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 엄청 좋아요 잘 읽혀요 하고 9월 2일에 글 올리고는 엄청 좋았던 앞부분에 대한 페이퍼는 쓰질 않았네.ㅠㅠ 가사노동에 관한 글들, 57페이지까지 플래그 위주로 다시 훑어보니 이건 뭐 다 밑줄을 그어야 하는 거였다. 고민된다. 다 옮겨야 하나. 



** "만약 기술 혁신이 일어나서 반드시 해야 하는 노동량을 줄인다 하더라도, 노동 계급이 산업 안에서 투쟁하여 그러한 기술 혁신을 활용하고 자유 시간을 얻는다 하더라도, 가사노동에는 그 내용이 적용되지 않는다. 여성은 고립된 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책임져야 하므로, 가사노동을 고도로 기계화한다 해도 여성에게는 자유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여성이 항상 근무 중인 이유는 아이를 만들어 내고 신경 써 주는 기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계화를 통한 가사노동 생산성 증대는 요리, 빨래, 청소 같은 특정 서비스에만 적용될 수 있다. 여성의 노동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는 이유는 기계가 없어서가 아니라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 - P34


고립,에 동글동글동글 동그라미. 기계는 핵심노동만 하고 주변노동은 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러므로 '기계화를 통한 가사노동 생산성 증대'는 3분의 1(혹은 그 이하)만 기대할 수 있다. 



** "또한, 여성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알지 못하면 남성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이것은 너무나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여기서 분명히 하려는 바는, 우리가 자본주의적으로 조직된 세계에서 생산 활동을 하면서 임금을 받지 않을 때 상사의 형상은 남편의 형상 뒤에 숨이 있다는 사실이다. 겉보기에는 남편이 가사 서비스의 유일한 수혜자처럼 보이는데, 이 때문에 가사노동은 모호하고 노예 상태와 유사한 특징을 띠게 된다. 다정하게 관여하고 다정하게 협박하는 남편과 아이들은 가사노동의 첫 번째 감독관, 즉 친밀한 관리자가 된다.
아내가 남편과 마찬가지로 밖에서 일하고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오는 경우에도, 남편은 신문을 읽으며 아내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차려 주기를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가사노동으로 대변되는 특수한 착취 형태에는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특수한 투쟁 형태, 다시 말해 가족 내부에서 여성이 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 P40


따라서 요점은, 기껏해야 거리 시위에 가끔 참여할 준비를 하고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임금을 기다리고 있을 뿐인 주부를 집 안에 평화롭게 남겨두지 않는 투쟁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주부라는 우리의 역할 그리고 우리 존재를 고립시키는 게토가 된 가정을 거부하면서, 가사노동의 전체 구조를 당장 깨부술 수 있는 투쟁 방식을 찾아야만 한다. 가사노동 중단 뿐만 아니라 주부 역할 전체를 끝장내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작점은 가사노동을 어떻게 해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투쟁의 주인공으로서 어떻게 위치를 점할 것인가이다. 요컨대, 가사노동의 생산성이 아니라 투쟁의 전복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가사노동 시간과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의 관계를 지금 당장 전복해야 한다. 침대보와 커튼을 다림질하고 바닥이 반짝거릴 때까지 닦고 먼지를 터느라 매일매일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이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분명 여성들이 멍청해서 그런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앞서 여성의 상황을 교육 수준이 보통 이하인 학교와 비교했던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실제로 여성이 자아를 실현할 방법은 가사노동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 자본이 여성을 사회적으로 조직된 생산 과정에서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 P41


그러니까 말이다. 투쟁. 싸워야 하는데. '투쟁의 주인공으로서 어떻게 위치를 점할 것인가'. 마침 또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다.@@ (나는 그 이후 쓰기를 일단 멈춤 했다고 한다. - 주방으로 갔더니 옆지기가 오늘은 오징어볶음 할까, 하고 저녁 준비할 태세를 갖추길래 밥만 얹어놓고 냅다 도망나왔다. 시간이 생겼으나 글은 쓰지 못하고 마당 풀 뽑다 왔다. 아침에 이 책 마저 읽느라 책상 앞에 꼼짝않고 앉아있으니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났다. 지저분해도 청소를 하지 않는 요즘의 나다. 청소하는 건 좋은데 책 읽는 게 방해되는 건 싫다. 방 청소한다고 들어와서 여기저기 밀어댄다. 청소하는 행위가 단순히 행위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무엇이 우선인가. 무엇이 최선인가. 무엇이 상생인가.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과 '뭐라고 말해야 기분나쁘지 않을까'를 생각하는 어처구니없음-나에게 짜증나는 순간-의 괴리, 이상과 현실의 괴리, 언제나 좁혀지려나.) 





** "우리는 여기서 승화라는 말을 신중하게 사용한다. 단조롭고 하찮은 잔일들이 주는 절망감과 성적 수동성이 주는 절망감은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성의 독창성과 노동의 독창성은 인간 욕구의 두 가지 영역으로, 우리는 ‘선천적 활동과 후천적 활동의 상호작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여성은 (따라서 남성 역시) 선천적 힘과 후천적 힘을 동시에 억압당한다. 여성의 수동적인 성적 수용성은 강박적으로 깔끔함을 추구하는 주부를 만들어내고, 단조로운 조립 라인조차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대부분의 하찮은 가사노동과, 같은 일을 매일, 매주, 매년 반복하고 연휴에는 두 배로 하게 만드는 규율은, 자유로운 섹슈얼리티의 가능성을 파괴한다. 우리의 유년기는 순교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우리는 백지보다 더 하얀 천 위에서 깨끗한 성생활을해서 행복을 얻으라고 배운다. 또, 섹슈얼리티 및 다른 창조적 활동을 동시에 희생하도록 교육받는다.
이제까지 여성 운동은 특히 질 오르가슴 신화를 파괴하여 여성의 성적 잠재성을 남성이 엄격하게 규정하고 제한하도록 허용하는 육체적 메커니즘을 폭로해왔다. 이제 우리는 섹슈얼리티를 독창성의 다른 측면들과 결부시키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의 노동이 우리와 우리 개개인의 능력을 불구로 만드는 한, 우리가 성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우리의 주인 행세를 하고 그들이 하는 노동이 그들을 불구로 만드는 한, 섹슈얼리티가 항상 속박당할 것임을 우리는 안다. 질 오르가슴 신화를 깨뜨리는 건, 종속 및 승화와 상반되는 여성의 자율성을 요구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질 오르가슴 신화가 음핵 대 질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음핵과 질 대 자궁의 문제이기도 하다. 질은 애초에 상품으로 팔리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통로, 즉 자궁의 자본주의적 기능을 하거나, 그게 아니면 우리의 선천적 힘, 우리의 사회적 도구의 일부이다. 결국 섹슈얼리티는 가장 사회적인 표현이고 가장 심오한 인간의 소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율성의 해체이기도 하다. 노동 계급은 계급 자체를 초월하기 위해 계급으로 단결한다. 자율성을 초월하는기반을 만들어 내려고 우리는 계급 안에서 자율적으로 결속한다."  - P48~49


** "그리하여 우리는 가장 먼저 여성들을 서로에게서, 남성에게서, 자식에게서 분리하고, 여성 개개인을 가족 안에 가두려는 역할을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마치 스스로 누에고치 안에 갇혀 죽어 가면서 자본을 위해 비단을 남기는 번데기 같다. 주부들이 이 모두를 거부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자신을 노동 계급의 한 집단으로, 임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지위가 가장 강등된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 투쟁 전반에서 주부의 지위는 매우 중요하다. 주부의 지위가,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지지하는 기둥, 바로 가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을 보완하는 인물, 바로 주부에 반대하고 여성의 개별성을 긍정할 수 있는 계획을 마땅히 제안해야 한다. 주부 역할의 생산성이 지속되는 상황을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마땅히 내놓아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여성이 기본적인 육체적 기능의 온전함을 회복할 수 있게 시급히 요구해야 한다. 생산적인 창조성과 함께 가장 먼저 강탈당하는 성性적 기능을 온전하게 회복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산아 제한 연구가 이토록 더디게 진행되고, 거의 전 세계에서 임신 중절이 금지되고 결국 ‘치료‘ 목적으로만 허락된 건 우연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이것들을 요구하는 것은 안이한 개혁주의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이 자본주의적으로 관리되면 거듭해서 계급 차별, 특히 여성 차별을 만들어 낸다. " - P54



가사노동과 성을 연결지을 생각은 못했다...고 쓰려다가 어라 연결해서 자주 생각해 봤네 싶다. 가사노동 자체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반복되는 가사노동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모양의 정신적 스트레스다. 안정감을 찾을 수 없고 친밀함을 느낄 수 없고 끊임없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고 누구도 나의 정신적/육체적 힘듦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그야말로 고립의 감정을 느끼는 여자에게 성이란, 섹스란, 그것을 나눌 사람에게서 조금의 위로도 받지 않을 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하면 섹스의 횟수가 늘 것이라는 내용을 어느 책에선가 봤는데 이 말은 절반만 유효할 것이고 가사노동의 의미를 단순화시킨다. 왜냐하면 '집안일'이라는 '행위'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 쓴 청소기의 예를 보라. 남편이 집안일을 했으나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여성은 마치 스스로 누에고치 안에 갇혀 죽어가면서 자본을 위해 비단을 남기는 번데기 같다." 

"여성 투쟁 전반에서 주부의 지위는 매우 중요하다. 주부의 지위가,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지지하는 기둥, 바로 가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로사 언니도 좋아하고 싶다.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글인데 문장 사이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 아마도 그 거리는 나의 부족함일 터, 이 언니 책 더 읽고 싶어 찾아보았더니 <집 안의 노동자> 달랑 한 권 번역되어 있다. 뭐야.  <탈정치의 정치학>에 글 한 편이 실려있는데 제목이 「발전과 재생산」 이다. <페미니즘의 투쟁>에 실린 글과 같거나 비슷한 내용일 듯하다. 


















** "수백만 여성이 전통적으로 여성이 영위하던 자리를 거부하면서 여성 운동이 일어났는데, 자본은 여성 운동을 만들어 낸 이 추동력에 달려들어, 더 많은 여성을 노동력으로 재편하고 있다. 여성 운동은 이 상황에 저항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성 운동은 운동의 존재 자체로, 또 더욱 분명한 행동으로, 여성들이 노동을 통한 해방이라는 신화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보여 줘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충분히 일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십억 톤의 목화를 자르고, 수십억 개의 그릇을 씻고, 바닥을 수십억 번 닦으며, 단어를 수십억 개 입력하고, 수십억 번 타전하며, 수십억 개의 기저귀를 빨았다. 이 모든 일을 손수, 또 기계로 했다. 저들이 전통적으로 남성이 지배하던 영토에 우리를 들여보내 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착취를 마주했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제3세계의 저발전과 거대 도시의 저발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거대 도시의 부엌에 도사리고 있는 저발전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적인 기획은 제3세계가 성장할 것을 제안한다. 제3세계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에다가 반反산업혁명의 고통까지 당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거대 도시에 사는 여성들도 이와 동일한 ‘원조'援助를 받아왔다. 그러나 해야만 했기에, 또 여분의 돈이나 경제적 자립 때문에 집 밖으로 일하러 나간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인플레이션이 우리를 이 빌어먹을 타이핑 인력 혹은 조립 라인에 못 박아 버렸고, 이 상황에서 구원은 없다고. 우리는 저들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성장을 거부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하는 여성의 투쟁은 가정의 고립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게 아니다. 종종 월요일 아침이 되면 그렇게 하고 싶어지더라도. 마찬가지로 주부의 투쟁 역시 집 안에 감금되는 상황을 사무실 책상이나 공장 기계에 붙들려 있는 상황과 바꾸려는게 아니다. 때때로 12층짜리 집단 주택 안에 존재하는 외로움보다는 나아 보일지라도." - P55~56



자, 일단 여기까지 쓰고 늦은 아침을 먹겠다. 어제는 일요일이었고 오늘은 월요일이다. 당연한 것 같은 시간의 흐름인데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뽀인뜨다. 뭐래.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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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9-27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른쪽 책도 그렇지만 왼쪽 책도 어쩐지 페미니즘의 투쟁과 중복될 것 같아요.

읽느라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고생하셨어요. 꼭 나의 마음 같은 글을 읽는 것도 기쁘고 몰랐던 작가를 알게 되는 것도 기쁘죠. 고되지만 분명 얻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난티나무 님, 10월도 11월도 12월도 함께 열심히 가봅시다!

난티나무 2021-09-27 17:59   좋아요 1 | URL
그쵸그쵸. 그래도 <집안의 노동자>는 왠지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긴 해요. 가사노동 부분이 좋았거든요.^^ <페미니즘의 투쟁>에서 이야기한 것들이 더 자세자세하게 나올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또 운동한 거 위주로 이야기할려나...ㅎㅎㅎ
12월까지 이미 도서 구비 완료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미미 2021-09-27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좋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리뷰 어떻게 쓰나 앞이 캄캄합니다. 멋진 언니들도 왤케 많은지요! 중간중간 정리해놓은걸 정리중인데 하...읽어야 할 책도 더더 늘어났고요. 저도 밥부터 먹어야겠어요ㅋ😳

난티나무 2021-09-27 18:01   좋아요 1 | URL
리뷰 쓸 수 있을까 싶습니다요.^^;;; 리뷰라기보다는 그냥 감상문...이 될 거 같은, 뭐 저야 늘 그렇지만요.ㅎㅎㅎ
저는 집에 있는 에코페미니즘,을 이제 읽어야 하는가보다 했습니다. 맛난 거 드세요, 미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