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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페미니즘이 뭐야? - 소녀답게 말고 나답게 ㅣ 걸라이징 1
마리아 무르나우 지음, 엘렌 소티요 그림, 성초림 옮김 / 탐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최근 2~3년 사이 내 안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페미니즘'이다. 그 전까지도 평등이나 약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 등에는 교과서적으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관심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겉핥기 수준' 이었던 것 같다.
트위터 등을 통하여 접하게 된 여성들의 차별에 대한 고백과 사회에 만연한(내 안에도 내재된) 여성혐오적 요소들을 발견하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 충격들 덕분에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배우는 페미니즘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지적 자극'과 '무엇가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자존감 채우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탄탄한 이론적 기반을 쌓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페미니즘은 하나의 커뮤니티나 SNS 상에서만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어느덧 사회적 화두로 성장하게 되었다. 나도 설명하긴 힘들지만 많은 것들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금씩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였다.
<언니, 페미니즘이 뭐야?>는 중~고등학생 정도를 대상으로 하는(책 뒤에 이 책은 14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고 적혀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소개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글자의 크기도 크고, 텍스트의 양이 많지 않으며, 그림 자료 등이 함께 읽어서 읽기에 무척 편했다.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 책은 현재 우리가 마주한 여성혐오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들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작가는 스페인 사람이기 때문에 사례들의 많은 부분이 서구권의 것이 많았다. 물론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례들이 대부분이었으며, 번역가의 역량인지 한국의 자료들도 적지 않게 삽입되어 있다.
이렇게 책의 내용 자체는 꽤 좋지만, 책을 읽는 독자의 전제가 페미니즘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은 부분은 아쉬웠다. 아예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우호적인 시선이 없는 사람이 봤을 때는 읽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개론서의 취지를 가진 책인데, 그런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이 책의 기획 의도 자체가 옅어진다는 생각이다.
무튼 이 책을 읽으며 현대 우리 사회가 처한 불편한 점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는데, 언제나처럼 이것이 남성으로서의 내가 느끼는 우월성이 아닌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깊은 공감이라기보다는 그래 여자들이 힘들지, 라고 생각하는 시혜적인 시선은 아닌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분노하며 책을 읽고 지식을 쌓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당장 회사에서 밥을 먹을 때 사람들이 내뱉는 여성혐오적 발언에 대해 틀렸다고 말하는 일은 너무도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쨌든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를 많은 부분 바꿔 놓았다. 불편하지 않았던 것들을 불편하게 해 주었고, '요즘 이런 말이나 행동하면 큰일'나게 해 주었다. 덕분에 이런 책들도 출간되었고. 나도 이런 '앎'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다잡을 수 있는 독서였다. 아직도 한국 사회는 불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