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원하는 것을 항상 알지는 못하며 항상 말할 수도 없다는 사실’!

1장 동의에 대하여

여성의 (추정된) 욕망은, 설령 단 한 번이라도, 한 남성을 향한 것이라 해도, 그녀를 취약하게 만든다.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그녀는 보호받을 자격, 정의의 대상이 될 자격을 상실한다. 일단 여성이 무언가를 승낙했다고 여겨지면, 그 다음부터는 어떤 것도 거부할 수 없다. - P17

이러한 이야기에 대한 집단적인 욕구, 걱정과 분노의 언어로 나타나는 욕구, 진실을 말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근본적이고 공리적인 가치라는 믿음에 말끔하게 맞아떨어지는 이 욕구는 모른 척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MeToo는 여성의 말에 가치를 부여했을 뿐 아니라 말을 의무화하는 위험까지 감수했다. 즉, 자기 실현self-realisation이라는 페미니즘적 힘, 수치심을 거부하겠다는 결단, 모욕에 맞서 말하는 힘을 드러내는 것이 의무가 되었다. 그것은 또한 학대와 굴욕을 겪는 여성의 서사에 대한 음란한 갈망을 충족시킨다. 물론 매우 선별적이었다 해도 말이다. - P20

그러나 말하기와 진실의 토로가 본질적으로 해방적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발언이나 침묵이 본질적으로 자유롭거나 억압적인 것도 아니다. 더욱이 억압은 발언의 메커니즘을 통해,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담론에서의 선동’을 통해 작동할 수도 있다. 동의와 그것의 절대적 명확성에 대한 과신은 좋은 성적 상호작용에 대한 부담을 여성의 행동에 떠넘긴다. 즉 여성이 무엇을 원하는가,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알고 어떻게 말하는가, 이 섹스가 양쪽 모두에게 즐겁고 강압적이지 않음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자신 있는 성적 자아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여부에 책임을 미루는 셈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고, 그 지식에 대해 말하지 않는 여자에게 재난이 있으라.’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런 상황은 위험하다. - P25

동의, 즉 좋다고 말한 것과 욕망을 표현한 것이 쾌락을 보증해주는가? 그것이 남성이 여성을 도구화하지 못하게 막아주는가? 물론 아니다. 쾌락과 그것을 추구할 권리는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 P28

… 아무리 적극적 동의라 해도 동의는 여전히 누군가의 제안에 응하는 행위일 뿐이다. ‘내가 이렇게 해도 될까? 응, 해도 돼.’ 이 구조는 최악의 이성애 규범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유명한 데이트 코치인 코넬 배럿은 "상호작용을 이끌고 심화시키는 것은 남성이 해야 할 일이며, 여성이 할 일은 이에 대해 좋거나 싫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쓴다. 《강간을 다시 생각하다》에서 앤 카힐은 만일 결혼과 섹스가 여성에게 매력적이고 바람직한 경험으로 보였다면 ‘우리가 여성의 욕망이 아니라 동의에 대해서나 말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비꼬듯 지적했다. 동의 문화의 신념은 성적 욕망과 행위성에 관해 그저 일면적 그림의 흔적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 P56

법학자 니컬러스 J. 리틀은 2005년 논문에서 적극적 동의를 주장하며 "데이트 상대가 여성에게 성적으로 접근할 때,
여성은 성관계를 원하거나 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어떤 여성, 여자 엑스나 그레이스나, 아마도 당신과 나와 같은 여성은 섹스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원하지 않는 것도 아닐 수 있다. 그 여성은 이렇게 확연한 입장들 사이를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항상 욕망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항상 알 수 있을 만큼 존재하는 것도 - P69

아니다. 섹스를 고려할 때 여전히 동의의 규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반드시 인정해야 할 매우 중요한 지점을 얼버무리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항상 알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섹스에서든 다른 상황에서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관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언제일까? 동의의 수사는 너무 자주 욕망이 언제나 대기하고 있으며, 우리 안에 완전히 형성되어 있고 언제든 우리가 꺼낼 수 있는 무언가라고 암시한다. 그러나 우리의 욕망은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항상 아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원했는지도 몰랐던 것을 발견할 때도 있다. 무언가를 하는 중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릴 때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항상 알지는 못하며 항상 말할 수도 없다는 사실은, 거추장스럽다며 옆으로 치워버리지 말고 섹스의 윤리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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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2-01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이 책 괜찮지 않나요?
읽다 중단 상태지만 읽는 동안에는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난티나무 2023-02-01 19:47   좋아요 2 | URL
엇 네! 안 그래도 이 책 읽으면서 예전에 미미님 올리신 글 떠올랐더랬어요.
쉽게 죽죽 읽히지만 내용은 정말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해요.
어제 순식간에 1장을 읽었네요.ㅎㅎ
하고픈 말이 무척이나 많지만 이걸 꺼내놓을 수 있을지 모르곘다는 생각도 하면서...^^;;;;

공쟝쟝 2023-02-01 20:09   좋아요 1 | URL
저도 도서관에서 읽다가 ! 안되겟다 사야지! 이러고 안샀네? ㅋㅋㅋ

미미 2023-02-01 20:26   좋아요 0 | URL
이 책 이상한 표지 때문에
과소평가되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진ㅋㅋㅋㅋ
저 꼭 읽을꺼예요!!😆

난티나무 2023-02-01 20:41   좋아요 1 | URL
공쟝쟝님 얼른 사세요!!!!!!
미미님 표지 ㅎㅎ 동의합니다.
저 방금 2장 읽었는데 !!! 꼭 읽어야 할 책이네요!!!!!

공쟝쟝 2023-02-01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공쟝쟝의 섹탐은 중단되었는 데 ㅋㅋㅋㅋ 난티나무님에게로 옮아갔나 봅니다? 아아. 삽입섹스란 무엇인가 🤔 연구 기다리겠습니다!! 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2-01 20:42   좋아요 1 | URL
저는 탐구라기보다는 이유(?)를 찾고 싶은 거고 설명을 하고 싶은 거 같아요. 뭐 그 말이 그 말일 수는 있는데 암튼 저는 함으로써가 아니라 하지 않음으로써의 섹스 탐구라는 점을 밝혀놓습니다.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2-01 20:43   좋아요 0 | URL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이 책에 주로 나옵니다????? ㅋㅋㅋㅋㅋ

2023-02-01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1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