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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이미화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4월
평점 :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moved by movie

출근하지 않는 휴일, 혹은 느닷없는 휴가에
책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과 함께 열차에 오른 기분은,
늦잠을 잔 아침
갓 구운 빵, 방금 내린 커피, 크림 치즈 핸드메이드 과일 잼이 담긴 쟁반을 당신앞에 놓인 것과 같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미드나잇 인 파리, 노팅 힐 & 어바웃 타임, 클로저, 원스 그리고 카모메 식당.
책속에 등장하는 영화들이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첫 번째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굳이 책을 펼쳐서, 혹은 영화를 본 적이 없더라도 타이틀만으로도 우리를 열차에 오르게 만들기도 하다. 저자는 베를린에 있을 당시 무작정 리스본으로 떠났다고 했다. 마치 영화속 고고학자가 홀린 듯 떠난 것처럼 말이다. 살다보면 그렇게 영화에, 혹은 책에 그리고 노래에 취할 때가 있다. 책에서도 소개된 영화 원스가 그랬다. 개봉하고도 한참 지난 후에 어쩌다보니 원스를 보게되었다. 내용은 사실 맘에 든 편은 아니었지만 유독 한 장면, 카세트로 거리를 걸으면서 듣던 노래 한 곡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영화를 보고 그 담날 바로 CD를 구매했고, 그리고 그리 오래지나지 않아 나 역시 더블린으로 갔다.
물론 저자처럼 당당하게 입국 목적을 밝히진 못했지만.
"영화 <원스>촬영지 찾아가려고요." 229쪽
저자는 원스의 풍경과 악기상점까지 잘 찾아내서 사진에 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만족스러운 원스여행은 아니었다. 버스킹도 딱 한 팀 보았을 뿐이다. 게다가 동행이 있었던 여행이 아니었기에 어쩌면 내게 더블린의 거리는 영화 후반부에 쓸쓸한 풍경을 그대로 연출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가하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뿐 아니라 워낙 유명한 노틀담 옆 셰익스인 컴퍼니 서점은 처음 파리를 방문했을 때는 그냥 지나쳤었다. 역시나 영화를 한참 뒤에 본 이유도 있지만 그야말로 랜드마크 인증 여행에 가까웠기 때문이었으리라. 언제 어느 책에서, 영화에서 보더라도 늘 푸른 서점의 풍경은 직접 보았을 때의 그 정겨움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That's all." 141쪽
고작 엽서한 장과 에코백이 전부였다고 했지만, 그래서 보잘것 없는 마음을 들킬까 주먹을 꽉 쥐었다지만 나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한 권의 책을 더 에코백에 담아오긴 했으나 생각해보니 파리까지 가서 영어원서를 사온다는 것 자체가 더 구차한건 아닐까 싶었다.
"기차에서 만난 남자와 비엔나에 내렸어. 얘기가 잘 통하고 너무 귀여웠어.
어렸을 때 할머니 유령을 본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 정이 들었어.
그런 예쁜 꿈을 지닌 꼬마가.. 날 사로잡았어." 73쪽

비포선라이즈 연작을 보면서 아마 누구라도 그런 사랑을 꿈꾸었을 것이다. 우연히 만나서 영원같은 하루를 보내고, 불안한 약속을 나누는 그런 사랑.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사진도 너무 예쁘고 좋아하는 영화들로만 가득한데다 핀란드와 포르투갈을 제외한 촬영지를 직접 다녀왔기 때문에 끌렸었다. 그런데 책을 읽은 사람들은 알테지만 저자의 문체가 너무나 매력적이다. '그런 예쁜 꿈을 가진 꼬마'를 만난 셀린의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여행기를 읽을 때는 앞서 말한 것처럼 같은 곳을 다녀왔다는 공감으로 읽기 마련인데 이 책은 여행지, 여행과 상관없이 그냥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실의에 빠진 저자의 모습도, 뜻하지 않은 여행에 설레고 들떠있는 모습도, 누군가의 추억을 담담하게 고백할 때도 문장에 담긴 정싱이, 그 세심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여행에세이를 읽으면서 여행지에 가보고 싶게 만드는 여행도 있고,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줄 때도 있다.
이 책은 당연 후자다. 타이틀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이 그대로 재연되는 책,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