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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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은 책을 너무 안 읽어서 오늘부터라도 맘 먹고 읽으리라! 다짐한 것이 어제였고 바로 이 책을 폈지만 절반도 못 읽고 낮잠에 빠지고 깨서 다시 읽으려고 사투하다 티비보고 컴퓨터하다보니 잘 시간. 결국 오늘 도서관 가서 맘 먹고 마무리졌다. 사실 특별히 재밌지 않아서(죄송)좀 힘들게 읽었지만 꼭 그렇게 재미 없냐고 하면 또 그게 아니고. 아무튼 좀 어려워서 그랬다. 사실 읽긴 읽었는데 별로 할 말이 없다. 너무 어려웠다.

외국 문학이 다 그렇긴 하지만, 이 소설은 특히 작가의 연고지(터키)에 대한 지식이 필수인 듯 했다. 마치 '취화선'을 외국인에게 보라고 한 것과 같은 기분으로(그 외국인이 나란 거다) 나는 이 책을 읽었다. 곧, 자신의 조국의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기저에 깔고 씌인 이 책은, 그렇기에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근대 이후 세계화든 서양화든 아무튼 그런 물결에 모조리 휩쓸려간 우리에게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물으면 쉽사리 대답하기 어렵다는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는 민족으로써, 부러웠다.

분명하게 생소한 문체 또한 새롭게 다가왔는데, 기껏해야 한국 현대 문학 조금,(한국 문학도 아니고 '현대'까지 붙는 편협함) 일본 현대 문학 몇 작가를 읽은 나로써는 이런 제 3세계의 문학(우리나라도, 일본도 제 3세계다만)은 분명히 생소하고 새로웠다. 그래서 읽고 나서 할 말은 별로 없지만 느낀 점은 많다 말하고 싶다. 예술(혹은 그림 혹은 르네상스 이후 전세계의 급속한 서양평준화)에 대한 결코 얉지 않은 성찰과 자신의 것(이제 보편성보다는 특수성의 시대인 것이다)을 아끼고 다듬은 결과가 바로 노벨문학상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결국 예술은 어떤 좋은 것을 지향하는 것 보다,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는 발악의 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절대적인 명작같은 건 없는 것이고.(완성작=결과이니)

 

읽기 힘드니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 들 생각들 하지 마시고. 각오를 하신 후 읽으시길.

오늘은 죄다 사족이다. 이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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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7-01-03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너무 힘들게 읽었습니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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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도대체 책을 선물 받은 게 얼마만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

그렇기 때문에 내용과는 관계없이 무한대의 감동.

 

책은 다들 잘 아시는 류시화의 인도 여행 수필집. 외국인의 눈으로 본 인도인들의 사상이 아주 잘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단정투의 문장을 쓰지 않는 이유는 내가 인도를 못 가봤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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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설공주 2007-01-04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까지는 재밌게 읽다가 나머지 반도 앞에 반과 똑같음에 화가 남...
 
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달력보다 놀랐다. 항상 그렇듯 벌써!!)

 

최소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정도는 읽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위기감에 산 책. 읽기 전 노벨문학상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짧게 알아 보았는데, 알게 된 내용을 쓴다. 알고 계셨을 분들을 읽지 않아도 되겠지.

1.노벨문학상은 작품에 주는 경우도 있고, 작가에게 주는 경우도 있다.

말 그대로다. 어떤 작가의 그간 행보가 의미있다 여겨지면 작가의 커리어가 쌓임에 따라 받거나, 혹은 어떤 작품 하나가 세상을 뒤집을 정도로 훌륭하다면 그 작가에게 주어진다. 뭐, 큰 차이는 없는 듯 하지만 미묘한 뉘앙스 따위는 다르니. 오르한 파묵은 작가에게 준 경우.

2.노벨 문학상은 후보가 없다, 곧 모든 동시대의 문학이 후보다.

그간 익숙해져 있던 여러 시상식 때문에 나는 노벨 문학상도 몇몇의 후보가 있고 그것에 투표라던가 하는 방식으로 선정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노벨 문학상의 후보는 모든 동시대의 문학이었다. 발표의 때가 되면 고은 시인에 대해 도박사들이 몇 대 몇의 확률로 걸었다, 어쩌고 하는 식의 저질 보도 때문에 그랬던 면도 있지만. 암튼 수상작은 어떠한 식의 후보군이 있는 것은 아니었음.

 

그리고.

노벨 문학상을 한 번도 수상한 적 없다해서 우리 나라 문학 수준이 세계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노벨 문학상 자체가 워낙 미 유럽권의 잔치이기 때문에 그렇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전에 그 작가의 작품이 세계에 알려져야 하며, 세계에 알려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영어로의 번역은 필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번역하면 우리 나라 소설 특유의 맛을 잃는다 따위가 아니다.(실제로 나는 번역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중에) 맛을 잃기 이전에 영어 번역 작품 자체가 적고, 그 이유는 우리 나라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그리 높지 않은 데 있다. 이미 비 미유럽권(알파벳 권)에서 수상 작가를 배출한 중국이나 일본은 그들 나라의 문학이 이미 세계적으로 번역되었다는 것을 차치하면 안되고, 그 광대한 번역은 곧 나라의 힘이다. 그럼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수상작가는 뭔가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들 나라가 역사적으로 식민지 시대를 겪었기 때문에 알파벳권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곧,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없는 이유는 단순히 문학성으로 볼 수 없는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노벨 문학상의 문학의 잣대인 양 말하는 사람들에게 엿을 먹이고 싶다. 물론 그 문학상을 받은 작품과 작가가 위대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다. (전부 읽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역시 문학이나 예술따위에서 보편적인 잣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만큼, 이제 더 이상 그런 수상 따위에 연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제 남의 나라에 인정을 받아야 우리 것에 가치가 생긴다는-남한테 인정을 받아야 자신의 가치가 생기는 식의 사고 자체를 없애라고 말하고 싶다.

 

작품에 대해서는 2권을 읽고 두드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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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환상 2007-12-14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벨상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었네요. 그들만의 축제에 끼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것을 폄하할 필요는 없겠지요.. 새로운 사실, 감사합니다.^^
 
생각 - 장정일 단상
장정일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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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산문집.

장정일의 산문은 너무나 좋아하는데, 다만 한가지 걸리는 것은 내가 너무도 장정일의 사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한 와중에 다행이라고 느낀 것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결론을 내렸는데 곧, 어떤 하나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는 내가 잘 아는 것(잘 아는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정도)이라면 타인의 생각을 읽거나 들어 참고할 수는 있지만 오로지 그것에 좌지우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어중간히 알고 있는 것따위에선 타인의 그럴듯한 주장에 쉽게 설득당한다. 결국,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입장을 보류하기로 한다.

마찬가지로 이것을 삶에 적용시켜 본다면,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싫어하던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을 알아간다 치면, 좋은 면을 어쩔 수 없이 발견하게 된다. 좋은 점이 없는 사람이란 없으니. 결국 그리 된다면 그 사람을 전적으로 싫어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장 생각해도 이런 상식을 파괴한 두어 명의 싫은 사람이 있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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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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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장정일을 좋아하는지라(라곤 말했지만 실제로 많은 작품을 안 읽어서 좀 창피하다) 신간이 나오자 마자 샀다.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할 말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책을 출판했다고 그저 작가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곧, 작가라는 말에 합당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수많은 작가가 되는 사람 중에 동기부여를 독서로 그 기준을 나눠보자면 (전적으로)나는 독서를 무척 많이 한 사람 혹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하지 않는 사람이 작가가 된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너무 많은 책이 가득 차서 그것이 흘러 넘쳐 글이 된다고 믿고 있고, 후자는 글에 군더더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중간하게 독서에 열광한다면 잔재주만 늘어 글의 진실성이 떨어진다. 조금은 상관 없는 구절이지만 321페이지를 본다면

 

"선생님은 진실을 무엇이라 정의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그(촘스키)가 의자 위에 있는 책을 가리키면서 "이 책은 지금 의자 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의자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아주 간단하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는것 속에 숨어 있다. 진실된 말은 꾸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

 

어중간한 독서를 해 스스로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의자 위의 책'을 말하지 못한다.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돌려 말하고 굴려 말하고 꼬아서 말한다.(잠시 나도 그렇지 않나 반문해본다.) 물론 이건 단순히 독서라는 동기부여의 경우에서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만, 장정일은 어쨌든 무조건 전자의 경우다. 그간 나온 6권의 독서 일기는 물론, 이 책, 또 tv책을 말하다를 진행했을 때를 떠올려 보면 그의 다양한 독서 취향과 의욕은 놀랍다.

위에서 장황하게 말했듯, 이 책은 일종의 독후감상문의 형식을 지니고 있는데, 크게 한 권의 책에 대한 독후감상문을 위주로 참고도서 형식으로 몇 권을 더 소개하는 경우 그리고 몇 권의 책을 대등하게 선택해서 독후감을 쓰는 경우 두 가지가 있다. 그리고 그 소재는 모짜르트에서 영화 배틀로얄까지 무척이나 다양한 편인데, 중반 이후는 한국과 세계의 근현대사, 정치에 집중되어 있어 약간은 읽기 힘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를 배우지 않았다면 어떠한 식의 흥미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지루했을 것이다.

장정일의 칼럼, 독후감, 혹은 에세이의 힘은 비판의 힘이다. 비난이 아닌 비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다만 내가 좀 무식해서 자신이 없다) 그는 너무도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옳은 말을 해서(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역시 자신은 없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게다가 나 스스로가 뭔가 아는 게 많아진데다 올바른 시각을 가지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장정일이 떠먹여 준 것에 불과하지만) 그리고 그것과 반대로 항상 그렇지만 더 많이 알아서 그의 책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싶다. 아직 멀었다.

결국 장정일에 또 한번 매력을 느낀 바 그의 책을 읽을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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