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주저앉아버린 영혼을 다시 일으켜주는 인생 레시피"란 수식이 붙어있는 소설 [수플레]는 각자 다른 사정으로 수플레를 만들게 된 릴리아, 마크 그리고 페르다의 이야기다. 프랑스 디저트 수플레는 달걀 흰자로 낸 거품에 재료를 섞어 오븐에 구어낸 요리로 최고급 레스토랑의 요리사들 조차 주문을 두려워 할 정도라고 한다. 오븐에서 나오는 순간 부풀었던 거품이 내려앉아버리는 수플레를 통해 완벽하진 않지만 평온한 일상을 깨뜨리는 '불행'이 다가왔을 때 주저앉는 우리의 모습이 마치 수플레에 비유한 것이다. 얼핏 느끼기에는 디저트류가 등장하기 때문에 실연 혹은 젊은 세대의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지만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세사람의 평균연령은 예순이 넘는다.

늘 혼자있길 원하고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것은 질색하는 남편이 뇌졸증으로 쓰러져 거동이 어려워 자신의 도움없이는 화장실도 가기 힘들어졌을 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릴리아는 오히려 처음 남편이 쓰러진 날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차라리 남편이 죽는다면 자신에게는 훨씬 이로운 일이라고,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건지도 모른다며 들떠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죽지 않았고 집안의 주도권을 잡아버린 릴리아는 위기를 기회로 여기기 시작한다. 사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마크나 페르다의 이야기에 비해 릴리아의 사정이 너무 안쓰럽고 답답했다. 친부모도 쉽게 해줄 수 없는 엄청난 애정과 비용을 들여 길러낸 자식들이 연락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을 길러준 댓가로 받는 보호비를 챙긴것이 아니냐는 덩의 대꾸에 그렇게 참을 수 있었던 것이 화난 것이다. 아마 덩의 모습을 통해 과거에 부모님께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던 못난 내 모습이 보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가하면 마크의 경우는 프레드릭 베크만의 작품[오베라는 남자]의 오베를 떠올리게 했다. 작품 속 오베는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지 못하는 인물로 아내덕분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회에 참여하는 등 아내이자 친구이자 부모와 학교에서 받지 못했던 모든 것을 알려준 '멘토'였는데 마크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없는 것이 어떤 부부에게는 가장 큰 불행이지만 이런 큰 불행조차 클라라덕분에 마크는 한없이 행복할 수 있었다. 그녀가 매일 준비하던 요리는 혹시라도 있었을지 모를 마음의 공허마저 완벽하게 채워주었던 것이다. 페르다의 모습은 아직 일흔이 되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 보는 고령화 사회가 아닐까 싶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가지고 있는 고마움, 추억, 의무는 당연 있지만 질병때문에 혹은 약해지고 나약해진 심신 때문에 아이가 되어버리는 부모가 부담스럽고 자신의 남은 삶을 시들게 만든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세사람의 사연 중 앞으로 내게 일어나지 않을만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그런점에서 더 이 책이 읽으면 읽을수록 몰입하게 되고, 그들이 어떻게 이 시련들을 견디고 이겨내는지 함께 응원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플라비오처럼 요리를 하는 것이 '책을 읽을기회와 생각 할 여유'를 빼앗기는 것일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위해 요리해본 사람이라면, 결국 요리를 한다는 것이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내 자신을 치유하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설사 '수플레'처럼 푹 꺼져버린다고 하더라도 그 덕분에 다시 해 볼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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