은 놀랍고 칭찬할 만하지만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독자들은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다. 다만 특정 음모론을 확대하고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추가적인 음모론을 탄생시키는것 보단 음모론이 왜 발생하는지 어떻게 해결되는지등을 고민한 점은 다른 책이 갖지 못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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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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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 신작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평균 연령 60세 가족이라고 하면 어르신 세분이 함께 동거동락 하는 이야기 인가 싶겠지만 70세 전후 부모님과 함께 사는 40살 미혼 여성의 이야기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마냥 웃으며 볼 수 없는 만화라고나 할까.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직업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다 하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서 신간이 나올 때 마다 챙겨서 보았다. 단 이 책의 가장 부러운 점은 엄마가 미혼 딸을 구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짓궂게 놀리면서 '40'세 라는 나이를 가지고 놀리기는 해도 왜 남들처럼 결혼을 못하냐는 핀잔은 주지 않는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경우 성인남녀가 부모님께 하는 가장 크고 대표적인 효도가 성공이나 성실하게 살아가는게 아니라 '결혼'이다. 그래서 반대도 심하고 참견도 많이 하신다. 평생을 수십년을 다른 방식과 다른 가정에서 살아온 사람과 살아가야 하는 결혼을 효도하기 위해, 억지스레 결혼하라고 떠미는 까닭을 도저히 알 수 가 없다. 그렇게 해도 다들 잘 살아왔다고 하지만 잘 살았다는 기준은 무엇인지 만화를 보면서 사와무라 어머니의 모습이 참 부러웠다. 다행히 우리집 부모님도 사와무라 가정과 비슷하지만 주변사람들이 더 난리치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깝다. 첫번째 공감은 바로 이런 미혼인 자식들의 속사정이라면 두 번째 공감은 이제 나이들어 은퇴하신 가장, 우리 아버지를 볼 때 느껴지는 측은함과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아이같은 순수한 모습이다.

 

"'멋지게 나이를 먹어가고 싶다'란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서른까지 였어~"

 

사와무라 시로씨는 은퇴하고 운동하러 스포츠 센터 회원이 된다. 트레이너를 보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아우라를 느끼고 고민하다가 발견한 게 양말의 길이었다. 젊은 친구들은 양말을 신었을 때 복숭아뼈가 보일랑 말랑하지만 어르신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정강이 가깝게 올라오는 양말을 신으신다. 이거야 헬스클럽이나 공원 등 운동하는 장소에 나가면 한번 쯤 목격했을 모습이다. 그런가하면 젊어 보인다는 헬스 여직원의 말에 갑자기 열의가 생기고 젊은 사람들이 보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려는 시로씨의 모습도 귀여웠다. 한 살 어린 엄마 사와무라 노리에씨는 엄마들이 자주 쓰는 핑계를 대고 딸을 놀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찬장이나 가구위, 싱크대 아래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가지각색의 그릇과 생활용품들이 쌓여있다. 유튜브에 인기 있는 영상 중 하나, 아시아 엄마들은 결코 비닐봉지를 버리지 않는다가 생각났다. 노리에씨는 기억이 가물가물 해진다고 핑계대지만 딸 히토미씨는 결코 져주지 않는다. 어릴 때 부터 봐왔으니 이제는 제발 정리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내게도 있다.

 

엄마 : 아빠가 퇴직한 뒤, 연금으로 살게 되니 불안하다고 할까, 왠지 잘 못 버리겠더라.

딸 : 엄마......는 무슨, 저 상자 내가 꼬마 때부터 있었다고!

 

 

마스다 미리의 작품은 개별 적으로 봐도 재미있지만 한 권을 다 읽고 났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과 감사함이 매력이다. 이렇게 소중한 가족, 친구, 직장이 내게 있구나 싶다가도 결국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게 벅차게 감동적이다.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주인공들을 통해 대리 만족을 할 때도 있지만 투정도 부리고, 때때로 어리석을 만큼 엉뚱한 행동을 하는 내 모습이 투영된 만화가 점점 좋아진다. 다 비슷해 보여도 안으로 들어가보면 조금씩 다른 하루가 펼쳐지는 것처럼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이전 작품과 다르지 않아 보여도 막상 들여다 보면 공감하고, 웃고, 결국 감동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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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 2014 앙굴렘 국제만화제 대상후보작
톰 골드 지음, 김경주 옮김 / 이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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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 톰 골드

2014 앙굴렘 국제만화제 대상후보작

 

블레셋 행정병 골리앗은 누구의 명령이 아니라 스스로 행정업무를 지원하여 근무하고 있다. 성경 속에 골리앗은 싸움을 잘하고 즐기는 사람으로 묘사되었는데 시냇물 속에 조약돌을 꺼내 올려 감상에 빠지는 여린 그는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사람이다. 큰 목표를 가지고 있거나 욕심도 없어보이는 골리앗이 어쩌다 블레셋 사람들을 대표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비난을 하였을까.

 

병사 : 어젯 밤에 개 세마리와 표범으로 싸움을 붙여봤는데 말야. 전부 다 죽였어.

골리앗 : 전 그런데 전혀 관심 없는데요.

 

성경에서 알았던 골리앗을 저만치 밀어두고 톰 골드가 그린 이야기 속에서 골리앗은 상부의 명령으로 전장터에 나간다. 어린 방패지기 한 명을 대동했을 뿐 엄청난 화력의 무기나 날카로운 칼, 찌를 틈 없이 촘촘한 갑옷은 커녕 시간이 지날 수록 금속 조각이 떨어져 나오고 특별할 것 없는 검 그게 전부였다. 이 그림책을 보며 다른 독자들은 어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떠올린 것은 오래 전 원치 않은 전쟁을 명령으로, 살기 위해 떠 밀려 나갔던 불쌍한 병사들이었다. 영화 채피에서 양아버지 닌자 또한 아직 어리고 미숙한 채피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범죄 현장에 채피를 끌고 나가고 칭찬을 무기로 점점 채피가 참여를 즐기도록 유도한다. 골리셋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들끼리의 싸움 뿐 아니라 끌려온 곰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그가 멋진 갑옷을 입고 황량한 전쟁터에 나가 사색에 잠기는 날이 거듭되면서 점차 타의에 의한 싸움이 아닌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난 여기 있는 게 꽤 좋아지기 시작했어."

"...나름 아릅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니?"

 

 

다윗이 그에게 돌을 던지고 그의 목을 베지 않았다면 골리앗은 며칠 혹은 몇 해를 그곳에 혼자 남아 성명 발표를 계속 반복했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다윗이 등장하고 골리앗은 그의 말을 부정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 지 싸움 끝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숭고한 생명들이 사라지는 전쟁터의 모습 그대로였다. 싸움의 이유도 목적도 없이 제 목숨을 내놓은 것도 억울한데 골리앗은 후세에 악인으로 남았다. 그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골리앗을 다르게 보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과 친구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그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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