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피곤하다는 의식도 없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그동안 살아오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내뱉고 행동했던 것들, 툭 하면 살 뺴야지 다이어트해야지 말하던 주위의 여자들 이 떠오른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어쩌면 나도 죽을 때까지 어이구 이 똥배 좀 봐, 이거 먹으면 살찌는데, 오늘부턴 저녁을 좀 줄여야 겠어,를 입에 달고 살았을 수도 있었다. 죽을 때까지 내 몸을 미워하고 부정하고 낙인찍었을 수도 있었다. 70이 넘은 나의 엄마는 안타깝게도 여전히 그렇다. 어쩌면 엄마는 모르고 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알면 무척 억울할 테니까. 


<욕구들>을 함께 읽으며 옆지기와 대화를 나눈다. 여자의 일상, 끝도 없이 머릿속을 울려대는 세상의 잣대들을 자신에게 들이대며 사는 일상에 대해. '자기 비난의 목소리'. 여자들의 머리 속에서 매일을 지배하는 목소리. 일상이 되어버린 목소리.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알 수 있는지도 모르는, 결정을 할 수 없는 사람들. 나는 설명과 표현에 애를 먹는다. 모르기 때문에,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커다란 구멍을 메우기에 나의 말은 너무 성기다. 여자들의 말하기는 아직 멀었다. 훨씬 더 많이 말해야 한다. 구석구석 핵심과 맥락을 콕콕 짚어내야 한다. 


거식증 환자였던 캐롤라인 냅의 글에서 옆지기는 거식증을 염두에 두고 읽는 듯했지만 나는 거식증이라는 행위보다 딸과 엄마(부모)의 관계, 통제할 수 없는 불안, 인정과 사랑에의 욕구, 여자들을 '조종'하는 세상의 모든 것 들에 더 무게를 두고 생각한다. 거식증은 결과로 나타난 행동 혹은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행동일 뿐이다. 누군가는 손목을 긋고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매일 남자를 찾아나서기도 한다고 냅이 말했듯이 이런 행동들은 분명 스스로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되기까지의 용기와 타인의 시선을 거리낌없이 받아칠 수 있는 배짱이 생겨야 없어지지 않을까. (힘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옆에 있다면 사정은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러기 위한 여정이 너무 길고도 힘들다. <배움의 발견>의 타라가 떠오른다. 현실을 부정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라가 선택했던 행동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신적으로 벗어나버리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직시하기 위해 그 역시 긴 세월이 필요했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도 다른 사람도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가 어째서 지독한 괴로움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누군가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욕구들>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책이었다. 문장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내용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읽기가 쉽지 않다고 느꼈다. 한번 읽고 말 책은 아니다. 역시 종이책으로 사야 할. 그래 첫번째 읽기라 생각하고 좀은 설렁설렁 읽은 감도 있다. 옆지기는 행간 사이 의미의 간극이 크다며,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고 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어려운 철학책을 읽을 때의 기분. 그 기분 이해한다. (나는 냅의 그런 글쓰기 방식이 좋았다. 문장 하나에 멈춰서 오래 생각해야 하는 일이 잦았는데 옆지기도 아마 그런 의미에서 간극이라고 말한 듯하다.) 

나중에 알라딘 어느 책 리뷰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저자는 공부의 주제로 삼을 만한 것이 '마음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책을 읽을 때 납득이 가지 않거나 생경하게 다가올 때, 바로 이 지점에서 이 문제를 파고들어야 '내 삶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고 전한다."(<세미나책> 리뷰 중 https://blog.aladin.co.kr/712851116/12724109) 딱 들어맞는 말인 듯해 톡으로 보내주었다. 


다음으로 옆지기와 함께 읽은 책은 <탈코르셋 선언 : 일상의 혁명>이다. <욕구들>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여성의 외모, 꾸밈, 다이어트 등의 이야기가 함께 나온 터라. 평소에도 조금씩 의견을 나누던 소재니 이참에 이런 책도 읽어보자 싶었다. 


* 가벼운 혹은 얇은 책이라면 일주일에 한 권씩 읽자고 옆지기가 말했다. 나야 물론 콜. 둘이 읽는 이 모임의 이름을 생각해본다. 뭐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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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09-30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간을 같이 나누는 이와 책까지 나눌 수 있다면, <욕구들> 읽으신 시간이 더욱 오래 기억나실 것 같네요. 계속 진행형이 될 거라고 하시니 부러운 맘 살짝 감추고 응원 합니다^^

난티나무 2021-10-01 00:27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북사랑님 감사합니다~^^
토론이 막 불붙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직은 <욕구들>로 그럴 만하지 못했나 봐요, 둘 다. 함께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다음에 더 불붙는 토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해봅니다.ㅎㅎㅎ 그래도 같이 읽고 책으로 이야기나누니 그건 정말 좋아요.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