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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 2015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픽션 우수상) ㅣ 반달 그림책
지경애 글.그림 / 반달(킨더랜드) / 2014년 3월
평점 :
내게는 담이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나 잠시 생각해 본다. 기억 조각들에 딱히 담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담과는 어떤 큰 사건(?)은 없었나 보다. 아니다. 분명 좋은 기억과... 그리고 나쁜 기억도 얽혀 있다. 그래, 담이란 햇살을 받아 따스하게 등을 대고 앉아있던 시간일수도, 두려움에 떨며 숨어있던 시간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림책을 보는 동안에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림이 좋았다. 오래된 기억이 있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아련함을 느낄 듯하다. 좋은 느낌은 '엄마'와 '밥'이 연결되는 지점에서 잠깐 끊어진다. 탓할 생각은 없다. 사실이 그러했을 테니. 이젠 의도적으로 좀 바꾸어야 할 때가 아닌가? 엄마는 밥 하는 사람이라는 프레임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든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 지금 깨지 않으면 언제 깰 수 있나.(그래서 별 하나 뺌. 아, 아이의 원피스도!) 2014년이라는 출판연도를 감안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림은 강렬한 힘을 가졌다. 높이로 위압감을 주거나 크고 무거운 부피로 넘을 수 없는 선을 나타내거나 무너져서 제 기능을 잃었거나 한 담들은 없고 거기 얽힌 이야기도 없지만 그려진 수수한 담의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잡아끈다. 그림 속 낡은 담의 정겨움은 이제 사라지고 있으니까. 아예 그런 담을 본 적도 없이 아이들이 자라니까.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기도 중요하겠지만 새로운 담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현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창작하는 모든 이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반달 그림책을 사면 만년다이어리와 스티커를 주는 이벤트를 10주년 기념으로 하고 있다. 안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구입하려 했는데 다이어리를 준다니 얼씨구나! 하고 구입. 출판사와 전혀 관계없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