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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다중인격이라는 정신적 장애 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주인공이 주장하는 내 안의 적이라는 존재는 이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그것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
이미 1994년에 사라진 다중 인격 장애라는 병명의 병은 옛날에는 빙의 같은 귀신들림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이 특이한 증상에 관심을 가진 의사들이 많았고 20년간의 치열한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다중인격이란 정말로 한 사람 안에 여러 개의 성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내부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정신 상태의 일부분들이 일시적으로 그 사람 전체를 조종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보통 상태에서 전체성을 유지하고 있던 정신상태가 일시적으로 혹은 지속적으로 분리되어 한 부분의 정신이 그의 전체를 조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을 이해하는데 매우 흥미로운 자료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도입부를 읽으며 ‘뭐 이런 따분한 이야기, 혹은 허구적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가 늦춰져서 기다리는 시간 갑자기 다가온 남자. 그리고 그 남자가 끊임없이 뱉어내는 듣고 싶지 않지만 귀에 달라붙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 나는 점점 책에 빠져 들었고 이 당황스러운 텍스토르 라는 인물에 호기심을 느꼈다. 만약에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고 상상해서 글을 쓴 것이라면 작가는 너무나 인위적인 글을 쓴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강간을 저지르고 그걸 줄줄이 이야기하는 미친 사람.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인물에 매력을 느끼기고 했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재미있고 기상천외한 곳이 될 것인가. 이야기는 중반에 접어들고 제롬의 아내를 그가 살해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까지도 난 그가 다른 인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가 정말 다른 인물이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그이면서 그가 아니는 같은 인물이었다.
제롬에게 있어 텍스토르라는 존재는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그의 내부의 자아. 숨겨져 있던 인격이다. 숨겨져 있으나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 인격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충동(가령 묘지터에서 그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강한 성적 충동)으로 인해 하나였던 정신이 분열되고 그 분열의 파편 하나가 전체를 조종하게 된 것이다. 그가 바로 텍스토르라는 존재이다. 제롬이 잊은 기억은 물론 제롬이 만들어낸 허구속의 과거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인격 말이다.
작가는 이런 인격 분열의 모습을 ‘내 안의 적’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해 놓았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적 욕망의 한 단면을 섬뜩하게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사람은 단세포 생물이 아니라서 그런지 복잡하다. 그리고 그런 복합적인 모습이 하나인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그 속에서 날뛰는 부분들은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속 존재와 같다. 그것을 글로 세상으로 이끌어내 보여줬다는 면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화장법이라는 것의 대해 한정되어 있던 의미를 확대된 의미 혹은 본래의 의미로 보여준 것 같다.
내 안의 적. 그들은 지금도 우리들의 정신이 분열되는 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방법으로 화장법을 내세울 것이다. 그런 적의 수단에 대응할 방법은 없다. 그것은 그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뭐 흔한 얘기로 자신을 이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랬겠지만 앞으로도 한 사람이라면 큰 과제일 것이다. 자신안의 숨겨진 많은 적들 그들을 이기기란 생각보다 쉽지가 않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