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 - 박서보의 삶과 예술
박승숙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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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의 삶과 예술,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 / 박승숙 지음 / 인물과사상사


단색화로 잘 알려진 화가 박서보. 지난 달 전시를 보러가기 전까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분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화선지를 여러겹 붙인 후 고랑을 만들고 선을 만들어내는 작가. 박서보의 삶의 예술을 담은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따님께서 쓰신 책이다. 그것도 아버지의 예술을 떠나 그 삶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딸이 말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인 부분도, 딸이었기에 가능했을 사적인 부분도 잘 담아내지 않았나 싶다. 책의 구성은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물흐르듯 진행된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비롯, 박서보란 이름을 갖기까지 어떤 험난한 세월을 보냈는지도 나와있는데 특히 전쟁에 참전하여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때의 내용을 읽고 있노라면 이 책이 어느 화가의 이야기인가, 전쟁소설인가 싶을만큼 생생하며 고통스런 당시 상황이 제대로 전해져왔다.

그림을 그린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저항인 것이다. 우리는 작품에서 어떤 의상을 걸치고 나왔나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는가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나타나는 결과보다도 그런 결과를 초래케 한 도정을 살피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술이 지니는 생명은 '테크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있다는 말이 되는가 보다. -85쪽, 전시평 중에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실제 화가가 그림을 시작한 이후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적은 많지 않다. 심지어 전재산을 털어 겨우 얻어낸 프랑스행 티켓이 무용지물이 될 뻔한 시절의 이야기, 물감살돈이 없어서 다른 학우들이 쓰다남은 것을 모아 사용했던 이야기, 그마저도 좀 더 저렴한 물감을 만들기 위해 직접 제조해서 작품을 완성시키는 시기의 글을 읽고 있자니 화방에 갈 때마다 큰 돈이 나간다고 불평하면서도 단 한 번도 직접 만들어보겠다거나, 아까운 물감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붓질에 신중을 기하지 않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민망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기존 화단에 팽배해있던 관료적인 태도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화가의 삶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홍익대에 진학 해 국전에 작품을 출전하는 등 가만(?)히만 있어도 탄탄대로 였을 미래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제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이유로 주목을 받은 부분도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취업을 하지 못하는 등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작품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종이 위에 무언가를 그리면 그것은 종이 위에 이미지를 얹어놓는 것에 불과하오. 그러면 나무나 유리나 돌 위에 그리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지 않소? 그러지 말고 우리 종이의 특질을 드러내는 조형 쪽으로 초점을 맞추도록 합시다. 288쪽

작가의 작품세계를 좀 더 이야기하자면 오롯이 단색으로만 그림을 그렸던 것도 아니고, 화가가 주로 사용하고 애정하는 검정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차가움, 시니컬'등의 느낌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화가의 검정은 한지가 충분히 흡수한 따뜻한 검정에 가깝다. 또한 그가 붙인 색의 이름이 벚꽃색이라든가, 홍시색이라든가 하는 자연친화적인 표현마저 아름답다. 심지어 '공기색'이라 붙인 색은 두말할 것도 없이 마치 미술치유사와 같은 면모를 느끼게 만들었다. 그런 화가에게 질병과 나이듦은 시련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라는 책의 타이틀처럼 그에게는 권태도, 포기도 없다. 가족들에 눈에는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분명 '노동자'임에 틀림 없다. 작품 중에 사고가 나도 그는 다시금 붓을 들기위해 일어서는 그의 행보가 당장 이 책을 집필한 자녀에게도 또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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