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인원은 2명. 페미니즘 책을 함께 읽는다. 책 추천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지만 그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인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모임 멤버가 나보다 더 페미니즘 초짜이기 때문이다. 책 선정이 고민된다. 작년 말부터 권했던 책들 중 벨 훅스도, 박정훈 기자도, <맨박스>도, 리베카 솔닛도 튕겨내는 (그러니까 얼추 이 책들을 들여다보기는 했다) 그 멤버의 성향으로 미루어보건대, 어떤 책을 고를 것이냐는 모임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짐작했겠지만 그 멤버는 나의 옆지기다.
시작은 보부아르의 <제 2의 성>이었다. 내 책상 위에는 이달의 독서모임 도서들이 쌓여있다. <페미니즘의 투쟁> <학교의 슬픔> <제 2의 성> 1권과 2권, 그리고 프랑스어 원서들까지. 아마 제목이 눈길을 끌었을 터, 거기에 더해 며칠 전 나와의 '설전'도 촉매제 역할을 했을 듯 한데, 책을 집어들고 살펴보길래 읽어볼래? 했다. 마침 2부 첫부분에 '성 입문' 챕터가 있다. 여기만 읽어 봐. 그렇게 옆지기는 부분이긴 하지만 <제2의성>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보부아르는 성 입문 맨 앞에 여자의 첫 성적 경험이 일생 동안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똭 기술하고 있다. 옆지기는 첫 페이지를 읽으며 지금껏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여자들의 입장을 얕게 헤아려보는 경험을 했다. 아마 페미니즘 책들을 읽으면서 지금껏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될 때 내 머릿속에 내리쳤던 번개(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비슷한 무언가를 느낀 듯하다. 그 덕분에 한 챕터를 집중해서 읽었고 몇몇 문장들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나와 독서 성향/습관이 아주 다른 옆지기는 문장이 이해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지를 못한다. 눈으로 술술 읽고 이해가 안 되어도 그냥 넘어가는 나와는 정반대. 함께 문장을 짚고 뜻을 유추해보니 좀더 의미가 선명해지는 느낌이 든다. 같은 문장이라도 다른 생각으로 읽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옆지기는 이 책은 처음부터 읽어보고 싶다,는 말로 소감을 마무리했다. 언제 읽게 될 지는 아직 모르지만.
다음날 옆지기가 뭐 읽을까 묻는다. 아, 책 선정은 고민이다. <제2의 성>이 옆지기에게 '읽힐' 수 있었던 건 그 부분이 마침 남자들의 주요관심사인 '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여자들의 욕구가 어떻게 억압되고 지워지는지, 여자들을 지배하는 사회/문화적 기제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자들에 대해 먼저 아는 게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을 대출해서 읽고 있는데 이 책은 어떨까. 나는 읽으면서 너무 당연하게 나의 행동 동생과 친구의 행동 엄마의 행동과 말 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완전히 공감은 못 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알게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옆지기는 지금 <욕구들>을 함께 읽고 있다.
(며칠 전 써두었던 글이다. <욕구들> 다 읽고! 다른 책 읽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