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그램 중 자주 챙겨보는 것들이 있다. '신박한 정리', '구해줘 홈즈', '건축탐구-집'. 정말 내 집처럼 물건들이 많고 지저분한 집들이 버리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 새롭게 변하는 것이 좋고(신박한 정리), 매물로 나온 집을 구경하며 저건 좋다 이건 싫다 나의 취향을 다듬어보는 것도 좋고(구해줘 홈즈), 잘 지었거나 특이하거나 한 개성 넘치는 건축물인 집을 찾아가 거기 사는 사람의 삶을 엿보는 것도 좋다(건축탐구-집).

이상하게도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고 그래, 결심했어! 하고 집정리를 시작하거나 집을 확 바꾼다거나 하게 되지는 않았다. 아니, 결심은 늘 했지만 실천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갖고 있는 물건들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뭔가로 만들기를 하는 것인데, 그 취미 때문에 사소한 물건이나 잡동사니를 버리지 못한다. 뭔가를 만들고 남은 종이조각이나 천쪼가리조차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편이니, 내 집이 어떤 모양새인지는 더 말 안 해도 얼추 짐작이 되리라. (만들려고 생각했던 그것을 실제로 만드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 한다. 웃프다.)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는 이민가방 하나와 캐리어 하나였던 짐이, 1년 2년 세월의 더께와 함께 지금은 엄청나게 몸을 불려버렸다. 이사도 잦아서(2~3년에 한번씩 옮겨다녔다) 한 집에 정을 붙이고 살기 힘든 형편이었다. 지금 사는 집은 여기저기 문제도 많고 재미도 없는 단층집이다. 이사 들어올 때 페인트칠이라도 싹 다 했어야 했다. 빌려사는 집이고 또 언제 이사갈 지 모르니 대충 살자 했던 게 벌써 8년째다.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다면... 모처럼 집을 정리해 보자는 마음을 먹는다. 사실 코로나로 거의 모든 것을 집에서 해결하고 생활하다 보니 어느 쪽으로든 돌파구 내지는 탈출구를 찾아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더이상은 물건들이 널려있는 집안이 보기 싫어진 것일 수도 있고. 또 살림을 식구들과 나누어 하자 했을 때 그것이 쉽지 않았는데, 너무 많은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널려 있다는 게 큰 이유 중 하나일 수 있었다. 그래서 정리에 좀더 박차를 가하기 위해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뭐든지 시작하기 전에 책을 뒤져본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줄리 칼슨, 마고 거럴닉 [수납 공부] 

오! 이런 수납 좋습니다. 플라스틱 용기를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유리나 나무용기, 바구니 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그리고 역시 뭐든지 결론은 깔맞춤.ㅎㅎㅎ 일단 먼저 버려야 깔끔한 수납이 되겠는데. 그런데 정리가 아니라 지름신이 내릴 수도 있다. 예쁜 거 왤케 많나요.@@ 내가 물건들을 잘(!) 버리고 집이 넓어지면 이런 식으로 정리해야지 이런 바구니를 놓아야지 하게끔 만드는 책. 

















윤선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정리를 시작했다] 

제목이 내 맘인 것 같아서 읽었는데, 그냥 그랬다. 지금 내 상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 이 책에서 건진 건 앞부분의 인용구.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 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세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이 세 가지를 바꾸지 않고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오마에 겐이치. 
















곤도 마리에 [정리의 힘] 

오며가며 들어본 이름이라 빌려봄. 흠. 한번에, 해치우라고? 어떻게? 이렇게 많은데?? 정리전문가들의 말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아마 그 한번에 해치우라는 것은 일단 마음을 먹었으면 되도록 짧은 기간 안에 많은 것을 버리고 정리하라는 말일 것이다. 응 나 이제 시작할 거야. 먼저 버리기 가장 쉬운 옷부터 공략하라고 한다. 옷을 다 끄집어내어 쌓아놓고 하라는데, 차마 그럴 엄두가 안 나서 일단 붙박이옷장 문을 열어보았다. 안 입는 옷, 안 입는 옷, 한번도 안 입은 옷, 들이 줄줄이 걸려있네. 그런데 막 뺄 수가 없어. 왤까. 무엇 때문일까. 아 나는 안 되는 걸까. 정녕. 















선혜림 [처음 시작하는 미니멀 라이프] 

음, 비슷한 주제의 비슷한 책들을 여럿 읽고 나면 어 이 책은 무슨 내용이었더라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ㅠㅠ 















박미현, [날마다 미니멀 라이프] 

"행복을 주는 물건을 억지로 줄이지 말고 그 외의 것을 비워 균형을 맞춰보세요.(박미라)" 

"생각, 말조차도 점차 비워내는 중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말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불필요한 말, 상처 주는 말을 비워내는 일은 물건 비우기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다.(탁진현)" 

안 쓰는 건 다 버려라!가 대세인 책들 중에서 억지로 줄이지 말고 균형을 맞추라는 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정희숙, [똑똑한 정리법] 

실제로 정리할 때의 규칙이랄까, 정리의 기본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 "자신의 공간이 필요없는 사람은 없다." 
















밀리카 [마음을 다해 대충 하는 미니멀 라이프] 

이런 책도 있어야지. 이렇게 완벽하고 저렇게 흐트러짐 없이 사는 모양만을 보는 것은 괴롭다. 지향하는 바를 지키려 애쓰면서도 잘 되지 않거나 조금 흐트러지는 것, 이런 모습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챕터 사이사이 들어있는 남편의 글들이 웃김. 
















도미니크 로로, [심플한 정리법] 

이거슨 정리책인가 철학책인가. 나는 철학책으로 분류하겠다. 

"현대사회는 우리가 쟁취하고 소유하려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라며 오히려 그렇게 하도록 부추긴다. 하지만 물건은 우리로 하여금 외부 세계로 눈을 돌리게 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물건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지금'이 아닌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다." 

"버리는 일은 어렵다. 이 행위는 인생에 관한 개인의 문제들을 보여주는 데다 바로 그 자리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해야 하기에 고통스럽다. 버리는 것은 존재의 이유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강요한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의식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버리는 것이 그토록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버리는 것은 진정한 실존적 행위다. 물건에 둘러쌓일수록 고통이 느껴지는 이유는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나를 찾고 싶고 나를 지키고 싶고 나로 존재하고 싶으므로 필요없는 물건들을 버리기로 했다. 


관련 책 읽기를 시작하니 그만 꼬리에 꼬리를 물어 버렸다. 이밖에도 읽은 책들이 더 있지만 아 뭐야 싶은 것들이라 생략. 맨처음 보았던 [수납 공부]를 한번 더 읽고 정리책 파기는 마무리. 이젠 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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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1-20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 님 정말 집요한 책읽기를 하시는 분이신 것 같아요!! 멋지심!!! 그러니까 [수납공부]책이 정말 좋으셨다는 거지요? 저도 찜합니다!! 저도 아직 옷을 많이 버리지는 못하고 있어요. 흑,,,우리는 옷을 정말 사랑하는 거야!!!ㅎㅎㅎㅎㅎㅎㅎ

난티나무 2020-11-20 15:53   좋아요 1 | URL
ㅎㅎ 관심 있는 것만 집요하게 되지요.ㅎㅎㅎ 이번엔 기필코!!!! 많이 버리리라 다짐했거든요.ㅠㅠ
읽은 책들 중에 수납공부, 가 가장 좋았다는 거구요, 책 뒷편에 유용한 물건을 살 수 있는 샵 정보가 있으니 라로님께 특히 요긴할 거 같아요. 사지는 마시고 빌려보세요. 미국 책이니 아마 도서관에 있겠죠? ^^

수이 2020-11-20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어요 언니 ㅋㅋㅋㅋㅋㅋㅋ 미친듯 버리다보니 어느덧 백리터짜리 두 개로 모자라 내일 더 사오려구요. 버리는 쾌감이라니!

난티나무 2020-11-20 23:36   좋아요 0 | URL
버리는 것도 중독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더라고요. ㅎㅎ 으쌰으쌰!! 저도 어제오늘 부피로 따지자면 200리터 정도는 들어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