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혼과 넋이 깃들고 아름다운 삶이 서려있는 우리말 편지


2007. 5. 23.




자린고비는
"부모님 제사에 쓰는 지방 종이도 아까워 기름에 절여 쓰는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내일 초파일이 아버님 제사라서 저는 오늘 저녁에 고향에 갑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네요.

어떤 못된 불효자식이 있었습니다.
딸 부잣집의 외아들로 태어나 온갖 귀여움은 다 받고 자랐고,
누나들은 대학을 안 보냈지만 그 아들만은 대학에 보냈습니다.
그 아들이 대학 3학년 때 환갑을 맞아 잔치를 벌였는데,
마침 잔치 하루 전날 영장 받고 군대에 들어가버렸습니다.
복 없는 아버지는 딸만 일곱을 세워놓고 환갑 상을 받으셨죠.
그 못된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 공부 좀 더 해보겠다고 사표 내고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빨리 장가가서 대를 이으라는 부모님 뜻을 저버리고 제 욕심 채우겠다고 대학원에 들어간 거죠.
대학원 석사 졸업식 때 부모님이 오신다는 것을,
"박사과정에 합격했으니 박사 졸업식 때 오세요. 지금은 몸도 불편하신데..."라며 말렸는데,
박사과정에 들어가고 100일 만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장가가는 것도 못보고, 박사모도 못 써보시고...
위암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36kg밖에 안 나가는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서 등 밀어드린 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간 것이었고,
목욕탕에서 나와 아버지가 좋아하는 낙지를 사 드린 게 아버님께 마지막으로 사드린 점심이랍니다. 물론 단 한 점도 못 드셨지만......
그래서 그 아들은 지금도 아버지 제사상에 낙지를 꼭 올립니다.

자린고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몹시 인색한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요.
'자린'은 절이다에서 왔습니다.
옛날에 어떤 부자가 제사 때마다 쓰고 태워 없애는 지방 종이가 아까워
지방을 기름에 절여 썼다고 합니다.
자린고비는 "기름에 절인 고비"라는 말입니다.

고비는 지방에서 나온 말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현고(顯考), 돌아가신 어머니는 현비(顯)라고 하는데,
현고의 '고'와 현비의 '비'를 따서 고비(考)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자린고비는
"부모님 제사에 쓰는 지방 종이도 아까워 기름에 절여 쓰는 사람"입니다.
아껴쓰는 것도 좋지만 이것은 좀 심하죠?

돌아가신 분께 기름에 절인 지방을 쓰건 좋은 종이를 쓰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자연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함께 있을 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 드리는 게
걸게 차린 제사상보다 백배 천배 가치 있는 일일 겁니다.

이 불효자는 오늘도 낙지를 사들고 아버님께 잘못을 빌러 갑니다.

우리말123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 편지입니다.


[불초소생]

오늘은 ‘불초’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흔히 자기 자신을 낮추어 말할 때,
“불초소생이 어쩌고저쩌고”라고 합니다.
“불초소생인 저를 뽑아주셔서 어쩌고저쩌고...”
“불초소생인 제가 막중한 임무를 맡아 어쩌고저쩌고...”
보통 정치인이나 고관대작들이 많이 쓰는 말입니다.

근데 이 ‘불초’라는 낱말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식과 임금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불초(不肖)는
아니 불, 닮을 초 자를 써서,
자기의 아버지를 닮지 못했다는 말로,
자식이 부모에게 자기를 낮추어 말하는 것입니다.
또, 임금이 선왕을 닮지 못해 큰 뜻을 따르지 못한다는 겸손한 의미로만 씁니다.
맹자(孟子) 만장(萬章)편 상권에 있는 말이죠.

따라서,
‘불초소생’은,
‘제가 아버지의 큰 뜻을 따라가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의미로 씁니다.
부모님께 드리는 이런 겸손한 말을,
시궁창에 처박혀 사는 정치인들이 세 치 혀로 언죽번죽 지껄이면 안 되죠.

돌아오는 일요일이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입니다.

아버지는 생전에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도록 저를 가르치셨죠.
오죽했으면,
7대 독자인 제게,
“남들이 진정으로 원하면 네 XX도 떼 줘라.”라고 하셨으니까요.

자신에게 소중한 것도
남들이 필요하다면 뭐든지 내주라는
선친의 가르침을 저는 못 따르고 있습니다.
남을 챙겨주고 배려하기는커녕,
작은 것에 집착하고, 사소한 일에 짜증내고...
부질없는 욕심에 마음 아파하고...

이런 ‘불초소생’이
앞으로는 남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배려하며 살겠다는 약속을 드리러
아버지를 뵈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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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함께하는 우리말 편지


2007. 5. 22.




곧, '줄기와 잎은 물론 알곡까지 다' 소먹이로 쓰는 보리를
영어로 whole-crop barley라고 하는데 이를 우리말로 바꾼 게 '총체보리'입니다.



 

안녕하세요.

보릿고개 아시죠?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넘기 어려운 고개라는 뜻으로,
묵은 곡식은 거의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아니하여 농촌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바로 요즘이 그 보릿고개입니다.

여러분은 보리 하면 떠오르는 게 뭔가요?
대부분 보릿고개와 보리밥이죠?
먹을 게 없었던 우리네 부모들의 아픔이죠.
쌀밥을 먹을 수 없을 때 주린 배를 채우고자 먹었던 보리가
요즘은 참살이(웰빙)바람을 타고 당뇨병 같은 성인병에 좋은 건강식으로 노릇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생각보다 소비가 많지 않아 땅을 놀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보리를 많이 심어 보리쌀을 많이 만들어 봐야 찾는 사람들이 없으면 팔 수 없으니 농민들이 보리를 심지 않게 되는 거죠.

그랬던 보리가 요즘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먹으려고 심었던 보리를 지금은 가축을 먹이려고 키웁니다.

보리의 이삭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할 때, 바로 요즘,
줄기와 잎은 물론 알곡까지 다 거둬들여 소가 먹기 좋게 만들어 놓습니다.
이런 보리,
곧, '줄기와 잎은 물론 알곡까지 다' 소먹이로 쓰는 보리를
영어로 whole-crop barley라고 하는데 이를 우리말로 바꾼 게 '총체보리'입니다.
보리 줄기와 잎, 알곡까지 '총체'적으로 다 쓴다는 뜻이죠.
총체(總體)가 "있는 것들을 모두 하나로 합친 전부 또는 전체."라는 뜻이잖아요.

보릿고개를 넘기며 배고파했던 시절이 불과 30여 년 전인데,
지금은 그 보리를 소에게 먹이고 있습니다. ^^*

이 총체보리는,
농민은 보리를 재배해서 돈을 벌어 좋고,
소를 키우는 축산농가는 소에게 좋은 먹이를 먹여 고급 한우를 생산할 수 있어 좋고,
정부는 소먹이를 수입하지 않아도 되므로 외화를 절약해서 좋고,
국민은 혹시 있을지 모를 광우병 같은 가축전염병을 걱정하지 않아서 좋고...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사조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돈 줍고...

요즘은 농업도 이렇게 변하고 있답니다.

더 자세한 것은 1544-8572로 전화하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1544-8572는 '일어서서 바로처리'한다는 농촌진흥청 민원인 전용 전화입니다.
정부민원안내 전화상당실 110으로 전화하셔도 됩니다. ^^*

우리말123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 편지입니다.


[닭 벼슬 >> 닭 볏]

주말 잘 보내고 계시나요?
저는 오늘 일이 좀 있어서 출근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말편지 하나 보내고 일을 시작하면 일이 잘될 것 같습니다.

어제는 가족과 함께 찜질방에 가서 온종일 놀았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는데,
첫 마디부터 귀에 걸리네요.

KBS2에서 하는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에서,
길게 우는 닭을 소개하면서,
그 닭은 걷는 것도 우아하고, '벼슬'도 품위가 있다고 소개하더군요.

'벼슬'이 뭐죠?
'벼슬'은 '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입니다.

'닭이나 새 따위의 이마 위에 세로로 붙은 살 조각'은,
'벼슬'이 아니라 '볏'입니다.

내용이 좋아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고,
성우 목소리도 좋아 편하게 보는 프로그램인데......

내용도 좋고, 맞춤법도 잘 맞는 방송을 기대하는 제 꿈이 너무 큰가요?

이제 일이나 시작하렵니다.
빨리 마치고 들어가서 딸내미와 함께 놀아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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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혼과 넋이 깃들고 아름다운 삶이 서려있는 우리말 편지


2007. 5. 18.




사냥을 잘하기로 소문난 매가 바로 해동청이라는 송골매와 보라매입니다.
보라매의 앞가슴에 난 털이 보라색인데 난 지 1년이 안 된 새끼를 잡아 길들여서 사냥에 썼다고 합니다.
이 보라매를 몽골어로 보로(boro)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보라'라는 낱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주말 잘 보내셨나요?
저는 식구와 함께 영동에 다녀왔습니다. 영동이 포도로 유명하잖아요.
그곳에 와인 코리아라는 농업회사에 다녀왔습니다.
가서 포도주도 좀 마셔보고 애들이 마실 것과 아내가 좋아하는 포도주도 몇 병 사왔습니다.

포도주색이 보라색이죠? 오늘은 보라색 이야기 좀 해 볼게요.

'보라'의 말뿌리(어원)는 몽골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때 몽골의 지배를 받았었습니다.
그때 여러 가지 몽골 풍습이 유행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매를 길들여서 사냥을 하는 매사냥이었다고 합니다.
사냥을 잘하기로 소문난 매가 바로 해동청이라는 송골매와 보라매입니다.
보라매의 앞가슴에 난 털이 보라색인데 난 지 1년이 안 된 새끼를 잡아 길들여서 사냥에 썼다고 합니다.
이 보라매를 몽골어로 보로(boro)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보라'라는 낱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송골매는 몽골어 songhol에서 왔다고 하네요.

몽골의 지배를 받을 때 생긴 낱말 가운데 재밌는 게 '시치미'입니다.
누가 시치미에 대해 재밌게 써서 보내주시면 우리말 편지에 소개하겠습니다.
우리말 편지를 받으시는 분 가운데는 우리말을 무척 잘하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모른 척 '시치미' 뚝 떼지 마시고 재밌게 글을 써서 보내주시면 우리말 편지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선물도 있습니다. ^^*

오늘 편지를 마치면서 춘향가 가운데 옥중가 한 대목을 소개할게요.
원님 수청을 거부하고 옥에 갇혀 쑥대머리로 이도령을 기다리는 춘향의 애달픈 마음을 노래한 것입니다.

갈까부다, 갈까부다. 임 따라서 갈까부다. 천리라도 따라가고 만리라도 갈까부다.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 보라매 다 쉬어 넘는 동설령 고개라도 임 따라 갈까부다.
하늘의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어도 일년 일도 보련마는, 우리 임 계신 곳은 무슨 물이 막혔기에 이다지도 못 보는고.
이제라도 어서 죽어 삼월 동풍 연자되여 임 계신 처마 끝에 집을 짓고 노니다가 밤중이면 임을 만나 만단정회를 허고지고.
누 년으로 꼬염 듣고 영영 이별이 되려는가?”

역시 판소리는 전라도 말로 해야 낭창낭창하게 제 맛이 날 텐데,
그냥 글로 쓰니 맛이 떨어지네요. ^^*

여기에 나온 낱말 가운데,
'수지니'는 "사람의 손으로 길들인 매나 새매",
'날지니'는 "들에서 사는 매"로 '산지니' "산에서 자라서 해가 묵은 매나 새매"와 같은 뜻입니다.
여기에는 없지만,
'육지니'는 "날지 못할 때에 잡아다가 길들인, 한 살이 되지 아니한 매"를 뜻합니다.

우리말123

보태기)
판소리 노랫말은 맞춤법에 맞게 고치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예전에 보내드린 우리말 편지입니다.>


[차로/차선]

요즘 회사일로 여기저기 잘 싸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운전하고 다니니까 몸은 힘들어도 재미는 있습니다.

오늘은 '차선'과 '차로'를 구별해 볼게요.
아주 쉬운데...

'차선(車線)'은,
"자동차 도로에 주행 방향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그어 놓은 선"입니다.
차선을 지키다/차선을 긋다/차선을 침범하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차로(車路)'는,
차선과 차선 사이에 있는,
차가 다니는 길을 말합니다.

곧,
차가 달리는 길이 '차로'고,
1차로와 2차로를 가르는 선이 '차선'입니다.

따라서,
공사하느라 차로 하나를 없앴으면,
'차선 감소'라고 안내할 게 아니라,
'차로 감소'라고 해야 합니다.

'버스 전용 차선제'도 '버스 전용 차로제'라고 하는 것이 바른 표현입니다.

차선과 차로를 한꺼번에 보면,
'차선 공사중'은 길에 그어놓은 흰색 선을 다시 칠하는 것을 말하고,
'차로 공사중'은 길이 파여서 그 부분을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차로'보다는 '찻길'이 더 좋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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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가장 많이 느껴지는 현상은 차별이다. 이는 서로가 다름을 조금 왜곡된 형태로 생각해서 생기는 오류이라고 한다.

◎차별을 강조하는 이유◎

-차이의 원인

-심리적 원인:대상분리불안(상대가 엄마나, 가장 오래 곁에 있었던 누군가가 떨어질때 느끼는 불안상태), 막연한 불안과 공포

-정치 경제적:권력의 유무

-문화적 원인:가부장적 사회문화(남성 우월주의)

◆차별의 형태◆

:억압과 권위→논리가 통하지 않는 상태

1. 비합리주의

2. 인간평등 부인

3. 엘리트주의

4. 인종주의

5. 파시즘적 조직(군사적 사고 및 폭력적 사고)

☆참고 <세계인권선언>

※다름의 교육과 관련해서 길러야 할 능력

개방성→진실성→대화능력→상호존중→개방성→........→

*개방성 : 자기부정-나도 잘 못할수 있다 '너의 무지를 알라'

*진실성 : 자기 언어를 분명히 하자

*대화능력 : 듣기능력 중시(서로 말하기만 중시하면 다툼이 일어남)

※다름의 교육과 관련해서 길러야 할 사고능력

1. 자기고집에서 자기부정 사고하기

2. 오해와 편견을 넘어 이해하기

3. 곡선적 사고, 주름진 사고하기

4. 기준을 중시하는 사고에서 상황성을 인정하는 사고하기(상대편 마음 이해)

이번 강의는 생각했던 대로 조금 무난하고 느끼기 쉬운 강의였다.

너무 멋진 여교수님이셔서 하나하나 새겨담고 싶어 놓치지 않으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난 무엇보다 대화능력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았다.

상대편의 말을 잘 들어주기는 하나 나의 모든것을 진실하게 말한다는 면에서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진실하게 말할수 있다면 많이 당당해질수 있지 않은까라는 안타까움도 생겼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진실하게 이야기하고 웃고, 많이 사랑하고, 내가 많이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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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나눔은 정말 즐겁고, 재미있다.  몇 주 동안 누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도 있고,  힘들었던 일, 아쉬웠던 일, 재미있었던 일들을 함께 공유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모임의 사회자는 나였는데, 내가 맡겠다고 한 만큼 정말 잘 해서 자연스럽게 이끌어 나가야지~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모임 하는 날이 다가오니 막막함이 앞섰고, 결국 준비도 허술하게 해 버린 것 같아 너무 아쉬웠다. 내가 미리 책을 다 읽고 가서 친구들이 발표를 하고 나면 내가 마지막으로 짧게 정리를 해서 말해줘야겠다. 라고 계획(?)은 세우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게으른 탓에 책도 다 읽지 못했다. 더군다나 모임을 시작한 후 한 명이 발표를 하고 나면 흐르는 적막감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될지 앞이 캄캄했고, 다음 친구를 서둘러 발표 시키는 일 밖엔 없었다. 내가 세계사에 대한 약간의 상식만 있었어도 몇 마디 했을 텐데 라는 아쉬움뿐……. 마지막 사람까지 발표를 함으로서 무사히(?) 모임을 끝낼 수 있었고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친구들이 발표한 사건에 대해 확실히 머릿속으로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이런 모임을 가짐으로서 내가 책도 읽고,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서 상식과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고 조금이나마 깊은 사색에 빠져보고, 글도 끄적거려본다는게 너무 좋다.  한 번씩 다음 모임을 위해 과제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이런 것들이 나중에 다 추억이 되고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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