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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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강 유역에 있는 작은 마을 해버퍼드에서는 여전히 루시 게이하트 이야기를 한다. (9쪽)


세월이 흘렀어도 누군가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가는 경우는 두 가지 경우일 뿐이다. 아름답고 선하거나 아니면 악인이거나. 다행히도 루시 게이하트는 전자였다. 휴며니스트 세계문학 32번째 작품, 윌아 캐더의 <루시 게이하트>의 시작은 이렇듯 ‘루시‘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된다. 루시는 스케이트를 잘 타고, 긍정적이었으며, 피아노를 연주하고, 시계공이지만 악기 연주를 잘하는 게이트씨의 딸이다. 나이차이가 많이나 엄마의 빈자리까지 채워준 언니가 있고, 마을의 누구라도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은 이는 그녀를 경쟁상대로 여기는 사람외에는 없다. 가난했지만 부족한 것이 없는 루시는 학업을 위해 시카고로 떠나 유학중일 때 만난 성악가 서배스천에게 순식간에 빠져버린다. 루시가 그에게 점점 빠져들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며 다가갈 때의 부분은 요즘처럼 꽃이 만발한 계절과 햇빛이 강해도 이제 막 추위를 걷어낸 날씨에 정말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런 설레이는 순간은 영원하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같은 성별인 루시보다는 이제 어느 정도 저문 나이가 되어서 인지 서배스천의 상황에 내게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루시를 만났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매서운 추위에도 그녀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려고 했던 것은 단순한 연애 감정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글에서도 나타나듯 루시가 가져오는 ‘빛‘, ‘명랑함‘(루시 게이하트 이름에 담긴 의미이기도 하다)은 추운 날, 햇빛이 드는 자리로 몸을 움직이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이어지는 비극과 슬픔속에서도 이 소설이 내게는 ‘빛‘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작 3시간 남짓 시간동안 루시를 알았던 내게도 오래 기억될 것이 뻔한데 루시의 종종 걸음이 해버퍼드 사람들의 기억속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 소설의 첫 문단은 그러니 얼마나 놀라운가. 백수린 작가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입부를 읽으며 나는 내가 이 책을 사랑하지 않기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뒷표지 인용)

‘추위를 외투 삼을 수 있는 열정‘을 가진 루시, 결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흐리거나 비가 내리지 않을 루시는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발췌글만 보아도 ‘루시 게이하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정말 반가울거라 짐작한다.

오늘 밤에는 호수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었지만 마차를 잡아타기로 했다. 루시는 추위가 두렵지 않았으니까. (...) 추위를 외투 삼으면 그만이었다. 추위 한복판에서 따뜻한 몸으로 깨어 있는 자기 자신을, 들장미쯤은 한순간에 얼려버리는 찬바람 속에서 식지 않고 흐르는 피를 감각하는 것이다. 43-44쪽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램지 부인이 중얼거렸다. ˝시카고에서 사랑에 빠졌다가 저렇게 됐다는 사람들도 있고. 거기서 평판이 나빠지는 바람에 저렇게 됐다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만 난 루시가 평판에 신경 쓰는 아이 같지는 않아서.˝ 154쪽

˝이건 비밀이야. 이해하지? 절대 말하면 안 돼. 저기 시멘트에 있는 발자국은 게이하트 댁 딸 루시가 어렸을 때 찍어놓은 거야. 이것만 부탁할게. 이 시멘트 블록 두 개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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