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행시를 세번째 보고 적어논 글이 있길래 올려봅니다.
작년 겨울.. 영화관에서 아주 슬픈 영화 한 편을 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몇 시간동안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였었다. 그 영화가 비디오로 출시되고 나서 가족끼리 한 번 더 봤었고, 또 이번에는 친구들과 함께 한 번 더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세 번이나 본 영화. 그러면서도 감동은 그대로인 영화. 바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다. 이 영화를 한 번도 아닌 세 번이나 보면서 나는 세 번 모두 각기 다른 쪽으로 영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에는, 내 삶의 태도를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살고 싶어 하는 윤서를 보면서 지난 날 죽고 싶어 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작년에 내 삶에 모든 것이 싫었고 지루했고 짜증났었다. 뭐가 왜 싫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싫었고 그냥 죽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냥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시간 때우기 식으로 보냈었다. 그런데 영화 속의 윤서가 하루하루를 참 소중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내가 보낸 시간이 얼마나 쓰레기 같았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리고 후회됐다. 다행이 지금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영화가 나를 바뀌게 해주었다.
두 번째 영화를 봤을 때는 약간 객관적인 입장으로 보게 되었다. 평소 사형제도에 찬성했던 나인데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사형 제도를 계속 놔두어도 괜찮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도 행복을 느끼는 윤서에게 사형제도라는 너무 잔혹한 형벌을 내리는 게 과연 정부가 할 수 있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형 제도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내 결심에는 변함이 없다.
세 번째 영화를 봤을 때는 드디어 둘의 아름다운 사랑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영화의 사랑하는 사이처럼 스퀸십 이라던가 키스신은 없었다. 그냥 서로의 아픈 과거들을 털어놓으면서 서로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보듬어 주면서 서로의 사랑이 커진다. 아름다운 미사여구들로 포장된 화려한 사랑이 아니라 서로 눈빛으로 깊어지는 정말 순수한 사랑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같은 영화를 세 번씩이나 본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 인거 같다. 영화를 계속 보고 있자면 새록새록 주인공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생각이 났고 뒷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다 알고 있어서 그런지 긴장감 이라던지 큰 감동은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세 번 보면서 두 번 울었고 세 번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또 세 번 모두 다른 생각을 하면서 보게 되었다. 이것은 어쩌면 행운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한 개밖에 찾아내지 못하는 영화 속 의미와 감독의 의도를 나는 세 번에 걸쳐 모두 찾아내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 모른다. 내가 찾아내지 못한 것이 남아 있을지도..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영화의 모든 것을 알아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