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 이겨놓고 싸우는 인생의 지혜 현대지성 클래식 69
손무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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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반드시 백성과 국가를 지키는 수단이어야 한다.

손자병법을 읽는다고 하면 전쟁, 전략 그리고 승패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전쟁에 이기기 위한 책을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동서양을 넘나들며 찾아 읽는것인지 어릴 때는 잘 몰랐다. 솔직히 성인이 되어서도 발췌본 등을 읽었을 뿐 정식으로 읽을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이런 오해로 아직 접하지 못한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서평을 적어보려 한다.
우선 손자병법의 저자 손자(이름 손무)는 전쟁을 부추기거나 즐기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먼저 말하였고, 서두에 적은 것처럼 가급적이면 전쟁이란 백성과 국가의 재산을 잃기 마련이므로 하지 않는 쪽을 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전쟁이 국가에도, 개인적인 삶 가운데서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지피지기’, 즉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노자의사상과 연결되어 있다라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손자병법은 노자의 철학을 전쟁이라는 현실의 전장에서 피워낸 전략적 철학서라 할 수 있다. 105쪽

도덕경에서도 전쟁은 되도록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며 전쟁의 참상을 알린다. 공통된 지점은 또 있다. 상대를 아는 것보다 자신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뒤이어 따르는 ‘백전백승’이란 것이 흔히 알려진 것처럼 무조건 승리한다가 아니라 위태롭지 않을 수 있다라는 의미였다. 손자는 전략을 잘 세우고 상대와 나의 병력등의 사항을 잘 살피면 적이 언제 어떻게 공격하더라도 패하지 않고 지켜낼 수 있지만, 적을 이기는 것은 상대의 허점이 드러나는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하므로 상대를 패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런가하면 전략을 말할 때 형과 세가 있는데 형은 우리가 잘 아는 병력 및 군사력 등 눈으로 보이는 자원과 형세라면 ‘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가지는 손자병법의 중요한 개념이기도 한데 얼핏 보면 상대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재등용’이라는 지점에서 이 두가지는 함께 붙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재를 등용할 때 책만 보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을 장수로 임용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실패사례와 신분의 귀천을 넘어 능력을 보고 삼고초려하며 공을 들여 등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 또한 실제 사례를 통해 알려준다. 무엇보다 전쟁은 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 중요한 만큼 무엇보다 중요한 명분, 즉 백성이 함께 인정하고 따를 때에 그 영광이 허락된다. 민심을 잘 읽고 인재에 대한 덕이 있는 군주와 그렇지 못한 군주의 결말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여러 편에 걸쳐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사실과 관련된 사자성어를 제대로 익힐 수 있어 독서하는데 흥미와 유용함을 두루 누릴 수 있었다. 그렇다보니 한 챕터(총 13편)을 읽는 데 40분 이상 소요되었다. 읽고 또 적어가며 읽다보니 꽤 긴 시간이 걸렸지만 덕분에 손자병법, 지피지기 백전백승의 원의미를 잘 깨달을 수 있었다. 손자병법은 최근 내한한 빌 게이츠가 추천한 필독서에 포함되어 있어 새삼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마침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로 만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역자분의 통찰력과 적절한 예시 무엇보다 컬러판 자료덕분에 지루한지도 모르고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동안 왜 많은 이들이 손자병법을 인간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에 올렸는지 납득이 되었다.

전쟁은 본질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의 연속이다. 따라서 전쟁의 승패는 단순히 병력의 규모나 무력의 크기에 따라 갈리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국면에 얼마나 민첩하게 대응하는가, 전략과 전술을 얼마나 정밀하게 수립하는가, 그리고 지휘관이 그것을 얼마나 기민하게 운용할 수 있는가에 따라 전쟁의 향방이 결정된다. 195쪽

전쟁은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고, 하더라도 이겨놓고 (상대와 나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여 결코 위태롭지 않은 상태) 시작해야 하며, 시작하더라도 그 순서와 명분이 개인의 사심이나 과욕이 되지 않아야 하며 특히 당장의 승리에 고취되지 말고 장기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직접 읽고 마음에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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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댄 모든 것 - 술 못 끊는 문학 연구자와 담배 못 끊는 정신과 의사가 나눈 의존증 이야기
마쓰모토 도시히코.요코미치 마코토 지음, 송태욱 옮김 / 김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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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기댄모든것 #의존증 #알콜 #금연 #독서 #마쓰모토도시히코 #요코미치마코토 #酒をやめられない文学研究者とタバコをやめられない精神科医が本気で語り明かした依存症の話

힘들게 하는 사람은 힘들어 하는 사람.

마쓰모토 도시히코와 요코마치 마코토가 ‘의존증’에 관해 나눈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우리가 기댄 모든 것>을 읽으며 크게 와닿았던 문장이자 어쩌면 의존과 관련된 모든 서사에 관한 요약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사람은 왜 물질 혹은 어떤 행위에 중독되거나 의존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답이 아닐까 싶다. 헤이! 하고 서로의 이름을 누군가 부르며 나의 의존에 대해, 그리고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두 명의 저자처럼 솔직해질 수 있을까. 또 자기위안에 그치지 않고 의존증에 힘겨워 하는 이들을 편견없이 그리고 편향없이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졌다. 

그때 저는 확신했습니다. 지금 도요코에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 안심하고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일이지 결코 일제 계도가 아니며, 더구나 잔디밭이나 벤치에 설치된 ‘배제 아트’를 설치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요. 191쪽

단순히 흡연가라거나 애연가가 아닌 ‘담배를 못 끊는 정신과 의사’를 책이 아닌 직접적으로 내 가족을 치료하는 담당의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환자가 겪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볼 수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선택하여 진료받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금연에 성공한 전문의를 찾았을 것이다. 만약 기대와 달리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잘못은 의사가 아닌 내 가족의 의지의 문제라며 ‘힘들어 하는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주요 내용들이 의존증에 대한 항변이라고 오해하면 안된다. 다만 자기치유의 방편으로 물질이나 행위에 의존될 수 있다라는 사실과 우울증이 원인이 되었을 경우 중독증세와 우울증을 통합적으로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기억해야 할 부분이었다. 분명한 인과관계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함께 치료하는 방향으로 점차 변화되고 있다라는 긍정적인 메세지도 분명 존재했다. 

따라서 약물 남용 방지라는 명분이 있더라도, 당사자를 좀비나 괴물 같은 모욕적인 표현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런 표현을 들은 당사자는 굴욕감에 자포자기하며 중독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90쪽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되기까지 치료방법에 있어 ‘격리’ 혹은 ‘금지’로만 치중되어 세상을 등진 사람들도 있다는 것, 정확히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중독’ 혹은 ‘의존’ 상태만 표면으로 떠올라 삶 전체를 외롭게 보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왜 무언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왜 특정 물질이나 행위였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대상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지난 편지에서 도시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중독 관련 기록은 도박에 관한 것”이라든지, “행위를 통한 자기 통제의 성공 경험이 훨씬 더 강력한 보상으로 작용하여 의존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라든지, “사람을 의존증에 빠지게 하는 것은 물질의 약리작용이 아니라 행위를 통한 자기효능감의 경험, 즉 심신에 자극을 주고 신체 감각의 변화를 통해 기분 조절에 성공하는 경험에 있지 않나(…) 137쪽

빠르게 괴로운 상황을 회피하거나 혹은 의존으로 인해 상황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과연 의존의 경계를 어디에 두어야 할 지도 고민이 되었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도시히코의 경우 내 가족을 맡기고 싶진 않지만 전문직에 종사하며 환자가 아닌 일반적 대상을 향해 불편이나 가해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의존증 환자라고 혹은 심각한 중독증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마코토 역시 연구자로서 발달장애자들을 위한 저술이나 강연 그리고 환자들과의 자조모임을 알리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그가 고백하는 모든 의존경험과 종교 2세들이 갖는 문제등에 대해 상대적으로 위화감이 덜 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의 자기체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은 중간 중간 고백한 것처럼 의존증을 제한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자기자신은 물론 배우자 그리고 자녀양육에 있어서도 대상을 이해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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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책
로스 게이 지음, 김목인 옮김 / 필로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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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게이 #기쁨의책 @pillowbooks_ #기쁨 #손글씨 #생일 #생일선물 #추천

누군가 자신의 기쁨을 손으로 거의 매일 적었다면, 어떤 호기심이 들까? 왜 손으로? 아니면 어떤 삶이길래 기쁨이 매일같이 샘 솟을까? 개인적으로 후자에 가까웠는데 자신의 생일날이 출발이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축하가 없더라도 생일이라는 단어 자체에 크게 기뻐하는 편이다보니 자신의 생일 이렇게 깜찍한 챌린지라니 두 번째로 기뻐하는 크리스마스에 도전해보고 싶은 충동이 계속 가라앉지 않고 있다. 더 흥미로웠던 건 처음 기쁨에 대해 글을 쓰던 5개월 간은 기쁨을 모으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굳이 모으려 하지 않아도 차분하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면 글로 옮길 만한 기쁨이란게 계속 찾아온다는 것이다. 또 그럴 것이라는 믿음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쁨이 계속 나를 찾아올 거라는 믿음이라니, 꽤 근사하지 않은가.
물론 기쁨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진짜 기쁨에 관한 일들만 나열했을거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작가가 누린 기쁨을 배우려고 책을 읽고 싶긴 했었다.) 유색인종에 속한 사람들이라면 (일부)백인들이 가지는 우월성과 인종차별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저자는 Negreeting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단어를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흑인끼리 나누는 인사는 이곳, 대부분이 흑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이곳에서 우리가 서로의 무고함에 대해 증인이 되어주는 한 방법, 내가 당신의 무고함을 보고 있다고 전하는 한 방법이다. 38쪽

인종차별과 관련된 아주 사소한 글을 다 포함하더라도 내가 접한 내용 중에서는 이 글이 가장 평화롭게 다가왔다. 그런가하면 별명에 관한 부분도 상당히 좋았는데, (미리 밝혀두자면 평소라면 글의 목차순으로 감상을 남기는 데 이번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쁨의 순서에 준하다보니 뒤죽박죽이다) 내게도 그런 별명이 있었다. 유년시절 학교에서 불리던 변명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 정말 친한 지인들로 부터 불리는 별명이 있는데 저자의 말처럼 별명(서로 합의된)을 주고 받는 사이는 용돈을 주고 받지 않아도 서로에게 보호자가 되어주는 기분이 들어 들을수록 좋을 뿐 아니라 자꾸 그렇게 불러주고 싶어진다. 예전에 한 예능에 출연했던 한 연예인들은 서로가 별명으로 부르다보니 본명마저 헷갈릴 정도라고(이게 에세이 일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지금 갑자기 드는데) 할 정도로 서로에게 충분히 합의되거나 희망하는 별명부르기는 정말 따뜻하다. <기쁨의 책>의 서평을 적는 동안 ‘따뜻’이란 단어가 앞으로도 계속 나올 예정인데 이어지는 따뜻한 시선은 조각상을 포함한 기념작품을 만들 때 인물에게 주어지는 소품이 ‘총 혹은 칼’과 같은 무기가 아니라 ‘책 혹은 꽃’이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이었다. 또 공감이 갔던 말은 ‘모든 아이는 두려움과 기쁨을 동시에 안겨 준다(56쪽)’라는 말이었다. 두려움과 기쁨! 세상에서 아이가 줄 수 있는 기쁨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만큼 소중한 존재가 있다라는 사실이 나를 어제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소중한 것을 잃을까 염려하는 불안과 두려움도 크다.

왠지 뭔가를 요약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것이 “1년에 걸친 프로젝트”였고, 오늘은 일종의 졸업식 혹은 장례식이기 때문이다. (…)
왜 지금 기쁨인가? 성향상 궁금해서요. 혹은 내가 기쁨으로부터 배운 것. 혹은 당치도 않지만, 내 기쁨의 해. 물론 이것들이 나는 쓰지 않을 책들의 썩 괜찮은 제목일 수도 있지만, 특별히 요약해서 할 이야기는 없다. 왜냐하면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265쪽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뒤 소중한 누군가의 생일에 한 번은 이 책을 선물하지 않을까 싶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쁨’을 기록하는 동료가 한 명 더 늘어나면 어떨까 하는 바람에서 그렇다. 누군가의 죽음이 등장하고, 어느 장례식장의 풍경을 마주할 때도 있었고, 무심히 던진 한 문장일 뿐인데도 내가 경험하지 못한 아픔을 이 순간 겪고 있는 누군가를 새삼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도 기쁨인가? 불행한 타인의 삶을 기준 삼아 나의 무탈함을 기뻐하자는 의도가 결코 아니었다. ‘저기 동물이 지나가듯’한 모두에게 주어지는 한정된 삶 속에서 ‘받침없는 에스프레소 잔’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 부디 그 기쁨을 많은 이들이 나눌 수 있길 바라며, 역자 후기마저 기쁨인 책, <기쁨의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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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광선 꿈꾸는돌 43
강석희 지음 / 돌베개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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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광선 #강석희 #돌베개 #돌봄 #장애


이모에게 주차장까지 오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캠핑장으로 가야 했다. 나의 기력이나 체력으로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었지만, 이모에게 이동은 내가 겪는 어려움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이모에게 혼자서 수행해야 하는 이동이란 예측 불허의 난관을 돌파해야 하는 일이자 때로는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 과업이었다. 62쪽


강석희작가의 <녹색광선>  속 윤재의 삶은 텍스트로 보는 데도 마음이 가라앉는다. 누군가의 삶을 두고 이런 표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읽는 내내 그런 마음을 쉽사리 떨치지 못했던 것 같다. 소설 그리고 영화 등에서 상대방에게 ‘내가 그리로 갈게’라는 표현의 설레임 혹은 그리움이 떠올랐다. 이모 윤재를 만나지 못했던 날들 동안 연주의 마음 역시 설레임과 그리움이 분명 존재했다. 그런 마음으로 이모가 있는 곳까지 간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돌봄이 되어준다는 것은 어쩌면 서로의 아픔을 존중해야 가능한 것만 같다.


비가 언제 오는지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가 찌푸린 얼굴로 어깨를 연신 만지며 말했다.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겠니.”

“대충 짐작이라도 해 보라고.”

내가 들어도 이상한 말을 하고 이모의 반응을 기다렸다. 이모는 어이없어 하는 얼굴로 나를 잠시 봤다. (…)

이모가 화를 내고 있는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걸. 비와 통증. 이모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 91쪽


마흔이 넘고 보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질병’에 관한 이야기가 떠나질 않는다. 단순한 신경통이나 피로가 아닌 ‘진단’이 내려진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과연 얼마나 이런 아픔과 통증에 대해 이해와 배려를 받고 있는가 싶어 씁쓸하다. 얼마전 모 미술관 포럼 발표에서 주제발표자가 얼굴 외에는 자의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없는 지인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그 지인이 느끼기에 먹는 것, 입는 것은 물론 아주 조금의 이동이 필요할 때마다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들의 몸을 빌려올 수 밖에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만약 윤재 이모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이동의 자율성 보장은 결국 이동의 제한을 가진 사람들 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 집착.

병원에서는 내가 마주해야 할 가장 큰 벽을 그렇게 요약했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알아야 할 나의 가장 중요한 면이라고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 136쪽


두 단어를 이어 보았다. 완벽에 대한 집착이라고. 이렇게 붙여보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진 몇 안되는 집착 중 하나가 바로 ‘완벽에 대한 집착’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완벽’의 기준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연주가 아파하고 스스로 상처를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완벽과 집착을 내려놓아야 할 사람이 연주라고 말하기에 앞서 ‘완벽에 대한 집착’을 사람들이 내려놔야 한다고 느꼈다. 소설을 읽으면서 씁쓸함을 넘어 부끄러움이랄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장편 <녹색 광선>을 쓰며 해결해야 했던 첫 번째 질문은 그들이 왜 ‘서로를 돌볼 수 없는가?’였고, 다음 질문은 ‘그렇다면 이들은 누가 돌보아야 하는가?’였으며, 마지막 질문은 ‘돌봄에서 희생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176쪽


저자는 <녹색 광선>을 위의 질문의 서툰 답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답을 ‘뭉치고 뭉쳐 잘 빚은 것이 우리의 검은 돌, 묵묵’(같은 쪽)이라고 말했다. 묵묵과 같은 책을 들고 다른 이들의 답을 너무 듣고 싶었다. 부디 이 책이 학교안팎의 아이들에게 잘 읽히길, 또 각각의 이유로 그들과 서로 ‘돌봄’의 관계에 놓인 어른들도 읽고 나눌 수 있음 좋겠다. 서로의 바람이 잘 비치는 묵묵이가 되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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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단단하게, 채근담 - 무너지지 않는 마음 공부
홍자성 지음, 최영환 엮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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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뿌리의 이야기’. 채근담이란 글자만 봐도 소박하면서도 생명력이 느껴진다. 어떤 상황이나 대상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지만 특히 스트레스나 자기수양을 위한 책을 찾는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더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총 356편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 크게 7가지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제와 상관없이 소제만 보고 찾아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처음에는 편안하게 한 장 한 장 읽으려고 했지만 막상 글을 읽고 하단에 적힌 원문과 풀이를 읽어보니 그냥 지나치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 필사하다보니 거의 대부분의 글들을 적게 되었다. 매일 들여다보면 좋을 것 같은 몇 문장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하루를 살더라도, 온화한 마음과 작은 기쁨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화창한 날을 바라는 것처럼 마음의 날씨 또한 우리가 가꿔야 할 중요한 풍경 중 하나입니다.
원문풀이 중 ‘사람의 마음도 하루라도 기쁨의 기운이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전집 006), 33쪽

삶은 갈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갈망이 지나간 자리를 성찰하는데서 정제됩니다. 성찰하는 마음이 자리 잡을 때, 우리의 행동은 바르고 ,마음은 고요해질 수 있습니다.
원문풀이 중 ‘사람은 언제나 일이 지나간 뒤에 오는 후회와 깨달음으로 일이 닥쳤을 때의 어리석음을 깨뜨릴 수 있어야 하며, 그럴 때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고, 행동은 흐트러짐이 없게 됩니다. (전집 26), 53쪽

어떤 행사나 여행 등을 앞두고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랐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헌데 생각해보니 우리들의 마음, 마음이 맑기를 기도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하루라도 기쁨의 기운이 사라져서는 안’된다는 말에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에서 작은 것에도 기쁨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크든 작든 기쁨 자체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내가 지금껏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를 떠올려보니 누군가 혹은 외부에서 기쁨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던 날들이 더 많았음을 깨달았다. 특히 발췌하진 않았지만 타인으로부터 쓴소리를 듣거나 언짢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의 삶이 더 나아갈 수 있다라는 말은 지난 봄 비슷한 상황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첫 번재 주제에서는 평소에 우리의 마음밭을 어떻게 가꾸어야 할 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보니 매일 마주하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하면 전에 읽었던 인문서적 중 현대사회는 ‘자연’으로부터 격리되거나 격리시키는 사회라는 내용이 크게 와닿았는데 채근담에도 두 번이나 자연에 관한 주제가 중간과 끝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든 존재가 어느 날 문득 스승이 된다.
삶의 진리는 언제나 거창한 개념 속에 숨어 있지 않습니다. (…)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우리는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후집007 (260쪽)

좋은 강연을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찾아 다닐 줄만 알았지 집 앞 공원이나 산 그리고 바다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듣는 여유를 일부러 찾아다닌 적은 없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게 쌓여있는 묵힌 감정들을 토해내는 대상으로만 보며 살았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원문에서는 ‘세상 모든 사물 속에서 뜻을 깨달을 수 있어야(260쪽)’한다고 까지 하였다. 자연을 바라보며 시간의 흐름도, 시간과 어우러져 천천히 나이듦에 대한 수용도 깨달아야 할 때가 지금의 내 나이가 아닌가 싶다.

삶이란 참됨과 공허의 경계를 타는 내면의 수행입니다.
원문풀이 중 ‘세상에 있든 출세간에 있든, 욕망을 좇는 것도 괴로움이요, 욕망을 끊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후집078), 332쪽

무언가 탐욕스럽게 물질에 집착할 때도 있지만 극단적으로 주위를 불편하게 할 정도로 비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가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특히 기준을 자신이 아닌 타인 혹은 사회적 기준에 맞추려고 하면 더더욱 본심에서 혹은 진심에서 멀어지니 결국 기울어지는 마음을 제 때에 알아차리는 것 밖에는 답이 없어보인다. 채근담은 그렇게 스스로의 위치와 상태를 ‘알아차리기’위해 참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느껴졌다. 몸에도 적당하게 신선한 뿌리 채소를 필요로 하듯 우리 마음에도 이런저런 바람에 휘둘리지 않고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좋은 글을 곁에 두고 늘 함께 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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