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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다.
소련 침공, 탈레반 등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가 피부에 와닿는 한편, 우리가 생각했던 삭막한 전쟁터의 모습 이전의 아름다웠던 자연과 전통문화 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대비되어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책이다.
지금껏 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가 쓴 아프가니스탄 소설은 영화를 빼고는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던 차에 알라딘에서 50% 할인 행사를 한다기에 곧바로 구입해 읽었다. 물론 내가 읽은 다음 우리 중딩 아들과 예비 중딩에게까지 읽히기 위한 속셈도 저변에 깔려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몇 가지 사실에 놀랐다.
먼저, 연을 쫒는 아이라는 제목과 표지 그림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연을 날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놀랐다. 그리고 연싸움을 하는 것과 그를 위해 연줄에 유리가루를 먹이는 것도 우리나라와 통하는 점이라 놀랐다.
둘째는, 소련 침공 이전의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순박한 사람들과 상류 사회의 문화(음식, 놀이 등)에 놀랐다. 9시 뉴스에서만 보던 중동 전쟁 속의 아프가니스탄의 폐허같은 모습과 너무 대조적인 풍경들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어,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의 참상이 너무나 뼈아프게 다가왔다.
셋째, 어린시절 자신의 하인이었던 하산이 이복동생이었음을 알게 되고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지만, 이미 아버지는 돌아가신 뒤이며, 그 이복 동생의 아들 소랍 역시 하산과 자신을 멀어지게 만든 장본인인 아셰프에게 다시 대를 물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다. 열두 살 정도의 남자 아이들이 동성간에 성추행을 한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너무나 인간적으로 보였던 바바(아버지)가 하인의 - 그것도 친구와 같았던- 아내를 겁탈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것과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 여자를 내쫒았다는 사실에서 어느 나라건 명예를 중시하는 남자들로 인해 피해를 입는 여성과 약자들이 너무 많다는 데 놀랐다.
넷째, 인연의 고리가 너무나 절묘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아미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도망쳤지만 어린시절 하산과의 해결되지 못한 일로 인한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고 작가로 성공하지만 그토록 원하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벌(주인공 자신의 생각)을 받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잘못된 인연으로 인한 이복동생 하산의 아들 소랍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는데, 여러 가지 충격으로 정서가 불안정한 소랍의 마음을 쉽게 얻지 못해 힘들어한다. 이 모든 것들이 인연의 악순환으로 다가오는데, 삶이란 것이 굴러갈수록 무거워지는 이유가 바로 이 인연의 바퀴에 여러가지 인연이 달라붙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섬세한 묘사력과 기억력에 놀랐다. 직업이 의사이니 얼마나 바쁘고 정신적으로 건조한 삶이겠는가! 그럼에도 이렇듯 생생한 표현과 내면의 감성을 잘 묘사한 점이 놀랍기 그지없다. 호세이니라는 이 작가 덕분에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가 영화를 보듯 생생히 각인되었다. 왕정이 공화정으로 바뀌고, 1978년엔 쿠데타가 일어나고 , 1979년에는 소련이 침공하여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장악한 일. 10년 뒤 제네바 평화협정으로 소련이 물러난 뒤 1995년에는 엄격한 이슬람 질서를 강요하는 탈레반 정부가 들어서 선량한 민중들을 공포의 도가니 속에 빠트렸다가 결국 9.11 테러 사건으로 물러난 일 등이 주인공 아미르의 행적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책 속에서 인상 깊은 구절 몇 가지를 같이 나누고 싶다.
-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에게서 남편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들에게서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속임수를 쓰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도둑질보다 더 나쁜 짓은 없다.
- 바바와 나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닮았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우리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 놓을 사람들을 배신했다.
- 소랍이 조용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말이다. 조용함은 평화와 평온함을 의미한다. 조용함이란 삶에 대한 볼륨 스위치를 줄이는 것이다. 침묵은 버튼을 눌러서 삶을 완전히 꺼버리는 것이다.
결국, 아미르는 자신의 하인에게서 들었던 것과 똑 같은 말을 하인의 아들에게 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 연(kite)을 쫒는 아이는 연(緣)을 쫒는 아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