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다 보니 산 책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플렉스너 보고서>인데, 역사적으로 유명한 문헌이기는 해도 당장 내 일이나 전공이나 관심사와는 무관한 것이므로 아주 긴요한 자료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학술진흥재단 고전번역총서 시리즈를 모으다 보니 덩달아 구입했을 뿐이다.(마침 헌책방마다 남아도는 악성 재고라 저렴하기도 했고).
이번 의료 대란을 지켜보면서 의료 사회사에 관한 책을 몇 가지 꺼내 보게 되었는데, 이미 갖고 있던 폴 스타의 <미국 의료의 사회적 변모>라든지, 이반 일리치 전집 가운데 하나인 <전문가들의 사회>가 그러했다, 김현아 교수의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는 유튜브에 올라온 저자의 강연/해설로 접했는데, 근본적 인식 변화를 요구하다는 점에서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
폴 스타의 책은 실력자와 돌팔이가 혼재되었던 미국 의료계가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개선되면서 전문가로서의 의사가 육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일리치와 여러 저자가 공동 저술한 책에서는 바로 그런 전문가로서의 권위가 과장되었으며, 의료 역시 서비스라는 점에서 대중에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직 의사 김현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병원에 덜 가자고 한다.
<플렉스너 보고서> 번역본을 뒤늦게나마 꺼내 읽어본 까닭은 폴 스타의 책에서 그 전후 맥락이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미국에서는 의료 교육도 전문가 양성이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그중에서도 저 유명한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이 선례를 보여주고 나머지 대학들도 뒤따라감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의료 교육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여러 의과대학은 설비와 교육 수준이 천차만별이어서 함량 미달의 의사가 양산되었고, 이를 개선할 방안을 도모하던 미국의사협회에서 객관성 보장을 위해 외부 기관인 카네기 재단에 의뢰하여 의과대학의 현황을 조사했다. 조사를 총괄하고 훗날 간행된 보고서에도 이름을 올려놓은 에이브러햄 플렉스너가 의사 아닌 교육가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플렉스너는 미국의 의과대학 가운데 상당수가 애초의 공언과는 달리 제대로 된 설비와 교과 과정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으며, 그 결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의과대학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1904년에 160개에서 1920년에 85개를 거쳐 1935년에 66개로 한 세대 만에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덕분에 이후로는 의사의 수준과 의료의 수준 모두 향상되었다고 평가된다.
이런 내용만 놓고 보면 <플렉스너 보고서>의 결론은 현재 우리나라의 의대 증원 논란과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의료의 수준을 높이려면 의대/의사 숫자를 늘릴 것이 아니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의 목표는 돌팔이를 걸러내고 실력자만 의사로 만들자는 선별의 문제였으므로, 오히려 분포 불균형의 문제인 현재의 논란과는 다르다.
대신 예나 지금이나 공통점은 폴 스타의 지적처럼 의사 집단이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획득하고 나서부터는 공공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플렉스너의 시대에도 의과대학 개편을 통한 전문성 향상이라는 의료 교육의 새로운 목표에 반대하고 현상 유지를 원한 의사가 많았는데, 그들 역시 손쉬운 돈벌이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의료 개혁의 과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소아과 등 일부 과목 기피 현상으로 인한 불균형의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이유도 이런 역사적 선례 때문이다. 무조건 아파트만 짓는다고 집값이 떨어질 리는 없으니,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소아과가 생겨날 리 없다. 의사들의 이기주의도 싫지만 현 정부의 헛발질도 불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플렉스너 보고서> 직후 의료 제도가 어느 정도 개선된 미국에서도 이후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의사 숫자를 놓고 비슷한 논란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의대 정원은 정책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들었지만, 그 적정수를 산출하는 과정에서는 항상 논란이 있었다. 다만 분명한 점은 현재의 미국에서도 의료의 비용 상승과 분포 불균형이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해법이 무엇인지는 나귀님도 모르겠다. 다만 의료 수가 조정을 통해 소아과나 응급 의료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동시에 과잉 진료와 부정 행위를 규제하는 등의 조치가 그나마 일리 있지 않나 싶을 뿐이다. 아울러 김현아 교수의 책에 나왔듯이 궁극적으로는 의료와 병원의 한계를 인식하고 질병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 태도를 각자 체득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한 가지 의외인 점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대란이 3개월을 넘긴 현재까지도 의료 붕괴라고 부를 만한 대참사까지는 아직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턴 대신 교수를 갈아넣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환자들이 병원을 삼가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것 역시 그간의 의료 현장에 일부 거품이 있었다는 반증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없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