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디머_죄악에서 구하는자. 즉 구원자, 구세주.




요네스 뵈의 리디머는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의 6번째 이야기다. 사실 순서대로 읽기 위해 첫 권이 번역되어 출간되기 까지 기다렸던 작품이라 중간을 스킵하고 리디머를 읽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다. 아마 나처럼 생각하고 리디머 읽기를 주저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순서에 그리 연연해 할 필요가 없었는 데 왜 그랬을까 싶다. 왜냐면 어떤 권을 언제 어느 순서로 보더라도 해리의 매력은 가감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해리를 만난 그 순간 당신은 빠지게 되어있다.


리디머는 구세군이 이야기 중심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전쟁중에 우리는 신이 그 곳에 없다라는 말을 종종한다. 소중한 것들이 전혀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생명이 그렇게 흩어져버린다. 내 생명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생명은 모두 '적'으로 간주된다. 얼굴을 상황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는 '어린 구세주'는 자라서 청부살인업자가 된 그를 해리가 추적해간다.


해리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침묵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아까 전화가 울렸을 때 어떤 얼굴이 떠올랐다. 그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게 아니라 그게 라켈의 얼굴이 아니라는 게 놀라웠다. 137쪽


초반에는 개별적인 '그'들의 등장과 장면이 교차되면서 진행되어서 다소 헷갈리기도 했다. 헷갈렸지만 인물들의 등장 신이나 진행되는 사건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들이어서 그랬는지 꽤 오랜기간 조금씩 나누어 읽을 수 밖에 없었던 환경에서도 금새금새 또 몰입이 되었다. 의외의 인물이 사건의 중심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극적 긴장감은 더 커지게 되고, 리디머라는 제목이 그저 어린 구세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감하게 되면서 역시 '해리, 출구가 없어!'라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제발 그래줘. 이 머저리는 혼자 남아서 사람을 대하는 요령에 대해 고민 좀 할게. 해리는 생각했다. 217쪽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리디머 편에서는 묘하게 미드 닥터하우스의 닥터하우스가 떠올랐다. 제멋대로인 성격이 유사하긴 하지만 스스로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믿는 해리보다 하우스는 훨씬 더 독단에 가깝고 무엇보다 신을 믿지 않고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라는 자신만의 명제의 참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예전에는 비슷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왜 하필 리디머에서는 하우스와 해리가 유사하다고 느꼈을까. 그런가하면 신기하게 리디머를 읽는 동안에는 스릴러물을 읽는 기분도 기분이지만 연애소설을 읽는 듯한 설레임이 곳곳에 묻어나서 더 색다르게 읽힌 것 같다.


"난 경찰이에요, 마르티네. 우린 그저 범인을 체포할 뿐이고, 법정에서는 형을 선고하죠." 587쪽


서두에 이야기 한 것 처럼 전쟁중에는 의도치 않아도 편이 나뉘어 지고, 그렇기 때문에 '적'을 만들 수 밖에 없다. 리디머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의 다른말이란 의미가 소설을 읽기 전에는 나와 의견이 다른이는 결국 내 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소설을 읽은 후에는 누군가의 '구세주'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하고 위험한 자리인가 싶은 것이다. 우리는 누구의 구세주가 되어줄 수 없다. 해리가 자신의 역할이 '범인을 잡는 것'까지인 것을 적확하게 아는 것 처럼 말이다. 우리는 애초에 '주'가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신이 없다고 말하는 그 장소에서 과연 신이 있다고 느낄려면 맞은편에서는 반대로 '신이 없는'상황이 되고 만다. 결국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장소에 신의 존재유무를 따지는 것은 인간의 또다른 오만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