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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네 - 황금이삭 1
정현종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처음 시집 제목을 읽었을 때 생각났던 책 제목이 있었다.
‘견딜 수 없는, 미쳐버리고 싶은’ 이라는 책이다. 세계유명작가들의 단편을 모아놓았던 책이었지만 글을 옮기는 과정이 이상했던 것인지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견딜 수 없이 미쳐버리는지 알았다.
‘책 제목은 잘 정했네.’ 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일종의 실망감 때문이었을까 처음 ‘견딜 수 없네’라는 제목을 보고 이 시집 역시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었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고 내가 예상했던 견딜 수 없음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은 시간과 권태 그리고 그가 찬양해 마지않는 투명함 같은 것들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를 읽는 내내 나를 이끈 것은 시인의 연륜 이었다. 시인이 가진 세월의 깊이가 그가 말했던 ‘네 눈의 깊이’가 느껴졌다.
[네 눈의 깊이는 네가 바라보는 것들의 깊이이다.
네가 바라보는 것들의 깊이 없이 너의 깊이가 있느냐.]
그의 눈의 깊이가 순간에 의지에 치졸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의 눈의 깊이와 너무 달라 고개를 들게 했다. 왜 깊이의 차이를 느끼고 고개를 숙이지 않고 고개를 들었냐 면은 하늘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런 저런 상념들로 인해 중력이 몇 배는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하고 되돌아보게 됐기 때문이다. 언제나 최고의 화가가 그려놓은 최고의 작품인 하늘이 내 배경이 되어주고 있는데 왜 그걸 잊고 있었던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인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연륜과 함께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인생의 막바지에 대한 이미지였다. 늘 그렇듯이 하나씩 열거하며 마무리를 잘 못하는 습관을 갖고 있어서 이번에는 한 가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를 콕 찍어보겠다.
비스듬히 p21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 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서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기댄다는 의미에 나는 많은 것을 부여하고 싶다. 무언가 기댄다는 행위가 나에게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졌고 그 보다 의미 있는 것은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개인적 생각에서 가장 마음에 든 시였다.
시집 전체적으로 아무 참신한 발상이나 의미를 뒤집는 새로운 어휘는 많이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색한 시의 이어짐이나 의미 없는 시어들의 나열과 다른 중후함이 있는 시들이 많았다.
눈앞만 바라보고 사는 우리와 달리 저 멀리 마음속 지평선을 바라보며 시인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시집의 큰 특징 중 한 가지가 가로를 넣었다는 점인데. 마치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혹은 부연설명을 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