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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바다 ㅣ 바뢰이 연대기 2
로이 야콥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잔(도서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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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뢰이 연대기 2 하얀 바다.
로이 야콥센의 하얀 바다는 전쟁과 그로 인한 상처가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깊은 영향을 탐구하는 소설이다. 전쟁이 불러오는 참혹한 현실을 배경으로, 주인공 잉그리드와 그녀의 고향인 바뢰이 섬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인간성, 기억, 그리고 치유의 복잡한 교차점을 탐색한다.
바뢰이는 침묵의 땅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을 통해 교육하기보다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삶의 방식을 가르쳤고, 아이들은 그저 그 행동을 따라 하며 세상을 배워 나갔다. (244쪽) 이 문장은 바뢰이 섬, 그리고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대 간의 침묵과 전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침묵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지시보다는 본보기를 통해 삶의 방식을 익힌다. 그러나 이 침묵은 단지 무언의 규범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잉그리드와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고통스럽고도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된다.
바뢰이 연대기 1편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이어지는 하얀 바다는 성인이 된 잉그리드가 전쟁의 상처로 황폐화된 바뢰이 섬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을 그린다. 독일군의 지배 아래, 섬은 전쟁포로와 난민들로 가득 차고, 영국군의 폭격으로 침몰하게 된 독일 포로 수송선 병사들 중 일부가 겨우 숨만 붙은 상태로 바뢰이 섬에 밀려들어온다. 결국 모두가 죽은 가운데 숨이 붙어있던 한 러시아 병사를 잉그리드가 집으로 데려와 돌보며, 인간적인 용기와 연민을 보여준다. ˝나라면 결코 할 수 없었을 일˝이라는 말이 허망하게 느껴질 만큼, 그녀는 섬 사람의 방식으로 그와 그녀 자신을 살려낸다. 하지만 시신이 섬에 가득차 있다는 상황을 보고하게 되면서 결국 독일군의 의심을 사게 되고 기억나지 않은 ‘그날’ 그녀는 깊은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이송된다. 잉그리드가 병원에서 어느 정도 심신을 회복한 후에도, 그녀의 기억은 완전히 돌아오지 못했지만, 섬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만난 난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잉그리드는, 그들의 거처를 마련해 주기 위해 ‘저는 갈 수 없어요’라고 선언한다. 그 여정 속에서 그녀는 혈연이 아닌 타인들과 ‘식구’가 되어 바뢰이 섬으로 돌아오게 된다.
넬비의 죽음 이후, 살아남은 이들은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비록 그들은 각자의 삶을 ‘문제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여길지 몰라도, 그들의 내면에는 전쟁이 남긴 상처가 여전히 깊이 배어 있다. (228쪽) 이 구절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자리를 복원한다고 해도, 저 마다 가지고 있는아픔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사라지지 않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 소설은 전쟁이 가져오는 폭력과 상처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인간 사이의 자비와 연민을 어떻게 다시금 끌어내는지를 보여준다. 백남준의 작품 중 ‘과달콰날 레퀴엠’에 등장하는 바다와 파도, 그리고 천진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과 교차되는 수많은 시신의 모습이 마치 바뢰이 섬에서 잉그리드와 주변인물들의 웃음과 고통을 겪는 모습인 것처럼 다가왔다.
하얀 바다는 잉그리드라는 한 여성을 통해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에서, 양심을 버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생의 비릿함 너머를 이야기한다. 이름, 출신, 그 이상의 무언가도 서로 알 순 없지만,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자비와 양심의 진정성을 깨닫게 된다. 1편을 읽지 않아도 이 소설을 읽는 데 전혀 불편함은 없지만 확실히 잉그리드의 태생과 자라온 환경, 바뢰이 섬의 분위기를 더 잘 느끼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1편을 먼저 읽는 편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