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펀드에 마오주의를 다룬 책이 있기에 저자가 누군가 궁금해 알아보니, 일찍이 만리장성에 대한 책을 썼던 줄리아 로벨이었다. 몇 년 전에 알라딘 중고샵에서 한두 달 사이에 중국 장성에 관한 책을 연이어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 저자의 그 저서도 구입하지 않았나 싶다.
내친 김에 장벽이며 창문이며 철조망이며 고양이사다리(?)며 하는 건축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다룬 책들도 함께 엮어 읽어보려다가 차일피일하던 것이, 지금은 어느 쪽 책더미에 파묻혔는지 알 길이 없어지고 말았다.(비트코인을 쓰레기장에 묻었다는 누군가의 심정을 알 것도 같다).
마오주의라는 명칭을 처음 접하지 않았나 싶은 곳은 의외로 이사벨 아옌데의 초기 소설 가운데 하나에서였다. 주인공인 칠레 소년이 혁명을 해 보겠답시고 가출해서 마오주의자 집단에 가담했다가, 뒤늦게야 아버지가 찾아오자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서 싱겁게 따라갔다는 내용이다.
나귀님은 <에바 루나>의 한 대목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와서 다시 구글링해 보니 <사랑과 그림자>의 한 대목인 모양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서양 사람이 '마오주의자'를 자처하고 나선다는 대목이 가장 신기했는데, 마오쩌둥의 지지자라면 당연히 중국인뿐일 것이라 생각한 까닭이었다.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측면까지 감안한 엄밀한 의미에서의 마오주의 말고, 일반적인 의미의 마오주의는 전세계 반정부 단체니 게릴라 집단에서 차용하는 실천 방법이라고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로벨의 책에서도 지적했듯, 비록 영향력은 한정되었어도 숫자만큼은 의외로 많은 듯하다.
사실 마오쩌둥 지지자의 활동이라고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오주의보다 더 악명 높은 홍위병인데, 그렇잖아도 최근 넷플릭스에서 영상화된 중국 작가의 SF 소설 <삼체>의 배경이 문화혁명 시기라고 해서 새삼스레 화제가 된 (아울러 중국에서는 논란이 된) 모양이다.
문화혁명이니 홍위병에 관한 책은 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번역되어 왔다고 기억하는데, 가장 최근에 읽은 것으로는 <백 사람의 십 년>이 있다. 그 시기를 몸소 겪은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열거하는 구술사인데, 역사가의 서술과는 또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편 한사오궁의 <혁명후기>는 문화혁명이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아마도 마오쩌둥 개인이나 공산당의 정책 같은 한두 가지를 원인으로 바라보는 단순 해석을 경계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인간에 대한 과도한 낙관주의가 원인이라는 그의 지적도 선뜻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런 맥락이라면 차라리 성악설 쪽이 더 간단하지 않을까. 대략 한 세기 전에 대두한 나치즘도 결국 문명인인 독일 국민 가운데 상당수를 일시적이나마 악마에 가까운 존재로 바꾸어 놓았었으니까. 인간에 대한 낙관주의야 그때 이미 폐기된 줄 알았더니, 중국은 한 발짝 늦었던 걸까.
사실 홍위병의 활동은 마오쩌둥에 대한 숭배와도 떼려야 뗄 수가 없다고 알고 있다. 기성 권위와 질서를 타파하겠다며 저지른 갖가지 만행이 최고 지도자를 향한 팬심으로 정당화되는 상황이었으니, 마오쩌둥이 유일무이한 원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뇌관 노릇만큼은 충분히 했던 셈이다.
이른바 68혁명에서도 학생들의 시위에서는 홍위병 비슷한 요소가 드러났었다고 전하니, 어쩌면 그것 역시 마오주의의 영향 가운데 하나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오쩌둥 역시 유교나 도교나 선불교 못지않게 전세계에 심오한 영향을 준 중국의 사상적 수출품이라니 새삼스레 놀랍다.
[*] 애초에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마오주의> 북펀드 광고 페이지에 저자 이름이 '줄리아 로벨'과 '줄리아 노벨'로 잘못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쓰다 보니 그 이야기는 쏙 빼놓게 되어서 사족으로나마 붙여 본다. 지금도 그런가 싶어서 살펴보았더니, 여전히 그대로다. 일해라, 알라딘!