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 없이 확인한 사실.
'...... 우리의 기억은 결코 이상적인 도구가 아니다. 기억은 제멋대로인데다 변덕스럽다. 게다가 기억은 줄에 묶인 개처럼 시간이라는 사슬에 매여 있다.'
'우리는 현재로부터 과거를 바라본다. 현재를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 이들은 여전히 그 시절에 애정을 느낀다. 이들에게 그 시절은 단지 전쟁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젊음이었고 첫사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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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에도 나는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이 두 진실과 적잖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의식 저 밑으로 쫓아버린 사실 그대로의 진실과 시간의 흔적이 스며든 공통의 진실. 신문 냄새가 폴폴 나는 공통의 진실. 첫번째 진실은 두번째 진실의 맹렬한 공격 앞에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예를 들어, 만약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가족이나 지인, 이웃들(특히 남자들) 중 누군가, 제3의 인물이 동석하면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와 단둘이 있을 때보다 덜 진실해지고 덜 솔직해진다. 이미 대중을 의식한 대화가 돼버린다. 관객을 위한 대화. 당사자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얻어낼 길은 요원해진다. 강력한 자기방어에 부딪친다. 자기통제. 끊임없이 이야기가 다듬어진다. 일종의 패턴까지 생겨난다. 듣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차분하고 깔끔한 이야기가 된다는 것. 신중하게 해야 할 말만 골라한다는 것. 참혹한 일이 위대한 일로, 인간 내면의 불가해하고 어두운 면이 순식간에 이해가 되고 설명 가능한 것으로 둔갑한다. 나는 기념비들만 가득한 과거의 사막에 뚝 떨어지곤 했다. 공훈들만 가득한 황야에. 도도하고, 결코 속을 내보이지 않는 것들만 잔뜩 모여 있는 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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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겐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많은 반면, 집사람에겐 전쟁에 대한 감정이 더 많아요. 하지만 언제나 감정이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강력한 법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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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넘게 읽어가고 있는 중. 인터뷰한 사람들의 말이 이어지고 이어진다. 한번도 제대로 상상해볼 수 없었던 전쟁의 모습이 보여진다. 당장 내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러지? 무엇이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걸까? 국가는 무엇이고 민족은 무엇일까? 어떤 일을 하든 지워지는 여성의 역사는 전쟁 때도 다르지 않았다. 몸서리쳐지고 화가 나고 눈물이 나고 몸이 떨려도 증언들은 계속 쓰여지고 읽혀야 한다는 생각. 알아야 한다는 생각. 숨긴다고 있었던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생각. (하지만 오래 숨기면... 없었던 일처럼 사라질 수도 있는 가능성.ㅠㅠ) 전쟁은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그러나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일. 말하고 읽고 들어도 절대로 다 알 수 있을 것같지 않은 일, 그러나 더 알아야 한다는 필요성. 그래서 더 절망적인. 여러 가지로 내 무지를 확인하는 읽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