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월의 4분의 1
오사키 요시오 지음, 우은명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읽을 책을 고를 때 계절의 영향을 받는 편이다. 겨울에는 따뜻한 방에 누워 태백산맥같은 장편소설이 제맛이 나고 봄에는 가네시로 가즈키처럼 통통 튀는 책에 손이 가고 여름에는 아무래도 간담을 서늘하게 하거나 손끝에 땀을 나게 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가을에는 눈물 한 방울 흘릴만한 연애소설을 찾게 된다. 누군가의 입소문으로 듣는 책도 좋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도 좋지만 제목이나 표지가 맘에 들어 손에 들었는데 그것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면 고민할 일도 없이 그 책을 고르게 된다. 이 가을과 잘 어울리는 책을 만났다. 그것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다. 거기에 연애소설이다. 연애소설이라는 통속적인 말로 이 책을 설명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이상의 것이 이 책에 담겨있다.
오사키 요시오를 만난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석달남짓이란 시간이 이 작가를 알게 된 시간이다. 그의 책과 인사를 한 건 이 책을 포함하여 세번이다. <파일럿 피쉬>와 <아디안텀 블루>가 이 책보다 먼저 인사를 건넨 책이다. 따스한 인사였다. 그의 책은 단 세권을 만났지만 첫인사를 나누었던 <파일럿 피쉬>는 손때로 흔적이 남을만큼 여러번 읽어보았다. 첫인상을 기억에서 지울 수 없어 잠이 들 때면, 차를 마실 때면 그의 책이 떠올라 가방 한 편에 그의 책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여름 내내 내 가방이 제 집인양 살았던 파일럿 피쉬는 이제 <9월의 4분의 1>이란 책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어야 할 것 같다.
<9월의 4분의 1>은 요시오의 첫 단편집이라고 한다. 단편집인지도 모르고 책을 읽던 나는 책의 첫 이야기인 '보상받지 못한 엘리시오를 위해 '가 끝나고 다른 제목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주인공을 확인하며 그제서야 책이 단편집인 줄 알았다. 첫 이야기는 뒤에 이야기가 더 많이 펼쳐지리란 기대에 생각을 접고 책장을 넘겼는데 그 이야기가 끝이었다는 생각에 책을 덮고 커피 한잔을 마셔야했다. 책의 내용들이, 주인공이 타고는 했던 열차를, 체스판을, 미술관을 머리로 쫓았다. 차가운 가을 바람을 커피로 녹이며 요시오의 책은 내 손에 있는 커피의 온도만큼 따뜻한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
책은 네가지의 단편으로 되어있다. 네 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은 오래전에 읽었던 책에 꽂아두었던 마른 낙엽을 만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 낙엽에는 분명 그 낙엽을 줍고 책에 놓아두었던 그 해의 가을이 들어있다. 낙엽에 스며든 그 시간들은 잊고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손을 댄 책에서 발견했을 때 바로 어제였던 것처럼 생생하게 그 시간을 기억나게 한다. 그리고 그 시절의 상처를 바라보게 된다. 그 시절에는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아프고 힘들어서 덮어버린 기억이 시간이 흐른 후에 매마른 낙엽처럼 아픔은 얇아지고 기억의 줄기들은 더욱 선명해진다. 마른 잎의 줄기들이 더욱 선명해지듯.
선명해진 기억은 그 시절의 나를 바라보게 하고, 내가 놓친 것 혹은 내가 외면했던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준다. 그 조각을 맞추는 것은 나의 몫이다. 요시오작가는 독자에게 매번 이렇게 퍼즐 한판을 준다. 나를 이루는 기억들을 맞추는 퍼즐을 선물한다. 기억의 조각들을 불러내는 것은 요시오의 몫이었지만 퍼즐을 맞추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 퍼즐을 맞춤으로써 나는 온전한 기억을 갖게 된다. 하지만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아픔이나 상실감등을 다시금 떠올려야하는 용기를 내야한다. 아직은 상처를 들쳐낼,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떠올릴 용기가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책을 읽다보면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위로해주는 손길이 있다. 이것이 오사키 요시오란 작가의 마법이 아닐까?! 그 손길만 있으면 아프더라도, 힘들더라도 내 기억의 퍼즐을 완성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네가지 이야기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든 것은 세번째 이야기 <슬퍼서 날개도 없어서>이다. 주인공이 사랑했던 마미의 노래가 내 귀에도 울리는 것 같았다. 읽는내내, 읽고 난 후 지미 페이지의 노래를 들어야했다. 세번째 이야기를 읽을 때 나도 모르게 마미처럼 "우--왕"하고 소리를 질러보았다. 과거에 죽어간 공룡을 위해, 저항없이 사라지고 만 것들을 위해, 내 안에서 사라져 갔을지도 모를 기억들을 위해, 열정을 위해 소리를 질렀다. 울음만이 사람을 치료하는게 아니라는 것, 소리내어 말하는 것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치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마미를 통해배웠다.
체스와 장기 그리고 노래와 글쓰기 이 네가지는 각각의 단편들에서 주인공들의 삶에 대한 애착으로 나타난다. 이것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이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을 포기하기 보다는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았다. 그 속에서 삶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사랑을 한다. 물러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것. 스스로는 도망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꿈을 향해, 사랑을 향해서 그들은 달리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달리기 위해서는 앞만 보고 달려서는 안된다. 과거를 돌아보며 달렸던 기억을 떠올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타인은 어떻게 달리고 있는지 살펴보기도 해야하고, 앞으로 달릴 길을 잊지 말아야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 달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사랑받았던 이들의 추억과 함께 달리고 있음을 잊으면 안된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들은 어디선가 분명히 내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잊으면 안된다.
가끔 책의 구절만 보고 책을 구입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아마 오사키 요시오의 책도 그럴 경우가 많을거라 생각한다. 내가 오사키 요시오의 문체에 반한 것이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책에서 좋은 구절을 옮겨적을 때면 노트는 몇 페이가 넘어간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들을 만날 때면 가슴이 울린다. 의미가 없는 글자들이 그의 손에 들어가면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아름다운 보석이 된다. 책 속에 들어있는 네가지 이야기들은 다음에 읽을 독자를 위해 좋은 구절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쳐야겠다.
-보상받지 못한 엘리시오를 위해
<나는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선명하게 네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을지 느낄 수 있다. 온몸으로 너의 존재를 느끼고 있어. 이 세상 끝 어딘가의 미술관에서 말 못하는 청동상 옆 잔디에 누워, 너는 하늘의 별을 향해서 우주의 확장이 멈추길 기도하고, 그리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테지?
퀸이 오로지 킹을 지키듯이, 어쩌면 나는 지금의 너를 지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말일지도 몰라. 그리고 퀸이 모든 것을 걸고 그렇게 하듯 나도 전력을 다해 너를 찾아내서 구해내겠다. 그것이 만약 의미업는 그저 하나의 구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지금 내가 파야만하는 구덩이다.> p.59~60
-켄싱턴에 바치는 꽃다발
<우리들은 분명 그저 지식으로써 명왕성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본 적도 없으며, 또 앞으로도 눈으로 직접 확인할 날은 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걸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라고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 있어서 분명히 존재하지 않았을 요시다 소하치는 '그러나'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죽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지금까지 없었던 작지만 밝은 빛을 뿌려주고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존재의 불확실함을 상징하고 있는 듯한 명왕성과 마찬가지로 보지도 만나지도 못했지만, 소하치는 나의 요 10년 간의 존재이유를 설명해주고, 크나큰 용기마저 주고 있다. 내 마음의 어딘가를 선회하는 작고 과묵한 별이 되어서> p.111-112
-슬퍼서 날개도 없어서
<"우--왕--." (중략) 그것은 내가 들어왔던 어떤 노래보다도 슬픈 외침이었다. 마미는 사랑하는 것을 지키지도 못하고 그저 사라져가야만 했던 공룡들의 우울함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일까?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져 몸이 굳어가는 괴로움을 견디며, 이윽고 대지 위에 쓰러져 발버둥치는 고통, 그리고 죽음 직전에 토하는 분노와 슬픔의 외침.(중략)
나는 차가운 방바닥 위에 지친 몸을 누이고, 선잠 속에서 마미의 외침을 떠올리며 반복해서, 반복해서 이렇게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로큰롤이다, 라고.> p.138~139
-9월의 4분의 1
<어떤 의미에서는,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을 실존주의적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목적도, 용도도, 물론 설계도도 없었다. 그저 정신을 차리자 사랑의 감정만이 턱하니 존재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지우기 위해 만들어진 지우개가 아닌 것처럼. 무언가 목적을 가진 사랑이 아니었다. 단지 막연하면서도 돌연한, 그러나 확실히 실존하고 있는 것이다.>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