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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 개와 함께한 삶 그리고 사랑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가을에는 웃음을 선사하는 책도 만나고 눈물을 선사하는 책도 만났지만 두가지를 동시에 주는 책은 아직 만나지 못했었다. 재밌으면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책은 만나기 어려웠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그런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말리를 만나면서 나는 배가 아플만큼 웃었고, 차가운 가을 바람을 따라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다.
말리는 지난날 나와 살았던, 살고있는 강아지를 떠올리게 했다. 이상하게도 내게는 세상 모든 개가 강아지라고 불리운다. 이제 6살이 되는 우리 누렁이를 보고 친구들은 무서워서 뒷걸음질 치지만 내게는 한없이 순하고 귀여운 강아지이다. 어릴 때 부터 강아지와 함께 지내서인지 강아지가 자라 개가 되어도 내 눈에는 어린 시절의 귀여운 모습이 그대로 보여 강아지가 되어버린다. 아마 강아지를 길러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기르는 개는 한없이 강아지로 남아있어 내 곁에 영원히 머무를 거라 믿었던 경험, 하지만 강아지는 사람보다 나이를 빨리 먹고 일찍 죽는 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하면서 울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두번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상실감을 느꼈음에도 우리는 다시 강아지를 기르게 되고 더 사랑하게 된다. 그건 전에 길렀던 강아지가 내게 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선물이 아닐까한다. 언젠가는 죽는다하더라도 겁내기 보다는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함께 웃어주고 아껴 주는 것이 진정 삶을 즐길 줄 아는 방법이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 강아지가 죽어도 잊을 수 없도록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고 간다.
<말리와 나>는 그로건 부부가 말리를 기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신혼인 그로건 부부, 아내 제인은 남편 존이 사온 화분에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화분을 물을 뚝뚝 흘리는 흙덩어리로 만들어버리게 되며 자신은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할 것이라는 겁을 갖게 되고 아이를 갖기전에 예비 연습으로 동물을 기르기로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강아지다. 그들이 발견한 강아지는 말리, 농장에 가서 말리의 엄마의 따뜻한 성품에 반해 말리를 사기로 계약을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때 그들의 눈에 나타난 진흙을 잔뜩 뭉친 덩치가 큰 개가 미친듯이 달려온다. 그들은 설마하며 그것이 농장주인이 얼버무린 말리의 아빠가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그 진흙을 뭉친 에너지가 넘쳐 흡사 미쳐보이기까지 하는 개는 말리의 아빠였다. 말리를 삼주후에 데릴러 가기로 한 존은 말리의 종인 래브라도 리트리버에 대해 공부하며 말리의 좋은 성품을 발견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의 눈을 잡아두는 글은,
<강아지 성격은 부모를 보면 잘 알 수 있다.새끼는 놀랍도록 많은 행동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존은 절대적으로 말리가 엄마를 닮길 빌고 빌며 말리를 데리고 왔다. 그러나 인생이 바란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말리는 다른 어떤 개들보다 에너지가 넘쳤다. 에너지가 넘쳤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말리는 아마 하루에도 에너지가 몇번이나 충전이 되는 듯했고 그 에너지를 산책을 시키는 주인을 끌고 다니거나, 집에 물건을 수시로 부수거나, 주인에겐 힘겨운 레슬링을 장난으로 알며 에너지를 방출한다. 말리가 가장 많이 하는 표현은, '우와!!이렇게 신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우리 한번만 더 해요.'였을 것이다. 말리는 분명 아빠를 닮은 게 확인되었다. 말리가 아빠를 닮았다하더라도 말리는 이미 그로건 부부의 가족이었다. 그로건 부부는 말리가 말썽꾸러기인 것을 알았지만 그런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말리에게 존과 제인은 푹 빠져있었다. 말리는 다른 개들보다 사람을 보면 흥분을 잘하고 반갑게 인사하기 위해 온 몸을 내던지는 것 뿐이었다. 물론 그 몸이 45kg이 넘는게 가끔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말리를 보며 떠오르는 건 하나다. 말리는 사는게 즐겁다, 라는 것. 말리는 즉각 반응한다. 혼이 나더라도 그 순간이 지나면 잊었고 어제 놀았던 사실을 잊은듯 오늘이 처음 노는 날인 것처럼 놀았다. 그렇게 열정을 쏟아서 놀았다. 밥을 먹는 것도, 매번 주인과 노는 시간도, 산책하는 시간도, 풀장에서 수영을 하는 시간도 말리에게는 놀이였다. 말리처럼 순간을 즐길 수 있다면 내 삶도 얼마나 열정이 넘칠 것인가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말리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적어도 5분에 한번씩은 웃음을 터트렸으며 10분에 한번씩은 배를 부여잡아야했다. 말리와 함께 하는 삶은 웃음 그 자체였다. 존과 제인도 그것을 알았고 그들은 말리를 사랑했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멈춰서 버릴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항상 날뛰는 말리가 어깨를 제니 다리 사이에 끼고는 큼직하고 뭉툭한 머리를 제니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꼬리는 축 늘어져 있었는데 이 꼬리가 우리 두 사람 중 하나 아니면 무엇인가를 치지 않는 모습을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눈을 제니 쪽으로 향한 말리는 작은 소리로 낑낑대고 있었다. 제니는 말리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갑자기 얼굴을 말리 목의 두툼한 털가죽에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창자를 끊어내듯 격렬하고 멈출 수 없는 흐느낌이었다.>
말리가 말썽만 피우는 데 소질 있었다면 이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말리는 주인을 사랑했다. 제인이 아이를 잃고 돌아온 날 말리는 평소와 다르게 제인에게 뛰어들지 않고 제인의 기분을 감지하고 그녀를 위로하던 말리의 모습은 내 기억 속의 남을 것이다. 강아지들은 신기하게도 주인의 기분을 안다. 우울한 기분으로 우리집 누렁이에게 가면 누렁이는 보통 때와는 다르게 내게 달려들지 않고 내가 자신의 등을 쓰다듬게 가만히 엎드려 주었다. 그 지루한 시간을, 내가 마음을 달랠 때까지 누렁이는 잠을 자지도 않고 그 시간을 견뎌주었다. 이런 때 생각하게 된다. 개는 사람의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라고. 가족은 말하지 않아도 신기하게도 서로의 기분을 눈치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개를(강아지를) 식구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 개처럼 멍청한 개에게서도 사람은 많은것을 배울수 있다.
말리는 매일 매일을 끝없는 즐거움으로 채우는 것도 가르쳐주었고, 순간을 즐기는 것도 가르쳐 주었으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도 가르쳐주었다.
또한 일상의 단순한 즐거움도 느낄수 있게 해주었다.
숲속의 산책, 첫눈 오는 날,희미한 겨울 햇빛 속의 낮잠. 나이가 들고 쇠약해지는 과정에서 말리는 어려움 앞에서도 낙관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무엇보다도 말리는 우정과 헌신, 변함없는 충성심을 가르쳐주었다.>
말리의 만나면서 신나게 웃게 되었지만 다음 페이지로 손을 넘길 때면 설마 말리가 죽는 이야기가 나올까 겁이나기도 했다. 개는 사람만큼 살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알면서도 슬픔은 매번 더 크게 다가온다. 말리도 늙어갔다. 신기한 것은 말리는 늙어가면서도 말썽꾸러기라는 성격은 절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게 말리의 매력이고 사랑스런 점이었다. 책을 덮으면서 말리가 나에게 왜 자신이 이야기를 읽는동안 다른 것을 생각하느라 순간의 즐거움을 잃냐는 이해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았다. 미안, 말리 나는 너보다 삶을 사는 방법이 서툰가봐.
개는 사람의 수십년의 세월을 단축해서 살게 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삶을 제대로 사는 방법을 사람보다 더 잘 아는 것 아닐까? 삶을 값지게 사는 것은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것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개들은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아닐까한다. 순간의 즐거움을 잃지 말라! 말리를 통해 이 말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하면 표현하고, 즐거우면 웃고, 곁에 있는 사람이 슬퍼하면 함께 슬퍼해주고, 기뻐하면 같이 기뻐해주고 말리는 살아있는 동안 그로건 가족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었고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그것은 멈출 수 없는 사랑의 샘물 같은 것이다.
그로건 부부가 말리를 잃고 나서 다른 개를 기른 것을 보며, 미소 짓게 되었다.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주는 것, 그건 말리가 알려준 첫번째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말리가 어떤 식으로든 삶의 모범이 된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발코니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생각해보니 녀석이 ‘잘 사는 것’의 비결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멈추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며, 마치 사춘기 소년 같은 활력, 용기, 호기심, 장난기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내라.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달력이 몇 장이 넘어가건 젊은 것이다. 괜찮은 인생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