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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잘리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지음, 류시화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11월
평점 :
님에 바치는 노래라는 의미의
'기탄잘리'. 열 일곱. 20년도 더 전에 처음으로 기탄잘리를 읽었다. 고등학교 신입생 예비과제로 감상이 아닌 '미션수행'에 가까운 독서였다.
그렇다보니 한 편 한 편이 모두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님'을 뜻하는 게 본문에서 설명한 것처럼 연인이기도 하고, 절대자이기도 하며 '나'
그 자체일수도 있다. 지난 해 세례를 받아서인지 내게는 신께 용서를 구하고 변함없을 사랑을 고백하는 고백록으로 다가왔다. 그런가하면 동시에
연인과 신 그 사이를 오가며 울음을 삼키게 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바랑 속에 있는 것들을 바닥에 비웠을 때, 초라한 물건들 속에서 아주 작은 황금
구슬을 발견하고 내 놀라움은 얼마나 컸던가요! 나는 슬프게 울며 후회했습니다. 당신에게 내 전부를 바칠 마음을 갖지 못했던 것을.
73쪽
연인 혹은 가족 그리고
친구사이에서도 해당되는 말, '있을 때 잘해'.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전부라는 것이 물질적인 부분을 떠나 나중에라는 핑계로 참 여러번
지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그 관계가 끝났을 때야 비로소 할 수 있었던 것, 줄 수 있었던 것 조차 주지못했구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을 향해서는 교만과 이기심, 타인과 비교하며 죄를 덜 짓고 살아간다고 착각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또한 이 시들은 대학생들이 학창 시절에 들고 다니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옆으로 밀쳐놓을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뎨가 거듭될수록 여행자는 길 위에서, 배를 젓는 사람은 강 위에서 이 시들을 노래처럼 읊게 될 것이다.
149쪽
벅찬 감동을 받은 수많은 사람중에는
시인 예이츠도 있었다. 그의 말처럼 어느 누군가의 작품이 심금을 울린다면 분명 작가의 생애, 사상에 관해 모국어로 된 자료를 찾아볼 수 밖에
없다. 또한 작가의 작품을 기차안에서, 이층 버스처럼 지니고 다니며 읽게 된다. 개인적으로 기차에 탈 기회가 있을 때면 그 어느때보다 더
신중하게 책을 챙기곤 한다. 그때만큼 내가 완벽하게 몰입하고 있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장소는 없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 행선지가 있음에도
마음을 빼앗겼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기탄잘리가 바로 그런 시집이다. 다시 타고르의 시안으로 들어와
노래처럼 읊게 만든 작품이야기로 돌아오면,
내 마음은 그곳에 이르는 길을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 가장 가난한 자, 가장 낮은 자, 길
잃은 자들 속에서 당신이 친구 없는 이들의 친구가 되는 그곳에. 20쪽
친구가 많은 이들의 사귐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친구 없는 자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더 위대한 일인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 반대로 향해 간다. 그럴 때
우리가 의지할 것이 어쩌면 사람이 아닌 '시'가 아닐까 싶다. 영화 <시인의 사랑>속에서 '시인은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란
대사가 등장한다. 신분과 연령, 성별과 상관없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타고르의 시가 노래로 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이지 싶다. 유행가 가사처럼 구절
구절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기탄잘리. 망설임없이 이 시집을 권하고 싶다. 아, 기탄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