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책읽기 - 독서, 일상다반사
가쿠타 미쓰요 지음, 조소영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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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같은 책을 읽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혹은 제목부터 별로이지 않냐며 그렇게 한바탕 비평가인듯 착각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 상대가 이 책 [보통의 책읽기]의 저자 가쿠타 미쓰요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어릴 때 고전을 읽다보면 저자가 담백하게 풀어낸 문체가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엄청나게 버라이어티 해야하고 예측불가능하며 그 와중에 셜록에 나오는 탐정처럼 명민한 주인공이 내가 되어야만 하는 기대가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를 정말 재미없다고 독서감상문 과제로 제출했다는 일화를 읽었을 때 공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저자가 그러했듯 나도 시간이 지난 이후 다시 읽고서 이 멋진 작가를 왜 내가 진즉에 알아보지 못했었나 후회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늦게 진가를 알아보았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더 잘된일인 경우가 많다. 저자가 쓴 작품을 연대별로 편안하게 골라 볼 수 있는 특권 아닌 특권이 주워지는데 마치 종방 후 드라마를 한꺼번에 몰아보는 느낌같다.

이 책의 아쉬운점은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저자의 작품들이 많아서 책을 읽고 찾아보려고 해도 구할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말 치명적이다. 마치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을 봤지만 국내에서 파는 가게가 없는 것과 같다. 어떻게든 재료를 구해 비슷하게나마 만들어먹거나 여행을 떠나는 방법처럼 원서를 구해와 지인에게 번역을 부탁해야하나 싶은 책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후지 일기]가 그랬다. 이 작품은 비단 가쿠타 미쓰요뿐 아니라 다른 유명 일본문인들이 추천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번역본이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물론 이렇게 아쉬움을 극대화 시키는 소감도 있지만 국내에서 영화로 개봉되었던 [방황하는 칼날]의 경우는 결말을 노출시켜서 살짝 저자가 미워질 뻔했다. 스릴러, 추리소설의 핵심, 절대 스포를 하면 안되는데 이런 류의 책들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서문에서 저자는 책이 사람을 부른다고 말했다. 자신의 글을 통해 재미겠다 싶은 맘에 한 권 집어들어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당연하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결말을 다 알려주고, 국내에 번역본이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내가 읽었었던 이이지마 나미의 작품 속 소소함을 공유하는 기분은 이 글 서두에 밝힌 것처럼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딱 그런 기분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은 뒤 가장 먼저 읽고픈 책은 사소해서 집중하지 않았던 책을 재발견했을 때의 기분, 나이들어서 다시 읽었을 때 깨닫게 되는 작가의 천재적인 문장력을 세세하게 느끼는 이 작가의 작품을 가장 먼저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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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진으로 말하다
현경미 지음 / 도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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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보았던 인도는 진짜 인도였을까?


책의 서문을 보면 저자는 우리에게 대뜸 '인도적'이 무엇이냐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떠올리는 이미지를 서슴없이 말한다.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요가와 동물들과 배설물. 높다란 건물이나 엄청나게 화려한 도시의 풍경은 결코 떠오르지 않는다. 그모습이 정말 인도의 모습이 맞을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책을 통해 저자의 사진과 글에서 느껴지는 풍경은 앞서 열거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렇게만 말하기에는 무언가 어설프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한 표현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인도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자로서 장기간 머물면서 저자는 애인같은 핫셀블라드를 손에 쥐고서도 한참동안 사진을 찍으러 다닐 수가 없었다. 인도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떻게 보여줘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좋게 선생님을 알게되면서 '힌두사원 프로젝트'를 시작, 비로소 저자의 핫셀블라드가 제 역할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저자가 카메라테스트라고 표기한 작품은 사방이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진 사원이었다. 불교가 국교였던 시절도 있었던 만큼 우리나라에도 절이 참 많은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중국의 불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절과 인도의 절과는 사뭇다르다. 도시한복판에 신을 모셔놓은 상을 놓아두면 바로 사원이 되는 것이다. 무려 신의 종류만도 억단위인 인도에서는 모든 신을 믿는다기 보다는 그 많은 신 중 1~2명의 신을 골라서 맘에드는 신을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당신이 섬기는 신이 누구인지 물으면 저마다 다 다른 신을 이야기 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신상이 현대적으로 변모하는 것도 시대를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쩌면 여러신을 믿는다는 것, 자신이 원하는 신을 택할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이미 '유일신'이라는 다소 고정된 체제에서 벗어난 상태가 아닌가 싶었다. 책 표지와 각 소제목 앞에 붙은 표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OM'이라고 하는 표기이다. 태초에 사람이 도구를 사용하고 언어를 사용하기 전에 소리가 있었다. 이 소리는 빅뱅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분열되고 탄생할 때 들리는 소리라고 말하는데 그 의미는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아멘'이라고 붙이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그걸 알고 나니 요가나 명상 때 '오~옴'하고 소리냈었던 것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나도모르게 그렇게 발음하고 소리내면서 원하던 것을 취해가던 것이 아닌가 싶었기 떄문이다.

힌두교 프로젝트라고 해서 종교와 밀접한 사진만 수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뿐만아니라 다른 사진집과 달리 저자가 정말 친절해서 이 사진을 통해 기술적으로 어떤 면이 뛰어나서 선택된 것인지도 설명해주고 촬영 전후의 사정도 들려주며 무엇보다 사진에서 우리가 어떤 부분을 좀 더 유심히 바라봐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찰흙뭉터기 옆에 서 있는 여성이 담긴 사진이 왜 중요한지, 그것이 찰흙이 아니라 소똥을 뭉쳐서 만든 것이며 더럽고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였고, 겁이 많은 저자가 먼발치서 망설일 때 선뜻 촬영을 먼저 권한 것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사진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무작정 봐서 멋진 사진도 좋지만 이렇듯 이야기를 걸어주어 끊임없이 사진과 독자사이에 대화를 이어주는 책 덕분에 저자가 말하고자 한 '인도'를 조금은 알게된 것 같다. 적어도 이 책에서 본 인도는 진짜 인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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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외로움을 두고 왔다 - 시로 추억하는 젊은 날
현새로 지음 / 길나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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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일까. 혹은 가장 슬플 때는 또 언제일까. 내게는 마치 내 마음을 옮겨놓은 듯한 글을 만났을 때 그러하다. 사진작가 현새로의 [거기, 외로움을 두고 왔다]를 읽으면서 기뻤고 슬펐다. 연배는 10년 넘게 차이나지만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만 나의 유년시절, 학창시절, 런던을 여행할 때 느꼈던 찰나의 외로움과 적막속으로 끌고갔다. 처음에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의 글에서 그저 시를 알고, 사진을 느끼려고만 했는데 어느샌가 끌려가던것이 제발로 이제는 먼저가서 그녀의 글들을 기다렸던 것 같다.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 중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라는 시구를 골라낸 그녀는 중학생시절 추억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시절 자신은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고, 또래의 친구들은 왠지 자신과 수준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는 말에 공감했다. 사춘기 시절 누구나 다 그랬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친구들과 밤새 수다떠느라 부모님께 혼난 추억을 가진 사람도 있고, 부모님 눈치보느라 혹은 자신의 꿈을 위해 미친듯이 공부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와 나처럼 도서관에 처박혀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고전을 읽어내며 저 혼자 뿌듯해했던 추억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 가난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말해주었고 이와 관련된 사진으로 런던에서 사진 공부를 했을 당시 교수님 집에서 찍었던 자신의 모습을 책에 실었다. 늦은 오후즘으로 느껴지는 빛이 가득한 방에 카메라 앞에 선 모자쓴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라고 말했다. 아무도 없었던 그곳에,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던 그 시절 비로소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랬기에 사랑할 수 있었던 때라 말해준 그녀덕분에 나는 내 자신을 가장 사랑했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생각해본다.

어쨌든 음악은 사람과 달랐다. 주머니가 아무리 가벼워도 음악 앞에서는 부끄럽지도,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게 나는 음악을 들었고, 음악은 소리 없는 내 울음을 들어 주었다. 104쪽

라디오와 관련된 추억을 담은 페이지에 실린 시는 신동엽 시인의 [노래하고 있었다]로 '달리는 열차'안에서 창가를 바라보고 앉아있는 부분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주제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인은 버스를 타고 장시간 도시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 더불어 나 또한 달리는 열차안에서 미래가 아닌 과거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데 이때 내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음악이었다. 저자는 라디오를 대신해 언니가 사준 워크맨이 그 공간을 채워주었듯 내게는 휴대폰 속 음악이 허전한 마음을 음악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책도 좋고, 영화도 좋고, 카운셀링을 받는 것도 좋지만 역시나 가장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마음치료는 '음악'이라는 말에 고개를 오래도록 끄덕이게 만들었다.

나는 절대 고독 속에 여행하면서 완벽하게 홀로됨을 즐겼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의 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그저 한 인간으로 그 공간에 존재했다. 150쪽

[거기, 외로움을 두고 왔다]는 읽는 동안 사무치게 외로워질 수도 있고, 미칠듯한 기쁨에 주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서문에 밝힌 것처럼 저자의 이야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유년시절 저자처럼 외롭지 않았고, 학창시절 저자처럼 배고프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늘 언제나 '꿈'앞에서 한없이 약해진다. 그럴 때 우리는 꿈에 다가가기 위해선 과감하게 외로움을 던져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 다름아닌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가장 좋은 시라고 할 순 없지만 가장 맘에 드는 시는 이미 충분히 세상에 나와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시를 좀 더 좋게 만드는 현새로와 같은 저자의 도움이 늘 필요하긴 하다. 그녀의 글만큼 맘에드는 사진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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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테레사
존 차 지음, 문형렬 옮김 / 문학세계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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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른 사람이 아닌 가족의 시선으로 책을 쓴다는 것은 차마 상상해보고 싶지 않을만큼 괴로운 일이다. 서먹서먹하게 지내던 사이도 아니고 나이들고 서로 가정을 이룬 이후에도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거나 자신의 예술세계를 공유할 정도로 친한 오빠 동생 사이였다면 상실감이 너무도 컸을텐데 그렇게 동생을 떠나보내기에는 아픔보다 아쉬움이 컸었을 것이다. 1982년, 개념미술가로 촉망받던 테레사 차, 차학경 아티스트가 강간 후 살해된다. 교통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도 아니고 흉악범에 의해 가족을 잃게 되면 원망도 컸을텐데 [안녕, 테레사]의 존 차는 동생 자신도 피살되는 그 순간까지 어떻게 죽어갔을지 궁금했을거라고 여기며 동생에게 그때 일들을 전달하는 어투로 글을 써내려 간다. 처음 시작은 테레사의 남편인 리처드가 저자에게 아내의 죽음을 알리면서 시작된다. 동생이 죽었다는 말에 저자는 쉽사리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해서든 동생이 있었던 뉴욕에 가야된다는 확신을 갖는다. 동생이 죽었던 그 날, 그리고 그 이후에 수년간 이어진 법정의 모습이 계속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그 사이사이 테레사의 삶의 시작과 과정을 들려준다. 한국전쟁 중 테레사를 가진 어머니는 전쟁중에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이 늘 맘이 쓰였다고 말한다. 그 때에는 누구나 그랬다. 어떤 누구라도 아이에게 풍족하게 먹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고 저자가 어머니를 달래주지만 그래도 좀 더 애써야 하지 않았냐며 안타까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과연 그 힘겨운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싶을만큼 애닯다. 법정에서 검사가 범인을 지목하며 테레사가 죽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할 때도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마음을 간신히 다잡으며 딸의 마지막을 다 알고 지켜주려고 했던 어머니와 오빠 존 차. 테레사가 태어났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의 태를 땅에 묻었다. 그렇게 흙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옛말대로 따랐고, 마찬가지로 테레사가 죽고 난 뒤 그녀의 블라우스를 자신의 어머니가 묻힌 산소로 가서 태웠다. 흙으로 나와서 다시 흙으로 그렇게 바람처럼 떠나간 테레사. 그녀의 결혼식이 있었던 집에서 그녀의 장례식이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열리는 것이 먼 이국땅 전혀 관련없는 독자가 읽고 있어도 너무 쓰리고 아쉽고 괴로웠다. 살아있었다면 역자의 말대로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주요한 활동을 했었을 테레사 차. 그녀가 죽기전까지 기획하고 진행중이었던 '손'시리즈의 완성된 전시를 만날 수 없는 것은 정말 아쉬웠지만 그야말로 그녀는 우리곁은 떠났어도 그녀가 가졌던 예술성과 예술에 대한 갈망은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오빠에 의해서, 또 이 책을 읽은 독자에 의해서 영원히 이어질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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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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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앉아버린 영혼을 다시 일으켜주는 인생 레시피"란 수식이 붙어있는 소설 [수플레]는 각자 다른 사정으로 수플레를 만들게 된 릴리아, 마크 그리고 페르다의 이야기다. 프랑스 디저트 수플레는 달걀 흰자로 낸 거품에 재료를 섞어 오븐에 구어낸 요리로 최고급 레스토랑의 요리사들 조차 주문을 두려워 할 정도라고 한다. 오븐에서 나오는 순간 부풀었던 거품이 내려앉아버리는 수플레를 통해 완벽하진 않지만 평온한 일상을 깨뜨리는 '불행'이 다가왔을 때 주저앉는 우리의 모습이 마치 수플레에 비유한 것이다. 얼핏 느끼기에는 디저트류가 등장하기 때문에 실연 혹은 젊은 세대의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지만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세사람의 평균연령은 예순이 넘는다.

늘 혼자있길 원하고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것은 질색하는 남편이 뇌졸증으로 쓰러져 거동이 어려워 자신의 도움없이는 화장실도 가기 힘들어졌을 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릴리아는 오히려 처음 남편이 쓰러진 날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차라리 남편이 죽는다면 자신에게는 훨씬 이로운 일이라고,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건지도 모른다며 들떠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죽지 않았고 집안의 주도권을 잡아버린 릴리아는 위기를 기회로 여기기 시작한다. 사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마크나 페르다의 이야기에 비해 릴리아의 사정이 너무 안쓰럽고 답답했다. 친부모도 쉽게 해줄 수 없는 엄청난 애정과 비용을 들여 길러낸 자식들이 연락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을 길러준 댓가로 받는 보호비를 챙긴것이 아니냐는 덩의 대꾸에 그렇게 참을 수 있었던 것이 화난 것이다. 아마 덩의 모습을 통해 과거에 부모님께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던 못난 내 모습이 보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가하면 마크의 경우는 프레드릭 베크만의 작품[오베라는 남자]의 오베를 떠올리게 했다. 작품 속 오베는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지 못하는 인물로 아내덕분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회에 참여하는 등 아내이자 친구이자 부모와 학교에서 받지 못했던 모든 것을 알려준 '멘토'였는데 마크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없는 것이 어떤 부부에게는 가장 큰 불행이지만 이런 큰 불행조차 클라라덕분에 마크는 한없이 행복할 수 있었다. 그녀가 매일 준비하던 요리는 혹시라도 있었을지 모를 마음의 공허마저 완벽하게 채워주었던 것이다. 페르다의 모습은 아직 일흔이 되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 보는 고령화 사회가 아닐까 싶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가지고 있는 고마움, 추억, 의무는 당연 있지만 질병때문에 혹은 약해지고 나약해진 심신 때문에 아이가 되어버리는 부모가 부담스럽고 자신의 남은 삶을 시들게 만든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세사람의 사연 중 앞으로 내게 일어나지 않을만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그런점에서 더 이 책이 읽으면 읽을수록 몰입하게 되고, 그들이 어떻게 이 시련들을 견디고 이겨내는지 함께 응원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플라비오처럼 요리를 하는 것이 '책을 읽을기회와 생각 할 여유'를 빼앗기는 것일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위해 요리해본 사람이라면, 결국 요리를 한다는 것이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내 자신을 치유하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설사 '수플레'처럼 푹 꺼져버린다고 하더라도 그 덕분에 다시 해 볼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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