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태도는 용납하기 힘든 신경증적 환상이다." (161)


"미국에서는 개들에게 "무조건적 사랑"의 능력이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사람은 다른 인간관계에서 겪는 복잡성, 모순, 오해의 짐에 짓눌린 나머지 자신이 키우는 개가 베푸는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위안을 찾는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개를 자식으로 대하며 사랑하는 것이 다음 수순이다. 내 생각에 이 두 믿음 모두는 거짓까지는 아니어도 출발부터 실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개와 인간 모두에게 가학적이다." (158)




'신경증적 환상'을 갖지 않고 사랑하기. 세상 어려운 일. 그걸 못해 사람들은 그 난리를 피우지. 말못하는 동물에게 사랑을 가장한 복종을 구걸(요구/강요)하지 말지어다. 말하는 동물에게도 마찬가지이리라.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라는 사실,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위선이라는 사실, 그리고 '애완'동물, '식용'동물, '감상'동물............ '해'를 끼치는 동물...... 복잡하고 비윤리적이며 인간중심적 사고방식. 인간은 신이 아니다. 신인 척 하는 사람은 역겹다. 알량한 호혜의식에 젖어들지 말 것. 개는 개다. 해러웨이는 난 사람이다.




존재자들은 서로를 향해 뻗어나가며 "포착"이나 파악을 통해 서로와 자신을 구성한다. 모든 존재자는 관계에 선행해 존재하지 않는다. "포착"에는 결과가 있다. 세계는 운동 속의 매듭이다. 생물학적 결정론과 문화적 결정론은 모두 잘못된 곳에서 구체성을 구성한 사례들이다. "자연"이나 "문화"와 같은 잠정적이고 부분적인 추상 범주를 세계로 착각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잠재적 결과를 선행하는 기초로 오해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리 구성된 주체나 객체는 없으며, 단일한 근원이나 단일한 행위자, 최종 목적과 같은 것은 없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표현을 빌리면 "잠정적 기초contingent foundation"밖에 없다.  - P123

... 개는 인간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바로 이 점에 개의 매력이 있다. 개들은 투사 대상도, 의도를 구현한 물체도, 다른 무언가의 텔로스도 아니다. 개는 개다. 즉, 인간과 의무적이고 구성적이며 역사적이고 변화무쌍한 관계를 맺는 종이다. 이 관계는 다른 관계들보다 특별히 나을 것은 없다. 기쁨·발명·노동·지성·놀이로 가득한 만큼, 낭비·잔인함·무관심·무지함·상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공동-역사의 이야기를 잘 들려줄 방법과 자연문화적 공진화의 결과를 물려받을 방법을 배웠으면 한다. - P129

우리는 또한 살/실체 속에서 이데올로기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방식을 통해 함께 살아간다. 이야기는 이데올로기보다 허용 폭이 넓다. 우리의 희망은 여기에 있다. - P136

메타플라즘(이형변이)은 예를 들면 글자·음절·음소 따위가 추가·생략·도치·전도되어 말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 말이 유래한 그리스어 ‘metaplasmos‘는 구조 변경 및 형태 변경을 뜻한다. 메타플라즘은 뚜렷한 방향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모두를 통틀어, 말에서 일어나는 것이면 어떤 종류의 변화든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유적類的, generic 용어다. 나는 메타플라즘이라는 말을 개와 인간이 서로 반려종이 되는 역사에서 육체를 개조改造, restructure하고 생명의 암호를 개형改形, reform한다는 의미로 쓴다.

......

메타플라즘은 실수나 헛디딤, 실체적 차이를 만드는 수사를 뜻할 수 있다. - P141


개는 돼지를 제치고 최초의 사육 동물이라는 영예를 거머쥐었다. 인본주의적 기술 예찬론자들은 길들이기를 자기 자신이라는 부모로부터 혼자 태어난 남성적 행위의 모범으로 그려내면서, 이 행위를 통해 (남성) 인간이 자신의 도구를 발명(창조)하며 자기 자신을 거듭 창조한다고 본다. 가축은 신기원을 이룩하는 도구이자 인간의 의도를 육신으로 구현하는 개-육체 버전의 자위행위다. (남성)인간은 (자유로운) 늑대를 잡아 (복종하는) 개를 만들고 그로써 문명의 가능성을 수립했다. 그렇다면 헤겔과 프로이트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견이라고 보면 될까? 개를, 길들인 동식물 전체의 상징으로 만들고 인간의 의도에 복종하게 만들되, 점차 진보할 것인지 타락할 것인지는 각자의 취향에 맡기면 될 것이다. 심층생태론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문화로 추락하기 전에 있었다는 야생의 이름으로 혐오하기 위해 기꺼이 믿는다. 인본주의자들이 문화에 대한 생물학의 침략을 막기 위해 믿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 P150

모든 것이 분산되어 있다는 것이 개집에서조차 세상만사의 상식이 되자, 위와 같은 관습적인 설명 방식은 최근 몇 년 동안 철저한 재구성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이 전부가 스쳐 가는 유행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처럼 개(를 비롯한 다른 종들)에게 길들임의 첫수를 두게 하고, 이질적이고 분산된 행위 주체의 끝없는 춤을 안무하는, 재구성된 메타플라즘적 이야기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하더라도 이와 같은 새로운 이야기들이 진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더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중한 타자성을 의도의 반영과는 다른 무엇으로 볼 방법을 가르쳐줄 가능성도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 P151

관계는 다형적이며 위태롭고, 마무리되지 않으며 결과가 따른다. - P154

미국에서는 개들에게 "무조건적 사랑"의 능력이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사람은 다른 인간관계에서 겪는 복잡성, 모순, 오해의 짐에 짓눌린 나머지 자신이 키우는 개가 베푸는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위안을 찾는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개를 자식으로 대하며 사랑하는 것이 다음 수순이다. 내 생각에 이 두 믿음 모두는 거짓까지는 아니어도 출발부터 실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개와 인간 모두에게 가학적이다. - P158

남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태도는 용납하기 힘든 신경증적 환상이다. - P16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2-05-16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아요, 난티나무 님. 저도 오늘 아침에 이 부분 읽었는데요.
팟캐 들을 때 진행자 중 한 명이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 ‘개는 개다’ 라고 했어요. 난티나무 님이 딱 거길 짚어주시네요! 멋진 분 ㅠㅠ

난티나무 2022-05-17 00:50   좋아요 1 | URL
존재를 존재로 인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싶어요... 사람 사이에서도 어려운데 하물며 ‘하등‘하다고 생각하는 동물과의 관계는 더 힘들겠죠. 저도 팟캐 들었어요! 덕분에~~~^^❤️❤️❤️

청아 2022-05-1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8페이지 유독 기억에 남아요!
이런 인간중심적 사고 방식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란 생각도
들고요. 최근에 수하님 리뷰보고<짐을 끄는 짐승들>
샀는데 접점이 있는것 같아요.
자꾸 관심가는 책들이 죄다
해러웨이랑 관련있는걸 보면
스팩트럼이 큰 책인게 분명!

난티나무 2022-05-17 00:51   좋아요 1 | URL
맞아요 미미님. 인간중심적 사고방식... 모든 문제의 근원!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저렇게 다른 책 다른 주제들과 연결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당연한 걸 이제 깨닫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암튼 해러웨이도 언니! 대단한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