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박 4일 동안 절에 다녀왔다. 말도 하지 않고, 손전화도 없고, 책도 읽지 않고, 수첩에 글 한자리 쓰지 않으니 외롭고 힘들 줄 알았다. 그러나 3박 4일은 너무 짧았다. 끝까지 가보지 못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시작, 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실수하고 잘못한 일들이 튀어나왔다. 끝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그냥 일상이 피곤했다.

그렇게 피곤한 오후 《바리데기》를 들었다. 한번 읽기 시작하니 끝까지 쭉 읽혔다. 그런데 쉽게 읽었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이제 스물다섯이 됐을 바리라는 여자의 일생이 너무 힘들었다. 바리랑 같이 지쳐갔다.

이야기를 읽는데 자꾸 옛날이야기 같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보다 더 어린 여자가 지금 현재 겪고 있는 일이라는 걸 자꾸 기억해냈다. 봐, 이건 북쪽에 산불 크게 났을 때잖아, 이건 미국 9․11테러 때야. 미국이 아프간 침공한 거잖아. 여긴 지금 영국이라고. 그래도 자꾸 잊게 된다. 옛날옛날에 바리라는 여자애가 살았어…….

1983년 북쪽땅 청진에서 바리가 태어난다.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언니 여섯. 일곱째 딸이다. 일곱째 딸을 낳은 것에 절망한 어머니는 아기를 그대로 안고 사람 없는 숲에 갖다 버린다. 그런데 그 집 개 흰둥이가 갓난쟁이를 데리고 와서 지 품 안에 데리고 있었다. 던져라 던지데기 바려라 바리데기, 해서 이름은 바리가 되고 할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쭉 바리데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리데기 이야기가 참 구슬프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하다.

바리는 배고픔을 겪고, 식구들과 헤어지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간다. 같이 살던 식구들마저 죽고 칠성이랑 함께 두만강을 다시 넘어 식구들을 만나러 간다. 그러면서 산불을 겪고 또 죽을 고비를 넘긴다. 다시 중국으로 넘어오고, 바다를 건너 영국으로 간다. 현실은 지옥보다 더 나을 게 없다. 그러나 바리한테는 항상 할머니랑 칠성이가 꿈에 나타나(사실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꿈인지는 알 수 없지만)동무가 되고, 스승이 되어 준다. 열여섯 살에 영국에 와서 몸의 가장 밑바닥 발을 마사지 해 주면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준다.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려운 이야기다. 눈이 착한 무슬림 알리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잠시나마 행복한 바리에게 또 고난은 닥친다. 바로 미국의 아프간 공격으로 아프간에 간 동생을 찾으려고 알리가 아프간에 가고 감옥에 갇힌다. 거기다가 바리의 아기 홀리야 순이까지도 죽게 된다. 아이를 죽게 만든 샹 언니. 그런 바리에게 압둘 할아버지는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선 안 된다.’ 하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를 잃고 슬픔 속에 방에만 처박혀 있던 바리가 꿈을 꾼다. 바리공주가 저승 가서 알아다 주겠다고 질문을 받은 것처럼 바리도 질문을 받는다.

“우리가 받은 고통은 무엇 때문인지. 우리는 왜 여기 있는지.”

“어째서 악한 것이 세상에서 승리하는지 알려줘요. 우리가 왜 여기서 적들과 함께 있는지도.”

“우리의 죽음의 의미를 말해보라!”

“우리는 언제나 너에게서 풀려나게 될까?”

바리공주는 생명의 물을 얻었지만, 바리한테는 생명의 물 따위는 없더라. 거기다 생명의 물은 아무도 대신 가져올 수 없다. 답은 다 자기한테 있다. 바리는 자기에게 질문한 사람들에게 답을 준다.

“사람들의 욕망 때문이래. 남보다 더 좋은 것 먹고 입고 쓰고 살려고 우리를 괴롭혔지. 그래서 너희 배에 함께 타고 계시는 신께서도 고통스러워하신대. 이제 저들을 용서하면 그이를 돕는 일이 되겠구나.”

“전쟁에서 승리한 자는 아무도 없대. 이승의 정의란 늘 반쪽이래.”

“신의 슬픔. 당신들 절망 때문이지. 그이는 절망에 함께하지 못해.”

부르카를 쓴 여인에게는 “서양놈들하고 너희네 남자놈들이 그 헝겊때기 보자기를 같이 씌워놨어. 바깥놈은 그걸 벗겨야 개화시킨다구 그러구 안엣놈은 집안 단속해야 자길 지킨다구 그래. 신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이승의 얼굴이 너희들이야.”

바리가 가장 미워하는 것들에게는 “우리 엄마가 묶여 있어. 엄마가 미움에서 풀려나면 너희두 풀릴 거야.” 하는 대답을 홀리야 순이가 바리 안에 들어와서 해 준다.

꾸바의 관따나모에 갇혀 있었던 남편도 돌아오고 바리는 다시 아이를 가진다. ‘하마터면 세상이 달라졌다고 믿어버릴 만큼 평온하게’ 지냈지만 영국 시내에서 테러는 끊이지 않는다. 세상 어디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죽어가고, 굶주리고, 울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힘센 자의 교만과 힘없는 자의 절망이 이루어낸 지옥이다. 우리가 약하고 가진 것도 없지만 저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세상은 좀더 나아질 거다.’

세상은 좀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 그리고 그저 세상 어디에서가 아니라 바로 나, 바로 여기라는 현실 감각. 끝까지 가본 것 같은 바리가 더 이상 지쳐있지 말고, 일어나라고 나를 깨운다. (2007.8.6)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스케 2007-08-0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서 지나쳤던 책이군요.. 생각했던 거랑 이야기가 많이 다른듯해서 조금 놀랬습니다. 언제부턴가..제목만 보고서.. 내용을 지례짐작하는 못된 버릇이 생겨난듯 합니다.. 이런 버릇일랑..얼른 고쳐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