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낳아서 17년 동안 길러 주셨던 우리 엄마에 대한 평전을 쓸려고 한다. 더군다나
오늘은 나의 생일인데, 생일에 엄마의 평전을 쓰니 더욱 더 뜻깊은 것 같다. 먼저 우리 엄마
는 울산에 울기 등대와 가까운 일산동이라는 곳에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사이에서 4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나셨다. 고명딸로 태어난 관계로 나는 슬프게도 이모가 없다. 아무튼 엄
마가 태어나셨고 자랐던 집, 지금의 외할머니 댁인 그 집의 앞에는 바닷가가 있는데, 내가
어렸을 때에 외할머니 댁에 가서 아침 일찍 일어나 장독대위에 올라서서 앞을 바라보면 일
출이 보였고, 고기 잡는 어선들이 눈에 다 들어 올 정도로 바다는 가까이 있다. 그래서 엄마
는 어린 시절에 여름이면 동네친구들과 함께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조개와 고동과 같은 걸
따고 게도 잡아서 먹기도 했고, 부산에 오시기 전까지는 이렇게 바다와 함께 보내셨다고 한
다. 그리고 화진초등학교를 다니셨다고 하는데, 조용하고 튀지 않는 학생이었고, 성적은 중
상위권 정도를 유지하셨고, 중학교 시절은 방어진중학교를 다니셨다. 학교가 울기 등대 근처
에 학교가 위치하고 있어서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뒤에는 산이 있었는데, 정말 그
풍경이 멋있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슬프게도 엄마가 졸업하신 그 중학교는 지금은 없어졌다
고 한다. 그렇게 평범한 여중생으로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고 아름다운 학창시절을 보내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려웠던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지 못하시고 부산으
로 직장 생활을 하러 오셨다.
처음 직장은 신발과 옷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상표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엄마와 나이 또래
가 비슷한 동료들이 많았다고 하셨다. 주야간으로 일을 해서 몸이 고되고 힘들기도 했지만,
돈도 벌 수 있었고 동료들과 재미있게 가족처럼 지냈기 때문에 직장생활은 즐거웠다고 한
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하는 중 아는 사람의 소개로 아빠를 소개받았는데 소개받은 이후
사귀기 이전까지 아빠가 엄마를 따라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외할아버지께서 사고로
돌아 가셨고 특히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엄마는 더 슬펐다고 한다. 엄마와 아빠가 결혼
하기 전에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난 외할아버지를 사진으로밖에 본적이 없는데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슬프다.
그 이후 엄마와 아빠는 결혼을 하셨고, 처음에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기 때문에 양정동에
서 작은 방에서 시작하였고, 첫아이 즉, 오빠를 낳았다. 4년 동안 양정동에서 살다가 가게를
개업을 하면서 초읍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나를 낳으셨다고 한다. 비록 넉넉한 살림형
편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어렸던 그 시절이 제일 재미있었다고 하신다. 엄마는 가끔씩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살아 보고싶다고 한번씩 말하신다. 나는 비록 그때의 기억이
없어서 얼마만큼이나 즐거웠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우리 가족은 초읍동에서 10년 넘
게 살았다. 우리가족이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이기에 나에게도 뜻깊은 동네이기도 하다. 그렇
게 가게를 운영하시다가 IMF 이후에 장사가 잘 되지 않자 아버지는 버스 운전을 하셨다. 그
래서 결국 지금 살고 있는 금사동까지 이사오게 되었다.
이렇게 엄마가 살아오신 43년에 대해 글을 써본 것은 처음이고, 이 글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엄마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살아오셨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어릴 적부
터 느꼈지만 엄마는 맛있는 것이 있어도 드시지 않고 항상 오빠와 나를 주셨다. 그리고 엄
마를 위한 개인적인 생활도 없이 오직 오빠와 나를 보살펴 주셨다. 그런 엄마의 대가 없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말도 듣지 않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는 난 너무 못된 딸이다. 얼마 전
오빠가 다쳐서 부모님께서 무척이나 슬퍼하시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을 슬프게 힘들게 아프
게 실망을 시켜들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내가 엄마에게서 받았던 사랑은 베
풀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엄마에게는 언제나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오직 우리를 위해
서 살아오셨지만, 이제부터는 엄마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부모님평
전을 쓰면서 부모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느
꼈던 많은 것을 꼭 부모님께 베풀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