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플랜B의 은유 - 윤슬빛 소설집 ㅣ 꿈꾸는돌 38
윤슬빛 지음 / 돌베개 / 2024년 4월
평점 :
"항상 플랜 B를 세우면서 살았는데 플랜 A도 B도 C도 다 실패하는 게 인생이더라고." 9쪽
7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윤슬빛의 소설집, 플랜B의 은유는 표제작이자 이어지는 다른 모든 작품을 아우르고 있다. 청소년기에 찾아오는 불안과 고민이 성적이나 이성문제 그리고 교유관계에 밀집되어 있는데 해당 소설집에서는 현실에 맞게 좀 더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대도시가 아닌 외곽에 거주하고 있다는 공통점 외에 소설 속, 청소년들의 공통점은 아이들의 부모역시 미성숙하거나 존재 자체가 부재이거나 같이 살아도 심리적 거리를 전혀 좁힐 수 없는 타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플랜A가 정상적인 가정에서 부모의 지지와 응원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재호, 은유, 찬우, 선호, 새나 등을 포함한 모든 아이들은 플랜B 혹은 그 이상의 다른 문의 존재를 발견하거나 열어가고 있었다.
아주 멀리까지 가고 싶은 마음과 기꺼이 이곳에 붙들려 있고 싶은 마음이 매번 부딪혔다. 44쪽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것과 존중하거나 배려할 수 없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는 것도 안다.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하는 마음, 혹은 그런 사람이 자신의 부모라고 생각했을 때, 그 자리에 소수라고 부르는 어떤 대상을 넣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직 자신의 성별에 확신이 서지 않는 사람들을 두고 당연한 것을 거부하거나 반항하고 있다고 쉽게 말해서도 안된다. 우리에게 그런 고민이 없었다고 무조건적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듯, 나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인식개선은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아빤 어땠어? 같이 살기 괜찮은 사람이었어?"
맥락 없는 말이었지만 듣자마자 실소가 나왔다.
"그랬음 이러겠냐?"125쪽
책을 읽는 내내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아닌,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모든 어른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특히 미성숙을 넘어 무책임에 가까운 부모때문에 십여년 만에 함께 살게 된 재희자매의 이야기는 부모가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사회마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의 민낯이라 아프고 아렸다. 그나마 이들을 보듬는 것은 성숙한 일부의 어른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또래 친구와 형제들이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우리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소설을 통해서라도 들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그 구절이 좋았어. '같이 없어도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 질 때가 있다.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76쪽
수록된 작품들을 순서대로 읽었지만 읽는 순서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모든 작품을 긴 간격없이 전부 읽어보길 권한다. 청소년이라면 플랜B 혹은 그 이상의 존재를 확인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어른이라면 플랜B 이모가 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 소설 중간중간 '아직 시간이 있다'라는 표현이 결코 나이에 국한 된 것만은 아닐것이다. 우리모두에겐 플랜 자체가 없었더라도 분명 빛나는 삶을 희망할 수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빛날 수 있다.
지금은 무엇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플랜B 이모의 말처럼 플랜 A도 B도 C도 다 실패하는 게 인생이라면, 거창한 계획 따위 조금 미뤄 봐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 모든 계획들이 실패하더라도 일상은 또 다른 반짝이는 순간들로 채워진다는 것.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