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 지옥으로부터의 자유
삐에르 쁘띠필 지음, 장정애 옮김 / 홍익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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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랭보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늦은 밤 ocn에서 해주던 선정적인 영화에서였다. 랭보의 삶을 영화화한 ‘토탈 이글립스’라는 영화였다. 그때만 해도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그것은 무척이나 선정적이고 독특한 기억으로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특히나 영화 속에서 그가 지평선을 향해 내뱉던 ‘영원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 ...’ 이라는 시구는 잊혀지지가 않았다.

  시간이 좀더 흐른 후에야 그가 꽤 유명한 시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목적 없이 찾았던 도서관에서 그의 시집을 빌린 후 뜻도 모르고 읽었었지만 제대로 읽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모든 문학에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작품이 써졌던 시대에 영향을 받는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시도 아닌 것을 무작정 읽어대기만 했으니 제대로 읽힐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좋다고 열심히 읽었지만 나에게 너무 난해했기 때문에 금세 손에서 놓아버렸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 또 다시 그를 찾게 되었을 때 가장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책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의 태생부터 삶 그리고 절필 그 후의 삶에 이르기까지. 그의 마지막까지 읽고 싶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두꺼웠다. 물론 다른 얇은 책들과 안의 내용을 비교도 해보았다. 두껍다는 것은 그만큼 글 쓴 사람이 많은 것을 가지고 할말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신용해 보기로 했다. 책에는 방대한 그러나 어떻게 보면 모자른 부분도 있는 랭보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두꺼운 만큼 방대하게 랭보에 관한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뿌리부터 조사해서 밝혀 두었다. 그 점은 정말 놀라워 할 점이다. 생각지도 못한? 어떻게 보면 관심이 없는 그의 조상부터 밝히기 시작하니까 말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 그의 학창시절부터 시를 쓰던 시기 이였다. 그에 대해 남아있는 최대한의 자료를 끌어 모아 친철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조금 지루한 부분도 있었다. 별로 궁금하지 않은 점 같은 것 말이다.

  많은 분량이지만 역시나 궁금한 것을 모두 파헤쳐 주지는 못했다. 이건 아마 랭보 본인을 만나지 않는 이상 충족되지 못할 궁금증일 테니 따로 이야기 하지 않겠다.


  읽는 내내 랭보의 삶을 뒤 쫓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다 읽고 난 후에는 그에 대한 감정이 쌓여 어찌할 줄을 모를 정도였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와 이야기 하지 못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이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었다. 이런 종류의 책의 역할로 치차면 훌륭하지 않을까. 그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만족한 책이다. 앞으로도 좀더 많은 것을 다룬 랭보에 관련된 책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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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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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다중인격이라는 정신적 장애 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주인공이 주장하는 내 안의 적이라는 존재는 이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그것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

이미 1994년에 사라진 다중 인격 장애라는 병명의 병은 옛날에는 빙의 같은 귀신들림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이 특이한 증상에 관심을 가진 의사들이 많았고 20년간의 치열한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다중인격이란 정말로 한 사람 안에 여러 개의 성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내부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정신 상태의 일부분들이 일시적으로 그 사람 전체를 조종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보통 상태에서 전체성을 유지하고 있던 정신상태가 일시적으로 혹은 지속적으로 분리되어 한 부분의 정신이 그의 전체를 조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을 이해하는데 매우 흥미로운 자료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도입부를 읽으며 ‘뭐 이런 따분한 이야기, 혹은 허구적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가 늦춰져서 기다리는 시간 갑자기 다가온 남자. 그리고 그 남자가 끊임없이 뱉어내는 듣고 싶지 않지만 귀에 달라붙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 나는 점점 책에 빠져 들었고 이 당황스러운 텍스토르 라는 인물에 호기심을 느꼈다. 만약에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고 상상해서 글을 쓴 것이라면 작가는 너무나 인위적인 글을 쓴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강간을 저지르고 그걸 줄줄이 이야기하는 미친 사람.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인물에 매력을 느끼기고 했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재미있고 기상천외한 곳이 될 것인가. 이야기는 중반에 접어들고 제롬의 아내를 그가 살해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까지도 난 그가 다른 인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가 정말 다른 인물이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그이면서 그가 아니는 같은 인물이었다.

  제롬에게 있어 텍스토르라는 존재는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그의 내부의 자아. 숨겨져 있던 인격이다. 숨겨져 있으나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 인격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충동(가령 묘지터에서 그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강한 성적 충동)으로 인해 하나였던 정신이 분열되고 그 분열의 파편 하나가 전체를 조종하게 된 것이다. 그가 바로 텍스토르라는 존재이다. 제롬이 잊은 기억은 물론 제롬이 만들어낸 허구속의 과거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인격 말이다. 

작가는 이런 인격 분열의 모습을 ‘내 안의 적’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해 놓았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적 욕망의 한 단면을 섬뜩하게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사람은 단세포 생물이 아니라서 그런지 복잡하다. 그리고 그런 복합적인 모습이 하나인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그 속에서 날뛰는 부분들은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속 존재와 같다. 그것을 글로 세상으로 이끌어내 보여줬다는 면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화장법이라는 것의 대해 한정되어 있던 의미를 확대된 의미 혹은 본래의 의미로 보여준 것 같다.

  내 안의 적. 그들은 지금도 우리들의 정신이 분열되는 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방법으로 화장법을 내세울 것이다. 그런 적의 수단에 대응할 방법은 없다. 그것은 그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뭐 흔한 얘기로 자신을 이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랬겠지만 앞으로도 한 사람이라면 큰 과제일 것이다. 자신안의 숨겨진 많은 적들 그들을 이기기란 생각보다 쉽지가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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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네 - 황금이삭 1
정현종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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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시집 제목을 읽었을 때 생각났던 책 제목이 있었다.

‘견딜 수 없는, 미쳐버리고 싶은’ 이라는 책이다. 세계유명작가들의 단편을 모아놓았던 책이었지만 글을 옮기는 과정이 이상했던 것인지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견딜 수 없이 미쳐버리는지 알았다.

 

 ‘책 제목은 잘 정했네.’ 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일종의 실망감 때문이었을까 처음 ‘견딜 수 없네’라는 제목을 보고 이 시집 역시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었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고 내가 예상했던 견딜 수 없음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은 시간과 권태 그리고 그가 찬양해 마지않는 투명함 같은 것들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를 읽는 내내 나를 이끈 것은 시인의 연륜 이었다. 시인이 가진 세월의 깊이가 그가 말했던 ‘네 눈의 깊이’가 느껴졌다. 

 

   [네 눈의 깊이는 네가 바라보는 것들의 깊이이다.

   네가 바라보는 것들의 깊이 없이 너의 깊이가 있느냐.]

 

  그의 눈의 깊이가 순간에 의지에 치졸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의 눈의 깊이와 너무 달라 고개를 들게 했다. 왜 깊이의 차이를 느끼고 고개를 숙이지 않고 고개를 들었냐 면은 하늘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런 저런 상념들로 인해 중력이 몇 배는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하고 되돌아보게 됐기 때문이다. 언제나 최고의 화가가 그려놓은 최고의 작품인 하늘이 내 배경이 되어주고 있는데 왜 그걸 잊고 있었던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인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연륜과 함께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인생의 막바지에 대한 이미지였다.   늘 그렇듯이 하나씩 열거하며 마무리를 잘 못하는 습관을 갖고 있어서 이번에는 한 가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를 콕 찍어보겠다.


비스듬히 p21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 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서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기댄다는 의미에 나는 많은 것을 부여하고 싶다. 무언가 기댄다는 행위가 나에게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졌고 그 보다 의미 있는 것은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개인적 생각에서 가장 마음에 든 시였다. 


시집 전체적으로 아무 참신한 발상이나 의미를 뒤집는 새로운 어휘는 많이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색한 시의 이어짐이나 의미 없는 시어들의 나열과 다른 중후함이 있는 시들이 많았다.

 눈앞만 바라보고 사는 우리와 달리 저 멀리 마음속 지평선을 바라보며 시인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시집의 큰 특징 중 한 가지가 가로를 넣었다는 점인데. 마치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혹은 부연설명을 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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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아래 잠들다 창비시선 229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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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 시집을 한 숨에 읽어버린 나는 고민해야만 했다. 이것을 오랫동안 씹고 씹어서 남은 것을 뱉어내야 하는 것인가? 득달같이 달려가 내가 느낀 것을 두서없이 늘어놓아야 하는 것인가?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인지. 마음이 서둘러 진다. 잊을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참지 못하는 속내에 있을 것이다. 뭐가 그리 말하고 싶은 것이 많을까. 좀더 신중하지 못한 것은 내 성격 탓일지도 모르겠다.


  이 시집은 여자가 쓰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감히 그렇게 한마디로 축약해서 말을 하고 있다. 물론 여자의 이야기만을 주저리 늘어놓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자가 아니고서는 이런 솔직하고 담백한 때로는 대담하기까지 한 글을 쓰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이 든다. 나는 가끔 여자가 아니고서는 쓸 수 없다는 글을 만날 때가 있었다. 그리고 대체로 그런 것들이 내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 가끔 꺼내보는 것이 무척이나 좋았다. 시집을 읽기 전에 훑어보았을 때는 시가 길어보였고 제목도 피상적인 느낌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에게도 뭔가 시작하기도 전에 지례짐작하거나 판단하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또 서론이 길어질 것 같으니 두서없이 시에 대한 감상을 말하도록 하겠다.

시집의 첫 장을 펴자 ‘민둥산’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하지만 시를 읽고 나서 제목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대를 맞는 내 몸이 오늘 신전이다] 시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를 결정짓는 하나의 문장만이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처음에 조금은 대담한 시인의 어투에 놀라기도 했으나 여자이기에 더욱 더 그런 어투를 사용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적어도 남자보다는 조금 더 투명하게 성이나 생명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남여 성차별적 발언도 아니고 사람 따라 다를 테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길 바란다. 얼마 전 다른 전공수업시간에 들었던 ‘구지화상’의 이야기에서 그가 선을 터득한 뒤 누가 질문을 해도 손가락 하나를 불쑥 세우는 것으로 답했다는 것과 그녀가  첫 시에서 세상을 접하는 태도가 같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의 교감 그 속에서 그녀자신은 신전이 되었다. 그런 자연과의 교감. 즉 ‘한 떨기 꽃이 피어도 그 영향으로 온 세계가 흔들린다.’ 라는 인식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 진다. 이미 첫 시에서 그녀는 나의 시선을 자연이라는 거대한 창으로 넓혀주었다. 그래서 계속 시를 읽어감에도 두근거리는 기대감이 들었다. 또 나에게 어떤 것을 보여줄 것인가.    


  시인의 자신의 몸 안에서 생성되고 빠져 나가는 것에 대해서 참으로 진솔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공감이 가는 소재는 ‘월경’의 이미지 같은 것이다. ‘완경’에 수련과 꽃에 비유하여서 그것의 거둬진 후를 완경이라 표현한 것은 여성에 대한 최대의 존경의 표현이었다. 여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남자가 이런 구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가 상당히 궁금해  진다. ‘물로 빚어진 사람’ 은 월경을 물과 바다라는 이미지에 빗대어 공감가게 잘 표현해 냈다. 잘 표현해냈다는 것으론 식상하고 모자랄 만큼 좋게 읽혔다. 또 시인은 동화적 상상력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 구절들을 여기 저기 남기어 그 여운에 젖게 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귀’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슬픈 악기가 귀라고 믿어버렸다.]라거나 ‘매발톱’의 [사람에 의해 이름 붙여지는 순간 사람이 모르는 다른 이름을 찾아 길 떠나야 하는 꽃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같은 슬픈 옛이야기를 하는 듯한 어조로 말해주는 예쁜 표현이 그렇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주듯이 그렇게 한 구석 세상을 보여주고 그것으로 우리에게 느끼게 해주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예민한 시인의 감성이 잘 포착된 시들도 있었다.

‘ 너의 똥이 내 물고기다’에서 밤벌레라고 표현된 알몸의 엄마가 안고 있는 알몸의 아가들은 자연 속에 인간과 작은 생물인 밤벌레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이루어낸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미지들의 결합이 이렇게 절묘하게 어울리다니 놀라웠다. ‘내가 죽어지지 않는 꿈’에서 다른 이에게 무언가 주기 위해 죽음 앞에 서있는 자아가 등장한다. 내 것인지 알았던 몸둥아리었는데 그것은 내 몸이 아니었고 죽어 있는 것은 꽃이었다. 시인이 이것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할 문제인 것 같다. 꽃이 지는 것을 슬퍼하는 것인지 그 시의 깊이가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범람’이라는 시는 다른 전공시간에 수업한 적이 있었다. 다시 읽어 내리면서 그때와 같은 시라는 것을 잊고 있었을 만큼 느낌이 사뭇 달랐지만 말이다. 시의 후반부로 넘어가 ‘거꾸로 가는 생’을 보면 담담하게 이야기  하면서 ‘세상의 아름다운 빛들은 거꾸로 떨어진다.’ 라고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가 되어가는 것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청춘이 영원할 것이라 과신한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들이 아직 젊다는 이유만으로도 묻혀버릴 수 있기에 더 안타깝다.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우주에서부터 좁게는 작은 풀잎하나까지 다양하게 다뤄진다. 좀더 뒤편으로 가면 고양이를 소재로 삼고 있는 시들도 있다. ‘오! 고양이’ 라는 시도 무척이나 공감이 갔는데 내가 고양이를 키워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녀가 말하는 고양이 시체를 나 역시 넘어왔고 앞으로도 넘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고양이의 눈동자는 사람을 추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눈동자에 추궁 당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추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입설단비’라는 시가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장식하고 있다? 이 표현이 어울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시가 장식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나는 이시를 사뭇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시에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기에 그러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여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어느 정도까지 공감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너무 뻔한 호기심인가? 어쨌든 이쯤에서 시집에 대한 평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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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문학.판 시 2
이성복 지음 / 열림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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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친구와 등교하던 길에 이성복 시인의 시집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난 말이야. 그 시를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니까. 우리도 그냥 시를 쓰자고 어렵게 머리 굴리지 말고, 오늘 아침에 길을 걸었다. 이런 식으로 말이야.”

  “그러게 그 시인은 특히 하고 싶은 말은 거의 마지막 두 줄에 표현하는 것 같더라.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물음을 던져놓듯이 말이야.”


왜 뜬금없이 친구와의 대화를 몇 자 적어놓았냐 하면은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의 느낌을 한마디로 축약해보자면 일상 속에 말하고 한 바를 언 듯 던져 놓은 것 같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일상이라는 것이 이성복 시인의 면밀한 관찰력에서 나온 감탄이 나올만한 비유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시를 한번 다 읽고 난후 시집 뒤의 평론을 읽은 것이 살짝 후회가 된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객관적으로 환기하는 글을 읽어도 괜찮을 것 같아 읽었는데 역시 내가 놓치고 있었던 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완전히 깊이 있게 시를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에 대한 리뷰를 적고자 한다.


  우선 너무나 눈에 도드라지는 특징이 있다. 내가 읽었던 다른 시는 고사하고 이성복 시인의 다른 시집에서도 볼 수 없었던 백편의 시마다 붙어있는 인용구 말이다. 시집 뒤의 글에도 실려 있듯이 이미 사용되지 않은 말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글을 옮긴 것이든 내가 쓴 것이든 어딘가 있었을법하기도 하고 이미 사용된 말이라는 점에서 신선함을 잃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시의 인용구는 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시집을  읽을 때 고민했던 것이 어떤 순서로 읽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우선 제목이 있고 인용구가 있고 시가 있다. 물론 나는 그저 쓰인 순서대로 읽었지만 그것을 되짚어야 할 때가 많았다. 인용구가 암시해 주는 바를 시의 본문을 읽기 전에는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시를 읽고 다시 한번 인용구를 쳐다보기를 적어도 50편쯤은 했던 것 같다. 덕분에 생각할 시간이 한 번 더 있었을지도 모르겠고 인용구와 시가 따로 존재하기는 하나 서로 상효작용을 일으키는 것처럼 새로운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딱 한편을 골라서 시집에 대한 평을 대표적으로 내릴 수 있을 만큼 자신이 서지 않아서 시를 읽으면서 짧게나마 메모해뒀던 것을 기초로 부분을 짚어보도록 하겠다. 일부러 개수를 맞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집은 100편으로 깔끔하게 구성되어있고 그것이 각자 다른 내용임에도 일관된 구조로 쓰여 있다. 만화가가 주인공을 정해 그림을 그릴 때 그 주인공을 제대로 그리려면 수백 번은 그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그림은 그릴 때마다 조금씩은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주인공을 계속 그려내려면 그 정도의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습하다보면 그 그림체가 익숙해져 그리는데 무리가 없어진다. 이 시집도 그러하다. 시인은 새로운 그림체, 그러니까 이 시집에서 시도한 시의 구성법을 잘 이끌어 나간 것 같다. 이것은 그저 평이해 보일수도 있지만 철저히 의도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집을 펼쳐보자.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시인은 고백하고 있다. 그가 앞으로 우리에게 보여줄 시들을 그가 말하고 했던 것들에 대한 축약적인 문장 같다. 말은 인류의 약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미 사용되지 않은 말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새롭게 조합됨으로써 그러니까 시인이 필요한 근친상간 같은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말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시인이 말하고자 한바는 무엇인가. 우리로써는 알 수 없다. 첫 시부터 이렇게 의문을 던져준 후 시인은 끊임없이 여러 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제시해 그것을 다른 시각으로 환기시키는 내용이 많은 것 같다. 느낌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 너무나 제각각이라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시를 읽다보니 조금 반복되는 말투가 있는데. 예를 들어 [뭐 그런 소릴 할도] 서처럼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것은 꼭 같은 말로는 아니지만 약간은 체념한 듯한 하지만 그 속에는 그것을 이해한다는 듯한 느낌의 말이 시 중간에 몇 곳 나온다. 이것은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내 몸에 떠오르지 않을 물빛] 이나 [언니라는 말의 배꼽] 에 나오는 배꼽과 물빛이라는 것의 다양한 이미지 묘사는 시인이 부여해준 새로운 해석의 배꽃과 물빛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부분에 집중적으로 조명해 여러 가지 생명을 불어넣어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시집의 놀라운 점이다. 또 이 시집을 읽으면서 눈에 띈 점은 ‘전이’라는 개념이다. 반복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여러 가지 시인이 제시한 일상생활이나 시제 중에서 순식간에 사람의 삶이나 우리 안으로 뛰어드는 방법이 마치 하나의 말에 힘을 실어 그것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전이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한번도 온 적도 없다는 듯이]에서 호랑나무 가시라는 시제를 ‘언제 누가 오지 말란 적 없지만, 언제 누가 오라 한 것도 아니다.’의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족, 사람에게 전이 시킨다. 이런 느낌은 시를 읽는 동안 여러 번 느끼게 된다. 그리고 제목에서 나왔던 글이 시 내용에 반복되기도 한다는 것도 특징 중에 한가지 이다. 그 글을 둘러싼 다른 표현들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그것이 딱히 거슬리거나 하지 않는 것 같다. 아까도 말했듯이. 뭐 그럴 수도 있겠다와 비슷한 개념으로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를 보면 ‘내가 부르지 않아도 노래는 흐르고 있었다. 라는 시구가 있다. 이것은 이 시 뿐만이 아니라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여러 번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서 말하는 듯싶다. 내가 있고 어떤 대상이 있다. 그것은 말이 될 수도 있고 시가 될 수도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나는 어떤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상에게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 요인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대상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도 존재했고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존재 할 것이다. 이 인식은 시집 전반에 흐르고 있는 맥락과 함께하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시집 곳곳에 재미있는 시선이 숨어 있는데 [잔치국수 하아 해주세요]를 보면 식욕-여자에 비유해 일치 하지 않을 때 다른 것이 찾아온다고 조금은 익살스럽게 표현되어있다. 그리고 시를 일다보면 재미가 있는데 그건 시구의 독창성과 이렇게 저렇게 다른 소리를 하는듯하다가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 때문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우리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시인은 드러나게 무언가를 비판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해석으로 우리를 환기시키곤 한다. [배고픔이라는 게 있다]에 ‘아침 해처럼 씩씩한 배고픔’이라는 시구. 도대체 아침 해처럼 씩씩한 배고픔이란 무엇 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해는 힘차니까 그럼 힘찬 배고픔일까? 여기에 시인은 새로운 뜻을 부여한다. 나를 불량식품이라 본다고 생각되는 상대.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거만 겉치레 등을 ‘씩씩 으로’ 포장한 것은 아닌가? 시인의 포장력은 대단한 것 같다. 또한 시에 흐르는 이미지의 연관성 아까 이야기 했던 전이 또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일상에서 발견된 명쾌한 생각들 과학원리처럼 다른 시각으로 무언가 발견하고 무언가를 추적 하는듯한 비유들은 부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아까 반전을 잠시 언급했는데 [귀는 위험할 수밖에]에 눈과 귀의 비교를 통해 ‘귀는 치명적이지 않다‘라는 결과적으로 보면 그 말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말하고자 한반에 힘을 실어주는 힘인 것 같다. 시집 전반을 통해 일상에 떠넘긴 그의 비유는 가장 살갑게 와 닿는다. 산문체모습을 하고 있는 시가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는 있지만 그 전반에 깔린 의미들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가 의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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