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지>를 읽고 드는 여러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머리 속에서 정리가 안 되는 게 매우 못마땅하다. 책읽기를 일찍 끝내고 계속 생각했지만 역시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된다. 그냥 끄적거리고 마는 수밖에. 책을 읽어도 생각정리가 안 되면? 또 읽어야지, 다른 책도 계속... 정리될 때까지. 


- 원치 않는 임신. 

기준이 무엇인가? 나에게는 아이가 둘 있다. 계획한 임신이 아니었다. 그 시기에 내가 아이를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이것은 원치 않는 임신인가? 여성은 얼마나 '원함'과 '원하지 않음'을 구분할 수 있을까?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아닌가? 이 사회에서는 자기의 가치관을 신뢰하고 지켜나가기 어렵다. 임신을 하면 낳아야 한다는 당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 모성 이데올로기, 여성성의 신화.


- 임신 중지를 법으로 규제하겠다는 말은 출산을 법으로 허락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이것이 허락받고 말고 할 문제인가? 확실히 이건 섹슈얼리티의 통제며 억압이다. 


- 우리는 왜 임신 중지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나부터도 그렇다. 입장이 모두 다르니까, 생각할 문제들이 많으니까, 여러 이유를 갖다 대지만 실은 임신하는 그 순간부터 생명을 키우고 있는 거라는 (인간)생명중시사상에 지나치게 물들어있는 건 아닌가? 죄책감과 수치심이 우리를 흠뻑 적셔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어버린 건 아닌가? 


- 죄책감 수치심 모성 모두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강요되는 것이다. 


- 임신중지는 적절한 조치가 행해진다면 불쾌하지도 해롭지도 끔찍하지도 않다. 


- 태아(나아가 아기)가 늘, 항상, 언제나, 행복의 대상인 것은 아니다. 


- '모성'은 여성의 정박지가 아니다.  


- 임신 중지는 출생률과 무관하며, 국가를 위협하지 않는다. 


- 피임은 여성만의 '책임과 의무'가 아니다. 


인간, 아기, 모성, 이런 거 다 떠나서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태아는 내 몸에 기생한다. 내가 없으면 태아도 없다. 에일리언을 떠올린 건 이 생각의 연장선이다. 강간당해 임신했으면 임신 중지를 허하고 그렇지 않으면 허할 수 없다는 발상 자체가 웃긴 거 아님? 부부강간이 존재함을 우리는 안다. 그런 경우의 임신은? 어째서 내 몸에 일어나는 일을 다른 사람이 허락하고 말고 하나? 이런 발상은 태아=독립존재로서의 생명,이라는 생각에서 온다. 독립존재는 임신한 사람이다. 어떤 경우라도 임신을 유지할 것인지 중지할 것인지는 당사자가 결정할 문제다. 


- 이렇게 쓰면서도 사실 멘탈 흔들린다. 이것이 죄책감 비슷한 감정인지는 잘 모르곘다. 나 너무 과격한 거 아니야? 뭐 이런... 


- 임신한 사람은 그 순간부터 자의로 무언가를 할 자유가 거의 없다. '아기주머니'로 전락하는 셈이다. 모든 것이 태아 위주로 돌아간다. '나'는 사라지고 '태아(아기)'만 남는다. 출산할 때 곧 죽어도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고 병실 밖에서 우기고 있는 사람은 남편의 어머니인 것을 드라마에서 본다. 내가 낳는데 왜 딴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하고 의사는 또 왜 어쩌지 못하고 그 말을 듣고 있나? 나 말고 누구의 허락이 필요한가? 임신하는 순간부터 아니 성인이 되는 그 시점부터 임신 출산 육아를 거쳐 그렇게 키운 아이가 어른이 되고 중년이 되고 그럴 때까지도 '나'는 '나'이지 못한다. 이게 말이 되나? 


- 한국은 어째서 사후피임약, 임신중지약, 이런 거 도입하지 않는가? 고딩 아이에게 들으니 여기 학교 양호실에는 사후피임약이 있다고 한다. 누구나 찾아가서 달라고 하면 된다고. 콘돔도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받아 쓸 수 있다. 달라고만 하면 된다고. (그러나 양호실 가서 콘돔 주세요 사후피임약 주세요 하는 학생이 잘 없기는 하단다.^^;; 그래도 이런 분위기, 중요하고 필요하지 않나?) 책에서 임신중지가 약으로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보고 깜놀했다.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거 모르는 사람들 엄청 많잖아? 알려주지도 않아! 


- 교육 매우 중요. 뭐든지 항상 교육이 중요해지는 결말 별로지만 정말 시급하고 필요한 문제. 관계맺음과 소통, 사랑과 섹스에 대해 어릴 때부터 조곤조곤 알려주고 이야기나누는 교육 시급하다. 


- 아주 찜찜하고 맘에 안 들지만 일단 임신 중지 이야기는 여기서 끝. 8월 30일이다. 어느새. 생각은 많고 고민은 깊어지는 가을이 코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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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에게 기쁨인 똑똑한 여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2-09-10 22:57 
    To. 똑똑이 난티나무님을 비롯해 열심히 *공부*하는 저의 도반님덜께 모처럼 제 필사노트에 남아 낡아가던 문장들을 공유해봅니다. (99) 예나 지금이나, *‘똑똑한 여성’은 ‘특이한 여성’을 의미*한다. 남성사회는 여성이 언어를 갖는 것, 똑똑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여성들도 원치 않는다. 프란츠 파농이 온몸을 떨면서 간파했듯이, 흑인은 백인의 타자이며 동시에 흑인의 타자이다. 여성의 타자 역시 여성이 아니라면, 이미 가부장제 사회가 아닐 것이다. .
 
 
건수하 2022-08-30 20: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후피임약을 쓸 수는 있는데 약국에서 바로 살 수는 없고 처방을 받아야해요. 임신중지약은 저도 오늘 찾아보니 도입되지 않았더군요…

임신한 이후부터 아이에게 매인다는 부분 극공감합니다 ㅠㅠ 뱃속에 있을 때가 차라리 편하죠. 얼마나 커야 나아질까요? 저는 결혼한다는 후배들한테 결혼은 괜찮다 (돌이킬 수 있으니까) 아이는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해요.

난티나무 2022-08-30 21:49   좋아요 5 | URL
그러니까요. 처방받으려면 병원 가야 하고 두 번 일에 시간 걸리고 이중삼중 쓴소리 들어야 하고…ㅠㅠ 접근이 쉬워야 하는데 말이에요.

문제는… 이성애결혼 한 여자만 신중하다는 거 아닐까요. ㅠㅠ 반드시 미리 논의되어야 하는 사안입니다. 그쵸? 저도 진짜 말리고 싶어요…

다락방 2022-08-31 09:38   좋아요 2 | URL
제가 젊은 시절에 사후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살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먹었던 적이 있는데, 그 다음해에 바로 처방전 있어야만 먹을 수 있는 걸로 바뀌었을 거예요. 제 친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주면 안되겠느냐, 약국에 가서 저랑 같이 호소해봤지만 안된다는 말을 들었고, 결국 임신중지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너무 화가나네요 갑자기 ㅠㅠ

난티나무 2022-08-31 17:13   좋아요 1 | URL
오 그랬었군요! 왜 다 거꾸로 가는지...ㅠㅠ
명백하게 통제네요. 사후피임약이라도 쉽게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아휴. 이런 건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나요??? 화가 난다!!!

얄라알라 2022-08-30 23: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난티나무님께서 흡수하셔서 다시 다른 문장으로 되돌려주시니, 훨씬 <임신중지>이해하기가 쉬우집니다. ˝멘탈 흔들린다˝하셨는데, 저 역시 이 주제로 글을 쓰려면 제가 길들여져 있던 감정각본부터 해체해야겠다는 자각 들었습니다.


˝ ‘아기주머니‘로 전락하는 셈이다. 모든 것이 태아 위주로 돌아간다.˝
fetal motherhood가 태아적 모성인가? 하며 뒤지는데 난티나무님께서 이야기해주신 딱 그런 지점 나오더라고요.

8월 30일에 이 글 올리셔서 후련하시겠습니다 ㅋ
저는 어쩌지요, 제 옆에 책을 두고 있는데....다 정리할 자신이 없습니다

난티나무 2022-08-31 05:58   좋아요 3 | URL
이제 31일이네요.ㅎㅎ
저도 다시 읽는다 해도 지금으로선 더이상의 정리는 어려울 것 같아요.^^;;;
이게 왜 어려울까요?@@ 감정각본 해체,라는 말씀 좋네요!

얄라알라 2022-08-31 0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말 해놓고, 챕터별 정리할 원대한(?) 계획을 8월 품어놓고는 고작 서문만 정리해올렸더니 31일 오늘 마음이 여간 불편한게 아닙니다^^;;; 계속 읽고 늦어도 정리해야겠습니다 ㅎ

난티나무 2022-08-31 17:15   좋아요 1 | URL
오 챕터별 정리!!!!
저는 밑줄 막 그으면서 포기했어요.^^;; 너무 많아......@@
그래도 한 챕터 읽고 정리하는 습관 들일 필요 있어요.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흐지부지..ㅋㅋ (저 말임요)

공쟝쟝 2022-09-10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역시 난티님 과격쟁이! 근데 과격한거 아님 ㅋㅋㅋ 똑똑한 것임 💕 저도 사라 아메드 펼쳤어요! ㅋㅋㅋ

난티나무 2022-09-10 18:28   좋아요 0 | URL
아니 나 똑똑한 거 어케 알았지!!!!! ㅋㅋㅋㅋ 🤣 가끔 의심합니다. 나 똑똑한 건가? 진심으로 의심 ㅠㅠ (오해의 소지가 있네요 ㅋ 자기비하에 가까움…) 꼭 지식이 많아야 똑똑한 건 아니라며 말이죠……. 이것도 참 복잡하네요? ㅋ
사라 아메드 읽고 싶은데 책을 아직 못 사고 ㅎ 도서관 신청 올려뒀어요.^^

공쟝쟝 2022-09-10 19:00   좋아요 0 | URL
ㅋㅋㅋ 똑똑한거 맞아요 난티님 😍 이따 밤에 정희진샘 글 공유해드리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