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한 여름, 네가 좋아한 겨울 책고래숲 1
이현주 지음 / 책고래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한 여름, 네가 좋아한 겨울/ 글 그림 이현주 /고래


이현주 작가의 <내가 좋아한 여름, 네가 좋아한 겨울>를 처음 봤을 때 지미의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가 떠올랐다.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무심히 그린듯한 그림체와 달리 마음을 푹 빼앗기게 하는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산뜻한 색그림 때문이었다. 표지는 마치 요즘 유행하는 직접 색을 칠해볼 수 있는 그림책 처럼 책을 읽다말고 색연필 등을 찾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내용은 연이라는 소녀와 준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다. 아주 어린 아기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조금씩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둘의 모습을 보다보면 내 안에 어떤 부분은 준이와 같고 또 어떤 부분은 연이와 참 많이 닮았구나 하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다. 사색하기를 좋아하고 그러다보니 어느덧 자기만의 세상을 찾아 글을 쓰는 준이의 모습은 내면의 내가 바라는 모습이었고, 연이처럼 사람들과의 소통이 활발한 모습은 세상이 나에게 바라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미의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가 서로 다른 방향을 고집해서 멀어졌다가 또 같은 이유로 다시 재회하게 되는 것과 달리 연이와 준이는 각자만의 색을 찾다가 만나게 되고 또 서로의 다름 때문에 냉전을 겪기도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그런 '차이'로 헤어진다는 것은 결국 그 차이를 포옹하고 이해해줄 만큼은 사랑하지 않는게 아닐까 싶다. 연이와 준이는 그 다름을 넘어 서로가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연이와 준이가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을 직접적인 색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혹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 혹은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봐도 정말 사랑스럽다. 노란색으로 가득한 색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에게 떠올리는 색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어린아이와도 이 책을 즐겁게 볼 수 있고, 빈칸으로 남겨둔 공백은 자신만의 색으로 채워 연이와 준이가 아닌 나만의 색으로 책을 꾸며볼 수도 있다. 말그대로 이현주 작가가 펼쳐놓은 이야기뿐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도 동시에 펼쳐보일 수 있는 책인 셈이다. 더군다나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더 큰 사랑의 길로 나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연인이 함께 본다면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고마운 책이 될 것 이다. 아이에게, 연인에게 그리고 이제 막 제 색을 찾아가는 청소년에게, 색을 잃어버린 서른을 넘긴 어른에게 추천하고 싶은 예쁜 책 <내가 좋아한 여름, 네가 좋아한 겨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로웅 웅 지음, 이승숙 외 옮김 / 평화를품은책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운 것들을 싹 다 부숴버리고 싶어."
"그런 말 하지마. 정령들이 들어."
초우 언니가 내게 주의를 준다. 나는 언니 말에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게 바로 전쟁이 우리에게 행한 짓이다. 그 때문에 지금 나는 파괴를 원한다. 내 안의 증오와 분노는 어마어마하다. 앙카르가 깊이 증오하라고 가르쳐서 지금 내가 파괴력과 살상력을 갖게 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로운 시대 새로운 DNA, 창업 강옥래 신서 1
강옥래.강민구 지음 / ceomaker(씨이오메이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로운 시대, 새로운 DNA 창업 / 강옥래 강민구 공저 / 씨이오메이커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시대는 로봇과 알고리즘이 인간을 대신하여 일하게 되고, 돈이 또 돈을 버는 이치에 따라 돈 많은 사람이 로봇과 알고리즘에 천문학적 돈을 투자하여 또 돈을 벌게 될 줄도 모른다. 100세 시대를 살아갈 우리는 과연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할지 고민할 때가 된 것이다. 우리 인간이 로봇과 알고리즘과 경쟁하여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49쪽


지난 여름 AI와 관련 미래의 일자리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읽었다. 처음에는 AI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나중에는 20~30년 후에도 여전히 일을 해야하고 내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그보다 더 학술적인 측면으로 접근한 두꺼운 서적까지 찾아읽게 되었다. 그 책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AI가 우리의 직업을 거의 대부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비관적인 미래를 제시하진 않았다. 어차피 공장의 기계가 인간이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될 업무를 분업화 한 것처럼 AI의 역할도 완벽하게 인간의 감성적이고 즉각적인 대처를 대체하진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책< 새로운 시대 새로운 DNA, 창업>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언급하기에 사실 좀 놀랐다. 이 책을 읽고자 한 이유는 어느 리뷰어의 내용속에 창업의 기본 뿐 아니라 경제, 경영에 대한 기본까지 알 수 있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시대에 발맞춰 이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창업에 접근해야 하는지까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지금의 재력으로는 미래의 시대에 적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다음의 키워드를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똑같은 혹은 거의 유사한 상품을 가지고서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 사회의 트렌드를 제대로 바라봐야 하는데 우선 꽤 오랜기간 그리고 앞으로도 주목하게 될 '단순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행복이 화두가 될 때마다 학자들이 말하는 '재화'가 아닌 '경험'이 행복을 오래도록 지속시킬 뿐 아니라 실제로 재화를 습득했을 때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을 수 있는 반면 '경험'의 경우는 대부분 행복의 상승세를 나타냈다고 하니 이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약물'. 아직까지 한국은 약물에 있어서는 금기에 가까우며 언론을 보더라도 약물과 관련된 연예인 혹은 공인들이 어떤 대우와 평가를 받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렸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저자는 현재 대마초와 같은 약물을 합법화 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으며 지구상의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약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심지어 지금도 의학적으로 사용되는 약물이 있는 것처럼 신경공학, 합성식물학, 트랜스 휴머니즘 등의 신기술과 함께 그 사용범위가 확대될 것이라고 한다. 당장 창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경쟁이 될 만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눈앞에 닥친 것만 볼게 아니라 앞으로의 전제적인 상황, 신기술 경향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창업을 위해 혹은 미래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키워드가 더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환율은 교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동일한 재화와 서비스도 환율의 등락에 따라 그 명시적 가치가 달라진다. 또한 환율은 우리 상품의 원가, 가격 그리고 이익에 직간접적 영향을 준다. 144쪽


비단 환율 뿐 아니라 원유에 대한 시세 혹은 상황에 관심을 갖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서점의 경제 코너에 가보면 환율, 증시를 비롯 각국의 화폐와 관련된 흐름을 전달 및 예측하는 책들이 상당하다. 안타까운 것은 자국의 상황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창업을 하고 돈을 모아 부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떤 재화 혹은 아이디어로 창업을 하든 금리를 이해하고 무역에 환율에 대한 관심, 세계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사건 사고에 눈을 가리고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이부분에 대해서 금리가 어떻게 정해지고 또 어떤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이 책은 빠짐없이 언급해주고 있다. 그만큼 이 책은 두리뭉실하게 혹은 지나치게 한쪽에 치우친 창업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창업하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알고 공부해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그야말로 기본서라고 할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기에 남기고 싶은 시간
김한요 지음 / 두란노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기에 남기고 싶은 시간 / 김한요 지음 / 두란노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그 시간에 수 많은 일들이 지니갑니다. 그중에 내 생각과 감정을 만져 주는 교훈들이 있습니다. 그 순간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냥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기록을 하면 별것 아닌 일들이 주님을 만나는 값진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김한요 목사의 <일기에 남기고 싶은 시간>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다름아닌 책소개에 실린 프롤로그의 저 문단 때문이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된다는 말, 다시 말해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는 말은 평소에 내가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이유 중 하나며, 기도 혹은 묵상 후 기록하지 않았을 때 자책하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실로 기도나 묵상 혹은 책이나 영화등을 감상한 후 단순히 감동을 뛰어넘어 삶의 교훈이나 누군가의 '계시'라고 까지 여겨지는 순간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금새 잊히고 만다. 예전에 읽었던 책 중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자신이 사랑받았던 기억을 기록에 남기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홀로 남겨진 것 같을 때, 너무나 외로울 때 그때의 그 좋은 기억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렇기에 위의 저 발췌문은 이 책을, 그리고 그동안 내가 받았던 은혜와 감사한 일들을 기록해야 할 이유와 의지를 되살려주는 책이라고 느꼈고 실제 책을 읽어보니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최근에 전쟁, 내전에 관한 책들을 많이 접했다. 그것이 픽션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살아숨쉬는 것 자체,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는 과정이 오롯이 내 자유의지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게 만들어준 책들이었다. 안타깝게도 독자인 내게는 그런 감사함이 들지만 정작 그 고통과 괴로운 현장에서 버텨내야 했던 인물들은 '희망'도 '신'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고통이 과연 신이 주는 선물인가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일기에 남기고 싶은 시간>속 저자는 고통을 나에게만 한정짓지 말고 그런 순간 덕분에 이웃을 돌아보는 기회로 바라볼 때 비로소 고통을 감사하게 여길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뜻을 결코 오해해서는 안되는데 앞서 나의 독후감상처럼 저자들이 책을 통해 남겨준 '고통'이 지금의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하루하루가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다. 어느 누구도 그토록 참혹한 상황에서 나중에 살아남아 이 내용을 글로 쓰면 이 책을 읽게되는 누군가가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겠지 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나고나서야, 어찌되었든 살아남은 후에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해준다.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신이 내게 준 시련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부분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심리치료사들은 자신에게 상처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사과를 받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괴로워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자신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죄의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후자의 경우는 어떨지 몰라도 전자의 경우 이미 사과받을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 없거나 그럴 환경이 도저히 불가능할 때 그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기 어렵다. 이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방법이라면 신의 방법은 다르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상처준 이가 아닌 다른 이를 통해, 혹은 다른 상황을 통해 치유받을 수 있는 신비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그의 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마귀가 성도를 유혹하는 방법을 그의 조카에게 전수하는 31통의 편지에 풍자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성도들을 정신없이 바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정말 해야 할 중요한 일, 예배, 기도, 패밀리 타임, 독서 등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요즘 많이 바쁩니까? 정신없이 바쁘다고요? 혹시 마귀의 전략에 말려든 것은 아닌지요? 134쪽


비단 예배나 기도를 못하게 한다는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의미를 떠나더라도 가족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때에도 우리는 이것이 마귀의 전략은 아닌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공부를 해야해서 등의 이유로 현재의 내 가족에게 소홀히 하는 것,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을 뒤로 미루는 것, 그것이 진짜 미래의 나를 위한 일일까? 게다가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나'를 꼼짝못하게 묶어두는 것이 진정행복한 일일지도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이 책은 지금껏 읽어왔던 책들에 비해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누구에게라도 해당되는 중요한 조언들이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당장의 상황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일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차분하게 생각해보는 것, 나 혼자만이 아닌 이웃을 돌아보는 것, 내게 주어진 감사하고 행복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헤아려보는 등의 일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차분하게 일기에 남겨보는 것 등이 그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 - 박서보의 삶과 예술
박승숙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서보의 삶과 예술,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 / 박승숙 지음 / 인물과사상사


단색화로 잘 알려진 화가 박서보. 지난 달 전시를 보러가기 전까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분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화선지를 여러겹 붙인 후 고랑을 만들고 선을 만들어내는 작가. 박서보의 삶의 예술을 담은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따님께서 쓰신 책이다. 그것도 아버지의 예술을 떠나 그 삶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딸이 말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인 부분도, 딸이었기에 가능했을 사적인 부분도 잘 담아내지 않았나 싶다. 책의 구성은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물흐르듯 진행된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비롯, 박서보란 이름을 갖기까지 어떤 험난한 세월을 보냈는지도 나와있는데 특히 전쟁에 참전하여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때의 내용을 읽고 있노라면 이 책이 어느 화가의 이야기인가, 전쟁소설인가 싶을만큼 생생하며 고통스런 당시 상황이 제대로 전해져왔다.

그림을 그린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저항인 것이다. 우리는 작품에서 어떤 의상을 걸치고 나왔나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는가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나타나는 결과보다도 그런 결과를 초래케 한 도정을 살피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술이 지니는 생명은 '테크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있다는 말이 되는가 보다. -85쪽, 전시평 중에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실제 화가가 그림을 시작한 이후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적은 많지 않다. 심지어 전재산을 털어 겨우 얻어낸 프랑스행 티켓이 무용지물이 될 뻔한 시절의 이야기, 물감살돈이 없어서 다른 학우들이 쓰다남은 것을 모아 사용했던 이야기, 그마저도 좀 더 저렴한 물감을 만들기 위해 직접 제조해서 작품을 완성시키는 시기의 글을 읽고 있자니 화방에 갈 때마다 큰 돈이 나간다고 불평하면서도 단 한 번도 직접 만들어보겠다거나, 아까운 물감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붓질에 신중을 기하지 않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민망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기존 화단에 팽배해있던 관료적인 태도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화가의 삶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홍익대에 진학 해 국전에 작품을 출전하는 등 가만(?)히만 있어도 탄탄대로 였을 미래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제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이유로 주목을 받은 부분도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취업을 하지 못하는 등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작품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종이 위에 무언가를 그리면 그것은 종이 위에 이미지를 얹어놓는 것에 불과하오. 그러면 나무나 유리나 돌 위에 그리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지 않소? 그러지 말고 우리 종이의 특질을 드러내는 조형 쪽으로 초점을 맞추도록 합시다. 288쪽

작가의 작품세계를 좀 더 이야기하자면 오롯이 단색으로만 그림을 그렸던 것도 아니고, 화가가 주로 사용하고 애정하는 검정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차가움, 시니컬'등의 느낌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화가의 검정은 한지가 충분히 흡수한 따뜻한 검정에 가깝다. 또한 그가 붙인 색의 이름이 벚꽃색이라든가, 홍시색이라든가 하는 자연친화적인 표현마저 아름답다. 심지어 '공기색'이라 붙인 색은 두말할 것도 없이 마치 미술치유사와 같은 면모를 느끼게 만들었다. 그런 화가에게 질병과 나이듦은 시련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라는 책의 타이틀처럼 그에게는 권태도, 포기도 없다. 가족들에 눈에는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분명 '노동자'임에 틀림 없다. 작품 중에 사고가 나도 그는 다시금 붓을 들기위해 일어서는 그의 행보가 당장 이 책을 집필한 자녀에게도 또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