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오히라 미쓰요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가르치던 학생이 이 책을 참 좋아했었다. 그 당시에는 이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었다. 이 책을 좋아하던 아이는 남자아이였다. 남자아이여도 여성적인 행동과 말투, 얼굴 생김새가 참 이뻤던 그 아이는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해도, 학원 동생들이 기분 나쁜 우스개 소리를 해도 더 크게 웃으며 상황을 밝게 만들려고 애쓰던 착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마음이 아름다운 아이이다. 그 아이를 가르치는 것을 그만둔 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갑작스레 그 아이의 밝은 웃음소리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같이 웃음 짓게 되었는데 그 때 이 책이 생각났다. 그 아이에게 이 책은 무엇을 주었을까라는 생각으로 읽어내려갔다. 그 아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책은 오히라 미쓰요란 여성의 자전 소설이다.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책에 들어있다. 키가 160도 안되는 작은 체구의 여성이 겪었다고는 믿지 못할 일이 그녀의 인생에 들어있다.1965년 10월 18일 생으로 중학교 1학년 때 전학간 학교에서 그 반의 짱(?)을 무시했다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일로 당한 왕따를 견디지 못하고, 중학교 2학년 때 할복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하게 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했다. 그 후 중학교 3학년 때 믿었던 친구들에게 또 한번 배신을 당하고 그후 자포자기 심정으로 비행을 일삼는다. 열여섯 살 어린 나이에 야쿠자 보스와 결혼하고 조직원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등에 문신을 새긴다. 이혼하면서 6년 동안 몸담았던 야쿠자 세계를 떠나 호스티스로 전전하며 살다가 삶에서 중요함을 가르쳐주신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 분의 관심으로 삶을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그 이후 한자도 제대로 못 읽는 실력으로 공부에 매진하여 공인중개사, 사법서사 자격 시험에 연달아 합격하고, 마침내 스물아홉 살에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이것이 그녀의 약력이다. 이 약력만으로 그녀의 인생의 파란만장을 넘어선 삶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손으로 배를 가르면서 중학생의 가녀린 그녀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는 삶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많다. 나이가 적건 많건 각자의 나이에는 견디기 힘든 일이 한가지씩은 꼭 생긴다. 그것을 나는 가끔 어른이라는 이유로 시간이 지나가면 해결해줄거라고 말하며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들을 위로하고는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었다. 그 아이들의 상처를 함께 느껴주고 그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과 혼날 일은 따끔히 혼내주는 것을 아이들은 원했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문제를 멀리서 바라보며 방관하는 역할만 맡은 것이다.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어른의 역할을 한 것이다.

 

미쓰요란 여성이 아버지의 친구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은 그 분께서 그녀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은 혼내주고 격려할 것은 격려하고, 그 중 그녀의 마음을 울린 것은 아마 그 분께서 그녀를 믿는다는 그 말 때문이지 않았을까.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건 얼마나 큰 선물인가. 부모를 발로 차고 돈을 빼았으면서도 그녀는 속으로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부모에게 제발 자신을 멈춰달라고, 나를 혼내달라고, 내가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부모는 딸 아이가 상처를 받은 것이 자신들의 탓인 것만 같아 때리지도 혼내지도 못하고 그저 딸이 발로 차도 돈을 훔쳐가도 묵묵히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딸의 상처를 감싸주지 못한 일을 그것으로 속죄라도 하는 것처럼. 미쓰요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을 때 부모님은 울면서 그녀를 받아주었다. 미쓰요는 몰랐지만 언제나 뒤에서 항상 그녀를 기다려주신 분들이 있었던 것이다. 잠도 잘 자지 못하고, 밥도 잘 먹지 못하면서 그녀를 기다린 부모님이 계셨다. 미쓰요가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친구분의 진심과 부모님의 사랑이 아니였을까한다.

 

이 책을 좋아하던 아이는 그녀가 좋다고 했다. 힘들어도 나쁜 길로 빠져들었지만 결국 이겨내고 성공을 쟁취한 그녀가 좋다고 했다. 그 아이는 그녀가 변호사로 활동해서 돈을 많이 벌어 좋은 것이 아니라 그녀와 같은 시절을 보냈던 비행청소년을 돕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자신도 그래보고 싶다고 했다. 힘들어도 꿋꿋하게 견디며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여성적인 성향이 많다는 것은 그 아이의 강점이자 단점이라고 아이는 스스로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말투나 행동을 일부러 바꿀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친구와 가족이 있고 남보다 섬세해서 분명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잘 챙길 수 있을거라고 그 큰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나는 그럴 수 있을거라고 말한다. 분명 그럴 수 있을거라고 말하며 그 아이에게 믿는다고 말했다.

 

그 아이는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분명 미쓰요를 떠올리며 생각할 것이다. 그녀에 비하면 이런 어려움이나 슬픔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겨낼 것이다. 나도 힘든 일이 생기면 미쓰요와 그 아이를 생각하며 이겨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변호사가 되어서도 자신의 과거를 고스란히 품고 살겠다는 의지로 등에 문신을 지우지 않은 그녀에게 멀리서나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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