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톰보이 - 젠더 경계를 거부하는 한 소녀의 진지하고 유쾌한 성장기
리즈 프린스 지음, 윤영 옮김 / 윌컴퍼니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톰보이Tomboy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일까? 네이버 영어사전에 따르면 '남자들이 하는 활동을 즐기는 처녀, 말괄량이'라고 나와 있다. 요즘같은 젠더 감수성의 시대에는 저 정의에 담긴 여러가지 편견어린 말들조차 무척이나 불편하게 느껴진다. 어쩐지 적절한 표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만화가 리즈 프린스의 만화 <톰보이>는 어쩌면 '톰보이'의 정의를 적어도 네이버의 정의보다는 더 정확하게 내려주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만화책은 리즈 프린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리즈 프린스는 적어도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나이(대략 4~5세)부터 젠더 규범이 정한 소위 '여성스러움'을 거부해왔다. 리본이 달린 원피스나 치마 따위를 입기를 싫어했던 것이다. 리즈는 인형보다는 로봇을 좋아했고, 밖에서 뛰어 노는 것을 좋아했으며, 치마와 원피스같은 '여자 옷'보다 셔츠에 통이 넓은 바지같은 '남자 옷'을 좋아하는 <톰보이> 였다.
그런 리즈는 커가며 수많은 난관을 접하게 된다. 사회적인 젠더 규범에 맞지 않는 리즈를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즈는 늘 학교에서 집요한 따돌림과 괴롭힘의 대상이 되며, 대체 너는 '여자냐, 남자냐'라는 셀 수 없이 많은 질문을 받는다.(이 책에서 묘사한 반에 따르면 미국 또한 한국 이상으로 '남녀'의 젠더 규범이 확고하며, 그것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잔혹했다.)
리즈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소위 말하는 '여성스러운' 행동들을 거부하지만, 리즈는 결코 레즈비언은 아니다. 레즈비언과 게이가 받는 가장 큰 오해는 바로 그들이 자신의 성을 혼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레즈비언과 게이는 각각 여성으로서 여성을, 남성으로서 남성을 사랑하는 존재이다.
짧은 머리를 하고, 남성복을 입는다고 하여 리즈가 남성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며, 여성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리즈는 그저 짧은 머리와 남성복을 좋아하는 여자이고, 남자를 좋아하는 이성애자였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리즈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리즈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한다.
"여자라면 '여성스럽게' 행동해."
"너 남자가 되고 싶니?"
"여자애가 그게 뭐야."
하지만 다행히도 리즈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고, 더불어 자신 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강인한 자아도 있었다. 그래서 그 속에서 자신을 '여자답지 못한 여자'로 퉁쳐지는 게 아닌 '그냥 리즈 프린스'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물론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톰보이>가 정말 좋았던 점은 첫째로는 그냥 사춘기의 성장 소설이나 만화같은 막연한 긍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여성스럽지 못한 나, 괜찮은 걸까...그래 친구들의 우정 속에서 나는 나를 사랑하게 됐어'같은 어설픈 긍정 대신 작가는 수없이 부딪히고 깨지는 자신의 삶을 가감없이 소개하고 있다. 정말 험난하고 고민이 많은 삶이었고, 그 속에 막연하고 대책없는 긍정같은 건 없었다.
다음으로는 이 책이 리즈 프린스의 삶을 그대로 다룬 자전적 내용이라는 점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진솔한 자전적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 만화는 젠더에 대한 고민을 떠나서 봐도 훌륭한 자전적 만화였다. 작가 자신의 삶과 생각이 잘 녹아들어 있었기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최근 얼마간 읽은 만화 중 가장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