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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연이다 - 귀농 부부 장영란·김광화의 아이와 함께 크는 교육 이야기
장영란.김광화 지음 / 돌베개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몸에 귀기울인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몸이 어떤 것을. 익히면 평생을 간다는 말이 맞지만, 몸에 어떤 것이 익기까지가 얼마나 힘든지.
요새 10년을 꾸준히 한 것, 이나 정말 눈감고도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이다.
장영란 샘네 식구들 이야기 '아이들은 자연이다'
어디서 '자연 칼럼니스트'라고 소개됐다는 데 여기는 귀농 부부 장영란, 김광화다.
이야기 듣고 글에서 보지만, 이렇게 쭉 그 삶이 글로 정리된 것을 보니 또 새롭다.
김광화-나는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학 다닐 때부터 서울에 살기 시작해 이십 년 가까이 도시 생활을 했다. 대학 때부터 '인간다운 삶'과 '정의로운 사회'를 고민했지만,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점점 더 사회는 전문화되고 상품화되기를 요구한다. 그런 흐름 속에서 난 '살아 있다'는 사실이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 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몸과 마음이 지치다 보니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디에도 없었다. 백수가 되어 아내 눈치를 보며 살았다. 그렇다고 건달처럼 빈둥거리거나 논 것도 아니었다. 몸으로 하는 일은 없었지만 머리는 여전히 복잡하게 돌아갔던 것이다. 점차 우울증에 빠졌다. 현실에서 발 딛고 사는 게 아니라 꿈속을 헤매며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나 자신이 불행에 빠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도시 삶에 적당하지 않은 사람. 이 사람도 시골에 가선 날고 길고 한다. 도시에서 전문적 인간이 필요하다면 시골에서는 전인적 인간이 필요하다. 아니 우리 진정한 삶은 전인적 인간이 필요하다. 전인적 인간이 더 맞다고 생각하면서 난 도시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것을 못 견뎌하고 있다. 내가 더 나이가 먹으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존경할 수 있을까.
장영란-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혼자 상상하고, 선택하고, 그리고 아이가 그걸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랐다. 그렇게 아이를 데리고 다닌 어느 날, 탱이한테 "너는 이렇게 다니니까 어떠냐?"고 물었다. 탱이는 "엄마 안 잃어버려야겟다고 생각해요."
장영란-아이들은 내게 말한다. "엄마는 엄마 삶을 사세요. 우리 삶은 우리가 살게요."
장영란-탱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지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인이 무언지를 알 듯했다. 배가 고프면 스스로 밥을 차려 먹는 걸 보면서, 진달래꽃에서 꿀을 따먹는 걸 보면서, 사람이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게 전인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 거기서 주는 풍요로운 영감을 느끼고, 필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해내는 게 전인의 기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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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정보와 지식을 알려주기에 앞서, 지금 여기 집중하는 자세부터 길러주고 싶다. 자기 오감으로 새우를 알아내려는 상상이가 부럽다.
장영란-정보와 지식은 넘쳐나고 배울 길은 많다. 더욱 중요한 건 무얼 알고 싶은가 하는 자기 물음이라 생각한다.
김광화-상상이 이야기 가운데 <그리스 로마 신화>도 보고, 이 책에서는 '인간들에게 마지막에 남은 건 희망'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엑스 파일 마지막이 생각나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제대로 안 읽어봤는데 결론이 같네.
장영란- 크리스티안 노스럽이 쓴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보면, 여성들은 그믐에 달거리를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생리통도 사라진다고 한다. 그믐의 온전한 어둠 속에 파묻혀 웅크리고 자신을 추스를 수 있다. 보름에 배란을 하고 그믐에 달거리를 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한다.
김광화-사람들이 탱이에게 가끔 묻는 말이 있다. "이 다음에 무얼 하고 살거냐?"그러면 한동안 탱이는 적당히 얼버무리곤 했다. 사실 뭐라 대꾸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단다. 앞날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면서 탱이가 하는 말이
"지금 일을 하고 있으니까, 이 다음에 무슨 일을 할까, 그걸 생각하게 되지 않아."
참 부러운 상태다. 지금 현재를 산다.
장영란-이렇듯 아이를 보면서 나는 '일'이 무언가를 배운다. 내가 존경하는 이오덕 선생님은 '일한다'는 말은 '사람이 자연 속에서 자연을 상대로 즐겁게 무엇을 할 때'쓴다고 하셨다. 1993년 그 말을 하실 때는 흘려넘겼는데, 뒤늦게 그 글귀를 다시 찾고는 무릎을 쳤다....나도 아이처럼 일을 즐겁게 하고 싶다. 일 욕심 부리지 않고 한 듯 만 듯 일하고 싶다.
장영란-산골에 살아보니 돈을 많이 가진 사람, 직장이 좋은 사람이 아닌, 이런 사람이 대접받는다. 야성이 살아 있는 사람, 자기 손으로 먹을거리 구하고, 손수 뚝딱뚝딱 집 짓고, 산에 가면 산에서 놀며 먹을거리 하고, 강에 가면 헤엄치며 놀다 물고기 잡아 매운탕 끓이고, 햇볕에 그을어 구릿빛으로 빛나고, 여러 가지 일로 온몸에 근육이 잘 발달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건 자기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 보름 달빛에 박꽃이 피듯 그렇게 아이를 가져 자기 집 안방에서 아기를 낳고 젖물려 기르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근육만큼 자유가 살아 꿈틀거린다. 가장 자연스런 사람의 모습, 그런 모습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나는 내 빛깔이 있는 사람인가.
야성이 살아있는가.
다 자신없는 물음이다.
어쩌면 나 역시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처럼 속물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그치는 지 모른다.
이 현실에, 이 도시에서 내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발버둥치면서.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인생 낙오자 취급하면서 말이다. (200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