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서재 -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책 읽기
김운하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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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까.

'좋은'이라는 단어에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좋은 책은 '공감'과 '다시금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책이란 생각이든다. 책을 정말 사랑하는 저자는 과연 공부는 언제했을까 의문이 들정도.

 

카프카의 작품이라고는 고작 두편의 단편을 읽은 것이 전부였지만 책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솔직한 고백이 맘에 들어 읽게 되었다. 근래 단순히 책이 교육적, 인성적 효과를 뛰어넘어 삶 자체를 지탱해 주는 크나큰 역할을 해왔다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다른 작품은 안읽어봐서 모르겠지만 이런 내용이라면 역시나 '좋은 책'이라고 느껴질 것 같다.

 

똑같이 책을 사랑하다보니 묘하게 경쟁심도 생겨나고 이견도 생겨난다. 헌책방을 추억하고 종이책의 사라짐과 전자책의 대중화를 반기지 않는 저자와는 달리 언젠가 부터 헌책방 로망이 헌책방 '거부'상태라 새책이 좋고 심지어 스마트 기기를 이용하다 보니 전자책의 편리함도 결코 나쁘지 않다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연인이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고 구하기 어려운 희귀본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이어폰을 나눠끼고 오디오북을 듣는 것도 제법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도 '책 그리고 도끼'가 등장한다. 요즘은 어딜 가나 '도끼'다. 카프카의 서재인데 이 문장이 언급되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깨뜨리는 것' '나를 다시 재확인 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민케 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자의 말에 반은 공감하고 반은 역시나 또 주저하게 된다. 나를 재확인 하는 과정을 통해 고민하게 되는게 아닌가 하는 괜한 말꼬리 잡기식 감흥이 책 읽는 동안 계속되는게 이게 가장 큰 매력인듯.^^

 

뭐랄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 사이의 밀당이라고나 할까.

 

책을 어렵게만 읽다가 한 자리에서 읽어서 그런지 리뷰도 참 리듬감 있게 적히는 것 같다.

아포리즘 투성이라 굳이 그 안에서 또 맘에 와닿는 구절을 찾아내는게 오히려 더 어려웠지만 몇 개의 문장을 발췌해보면,

 

'그러니 행복을 거창하게 과장하지도, 또 너무 집착하지도 말자. 그보다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단 한번밖에 없는 삶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서라면 위험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열과 성을 다 바칠 결단력과 용기, 배짱이 있는지를 숙고해보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p.101

 

언젠가 부터 이젠 성공도 아니고 자기만족, 스스로가 행복하다고만 느끼면 그게 성공이라는 말들을 한다. 이제는 '행복'자체가 고민거리가 되어버렸다. 남들과 비교해서 난 행복한데 이게 행복한건지 나태한건지 어느정도의 포기는 아닌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실패하면 어쩌나,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을 걱정하여 시도조차 하지 않는 대개의 '불안한 청춘'에게 저자의 제안은 설득력을 가진다.

 

출구가 없는 삶을 카프카의 '성'이란 작품을 통해 풀어내는 부분은 답답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저자가 했던 고민을 내가 하고, 또 결국 세상의 모든 존재가 고민하게 된다. 도대체 이 미로와 같은 삶의 출구란게 과연 있는지, 아니 있다고 희망을 갖는 것 자체가 가당키나 한 것인지에 대해.

 

기억과 경험에 대한 저자의 물음에 역시나 답을 제대로 내리지 못한다. 좋은 기억을 상실하면 그것은 경험이 아닌게 되고, 경험이 아닌 것이 내게 과연 기억이라고 불릴만한 것이 될 수 있는지 고민 고민이다.

 

이 책을 서평 모음, 추천서적 리스트 참고용으로 생각했었는데 읽다보니 딱히 그가 제시한 문구들이 멋지긴 하지만 그보다는 저자가 제시하는 질문들에 대해 더 집중하게 되는 점이 좋았다. 때문에 저자의 바람과는 달리 내 자신을 재확인 시켜주는 과정, 그 과정속에서 끊임없이 자문자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되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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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부터의 혁명 - 우리 시대의 청춘과 사랑, 죽음을 엮어가는 인문학 지도
정지우.이우정 지음 / 이경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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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다녔던 때 만해도 차근차근 공부하다보면, 우선 읽고 싶은 문학과 철학 서적을 뒤척이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공연이나 전시회를 통해 다양한 분야를 익혀가다보면 흐름이 보이고, 요즘 아이들이 많이 한다던 자기주도 학습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인문학의 정해진 길이 없으며 끝도 없는 것 처럼 자고 일어나면 관련 서적이 수십권 씩 쏟아지고 오프/온라인 할 거 없이 무료 강의부터 수백만원 하는 강의까지 점점 더 방향성을 잃어가던 요즘이었다. 읽고 배울수록 난감하고 어렵던 인문학이 '청춘'이라는 키워드를 만나면서 좀 더 친근하면서 기존의 우리가 생각하던 딱딱한 '학문' 그 자체가 아니라 '힐링'이라는 허울을 쓴 뒤로는 그 경계가 애매했던 것도 사실이다. 삶으로부터의 혁명은 어쩌면 아에 인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뿐 아니라 이길도 저길도 아닌 곳에서 헤매이는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 유용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우선 화제가 되고 있는 저작물과 저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물론 인문학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현실'감 있게 소개해준다.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물은 해외 다른 나라의 지식인이 그 나라의 현실과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쓰여져 있다. 때문에 가슴과 머리로 이해되는 학문까지는 가능하지만 정작 '이론뿐인 인문학'에서 한 단계 더 위로 발전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정말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삶에는 얼마나 다양한 길이 있고 가능성들이 있는지, 나 역시 얼마나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는지, 사람들은 얼마나 수많은 모습으로 저마다의 인생들을 사고 있는지를 알아나가는 건 그러한 '현실에의 몰입'을 벗어났을 때만 가능하다.'

-p.117-

 

현실에의 몰입을 벗어났을 때 진정 좋은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은 앞서 언급한 '현실감'과는 다른 의미가 된다. 책에서 말하는 현실에의 몰입에서 벗어난 다는 것은 '우물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해외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막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맹신, 지나친 몰입을 염려하는 차원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역사상 자기만의 '삶을 구축'해나갔던 모든 예술가, 학자, 작가등을 보면 그들 곁에는 언제나 최소한 한 명 이상 그를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주입'이 아닌 '교류', '관계'를 통한 인문학, 즉 삶에서 한 걸음 물어난 인문학이 아닌 밀접한 관계의 인문학을 권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화가 고흐의 불우한 삶속에서도 동생 테오의 응원으로 좋은 작품을 남겨질 수 있었던 것처럼 나를 응원해주는 '단 한사람'의 교류가 삶을 윤택하게 하는 필수 요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하거나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삶의 고찰은 자연스럽게 인문학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결국 삶으로부터의 혁명, 이 책은 인문학이라는 여정에 나침반과 같은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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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박영택의 마음으로 읽는 그림 에세이
박영택 지음 / 지식채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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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의 그림 에세이 하루.

 

아이러니 하게도 국내 화가들의 작품보다 해외 박물관과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만나볼 기회가 더 많은 현실이다. 책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하루'가 처음 신간으로 소개되었을 때 꼭 읽어봐야지 싶었다. 문자 그대로 24시간,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하루'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고, 기획의도가 참 맘에 들었다.

 

책을 받아들고 본문 첫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반가운 마음보다는 그림을 담는 책의 구성이 어찌 이리 배려심이 부족했을까 싶어 속상했다. 그림속에 구도나 소품들을 떠나 전체적인 분위기 하나하나 소개해주는 저자의 글을 온전히 느낄 수 없도록 너무도 작은 사이즈의 그림 때문이었다. 물론 읽으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는 수고를 하면 크게 문제시 될 것 도 없지만 한권의 책으로 만나게 될 '하루'동안의 그림감상은 그런 수고로움을 동반하게 만든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책에서 소개된 그림들은 여유, 빈자리, 그리고 여백과 공백을 아우르는 '휴식'과 같은 이미지가 주가 되었는데 그런 점에서는 이래저래 구성이 참 안타까웠다.

 

첫 페이지의 아쉬움은 가까스로 접고 저자 박영택의 글에 마음을 위로 받으려고 한글자 한글자 반복되는 글과 뻔히 알수 있는 그림 소개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사이즈의 그림을 떠올려가며 애써 공감하려 노력했다. 그림만 담았는 줄 알았는데 사진도 담겨 있고 다양한 기법과 화풍의 그림 한 점 한점이 등장할 때마다 어느 순간 작품의 타이틀과, 저자가 붙여준 이름을 오가며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자가 붙일 수 있는 타이틀에는 무엇이 있을지도 고민하며 읽다보니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정도의 편안함과 그림사이즈는 크게 문제시 되지 않았다.

 

표지에 실린 두 작품은 상반된 시간과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책에는 똑같이 한 발작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방을 화폭에 담은 시선은 같아도 명암과 소품들의 의해 그것이 시작을 알리는 아침이 되기도 하고 오후가 되기도 한다.

 

오전 vs 오후의 방풍경

 

   

 

 오전의 방풍경은 햇살이 비추고 있고 그 위에 전날 밤 읽다가 올려두었을 소설 책이 보인다. 반면 오후의 풍경은 뚜렷한 명암보다는 전체적으로 한 가지톤으로 활발한 오전의 움직임보다는 가라앉은 오후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소개된 그림과 글 중에서 가장 맘에 든 것은, 아마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골랐을 '서은애 - 늘어지게 기분 좋은 어느 여름밤' 이다. (그림을 소개하려 하였으나 책 혹은 직접 그림을 보았으면 싶은 마음에 생략)

 

'멋들어진 나무들이 작은 미풍에 뒤척인다. 소박한 집에는 작은 탁자와 커피 잔, 커피머신 그리고 흩어진 책들, 먹다 남은 음식이 있다. 이곳에서 책을 보고 차를 마시며 소일하는 한가로운 일과를 보여주고 있다.' - p.208-

 

저자가 덧붙인 것처럼 더 없이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차나 커피를 즐기지 않는 이도 거의 없다. 좋아하는 차 혹은 커피와 흩어진(한권으로는 역시 아쉽다.)책들, 그리고 허기를 달래준 먹다 만 음식까지. 생각만해도 그림속에 아이가 내가 되었음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난해 한 그림이 거의 없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며, 어려운 용어로 그림을 감상하는게 아니라 '배워야 만 할 것 같은'부담을 덜어 주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오래두고 볼 만한 책인듯 싶으면서도 책을 구매한 그 곳, 혹은 앞서 소개한 작은 미풍이 오가는 어디에서 읽어도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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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사라지는 시간 - 오이겐 루게 장편소설
오이겐 루게 지음, 이재영 옮김 / 문예중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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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겐 루게. 

빛이 사라지는 시간.

 

"감자 잎이 타기 시작하면 그 시간이 온 것이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빛이 사라지는 시간."

 

 

오이겐 루게. 처음 듣는 작가였지만 동독, 유토피아 그리고 '자전적 소설'. 이 세가지의 키워드에 반응하는 것은 내 취향에 너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기에 기대도 컸고 그 기대보다 더 재미있게 읽은 책, 빛이 사라지는 시간. 몸이 아팠던 까닭도 있고 안팎으로 일도 많은 까닭도 있겠지만 그런것은 핑계였다. 책속 인물, 알렉산더를 비롯 4대라고 표현하기에는 각자의 '빛'또렷이 빛났기에 리뷰의 초점을 어디에 둘지를 몰라 머뭇거렸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게 맞다. 

 

재미있게 읽은 뒤 리뷰의 방향이 잡히지 않을 때, 다시금 책소개와 옮긴 역자의 글을 읽어본다. 혹은 저자 서문을 다시 읽게 되는데 이 책의 경우 너무 역자의 글의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으면 싶다. 그래서 이 말을 서두에 먼저 적어둔다. 빛은 동독의 사회주의의 실패와 함께 사라진 빌헬름만의 이야기 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이고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결코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번역은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이 작품, 혹은 자전적 소설의 장점이라고 하면 아주 사소한 헤프닝이나 위트가 가미된 장면들이 참 현실적으로 다가와 공감을 쉽게 얻어낸다는데 있다고 본다. 알렉산더가 사샤로 불리던 때의 상황묘사도 그렇고 쿠르트가 '언어를 잃어버린'시기에 묘사도 그렇다. 무엇보다 나데시다 이바노브나의 끌리는 신발소리 '빛이 사라진 무렵의 묘사 하나하나가 그랬다.

 

"발꿈치 부분을 만들려면 뜨개질 코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야 했지만, 그녀는 한 번도 그걸 일일이 세어가며 짠 적이 없었다. 어떻게 되는지 몰라도 여하튼 하다보면 계산하지 않아도 저절로 딱 맞게 코가 나뉘었다."

 

 이미 성장해서 가족을 떠나버린 알렉산더의 차가운 이미지는 어쩌면 그래서 더 안타깝고 지금의 우리의 모습, 현재는 천진한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겪게 될 다양한 사건속에서 거의 대부분 웃음을 잃어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한가지 더. 사회주의가 소멸해가는 과정에서 명예나, 삶의 이유를 잃어가는 샤로테의 모습은 거창하게 나열된 이유라기 보다는 이리나에게서 보여지는 '나이듦'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

 

 

이 책을 읽을 무렵의 내 나이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다면 이 책이 이만큼 재미가 있었을까? 그저 분단된 한 국가와 그 국가의 전쟁과 관련된 상처와 편린에 의해 가족원의 구성이 변경되고 그 사이사이 인간들의 모습이 변화하는지에만 관심이 쏟아지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30대가 되어 나이듦에 대한, 그토록 맹목적으로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과 사람에 대한 실망감을 어느정도 짐작해볼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이사를 하면서 다량의 책을(책을 양으로 표현한 것은 좀 아쉽지만)앞서 말했던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버리듯 하며 책을 선별하는 과정에서의 기준은 단 하나였다.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을 것인가.', '다시 읽을 만한 흥미가 남아있는가.'였다. 그렇기에 베스트셀러인지, 저자의 유명세라던가 심지어 책의 가격조차 무의미한 그 때, 다시 아니 적어도 2~3번 더 읽을 것 같아 이 책을 남겨두었다. 말랑말랑한 가정사와 지금의 시대를 사는-전쟁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나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념을 가진자와 단체에 대한 히스토리는 몇년 뒤 다시 읽었을 때 어떤 감흥을 전해줄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결론, 빛이 사라지는 시간은 등장인물들의 '빛'을 쫓고 사라지는 모습을 통해 독자의 '빛'을 모이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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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상희 옮김 / 책만드는집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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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를 축복치 않는다면 내 그대를 놓아 주지 않으리로다."

 

내 또래에 데미안을 읽어본 사람치고 처음 읽게 된 시점이 30대 초반인 경우는 드물거라 생각한다. 이르면 초등학생시절, 좀 늦더라도 대입 이전에 한번쯤 읽고 싶은 충동이 일거나 '강요'에 의해 읽게 되는 작품중에 하나가 바로 데미안이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와 마지막장까지도 여운이 남는 구절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세번째 데미안을 읽고 드디어 리뷰를 남겨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데미안하면 떠오르는 구절은 대게 맨 위에 적은 구절보다 바로 위의 문장일 것이다. 아직 준비가 안된 싱클레어에게 해주는 말, 그리고 불안전한 청소년기에 뜻모를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구절. 세번째라 지루할 법도 한데 자처해서 읽어 시작부터 맘이 울려 가장 더디게 읽혔던 것 같다. 데미안을 만나기 전 시기에 선의 세계 혹은 알에서 깨어 나올 필요가 없던 공간에 머물렀던 싱클레어의 모습에서 보통의 '나'를 보게 된다. 때문에 이 책의 내용에서 진정으로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데미안이 등장하기 직전 싱클레어가 악의 존재를 체감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데미안을 동경하고 그리워했던 싱클레어보다 시간이 흐른뒤에도 크로머를 떠올리며 흠칫 거리는 그가 안쓰러웠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의 유년 시절에서 스스로 놔주지 못하는 좋지 않은 기억에 여전히 얽매여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다. 이 작품이 지루하다는 고른 평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을 괴롭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틀을 깨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틀을 깨는 것은 둘째치고 갇힌 상태가 현재 진행형이 사람도 존재 하기 때문이다.

 

그대 나를 축복치 않는 다면 내 그대를 놓아 주지 않을리로다.

 

악도 선도 결국 최초의 반항으로 몸이 떨린 싱클레어처럼 모든 결심과 깨달음 끝에는 떨림과 그로인해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빠지게 된다. 여전히 제 모습이 같아 진 줄도 모르는 싱클레어처럼 그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무시하고 견뎌낼 수 있다면 우리는 알속에 있어도 알을 깨고 나온 것과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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