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도서관 들어갔다가 우연히 눈에 띈 제목, <쿨한 여자>. 쿨한 여자는 어떤 여자인지 궁금해져서 대출했다. 작가에 대한 정보 1도 없이 앞부분 1부를 읽고,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작가 검색. 뭔 상도 받고 작품도 많고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책도 냈다. 그렇다면 참고 더 읽어보자 하여 끝까지 읽음.ㅠㅠ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순전히 외로웠기 때문이다. 

...

어쨌든 우리는 외로웠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외로웠다. 왜냐면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나와 헤어지고 난 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여러 명(열두 명은 충분히 넘을 것이다)의 남자친구를 만나왔다. 대부분 멍청한 이들이었길 바란다. 

...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군대 간 틈을 꿰차고 새로 등장한 골게터였다. 골키퍼는 나라를 지키느라 몹시 바빴으므로, 한가하게 여자친구 따위를 지킬 수만은 없었다. 그것은 주로 할 일이 없는 백수나 설거지를 취미로 삼는 남편들이 하는 일이라고 이 사회는 가르치고 있다(이것은 절대로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은하계에서 가장 절박한 생물인 군인의 여자친구를 뺏은 나는 은하계에서 가장 비열한 생물이라는 생각을 5분 정도 하기는 했으나, 그뿐이었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 


연애소설이라고 못박아놓은 문구가 있기는 하지만 연애도 사람이 하는 것인데 말이다. 어째서 화자의 외로움은 그저 옆에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고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는 소리를 해대고, 여자는 뺏고 뺏기고 지키고 이런 존재라고 생각??? 이 화자가 대한민국 남자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라고, 그저 일반적인 남자의 모습을 그려내어 무언가를 돌아보게 혹은 비판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고 작가가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표시해 놓은 구절들이 많은데 그걸 일일이 글자로 치려니 내 손목이 아까워서 사진으로 대신한다.)




여자는 항상 외모가 묘사되고(지는 외모가 어떤지 안 나옴) 가장 좋았던 순간, 기억에 남는 순간은 목덜미에 키스하는 순간이고 , 그걸 순수하다고 표현하고. 도대체 뭐가 순수한 건가요. 성욕 없이 키스하면 순수한 건가. 경계는 있고? 순수한 소년과 소녀의 접촉이라 해놓고 아래는 또 뭐지. 





순수 아니구만. '여자아이의 표정은 어찌 보면 싫지 않다는 것 같고'. 이런 착각을 아이들의 행동을 통해 표현하다니. 우웩.

밤바람이 시원하면 하는 게 키스고 껴안기던가. 뭔가 진중하게 발전한다는 건? 도대체 이 화자에겐 진중함의 의미가 무엇인가? 





술 아니라고 했는데 한강 가서 굳이 또 할 거 없다고 술 마시자고 하는 남자. 그렇게 술을 멕여야 겠니. 술 없으면 말도 못하는 머저리도 아니고 이 행동 이해 안 됨. 여자의 마음과 감정은 아웃오브안중, 자신의 감정(감정이라는 게 있다면)만 중요한 사람. 좋아했다고 하면서 회상하는 게 죄 여자의 외모다. '수녀'라니.@@ 그러니까 술 한잔 어때,라는 말은 이미 섹스 한 판 어때,라는 의도를 품고 있다는 말이잖나. 





자아도취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너의 삶의 심장이 그녀의 목덜미냐. 상실한 건 도대체 뭔데.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여성성을 방어기제나 무기(?)로 사용하는 여자 캐릭터도 고구마 만 개지만 이건 뭐. 





세세한 몸 구석구석 말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느낌을 받는지를 알려고 노력하라고. 서로에게 공평한 마무리? 아름다운 이별? 나는 왜 *뼈다구같은 소리로 들릴까? 





ㅠㅠ 뭐라 할 말이 없다, 진짜. 





그녀와 내가 연애를 하며 종종 나누던 '데리다'나, '푸코'나, '보부아르'가 등장하는 지적 대화. 덧붙임을 보면 아마도 화자가 하는 말이 '지적'인 것이었을 테지. 어떤 식으로 지적이었는지는 안 나오지만 말이다. 내가 보기엔 화자도 관심은 오로지 떡*밖에 없는 것 같은데. 뭐가 달라. 철학자 이름 나열은 잘난 척으로밖에 안 보임. '나 이런 사람이야.' 





이런 착각은 자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ㅠㅠ 





'그녀가 내게 건네는 감정의 모든 것'이 무엇인지 알기나 하는지? 소설 전반에 걸쳐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온통 몸, 몸, 몸인데. 아무리 몸과 정신을 분리할 수 없다고 해도 이건 좀. 그래서 감정 = 섹스, 인가? 





도대체 여자가 생각한 '생의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작가가 이 여자캐릭터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쿨한 여자는 어떤 여자인가? 입으로 쿨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쿨하지 못한 것이 여자라는 말인가. 쿨해지려 해봐야 소용 없다는 말인가. 작가는 '쿨'하다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싶었을까? 

화자가 사랑한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사랑했다는 사실의 기억'이 아니라, 화자 자신이다. 스스로 도취되었다. 스킨쉽과 섹스가 감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남자인가? 여자도 그러한가? 뭐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쓰면 안 되지 않나.(사실 쓰는 사람 마음이니 내가 된다 안된다 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것이 사랑의 전부라고 착각하면 정말 큰코 다칠 일 아닌가. 그래서 이 소설의 주제는 뭔가요, 묻고 싶다. 사랑을 어떻게,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고 싶다. 정말 이게 사랑이라 생각한 건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비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비꼬는 것이었다면 독자가 눈치챌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소설 보는 눈이 부족한가, 그런 거 못 느꼈다. 문장을 칭찬하는 말도 있던데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눈에 거슬리는 이상한(?) 문장들이 눈에 띄었다. 이것 또한 내가 문장 보는 눈이 부족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 혹시나 이 소설 읽으신 분들 계시면 좀 알려주세요. 내가 너무 삐딱선을 탄 건지. 그러나 읽어보라고는... 못 하겠어요. 



***

요즘은 소설 읽기가 힘들다. 단연코 소설을 제일 좋아한다고, 소설만 읽는다고, 말하고 다녔는데(사실은 그리 많이 읽지도 못했으면서), 이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내내 머릿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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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6-16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뭐에요. 지적하신 거 다 맞지만 추가해서 이 작가 글도 너무 못쓰는데요 ㅜㅜ

난티나무 2021-06-17 01:38   좋아요 0 | URL
아 속 시원해요! 못 쓰는 거 맞죠! 진짜 아닌 문장들도 올리려다가 말았어요.ㅠㅠ 인용구보다 더 심한 부분들도 있다는...ㅎㅎㅎ

공쟝쟝 2021-06-16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닠ㅋㅋㅋ 아닠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 보부아르 무덤 찢고 나와서 울부짖을 소설이여 ㅋㅋㅋ 울 보부아르온니 아무나 입에 올리지 말라고 ㅋㅋㅋ

난티나무 2021-06-17 01:42   좋아요 1 | URL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저도 두 사람의 책을 아직 제대로 읽은 거 없지만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거든요.^^;;;;;;;
다산책방 이미지 좋았는데 이 책 땜에 완전 깎아먹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