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육식의 성정치]를 읽다 말고 북플로 글을 올렸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뒤에 이 책이 나오더라. 

















예~~~~전에 읽었고, 작은넘이 몇번이나 반복해 읽던 책, 읽을 때마다 슬프다고 말하던 책, 그 책이 [육식의 성정치]에 나오다니. 이참에 다시 읽어봐야 겠다고 온집을 뒤졌으나 프랑스판은 낡아서 내다버렸는지 보이지 않고 역시 낡은 한글판만 있다. (다행이다, 사실 불어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싶었는데 머리 싸매지 않고 한글로 읽을 수 있어서.ㅠㅠ) 


첫페이지를 넘기는데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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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새끼돼지를 죽이지 마세요! 그건 불공평해요."

애러블 씨는 걸음을 멈추고 부드럽게 딸을 타일렀다. 

"펀, 참는 법을 배워야겠구나."

"참으라고요? 아빠, 목숨이 달린 문젠데 참으라고요?"

펀의 뺨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펀은 아빠의 손에서 도끼를 빼앗으려고 도끼 자루를 움켜쥐고 있는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펀, 새끼돼지들을 기르는 것은 아빠가 너보다 많이 알아. 약한 놈은 골칫덩이야. 자, 그만 비켜라!"

펀이 소리쳤다. 

"하지만 불공평해요. 작게 태어난 건 그 돼지 잘못이 아니잖아요. 만약 제가 때어날 때 몸집이 아주 작았다면, 아빠는 저를 죽이셨겠어요?"

애러블 씨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물론 아니지. 하지만 이건 다른 거야. 작은 어린아이하고 작고 약해빠진 돼지는 같을 수가 없는 거야." 

펀은 계속해서 도끼에 매달린 채 고집을 부렸다. 

"다르지 않아요. 이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나쁜 일이에요." (p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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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강펀치. 

옛날에는 아무 생각없이 읽었을 문장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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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벌써 사는 게 시들해." 

윌버는 다시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이렇게 밖에 있다 안으로 들어가고, 안에 있다 밖으로 나오는 것말고는 할 게 없어." 

그때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서 그래, 친구, 친구야" (p.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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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버는 코를 쳐들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따뜻한 우유, 감자 껍질, 밀기울, 켈로그 콘플레이크, 그리고 아침에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 냄새.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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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한테 돼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만도 못해." 

윌버가 되물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도 못하다는 게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만도 못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그건 가장 밑바닥을 말하는 거지. 한계선의 끝이라고. 어떻게 무언가가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못할 수가 있지? 만일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못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럼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야. 그건 무언가 있다는 거야. 아주 조금일지라도 말이야.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잖니." (p.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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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윌버의 배는 비어 있었지만 머리는 가득 차 있었다. 뱃속은 비어 있는데 머릿속이 가득할 때에는 잠들기가 힘든 법이다. (p.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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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버는 샬롯이 먹이를 다루는 방식이 맘에 들었다. 언제나 먹이를 먹기 전에 그것을 잠들게 한다는 사실이 특히 반가웠다.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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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그 거미줄의 일부였다고, 여보. ... 계시가 나타난 거야. 우리 돼지는 보통이 넘는다고 말이야." 

주커만 부인이 말했다. 

"글쎄요, 내가 보기엔 당신이 좀 틀린 것 같네요. 우리 거미가 보통이 넘는 것 같은데요."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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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부분에도 옮겨놓고 싶은 구절들이 있지만 안 읽은 분들을 위해 여기까지만. 

(페미니즘적 시각을 장착하고 읽으면 동화가 새롭게 보일 수 있다.)


1952년 발표, 한국에서 1996년 초판 발행 후 지금까지 꾸준히 다시 찍어내고 있는 책이다. 지은이 E.B.WHITE는 <스튜어트 리틀><트럼펫을 부는 백조>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샬롯의 거미줄>도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다코타 패닝과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단다. 이것도 나중에 봐야지.  

내가 갖고 있는 책은 2001년 개정판인데 이후의 개정판에서는 번역을 더 손봤다고 하니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 2001년판 번역도 좋다. 


[육식의 성정치]에서, 샬롯이 윌버를 달리 '명명'했다고 나온다.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시길.^^ 

그리고 샬롯의 자리에 남은 샬롯2세들이 '샬롯의 딸들'이다. 막 괜히 이런 부분도 달리 읽히고. 

'펀'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엿보는 것도 살짝 마음 아프다. 상징적 부분은 재밌고. 

아주 약간의 뭐랄까 깨어지지 않은 선입견 같은 것들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야기의 구성상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 본다. 


좋은 동화입니다. 주변의 아이들에게, 아마 읽었을 확률이 높겠지만, 어른들에게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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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1-14 0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안그래도 <육식의 성정치> 읽으면서 샬롯의 거미줄이 자꾸 생각나는 거에요. 몇 년 전에 읽었는데 그게 왜 생각날까, 돼지와 거미의 우정 나오는 거였는데.. 왜 자꾸 떠오르지? 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난티나무 님이 올려주신 인용문 읽으니 이 동화가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새로운 무엇이었네요. 페미니즘 장착하고 보는 동화는 정말 다르군요! 저는 제가 읽었던 책 조카한테 가 있어서 제가 그때 쓴 리뷰 찾아봐야겠어요. 난티나무님, 글 감사해요!

난티나무 2021-01-14 19:48   좋아요 0 | URL
책들을 모두 다시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하아... 안 읽은 책도 많은데 읽은 책 다시 읽으려니 엄두가 안 납니다. ㅎㅎㅎㅎㅎㅎㅎ
아이들 책 몇 권 버리면서 들추어보니 동화도 진짜 못 읽겠는 글이 많더라고요.ㅠㅠ
샬롯의 거미줄도 읽으신 다락방님! 오늘도 즐겁게 편안하시길 !!

공쟝쟝 2021-01-15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동화가 ... 근데ㅜ인용문만 봐도 가슴이 저릿저릿해요 ㅠㅠ

난티나무 2021-01-15 20:29   좋아요 0 | URL
제가 유독 그런 부분들만 골라서 그런 걸 거예요.^^;;; 기회 되면 한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