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 24 | 2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들려주는 실전 글쓰기 노하우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토요일 낮에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 정복'을 마저 다 읽었어. 12월달 원고에 나오는 책인데 그때 살짝 머리말이랑 옮긴이 말만 읽고 안 읽었거든. 차분히 처음부터 읽고 있었는데  다 읽었네.
이 책을 읽고 원고를 다시 보니, 난 그냥 재미있는 책을 얻었기에 나올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썼다면 그렇게 못 썼겠더라고. 쭉 이어진 만화를 보고 그렇게 정리해내는 것도 재주야.
책에서 읽은 재미있는 이야기들 해줄게. 글을 쓴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야. 깊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은 작가들이 글쓰는 것에 대해 스누피한테 이야기해주거든. 물론 다 미국작가라 모르는 사람 투성이지만.

스코트 버그라고 전기를 많이 쓰는 작가가 있는데 대학 2학년때 전공 교수한테 갔대. 교수가 자네가 톨스토이나 피츠제럴드 같은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건 알지만 토머스 울프도 꼭 읽어보게, 했대. 토머스 울프 책을 도서관에서 쭉 찾아서 2주 동안 다 읽었대. 그리고 교수한테 가서 "이제 누가 작가가 될 수 있겠습니까? 토마스 울프가 이미 다 썼는데!" 교수는 "스코트, 스물 두 살이 되면 다시 찾아오게나." 했대.
이 사람은 퍼킨즈라고 스크리브너 출판사의 유명한 편집자 전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자료를 찾다보니 퍼킨즈한테 어떤 사람이 보낸 편지에 토머스 울프가 오랫동안 읽을 만한 작가인지를 물었대. 퍼킨즈는 "대학에 2학년 학생들이 있는 한." 이라고 대답했대.

그 글 보는데 너무 재밌더라고. 대학 2학년이 정확히 어떤 정서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그 시기이기에 먹히는 감성이 있잖아. 옛날에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 그렇겠지.

그거 말고도 재미있는 글을 적어놨어. 안 적어놓으면 다 사라져버릴 것 같은 공포감 소유자라서 말야.

'재능이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삶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게 시인의 재능이고 책임감이다'
-책임감이라는 말이 재밌어. 자기 슬픔과 아름다움을 자기가 표현하는 게 최고겠지만, 남이 쓴 글에서 느끼는 희열도 있으니.

'아버지는 여러 사람이 만드는 예술치고 위대한 게 없다고 믿었지만 영화를 사랑했다'(몬티 슐츠가 아버지 슐츠에 대해 이야기한 거야.)
-여러 사람이 만드는 예술. 헤, 문학 빼고는 얼추 다 그런 거 아닌가. 미술도 그렇구나.

'그는 이야기가 인간의 진실에 대해 말해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공감!공감!

'라이너스가 '담요없이 엄지 손가락을 무는 건 아이스크림 빼고 콘만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할 때처럼, 나는 뜬금없는 논리 전개를 좋아하죠.'
-푸하하

'단편 소설을 스물다섯 편만 써보면 되는 소설과 안 되는 소설의 차이를 알아낼 수 있다. 큰 소리로 소설 속의 대화를 읽어보면 겉멋 들고 허황된 것과 '진짜' 대화가 금방 구분된다.'
-역시 공감!

'읽는다, 생각한다, 쓴다'에 대해 고민하게 한 책.
사실 슐츠 만화가 더 재미있지, 글들은 좀 약한 게 많다. 만화랑 소설가들의 글에 대한 조언(스누피에 대한 조언)을 엮은 기획의 힘! (2007.1.13)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스누피 라이프 디자인전 1편
    from 신나는 UCC, 헬로TV 2007-08-08 16:21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강아지, 스누피 전시회가 진행중이다. ‘스누피 라이프디자인전’이 7월 29일부터 9월16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린다. 스누피의 탄생 55주년을 기념하는 세계 순회 전시이다. 유명 란제리 브랜드 디자이너를 비롯, 27인의 작가가 합세, 상상력 넘치는 작품들로 전시회를 꾸몄다. 지난해 일본에서 4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행복이란…’ 주제로 찰스 슐츠가 보여주고자 했던 스누피를 디자인, 패션, 영상, 애니메이션..
 
 
 
머피와 두칠이 삽사리문고 17
김우경 지음 / 지식산업사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우경 선생님이랑 같이 일을 하게 됐다.
사실 난 김우경 선생님 책을 한 권도 다 읽었다.
이번 연재 동화는 가르치겠다는 심사도 약간 보였지만, 그 세계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모습이 괜찮아보였다.
그래서 너무 유명한 <머피와 두칠이>를 이제야 읽었다.

1
앞에 이오덕 선생님 추천사처럼 개들의 모습을 통해 사람을 훌륭하게 비판했다.
정말로 어떤 사람도 개들 편이 되어 주지 못했다.
두칠이 주인(?)인 선희는 착하지만  힘이 없고, 선희 엄마는 그냥 보통 사람이다. 개들에게는 몰인정한.
문장들도 깔끔해서 읽기 편했다. 인간 세상을 보는 관점, 문장에서 권정생 선생님하고 비슷하다.

2
머피 묘사에서 57년생 아저씨가 생각하는 여자는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고 얌전하고, 이따금은 현명하지만, 결국은 주인 품이 더 나은. 뭐, 사실 머피는 애완견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걸까. 그렇게 키워졌으니.

3
이때부터 자연의 식물이나 나무들을 움직이고 싶어했구나. 이번에 연재할 동화에서 식물들은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 움직인다. <머피와 두칠이>에서도 몸이 근질근질해 한다.
난 이 묘사가 신선했는데 어떤 사람은 너무 흔한 설정 아니냐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환타지물을 별로 안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개고기를 먹는 것, 기르던 개를 잡아먹는 것.
개 심사에서 생각해보질 못했다. 아예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을바에 다른 가축보다 개를 우대하는 것 같아, 굳이 그럴게 있나 싶었는데, 헷갈린다. 기르던 돼지를, 송아지(소는 집에서 잘 안 잡구나.)를 잡아먹어도 그럴까. 개는 어떻게 다른가. 동물은 야생에 있는 게 더 행복한가. 밥 주고 집있는 사육장의 개들. 곧 죽어도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하며 저항하지 않는 개.

4
시간에 대한 글이 좋았다.
'시간은 어떻게 해서 흐를까. 누가 다스릴까. 누가 시간을 맡아서 늘 똑같은 빠르기로 움직이게 할까.
세상의 많고 많은 시계들이 그 일을 할까. 그러면 시계가 없었던 아주 옛날에는 누가 시간을 맡아서 움직이게 했지? 시계가 없었던 그 때에도 시간은 늘 똑같은 빠르기로 흘렀을까. 또깍또깍, 그 때도 지금처럼 한 치의 쉴 틈도 없이 쫓기듯 그렇게 달려가야 했을까.
혹시 시계가 있기 전에는 시간이 빠르게도 흐르다가 느리게도 흐르다가, 하여튼 시간에게도 나름대로 자유가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시간이 자기만의 자유를 갖는다? 그래. 시간이 시계 속에 갇히기 전에는 지금과 달리 아주 자유스러웠는지도 몰라. 가고 싶으면 가다가 쉬고 싶으면 쉬다가, 좋은 일이 있으면 천천히 머물렀다 가고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후딱 지나가 버리고.....
맞아. 언제나 사람들이 문제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을 사람들이 시계 속에다 가두어 버린 거야. 소나 말을 우리에 가두어 길들이듯이 시계 속에다 가두어 놓고 억지로 길들인 거야. 그래 놓고 사람들은 툭하면 시간이 없네, 시간이 모자라네 하면서 엄살을 떨지. 제가 놓은 덫에 제가 걸린다더니.'

진짜 뭐든 사람이 문제다. 그렇다고 사람이 없으면? 다른 생명체들은 정말 지구에 해를 안 끼치나.
9시 30분쯤 잠이 들어서 (미친 듯이 졸려서 4,50쪽 남은 <머피와 두칠이>만 읽고 잤다.) 12시에 일어나서 신문을 봤다. 시계가 너무 똑딱거려서 시계를 옆방에 치우고, 신문을 보는데 시간이 무진장 궁금했다. 어차피 한 두 시간 걸린다는 걸 체감으로도 아는데, 불안불안.
낼 쉬고, 특별히 바쁜 일도 없고 자면 없어졌을 시간인데도 불안불안.
이 책도 보고, 저 책도 보고, 이 드라마도 보고, 이것도 보고. 너무 할 일이 많다고 항상 생각한다.
이 사람도 만나고, 이 사람이랑도 술 한 잔 해야 하고....즐겁지 않은 건 아니지만, 바쁘다고 생각한다.
자주자주 마음에 평정을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자주 놓친다. (2007.1.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과 친구하기
에스메이의 일기
에스메이 코델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순수한 상상과 비교할 만한 인생은 어디에도 없어. 상상 속에서, 너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거야.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하기만 한다면." -진 와일더(윌리 원카와 초콜릿 공장 중 윌리 원카) (97)

"어머, 이렇게 조용히 공부만 하다니! 날씨 때문인가 봐."라고 감탄했다.
하지만 날씨 탓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이만큼 몰입하도록 이끌기까지 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평생 그 어느 때보다도 땀을 쏟았고, 이제 결실을 이루어가는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을 여기까지 이끌고 온 공로를 인정받고 싶다. 또한 이 자리에까지 함께 달려온 아이들의 공로도 사람들이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나, 우리는 한 팀으로 똘똘 뭉쳐 노력해왔다.
여러 조각의 감정이 너무나 한꺼번에 밀려들어 말로 다 설명하긴 힘들다. 다만 날씨 때문이라는 둥, 남녀 학생의 비율이 적절하기 때문이라는 둥, 운이 좋아서라는 둥의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에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와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함께 손을 맞잡고, 머리를 맞대고, 밤새워 고민하고, 즐거움을 나누며 함께 노력하고 있다.
함께 노력하는 것. 그것이 교사와 학생의 기본이다. 아니, 사람과 사람이 맺어나가는 관계의 기본이다. 어쨌든 이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이보다 더 즐거운 한 주는 없었다! (110)

"루벤, 넌 지금 내 공간을 침범하고 있어."
"죄송해요, 하지만 너무 부드러워서요." (113)

"선생님은 맨날 숙제만 내주고, 자유 시간은 주지 않잖아요! 선생님 싫어!"
"빌리, 원한다면 얼마든지 날 싫어해도 돼. 그건 네 특권이자 선택이니까. 하지만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난 언제나 너를 사랑한단다."
난 아이들이 반항할 때 주로 이렇게 말한다. 한창 열받을 때 사랑과 희생의 대사로 일관하면 아이들 속이 더 터지는 법이거든.(난 정말 노련한 교사야!) (116)

아침 회의 시간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자니, 새삼 '짐이 옳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교사라는 사람들이 어린이날을 지루할 대로 지루하고 의미없는 날로 만들 '음모'나 꾸미고 있다니. 회의란 게 늘 그렇듯, 매일매일 한 가지 테마를 이리저리 빙빙 돌린다. 어떤 교사 회의나 천편일률적으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똑같이' 만들고 '똑같은' 일을 하게 만들까, 그것만 의논한다. 어떤 의사 일정이든 지겹도록 똑, 같, 다.
줄을 만들고 아이들을 그 줄에 억지로 끼워맞추고, 아이들이 말을 너무 많이 할 때는 어떻게 그 말을 멈추게 할지를 논의하는 꼴이다. 교과서니, 주 당국의 목표니.. 왜 모든 아이들이 늘상 똑같은 것만 배워야 한단 말인가? (151)

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일을 걱정하지만, 결코 내가 발벗고 나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려 하거나 간섭하진 않는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너무 관망하는 태도를 취해선 안되겠지만, 어쨌든 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아이들을 대한다. 나는 그냥 아이들이 어린 시절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도록 내버려둔다. 내가 그 시절을 살아내고 이겨냈듯이, 아이들도 스스로 겪어낼 시간이 필요하다. 내 역할은 시간이 좀 흐른 뒤, 두려움을 고스란히 껴안고 끝까지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든 그것을 훌륭히 극복하든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충고하는 것뿐이다. (210)

마담 에스메이!
선생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 첫 번째
-수학, 철자, 책 읽기를 즐기는 법, 과학, 미술, 음악, 더 적절한 단어로 글쓰고 말하기.
선생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 두 번째
-형제, 자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기, 머리를 꼿꼿이 드는 법, 그냥 대충 해보는 게 아니라 정말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마담 에스메이! 내가 '괜찮게' 해왔을까 궁금하시죠?
대답은 '아니오'예요!
선생님은 '엄청나게' 잘하셨으니까요!!!

*재밌게 읽었다. 24살 새내기 선생님의 일 년 일기라는 데 재밌고, 신나게 사는 사람이다. 너무 애쓰지 않으면서 자기 재미있는대로 하는 사람. 우리 나라 선생님들 글처럼 너무 엄숙하지도 않고, 나도 더 느슨하게 읽게 됐다. 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
그냥 대충 해보는 게 아니라 정말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요샌 이런 말이 꽂힌다. (2006.1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들은 자연이다 - 귀농 부부 장영란·김광화의 아이와 함께 크는 교육 이야기
장영란.김광화 지음 / 돌베개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몸에 귀기울인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몸이 어떤 것을. 익히면 평생을 간다는 말이 맞지만, 몸에 어떤 것이 익기까지가 얼마나 힘든지.
요새 10년을 꾸준히 한 것, 이나 정말 눈감고도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이다.
장영란 샘네 식구들 이야기 '아이들은 자연이다'
어디서 '자연 칼럼니스트'라고 소개됐다는 데 여기는 귀농 부부 장영란, 김광화다.
이야기 듣고 글에서 보지만, 이렇게 쭉 그 삶이 글로 정리된 것을 보니 또 새롭다.

김광화-나는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학 다닐 때부터 서울에 살기 시작해 이십 년 가까이 도시 생활을 했다. 대학 때부터 '인간다운 삶'과 '정의로운 사회'를 고민했지만,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점점 더 사회는 전문화되고 상품화되기를 요구한다. 그런 흐름 속에서 난 '살아 있다'는 사실이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 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몸과 마음이 지치다 보니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디에도 없었다. 백수가 되어 아내 눈치를 보며 살았다. 그렇다고 건달처럼 빈둥거리거나 논 것도 아니었다. 몸으로 하는 일은 없었지만 머리는 여전히 복잡하게 돌아갔던 것이다. 점차 우울증에 빠졌다. 현실에서 발 딛고 사는 게 아니라 꿈속을 헤매며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나 자신이 불행에 빠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도시 삶에 적당하지 않은 사람. 이 사람도 시골에 가선 날고 길고 한다.  도시에서 전문적 인간이 필요하다면 시골에서는 전인적 인간이 필요하다. 아니 우리 진정한 삶은 전인적 인간이 필요하다. 전인적 인간이 더 맞다고 생각하면서 난 도시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것을 못 견뎌하고 있다. 내가 더 나이가 먹으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존경할 수 있을까.

장영란-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혼자 상상하고, 선택하고, 그리고 아이가 그걸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랐다. 그렇게 아이를 데리고 다닌 어느 날, 탱이한테 "너는 이렇게 다니니까 어떠냐?"고 물었다. 탱이는 "엄마 안 잃어버려야겟다고 생각해요."

장영란-아이들은 내게 말한다. "엄마는 엄마 삶을 사세요. 우리 삶은 우리가 살게요."

장영란-탱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지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인이 무언지를 알 듯했다. 배가 고프면 스스로 밥을 차려 먹는 걸 보면서, 진달래꽃에서 꿀을 따먹는 걸 보면서, 사람이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게 전인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 거기서 주는 풍요로운 영감을 느끼고, 필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해내는 게 전인의 기본이리라.
.....
그래서 나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정보와 지식을 알려주기에 앞서, 지금 여기 집중하는 자세부터 길러주고 싶다. 자기 오감으로 새우를 알아내려는 상상이가 부럽다.

장영란-정보와 지식은 넘쳐나고 배울 길은 많다. 더욱 중요한 건 무얼 알고 싶은가 하는 자기 물음이라 생각한다.

김광화-상상이 이야기 가운데 <그리스 로마 신화>도 보고, 이 책에서는 '인간들에게 마지막에 남은 건 희망'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엑스 파일 마지막이 생각나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제대로 안 읽어봤는데 결론이 같네.

장영란- 크리스티안 노스럽이 쓴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보면, 여성들은 그믐에 달거리를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생리통도 사라진다고 한다. 그믐의 온전한 어둠 속에 파묻혀 웅크리고 자신을 추스를 수 있다. 보름에 배란을 하고 그믐에 달거리를 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한다.
김광화-사람들이 탱이에게 가끔 묻는 말이 있다. "이 다음에 무얼 하고 살거냐?"그러면 한동안 탱이는 적당히 얼버무리곤 했다. 사실 뭐라 대꾸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단다. 앞날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면서 탱이가 하는 말이
"지금 일을 하고 있으니까, 이 다음에 무슨 일을 할까, 그걸 생각하게 되지 않아."

참 부러운 상태다. 지금 현재를 산다.

장영란-이렇듯 아이를 보면서 나는 '일'이 무언가를 배운다. 내가 존경하는 이오덕 선생님은 '일한다'는 말은 '사람이 자연 속에서 자연을 상대로 즐겁게 무엇을 할 때'쓴다고 하셨다. 1993년 그 말을 하실 때는 흘려넘겼는데, 뒤늦게 그 글귀를 다시 찾고는 무릎을 쳤다....나도 아이처럼 일을 즐겁게 하고 싶다. 일 욕심 부리지 않고 한 듯 만 듯 일하고 싶다.

장영란-산골에 살아보니 돈을 많이 가진 사람, 직장이 좋은 사람이 아닌, 이런 사람이 대접받는다. 야성이 살아 있는 사람, 자기 손으로 먹을거리 구하고, 손수 뚝딱뚝딱 집 짓고, 산에 가면 산에서 놀며 먹을거리 하고, 강에 가면 헤엄치며 놀다 물고기 잡아 매운탕 끓이고, 햇볕에 그을어 구릿빛으로 빛나고, 여러 가지 일로 온몸에 근육이 잘 발달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건 자기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 보름 달빛에 박꽃이 피듯 그렇게 아이를 가져 자기 집 안방에서 아기를 낳고 젖물려 기르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근육만큼 자유가 살아 꿈틀거린다. 가장 자연스런 사람의 모습, 그런 모습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나는 내 빛깔이 있는 사람인가.
야성이 살아있는가.
다 자신없는 물음이다.
어쩌면 나 역시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처럼 속물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그치는 지 모른다.
이 현실에, 이 도시에서 내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발버둥치면서.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인생 낙오자 취급하면서 말이다. (2006.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198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에 'TV 책을 말한다'(장정일이 사회를 본다기에 찾아 봤다.)에서 청소년기에 읽어야 할 책, 감동을 줬던 책이야기를 하는데 '전태일 평전'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제인에어'''마린을 찾아서' 같은 책들이 나왔다. 그러고보니 난 '전태일 평전'을 안 읽었다. 쪽팔리는 짓이다. 대학을 나왔다는 인간이....

*저녁 6시30분 쯤 동네 도서관에 가서 10시까지 읽고, 집에 와서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진짜를 산 사람이다.
너무 많이 들어서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글로 읽으니 다르다. 전태일의 수기를 읽고, 삶을 돌아보고, 자료도 찾고 미루어 짐작도 했을 조영래..도 대단하다.
전태일이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냉방에 앉아 밤 늦게까지 쓴 수기, 소설, 청계천피복상가들의 노동 현실을 고발한 글들....그런게 글이 가지는 힘이다. 글이 세상에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테고.
이 책을 소개한 이가 전태일은 성자다, 라는 말을 다른 시인의 입을 빌려 했는데, 맞다. 그렇게 보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인간으로 보기에 그 고통과 슬픔이 감당이 안간다. 그래서 무책임하게(시인은 다른 의미였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성자라고 하는데는....)성자라고 말해버린다. 안 그러면 같은 인간으로 내 모습이 너무 쪽팔려서.

*강풀의 '518'에 대한 만화를 보고,(강풀의 만화는 그림이, 글이 특별히 좋지도 않은데, 읽고 나면 공감이 되고 감동을 준다. '다음'에 연재한 '바보'를 빼놓지 않고 챙겨봤다. 너무 뻔하고 신파라고 생각하면서, 챙겨보고 눈물도 찔끔나고. 소시민같고, 옆집 총각같은 이 사람이 주는 진정성 때문인가. 어쨌든 '다음'이라는 매체에 그런 발언(만화라기보다는 발언)을 싣는 용기.)'전태일 평전'를 읽고.
일상을 때우면서 살아가다 현실을 잊고, 눈을 돌리고....뭐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어지럽게 들려오는 쇠금속 소리. 짜증 섞인 미싱사들의 언성. 무엇이 현재의 실재인지를 분간 못하면서, 그 속에서 나도 부지런히 그들과 같이 해나갔다.
무의미하게. 내가 아는 방법 그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이외에는 무아지경이다. 아니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도 순서대로, 지금 이 순간에 해야 될 행동만이 질서정연하게 자동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의 나는 일의 방관자나 다름없다. 내 육신이 일을 하고,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때까지의 육감과 이 소란스런 분위기가 몇 인치, 몇 푼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 긋고 나라시가 되고, 다 되면 또 재단기계를 잡고 그은 금대로 자르는 것이다. 누가 잘랐을까? 이렇게 생각이 갈 때에는 역시 내가 잘랐다. 왜 이렇게 의욕이 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렴풋이 생각이 확실해질 때는 퇴근시간이 다 될 때이다.
세면을 하고 외출복으로 바꿔입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오면 밥상이 기다리고 있다. 밥을 먹고 몇 마디 지껄이다가 드러누으면 그 걸로 하루가 끝나는 거다.
-1967년 3월 일기에서(전태일 평전 130쪽)

*우리는 흔히 수없이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줌도 못되는 '소수'의 억압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고 말하며 또 그러한 사례를 수없이 본다. 가끔 영화 같은 데서 수많은 노예들이 채찍에 시달리며 묵묵히 중노동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볼 때 어째서 저 많은 노예들이 불과 몇몇의 감독자들에게 굴종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어왔다. 인간사회가 형성된 이래 이러한 사태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러한 요소들이 사회적 민주화의 장애가 되고 있는 나라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원인을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말한다. 특히 들어볼 만한 설명은 억눌리는 사람들이 수적으로는 아무리 많아도 조직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조직된 소수'에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이다. 그러나 거기에 앞서서 우리가 이야기하여야 할 것은 바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노예의식'인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 노예의식을 벗어던지고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위하여 주장하고 투쟁할 결의에 차 있다면, 그들의 조직화는 시간문제일 뿐이며 조만간에 그들은 '조직화된 다수'로서 '조직된 소수'인 억압자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마로 민중운동의 전진이며, 이것이 바로 민주화이며,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바로 진보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민주를 지향하는 사회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봉건시대 이래 잔존해오고 있던 이러한 억압/피억압의 관계를 우리는 불식시켜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아직도 저 '노예의식'의 찌꺼기, 깨어나지 않는 혼미의 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사회적 민주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전태일 평전 133~134쪽)

*아니, 이것이야말로 참된 인간의 목소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전태일이 가난하고 못 배운 밑바닥 인간에게 강요되어온 무력감과 열등의식을 완전히 청산해버리고, 자신의 힘과 인간성의 승리를 확신하는 한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제 발로 선 것을 본다. 여기서 우리는 전태일의 성숙한 모습, 한 각성된 청년노동자가 스스로의 인간적인 책임에 대하여 가지는 강한 자긍을 보는 것이다.
....
목숨을 걸지 않는 '투쟁'은 거짓이다. 그것은 소리치는 양심의 아픔을 일시적으로 달래는 자기 위안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죽음의 문제이며, 죽음의 문제는 결국 삶의 문제이다. 비인간의 삶에 미련을 갖는 자는 결코 인간으로서 죽을 수 없고, 따라서 결코 인간으로서 살 수 없다. 전태일이 죽음을 각오한 투쟁을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비인간의 삶에 대한 온갖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태일 평전 232~233쪽)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나의 나인 그대들.
(2005.5.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 24 | 2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